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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예수 - Jesus Of Montrea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느 순간부터 나에겐 종교가 속박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강압적인 종교 활동을 청소년기에 겪고 흔히 말하는 극단적인 선교행위를 몸소 체험하고 나는 교회, 다시 말해 기독교, 좀 더 자세히 말해 개신교에 발길을 끊어버렸다. 아마도 이런 나의 엄청난 거부반응에 어머니 역시 두 손, 두 발을 다 들으셨는지 그 후론 교회에 가자는 일종의 강압적인 요구는 사라지게 된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수 십 년을 다니신 교회에서 하게 된 후, 그때와는 다르게 다소 유연한 표현으로 종교를 이야기 하시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단 하루 주일을 지킨다. 내 아이와 집사람과 함께 일요일 2시간을 교회에서 지낸다. 그렇다고 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 된 건 아니다. 구색과 변명을 붙이자면 내가 교회에 나타남으로 어느 집이나 있을 법한 고부간의 사소한 갈등이 줄어드는 걸 몸소 체험했기에 가정의 평화라는 어쭙잖은 대의명분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래도 예배를 보는 입장에서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귓등으로 들을 순 없다. 주목을 하며 한 말씀 한 말씀 경청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고 설교의 주제가 무언지 파악하는 척이라도 한다. 하지만 다소 독선적이라고 볼 수 있는 기독교의 세계관은 나와 수 많은 충돌을 일으킨다. 특히 타인이 믿는 타종교와 과학에 대해 끝도 없는 불신과 비난을 하는 모습에선 어머니가 목격하셨을 정도로 내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상황까지 간 적도 있었다. 이렇게 나의 생활은 신상명세를 작성할 때 가끔 등장하는 종교 란에 겨우 기독교라고 기재를 할 뿐 그에 빠지거나 생활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수준까지 가지 않는 일명 사이비 종교인으로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정권이 바뀐 후 대두된 정치교회, 권력교회는 결국 비 종교, 타 종교인들의 원성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최근 장 경동 목사의 불교 비하 발언과 작년 통계 개신교 신자의 감소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종교가 종교의 순 목적을 잃어버리고, 사회의 역기능적인 작용을 할 때 민중이나 대중이 과연 그 종교를 곱게 보며 인정할 것이냐는 의문이 든다. 더불어 그 시대 혁명가의 모습으로 보였을 예수가 말하는 진리가 과연 지금 우리나라의 개신교의 부정적인 모습과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일치되는 부분이 있는가? 라는 의문도 존재한다.

수 십 년 전에 봤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이 영화가 생각난다. 예수가 인류를 위한 거룩한 희생을 선택한 후, 수 천 년이 지난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또 다른 예수를 영화 속에서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경 속에 나왔던 예수의 행적을 현대의 시점에 맞춰 배경과 설정을 제시하고 메시아였을 예수의 모습을 과장 없이 표현하고 있다.

지루하고 원론적인 장황한 설교 보다 어쩌면 쉽고 빠르게 예수에 대해 인식하게 되는 장점을 가진 종교영화라는 구분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종교 색을 최대한 여리게 하여 그 시대 예수가 주장한 적극적인 인류애를 연극배우를 통해 소극적이지만 잔잔한 인류애로 승화시킨 이 영화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유행가 가사처럼 사람이 사람을 조건 없이 보듬어주고 사랑할 수 있는 종교의 순기능을 이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만났다는 건 행운으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