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지각을 해버렸다. 30분이나 늦어버린 것이다.
이유는 전날 엄청난 과음을 했다거나, 혹은 엄청난 일량으로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해서가 아닌....
영화 두편 연달아 보다가 지각을 해버렸다.
어제 저년 11시반쯤에 비교적 평상시 보다 일찍 잠들어 버린 주니어 덕분에 구입한 DVD를
시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와버렸다. 첫번째 영화는 샘 페킨파의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 라는 다소 잔혹한 제목의 영화였다. 그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새벽 1시...마님은
이미 자신의 취향이 아닌 영화인지라 방에서 해리포터 삼매경에 빠져 계셨고, 곧바로 굉장한
배우인 스티브 맥퀸의 `블리트'를 DVD 플레이어에 집어 넣어 버렸다. 결정적인 지각원인의
제공자는 다름아닌 스티브 맥퀀이였다.
즐겁게 시청을 하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본편 영화와 스페셜픽쳐까지 다 보고 나니..새벽 3시
10분...눈은 뻑뻑해졌고, 온몸은 마치 흐느적 흐너적 문어의 그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 느낌
이였다고나 할까...헥헥 거리면서 이부자리 위에 누워 불과 10여년전의 나의 영화인생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가는 이유는 뭐다냐....
심야에 극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3편을 내리 틀어주는 그 무지막지한 상영시간에도 끄떡없이
영화관람을 마치고 가까운 설렁탕집에서 아침밥을 먹어주고 고수부지에 농구를 하러 갔던 그
강철 체력....조조 선착순 100명에게 팜플렛 무료증정이란 말에 현혹되 아침 8시부터 극장앞에서
친구와 수다 떨면서 그때 당시 천원에서 이천원하는 팜플렛을 기어이 받아냈던 약간은 광신도적인
모습....비디오 가게에서 신프로 5개를 빌려가면서 가게 점원의 `이거 신프로라서 내일 모두 반납
하셔야 하는데 가능하시겠어요?' 란 물음에 씩 웃으면서 `그까이꺼~' 했었던 모습까지......
꺼이꺼이 감겨져 가는 무거운 눈커플을 억지로 치켜뜨며, 20대때의 그 팔팔 끓던 강철체력을
회상하며, 나름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두편의 오래된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뇌세포의 급작스런
회전과 분출하던 아드레날린으로 인해...겨우겨우 새벽 4시 반에 잠이 들어 버렸다.
샘 페킨퍼와 스티브 맥퀀이 선물해줬을 것이 틀림없는 핏발선 눈동자와 까칠한 피부를 아침에
목격하면서 이제 더 이상 그때 그 팔팔했던 청춘이 아니다라는 생각과 함께 원숙미와 노련미로
무장을 해야하는 나이스 미들의 길을 가고자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고나 할까..
뱀꼬리 : 졸려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