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두 달여 테헤란로로 출퇴근하는 파견 업무가 이제야 마감되었다. 본사 복귀 후 늘어지게 쉴 것이라는 예상은 애당초 기대도 안했지만, 생각보다 본사에서 처리했던 다른 프로젝트가 개판 오 분 전 상황이었기에 좀 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이제 그것도 이번 주가 지나면 잔잔해질 예정. 누구의 말처럼 이것 또한 지나가리.를 몸소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 몇 달간 하드하게 일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고만고만한 사무실이 모여 일을 추진한 게 아닌 업계 메이저 급 사무실이 주도했던 프로젝트이기에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더불어 그 메이저 사무실의 원소속이 S모 그룹이기에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이 어떤 마인드로 일을 하는지 경험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행하고 있는 S그룹 불매운동의 이유는 총수의 부도덕성과 문제점으로 시발되었으며 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매도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파견근무 후, 이런 정의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프라이드와 엘리트 의식은 뭐라 탓할 수 없겠지만, 몇 번의 술자리에서 느꼈던 사뭇 이질적인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살짝 놀라게 되었다. 단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타적 감정을 느꼈다가 보단 가장 기본이 된다고 생각되는 도덕과 정의에 대한 개념자체가 틀린 모습을 보여줬다. 예를 들자면 S그룹 총수의 일련의 탈법, 부도덕적 행동들은 정당하고 당연하다는 생각 같은 것....
그 밥에 그 나물이며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S모 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의 범위가 의외로 확산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물건뿐만이 아닌 사람까지 말이다.
2.
사무실을 비운지 두 달 여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었나 보다. 일손이 모자라 직원 한 명을 더 뽑았고, 단기 알바로 또 다른 한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파견은 4명이 나갔지만 복귀는 3명만 하게 되었다. 지쳐 나가 떨어져 한 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무실은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북적 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이유야 본사에서 처리했던 두 개의 프로젝트로 인해 사람들끼리 충돌이 발생했다고 한다.
낙하산 모님은 일을 하기 싫어 직원들에게 엄청난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입사한지 넉 달쯤 되는 나와 동갑인 경력사원은 기본적인 자질조차 모자라 사무실 소장마마의 된서리 직격탄을 두 차례나 맞아버렸다고 한다. 본사에서 이 모든 걸 지켜 본 모 직원은 분위기 정말 지저분했고 특히 낙하산 모님은 나와 실장님의 부재를 기회로 엄청나기 기가 살아났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된서리 직격탄 맞은 함량미달 직원은 세 번째 된서리에 나가떨어져 사직서를 제출했고, 낙하산 모님은 나와 실장님의 복귀 후 본연의 모습으로 조용하게 돌아왔다. (소장마마의 말씀대로라면 이번에야말로 꼭 정리를 하겠다고 한다.)
3.
파견 근무 막바지 기간 동안 군용 헬기가 서울 하늘에 그렇게 저공으로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정지해 있는 모습은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하지만 헬기에서 발생하는 그 엄청난 소음은 하루 종일 귀청을 때렸다. G20기간 전에 테헤란 로를 벗어나서 다행이지 계속 그곳으로 출근했다면 꽤나 불편했을 것 같다. 한 가지 궁금한 것 하나. 대회기간 동안 코엑스에 민간인 출입을 원천봉쇄했다고 하는데 지하에 있는 그 수많은 매장의 매출은 누가 책임질까 궁금하다. 혹시 국가적 차원에서 대의적으로 이번 달 임대료를 깎아주거나 아님 매출에 준하는 혜택을 주지 않을까. 에이 설마....
4.
업계 분위기가 좋지 않다. 올해는 어찌저찌 선방을 했다지만 내년엔 흑마법사가 유성을 떨어트리듯 우리 업계에 뭔가 큰 일 하나가 강타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때 그 IMF때의 기억을 빌리자면 우리 쪽 업계가 총알받이로 첫빠따를 맞은 직후 타업종으로 도미노처럼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양계장을 뚫고 들어온 쥐 한 마리가 닭 내장을 긁어먹는 그러나 정작 닭은 가려운데 긁어준다고 좋다고 실 눈뜨고 즐기다 결국 껍데기만 남는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