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는 치밀해야만 한다. 살짝이라도 핀트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극의 흐름은 신발 속의 모래 한 알처럼 불편하고 거북스럽게 변질 돼버리는 경우로 전락하곤 하니까. “판의 미로”에서 비참한 현실과 결코 밝지 않은 판타지를 교묘하게 아우르는 완성도 높은 영화를 보여줬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번엔 제작자의 이름을 걸고 또 한편의 영화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언급했던 치밀함을 내포하고 말이다.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El Orfanato, 2007)

영화 내내 결코 맑게 보이지 않는 하늘, 그리고 과거 고아원의 명패를 달고 있었던 암울한 분위기의 건물, 주변 해안에 위치한 은밀한 동굴, 그리고 더 이상 빛을 밝히지 않는 등대. 영화 속 등장하는 모든 배경은 어쩌면 이 영화의 결말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형화된 시각적 배경 속에 간간히 터지는 청각적 이미지는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들고 놀라게 만들며, 그리고 탄식하게 만드는 능력을 부여받는다.

스스로 피터 팬을 추구하는 아들과 이젠 더 이상 네버랜드에 갈 수 없는 나이 먹은 웬디처럼 되버린 엄마. 남겨진 자의 슬픔을 간직하게 된 아빠의 모습은 진하디 진한 블랙커피마냥 쓴맛을 잔뜩 머금게 만든다.



2.
똑같은 영화를 같이 보더라도 느끼는 감정은 사람에 따라 틀릴 수밖에 없다.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가 타인에게 똑같이 재미있으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이 영화 역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영화평을 보면 극과 극을 달린다. 혹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결코 권하고 싶지 않는 영화로 분류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자신과 영화에 대한 감상이 틀린 타인을 수입사 알바로 폄하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기도 한다. 하지만 “판의 미로”를 마음 한켠에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영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권할 만하다.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그 절절함은 더 깊게 다가올 듯싶다.

권하고 싶은 이 : 판의 미로는 정말 좋았다는 분. 자식을 키우는 부모.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이 : 판의 미로가 그리 좋지 않았던 분. 영화 속 제 3세계 언어에 울렁증이 있으신 분. 깜짝깜짝 놀래키는 영화 질색팔색 하시는 분.


뱀꼬리 :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더 절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영화. 미혼의 처녀. 총각들에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감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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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3-11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라요, 몰라. 오늘은 아직까지 참고 있었는데, 왜 커피 얘기를 하시는 거에욧!!!

Mephistopheles 2008-03-11 09:53   좋아요 0 | URL
이히..설탕 항개도 안들어간 사약같은 커피여요..^^

다락방 2008-04-0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판의 미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소녀와 그 뒤를 이어지는 땅 속 장면이 말이죠.

뭐야, 결국 죽는거잖아, 했는데

어느 기사에선가 그러더군요. 그 장면을 보고 아, 드디어 공주로 새로 태어났구나, 행복을 찾았구나, 라고 생각했다면 순수한거고 결국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면 순수함을 잃은 어른인거라고. 네, 저는 순수함을 잃은 어른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