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정기용/건축가

“기자회견 하겠다” 간청하자 “참아라”

지붕 낮은 집을 원한 대통령

5월 23일 토요일 하루 종일 찌푸린 하늘아래 가랑비가 흩뿌렸다. 가슴이 에린다. 끊임없이 눈물이 고인다. 부엉이바위는 계속 내 눈 앞에 나타나 시야를 흐리게 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하고, 지금 떠나서는 안 되는 분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심경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오늘 나는 고백해야만 한다. 그동안 가슴속에 꾹꾹 참아왔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아야만 하겠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위해 나는 두 가지를 밝힌다. 한가지는 세상 사람들이 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서 바라보는 봉하마을 사저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귀향한 한 농촌인으로서 ‘농부 노무현’이 꿈꾸던 소박한 세계를 알리는 것이다. 오늘의 이 비통함과 가슴 저리는 심경 속에서 우리가 갖춰야 되는 최소한의 예의는 고인에게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봉하마을의 사저는 내가 설계했기 때문에 내가 제일 잘 안다.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은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이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봉하아방궁’이라는 말로 날조해서 사저를 비하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나는 대통령에게 내가 나서서 기자회견을 해야겠다고 간청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래봐야 아무소용이 없으니 참으라고 하셨다.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귀향 이유로 “아름다운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농사도 짓고 마을에 자원봉사도 하고, 자연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어 살았듯이,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는 신을 신고 밖으로 나와서 이동하는 방식을 권유했다. 대통령은 흔쾌히 동의하셨다.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확장한 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건축가는 안다. 건축주가 누구이며 집을 통해 무엇을 실현하려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지붕 낮은 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봉하마을 주민들의 농촌소득 증대사업을 유기농법으로 전환시키고, 봉화산과 화포천 일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치유하며,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생태교육의 장을 만들고자 하셨다. 재임 시절 풀지 못한 숙제 중 하나인 농촌 문제를 스스로 몸을 던져 부닥치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퇴임 뒤 일년 내내 쉴 새 없이 지속되었다. 마을 뒷산 기슭에 ‘장군차’도 심을 예정이었고, 마을 마당 앞뜰에는 특산물매장도 꾸리고 ‘노무현표’ 쌀도 팔 계획이었다. 특히 마을장터 지하 쪽에 작은 기념도서관 건립도 꿈꾸고 계셨다. 민주화운동 시절 당신이 가까이했던 민주주의에 관한 책들, 당시 젊은이들의 양식이었던 모든 책들을 모아 작지만 전문적인 ‘민주주의 전문도서관’을 구상하고 계셨다. 농사도 짓고, 자연과 생태를 살리고, 나아가서는 봉화산자락 부엉이바위 밑에 작은 동물농장을 만들어 청소년들과 함께 하려는 생각들이 바로 인간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던 소박한 꿈들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폭넓은 독서에 빠져 통치시절을 정리하며 집필 작업에 임하셨다. 독서와 토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즐기던 값진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대통령은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것은 내 탓이다. ‘산은 멀리 바라보고 가까운 산은 등져야한다’는 조상들의 말을 거역하고 집을 앉힌 내 탓이다. 봉화산 사자바위와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하던 부엉이바위 가까이에 지붕 낮은 집을 설계한 내 탓이다.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자. 그가 목숨을 던져 우리들에게 남긴 질문들을. 한국 현대사 속에 심연처럼 가로놓인 질곡, 멍에, 허위의식, 인간의 탈을 쓴 야수성들. 이 모든 것을 안고 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나는 순교라고 밖에 달리 부를 말이 없다. 나는 부엉이바위 밑에 만들 동물농장 그림을 보여주기로 한 약속을 못 지킨 채, 지금 봉하마을로 내려간다. 대통령은 지금도 바로 거기에 계시므로.

정기용/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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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6918.html 

 

 




 

나야 저 분처럼 흔히 말하는 1류 건축가의 범위는커녕 2류도 안 되는 3류 나부랭이 건축을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기사를 스크랩했다. 지금이야 대단위 공동주택(아파트)이 주 업무가 되어 있지만 과거 조금 조금한 건물들을 지어주며 건축주들과의 대면이 종종 있어 왔었다. 어찌되었던 그들은 그들 소유의 땅에 그들에 기거할 집이나 혹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임대성 건물을 짓기 위해 우리를 고용한다. 고용된 입장에서 고용자가 원하는 요구조건을 100% 만족할 수 있게 들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당연한 일이다. 이 부분이 확대 해석되어 건축설계는 서비스업으로 분류가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여러 유형의 건축주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업계 내 위치를 감안해 사회적 명사나 유명인물을 건축주로 만난 적은 결단코 없었다. 단지 돈이 좀 있는 지역의 유지들이나 혹은 소장들의 개인친분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죄송한 말이지만 내가 만났던 건축주들 중 지적인 면이나 품위나 고상과는 좀 거리감이 있었던 부류들이 전부였다. 이런 판단은 다른 것도 아닌 설계를 하는 건물에서 나타나곤 한다.

임대용 목적으로 주택을 지을 때 그들의 주문은 기가 막힐 정도로 일관적이며 대동소이하다. 1)건폐율, 용적률 법정 허용 면적 최대한 찾아먹을 것. 2)자재는 최대한 저렴한 것, 공기(공사기간)는 최대한 단기로 잡을 것. 3) 1층 주차장은 건축법적 과정을 거친 후 임의용도변경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가변적인 자재를 사용할 것. 4)설계비는 당연히 수시로 요구하여 깎아내고 에누리 퉁 칠 것.

자신이 살 집을 설계하는 경우도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실과 실들의 유기적인 조화나 주변의 내외적은 환경과 조화로운 건물의 구성보다 남에게 과시를 하기 위해 어디서 들고 왔는지 모를 외국어 잔뜩 써진 건물사진과 실내사진을 들고 카피를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곤 했다. 아마 은행잔고가 곳간에 쌓아둔 곶감 빼 먹듯 빼 먹어도 티가 안날 정도로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건물 전체를 금도금을 해달라고 할 정신상태의 소유자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이 분들은 건물을 짓는 가장 기초단계인 설계를 시장판 물건을 사는 것과 다른바 없이 보는 시각을 소유하고 있는 것. 조금 더 원초적으로 싸잡아 폄하 하면 이런 건축주들에게 쾌적한 환경과 건축물로 이루어지는 공간의 유동성과 역학성 따위는 개밥그릇의 뼈다귀만도 못한 존재라는 사실. 아주 노골적으로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냥 돈만 좀 쥐고 있지 교양이나 지적인 수준은 청와대 하수구보다 더 지독한 냄새를 뿜고 있는 지경이라고 보면 된다. 

이와 반대로 내 선배가 만난 건축주 한 분의 의뢰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건축주는 강남의 졸부도 아니고 그냥저냥 자수성가한 성실한 분이셨다고 한다. 너무 세속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슬만 먹고 사는 그런 부류의 위치도 아니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이 분의 설계의뢰를 받고 건물을 설계하며 그 선배는 그 분께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꼼꼼하고 세세하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긴 했지만 전문적인 지식용 단어를 나열하지 않고도 그 분은 자기와 자신의 가족이 살 집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또 해주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자기의 아내는 키가 작아 싱크대는 좀 낮은 걸로 설치해 줄 것. 침실에 붙은 발코니는 화초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온실의 기능이 가능하게 해 달라.  피아노 치기 좋아하는 작은 딸을 위해 작은 딸 방은 조금 크게 만들어 달라. 등등.. 세세하고 꼼꼼하게 가족을 위한 배려를 끝도 없이 요구하고 설계에 반영해주기를 건물이 완공되는 그 순간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이 완공되고 이사를 하고 그 선배를 초대해 예쁘게 집을 지어줘서 고맙다며 밥 한 끼  술 한 잔 대접하며 깊은 유대관계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를 읽으며 난 건축가 정기용씨가 느꼈을 공허함이 감지된다. 아마도 그는 내 선배처럼 배울 것이 많고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한 마음이 통하는 건축주 한 사람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돈줄이 되어 지속적인 이윤의 추구해주는 세속적인 것 말고 그 반대적인 개념으로 느껴지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인정해주고 믿어주고 더 나아가 설계의뢰를 통해 자신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건축주. 건물로 말하면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이 송두리째 뽑혀버린 기분. 평생 설계로 밥 벌어 먹고 살아도 한 명 만나기 힘든 그런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절절히 느껴진다.

바라건대 그 분이 존재유무를 떠나 원래의 순수한 목적을 잃지 않고 그 분의 고향이 농촌 발전의 하나의 마스터플랜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계속 발전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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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치 2009-05-26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출근하면서 버스에서 이 글 읽었는데, 저도 "건축가는 안다..." "조상들의 말을 거역하고 집을 앉힌 내 탓이다" 하시는 부분에서 그냥 흑흑 느껴 울고 말았어요...

L.SHIN 2009-05-2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기사의 건축가분의 안타까운 마음도 메피님의 마음도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마냐 2009-05-2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져나오는 통곡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슴다. 가슴 아프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건우와 연우 2009-05-2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그와 손한번 잡아본적도 없는데 조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두고 두고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맥거핀 2009-05-28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로 공감합니다. 사람의 자취는 그가 지나간 모든 것에 남는 것이겠죠. 냄새나는 사람들이 지나간 곳은 더러워지죠. 그런 사람들은 더러워진 곳을 콘크리트로 덮고 없애려하죠. 그리고 향기로운 사람이 지나간 곳은 아무리 없애려해도 향내가 남아있는 법이겠구요.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