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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1 ㅣ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자국의 이익으로 결착 지었던 슈퍼히어로 '코미디언'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으로부터 이 그래픽 노블은 시작한다. 그의 동료이자 슈퍼히어로였던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의 살인사건을 자신의 일기를 통해 서술하면서 사건의 진위에 대해 접근하면서 이야기의 폭이 점차 확대되어간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를 살해했는가? 로 시작되는 의문은 로어셰크가 마주치는 전직 슈퍼 히어로들과의 만남과 회상을 통해 점차 윤곽을 드러내며 구체화되어진다. 종말엔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치밀한 계획아래 준비되어진 거대한 음모와 마주친다. 초반의 중요한 사건으로 보였던 코미디언의 죽음이 사소한 사건으로 축소될 정도로 말이다.
이런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배경은 국가 간 경쟁력과 견제가 팽배한 냉전과 비슷한 시기를 묘사하고 있으며, 주인공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히어로들은 현실에선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존재로 각인되며 부각되어진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대부분 은퇴하였고 일부 능력자들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의 권력에 조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다. 초반에 살해당하는 코미디언 역시 은퇴가 아닌 현역에서 아직도 국가를 위해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주요 등장인물들인 히어로들의 모습도 색다르게 그려진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모습 대신 무미건조한 은퇴자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들의 천적 슈퍼 빌란들의 등장이 전혀 보이지 않듯 노쇠하고 지친, 또는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익히 접해 온 다른 히어로들과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극적인 갈등이 없거나 밍밍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리만큼 폭넓고 전방위적인 주제에 대하여 접근을 시도하고 있기에 과연 이 2권짜리 만화책이 어떠한 집중성을 보여줄지는 책의 반 권을 읽을 때까지 의문스러워진다. 지나친 기우라고 생각할 정도로 스토리는 반 권을 읽었을 때 들었던 의구심을 털어내고도 남을 정도로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짜여 있다는 것은 책의 중반 이후부터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 또한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을 따라가진 않는다. 현실과 회상으로 교차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며 마지막 결론에 도달하는데 적절한 방식을 택했다고 보인다. 그만큼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들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현재에 대해 서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결말에 대해 주절주절 다 풀어버리면 이건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며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고 극장에서 떠들어버리는 어떤 찌질이와 동격으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에 간결하게 설명하고 싶다. 지금까지 봐왔던 그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순기능이 아닌 정반대의 기능이 발발했을 때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 직설적으로 표현해주고 묘사해주고 있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처럼 인간들을 위해 자기희생을 선택하진 않는다. 그것이 비록 인류 최상의 유토피아의 발현이라는 대의명분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구실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뿐이다.
히어로도 아닌 것들이 히어로처럼 인류는 아니더라도 국민을 위한다고 떠드는 위선을 질리게 봐 온 사람들이라면 책의 결말이 그리 놀랍거나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을 듯싶다.
뱀꼬리 :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데 과연 히스레저가 혼이 서린 다크나이트를 능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원작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