오랜만에 황사도 비도 없는날
여자들은 나풀나풀 치마 입고 남자들은 반팔입고 돌아다니는 날씨에
까만색 가디건에 까만색 바지 까만 가방, 그리고 까만 뿔테까지쓰고
길을 나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사실 작은 할머니라고 불러야 맞지만 우리아빠 한테 어머니 같은 분이시라
우리집에선 할머니가맞다.
청주로 내려가는 내내 이상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6개월 사시리라고 선고내린 그대로 딱 6개월이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정신없이 북적북적 한데 아는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아빠한테 전화하니 조금 기다리라고 하셔서 밖에서 가족도 아닌 듯 서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때 입관식이 었는데 나는 아직 어리다고(?) 제외 .
입관식 끝나고 어른들 들어오시고, 기독교식 이었지만 우리집은 불교라
향에 불붙이고 절3번하고 상주들과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삼촌이 눈물 꽉참은 얼굴로 “열심히 해라 열심히해야 할머니가
좋아하시지”한다..그때도 난 메마른 목소리로 “예” 짭게 대답.
그뒤로 집을 며칠 비운 엄마의 걱정과 얼른 시집가라는 고모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있어야 가죠~ 흥흥 하고 웃고 떠들고 ..동생학교핑계로 일찍 일어난다.
어른들한테 돌아가면서 인사하고 ..할아버지를 찾았는데 통 보이시질 않아
그냥 가기로 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저기 화단 바위위에 혼자 앉아 계신모습이 보였다.
그모습 그대로 인사동 몇평안되는 그가게에 앉아 계실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가슴이 먹먹해온다.
할머니가 투병중이실 때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볼품없어 지셨다고 투털투털 투정하시니
할아버지는 그래도 좋으니까 곁에만 있어달라고 하셨다.
입관식 할때도 할머니 입에 입맞추고 안고하시면서 이렇게 편안히 자는 것 같은데 너무
이뻐서 그냥 집에 데려가고 싶다고 하셨단다.
남자에게 아내는 청년기엔 연인 장년기엔 친구 노년기엔 간호사라 고 하던데..
팔순의 할아버지에겐 할머니는 언제나 연인 이었나보다
할머니도 평생 힘든일 많았지만 행복했다고 답하셨다.
가겠다고 인사하는데 할아버지가 정류장 까지 데려다 주마 하신다
뒷짐진 모습이..뒷짐진 모습이 너무 작아서 팔짱을 껴보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도 그런사랑 찾을수 있을까, 만들 수 있을까, 지킬수 있을까..
벌게진 눈으로 생각 또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