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만년 만에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사무실도 먹고 살기 위해 직원들을 파견보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하는 일 역시 이번 정권 전시행정에 보란 듯 총대 메고 뻘짓하는 일이기에 그다지 반갑지 않지만 서도 먹고 사는 밥벌이의 입장에서 찬밥, 더운밥 쉰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보니 이렇게 본의 아니게 집에서 사는 구의 건너 건너까지 가는 수고를 해대고 있는 상황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좋은 추억 하나 없는 나의 첫 번째 사회생활을 했던 장소와 매우 가깝다는 것. 물론 그때 그 사무실은 그때 그 소장의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지금이야 흔적도 없이 공중에 산산이 부서져버렸지만. 다시 그길로 돌아와 똑같은 코스로 출퇴근을 하는 요즘은 감회가 새롭다.
일단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면 이렇다.
1.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많이 세련되어 보인다. 더불어 100이면 80%정도는 귀를 틀어막고 조그마한 액정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신문을 보는 사람도 극히 드물고 책은 읽는 사람은 더더욱 희박하게 보일 뿐이다.
2. 정거장에 내려 개찰구로 올라가는 길은 참 남사시럽다. 왜들 그리 짧게들 입고 다니는지. 3월임에도 불구하고 찬바람 쌩쌩 불어재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 짧게 짧게 입고 다니신다. 계단 오를 때 시선처리 곤란에 고갤 바닥에 처박고 걸어 올라가기 일쑤다.
3.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두정거장을 더 가야 위치한 사무실이기에 조금 일찍 출근하면 걷기를 감행한다. 길거리에 여러 간판을 두른 커피 전문점이 참 많이도 눈에 보인다. 천사날개부터 시작해 바다여신, 커피콩, 처음 들어보는 상표의 커피전문점들이 넘쳐난다. 사무실 바로 옆 건물 1층에도 보란 듯, 하나 위치하고 있다. 어쩌다 한번 들어가 커피를 마셨는데 여전히 비싸다. 커피 한 잔이 밥 한 끼 값이라. 뭐 그러려니 한다.
4. 다행히 합사형태의 파견근무인지라 모든 비용은 사무실에서 충당되고 있다. 당연히 밥값 역시 사무실 비용으로 지출된다. 하지만 주변 밥집의 가격은 기본이 5000원부터 시작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먹을 만 한 건 7000원을 가뿐히 도달하는 가격들이다. 맛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조미료 맛이 강조되는 음식들은 혀가 괴롭다. 더군다나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점심을 해결하는 입장에서 이런 음식들은 참 난감하다.
5. 다행히 서울시내 한복판에 꽤 큰 공원을 거쳐 가는 출퇴근 코스이기에 조금 일찍 움직여 두 정거장 정도 걷다보면 그나마 강남치곤 공기는 좋은 편이다. 더불어 여러 사람들과 마주친다. 어제는 한 떡대하는 골든 레트리버를 끌고 산책을 하는 어떤 여인네와 같은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떡대에 비해 어찌나 유순한 눈을 가지신 견공이신지 차마 만져보진 못하고 은은하게 눈빛만 교환했다.(개랑!)
이렇게 4월말까지(5월까지라는 소문도 있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 다행인 건 불과 얼마 전까지 계속 새벽에 들어가는 고된 일 량을 어느 정도 죽여 놨기에 조금. 아주 조금..여유가 있다. 얼마나 가겠냐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