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에 있는 과학관에서 초등학생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일이다. 날씨는 더웠고 인원은 제법 많았었다. 그러다 보니 코너 하나하나 기다리는 시간을 꽤 잡아먹게 되었다. 모든 부스가 야외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별 수 없이 땡볕에 사람들은 노출되었고 짜증도 이만저만 날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님과 대충 궁여지책으로 일단 각자 다른 코너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보는 잔머리를 굴렸다. 갑자기 고성이 폭발한 곳은 내가 주니어를 데리고 기나긴 줄을 섰을 때였다.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부부가 백주대낮 길거리에서 싸움이 난 것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싸움이 아닌 남자의 일방적인 고성이었지만 말이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이러하다.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이런 땡볕에 장기간 줄을 서는 별 볼 일없는(정말 별 볼일 없었다. 행사 주최 측의 준비가 지나치게 안일했으니까.) 전시회에 왜 나를 끌고 왔느냐가 요지였다. 물론 날씨나 환경에 따라 짜증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당연히 든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심하다. 분명 자신과 동거 동락한 부부일 텐데 남자의 짜증은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야. 너로 시작하는 자신의 아내에게 퍼붓는 짜증이 급기야 아이들에게까지 번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빽빽 소리를 지르며 줄을 벗어나 나무그늘에 앉아 씩씩거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남겨진 아이들과 부인은 강렬한 태양 때문만은 아닌 분명 다른 것으로 얼굴이 뜨거웠을 것이다.
그날 밤 마님과 마트로 마실을 나왔다. 우리 부부는 사람 많이 모인 곳을 질색팔색하는지라 가급적 한가한 시간에 맞춰 장을 보곤 한다. 그날도 유유자적 카트운전을 하며 마님과 장을 보는 와중에 뒤에서 고성이 튀어 나왔다. 어린 딸을 카트에 태우고 자신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인과 한 남자가 고성이 내뱉기 시작한다. 듣고 싶어서가 아닌 워낙에 남자의 목소리가 기차화통을 통째로 구워먹은 볼륨인지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 짜증이었다. 역시나 낮에 만났던 남자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너, 혹은 야로 시작하는 고성에 마지막 육두문자까지 간간히 섞기 시작한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인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 정도. 단지 중간에 낀 아이의 표정은 낮에 봤던 그 아이들과 마찬가지고 어둡고 불안해 보이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본의 아니게 하루 동안 두 번이나 아빠라는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 보여 줄 수 있는 추태를 연달아 목격하게 되었다. 물론 밖에 나가 뭐빠지게 일하느라 피곤도 하고 스트레스도 쌓였을 것이다. 그건 내가 같은 위치에 있는지라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말이다. 자신의 아내 혹은 아이들에게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고성으로 짜증을 내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모습. 이건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닐까 싶다. 한 가정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사회에서 잘 나가는 남편, 내조 잘하는 아내의 단독적인 모습이 아닌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가 평가의 잣대라고 생각된다.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가장으로써가 아닌 가정적이고 이성적인 가정의 중심으로써 아빠의 모습은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보상은 고스란히 돌아오기 마련이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조금만 노력하고 참을 수 있는 아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