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십자 훈장 - [초특가판]
샘 페킨파 감독, 제임스 코번 외 출연 / 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 / 200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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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소멸시켜도 법적으로 어떠한 처벌을 받지 않는 장소는 아마 전쟁일 것이다.
인간성 깡그리 무시되고, 내가 죽기 싫으면 남을 죽여야만 하는 이 비정한 공간을 샘 페킨파 감독이 구경만 하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영화가 `철십자 훈장' 이라 보고 싶다.



이 멋있는 원래 포스터를 마다하고 조잡한 국내용 포스터와 DVD 표지를 보며
경악했다.

유럽에서 만든 이 영화의 재미있는 사항은 근세기 인류가 치뤘던 굵직한 전쟁사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을 승전국의 시점이 아닌 패전국 독일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하필 장소도 그때 어느 전장보다 처참하고 잔혹했다고 전해지는 소비에트 연방과 대치되는 동부전선이며, 밀리고 밀리는 팽팽한 대립이 존재했던 레닌그라드 전선이다. 그리고 적의 개념인 소련군과의 대치보다는 독일군 내부의 계층 갈등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비정함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었다.

필요없는 살상을 가급적 줄이면서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소대원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슈타이너 상사는 지루하게 펼쳐지는 전선에서 어떻게 보면 선을 긋고 전쟁에 임한다. 시기가 되면 떨어질 퇴각명령을 기다리는 상황속에서 그와는 대립되는 반동인물 스트랜스키라는 자신의 직속상관을 만나면서 영화의 갈등은 시작된다.

전장의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자신의 목숨뿐만이 아닌 동료 혹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상급장교의 목숨까지 구해준 전력이 있는 백전노장 슈타이너에 비해 한가롭게 프랑스에서 포도주를 마시면서 유유자적하던 군인 귀족주의로 똘똘뭉친 프로이센 귀족출신 스트랜스키는 첫 만남부터 물과 기름의 사이임을 서로 직감하게 된다.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그시대 독일군의 최고 명예인 철십자 훈장을 위해 이 피비린내 나는 곳에 자원을 했다는 소리에 이미 그는 부임 첫날부터 경계와 열등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자신의 찬란한 신분과 지위에 비해.....

보는 관점에 따라. 무의미한 쇳덩어리 훈장 때문에 슈타이너는 생일을 맞은 동료 상사를 바로 그날 잃어버리는 비극과 비이성적인 편집증을 보이는 상관(스트랜스키)에 의해 무리하게 치뤄진 전투에서 소대원과 함께 낙오되고 귀환하는 도중 역시 스트랜스키의 충실한 개였던 그의 부관에 의해 대부분의 소대원을 적의 총이 아닌 아군의 총에 의해 잃어버리는 과정을 겪으면서 냉정을 지켜왔던 그의 자제심은 폭발하게 된다.

살아남은 소대원과 명령의 의미로 떨어져 나온 슈타이너는 이제 그가 강제적으로 맞이한 새로운 소대원 스트랜스키를 대동하고 이미 퇴각명령이 떨어진 전장에서 그들의 적과 대치하면서 마무리가 된다.



오른쪽이 슈타이너로 열연한 `제임스 코번, 왼쪽은 바보 스트랜스키역의 막시밀리언 쉘

시종일관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우리나라에선 동요로 쓰인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의 원음으로
흘러나오는 이 비정한 전쟁영화는 감독의 다른 작품처럼 여러 장면에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다.

초반에 생포한 소련군 소년병에게 살상이라는 방법보다는 공존을 택했던 슈타이너는 아이러니하게 그 소년의 동족에게 우발적으로 살상당한 장면 직후 영화 중 가장 평안한 시간인 병원으로 후송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패닉상태의 소대원에게 여성스런 딥키스로 진정을 시키는 모습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대의 최고위층 대령에게 `난 당신들 장교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고 일갈하는 모습. 마지막 비워진 탄창을 재장전하지 못하는 스트랜스키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장면. 폭력으로 얼룩진 모습보다 대립하는 인간관계가 더 잔혹하게 보여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잔인한 장면보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비정한 전쟁이라는 공간속에 박혀있는 이기적인인간군상들의 예리한 대립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적인 결말이 더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졌던 전쟁영화의 수작이라고 판단되는 영화이다.

뱀꼬리1 : 독일군들이 주인공인 영화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영국배우여서 그런지 독일군이 내뱉는 대사가
독일어가 아닌 영어였다. 이건 좀 어색했다.

뱀꼬리2 : 1978년에 상영된 영화이다 보니 그 표현이나 효과는 요즘영화와 비교하긴 힘들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음해에 발표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살펴보면 이 영화에서 표현된 많은 기법과 장면들이 재등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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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영화 <철십자 훈장>에서 슈타이너 상사가 달고 있는 메달들
    from deutsch`s Web Cafe 2008-09-09 00:49 
    오늘 DVD로 영화 샘 페킨파 감독의 (원제:Cross of Iron)을 보다가 문득 슈타이너 상사의 군복에 달린 기장류가 눈에 띄어 찾아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사 카테고리도 만들어놓고 "관심이 많다"고 줄창 외쳐대지만,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다보니 자료 찾는데 애로 사항이 많다. 아래 기장과 훈장들은 영화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별로 신경써서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이상하게 이렇게 작은 것에 눈길이 잘 간단 말이지.....
 
 
비로그인 2006-09-0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탈린그란드가 기억에 남는데요.한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다수의 영화들이 미국의 입장에서(당연히 미국에서 만들어거 그러겠지만) 영화를 전개한다면 이 영화는 독일군의 시각에서 보고 있죠.

sayonara 2006-09-0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사이트에서 초저가에 할인중이라 살까 말까 고민중인데... 영화 한 편 관람료도 안되는 돈을 아끼기에는 너무 좋은 작품 같네요.
셈 페킨파 감독이라면.. 리뷰에서 언급한대로 이 작품도 '피가 튀고 살이 튀는'...?!

Mephistopheles 2006-09-1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 군의 국적을 따져 어딜가도 있는 이기적인 인간군상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요나라님 // 그래도 요즘 영화들에 비하면 참으로 얌전한 편입니다..^^기존의 샘 페킨파의 영화에 비하면 좀 수위가 낮다고 해야 하나요..^^

TexTan 2007-08-26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와일드 번치가 떠오르네요. 평화로운 멕시코 숲길을 가는 장면과 마지막에 지독한 총격씬.. 철십자 훈장에서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군을 향해 총을 쏘는 안타까운 장면이 잠깐 스칩니다. 편집의 리듬이 약간 묘한 감독이란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