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학교시절을 돌이켜 보면 마치 KGB혹은 CIA의 감시대상이 24시간 도청과
감청에 시달리는 것과 비슷한 위치였었다.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서...

그 이유는 아버지의 직업과 연관이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내가 배속된 학군의
모 중학교 학생주임이셨고, 아무래도 동종업계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으셨다. 같은 학교 학생과 선생님의 경우는 다행히 아니였으나, 이미
학교에는 아버지의 눈과 귀가 되어주실 분들이 넘치고 넘쳐났다.

중학교를 입학하자마자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주임 선생님은 대뜸 날 불러세워
놓고 "늬가 XXX선생님의 아들이구나? 아버지 건강하시지..안부 좀 전해드려라.
그리고...아버지 생각해서 공부 열심히 해라 알았지?" 란 허걱스런 훈육을 들
었고 바로 첫번째 국어 시간엔 수업이 끝난 후 조용히 날 불러낸 국어 선생님
역시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바른 중학생활의 지침을 일깨워주셨다.
그 이후로 과목마다 들어오시는 선생님들 중 70%에 육박하는 비슷한 말을 들었
으니 소심하고 순진한 중딩 메피스토는 중학교 초반부터 이미 가드 올리고 어금니
꽉 깨물은 중학시절이 시작된거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내가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였나 하면 그렇다
라고 장담 못하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어린 나이 메피스토의 스트레스는 직장인
스트레스와 맞먹는 위치가 아니고 뭐겠는가. 어이하여 내 누나가 중학교 입학
하는 나에게 어깨를 툭툭치며 안스러운 표정으로 견뎌야 해! 란 말을 해줬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수순이였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내 중학생 시절은 자연히 행동조심, 말조심, 최대한 모범생의 모습
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것 역시 거짓말 좀 많이 첨부해서..)

하지만, 1년에 몇차례 찾아오는 시험시즌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험이 끝난 후 다른 친구들은 시험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 나는 복도에서
혹시 마주칠 지 모를 아버지의 친구분들 피해다니기 급급했고 어쩌다 교과과목에
마주친 선생님들의 서늘한 눈맞춤으로 대략적인 내 성적을 가듬할 수 있었을 정도
였었다. 조금 더 관심이 많으셨던 분들은 수업끝나고 나를 조용히 복도에 불러내
이번에 성적 많이 떨어졌더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란 아낌없는 관심까지 선사
해주셨으니 그 어린나이에 벌써부터 입에서 쓴내가 올라오는 현상을 경험하기까지
했다.

성적표 또한 안나왔다 좀 늦는다는 거짓말이 안 통했었다. 성적표가 나온 날 이미
어머니는 현관에서 나를 맞이하시면서 대뜸 손을 내밀고 자 성적표 나왔지! 란
심히 계룡산 용하다는 산신보살님 같은 예지력으로 내 성적표를 낚아 채셨다.

그리하여 어린 맘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터득한 한가지 방법..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학만큼은 절대 죽쑤지 말자..전략으로 밀고 나갔었다.
이유는 아버지 전공교과과목이 수학이였으니까.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학만큼만
좋게 나오면 일단 면죄부가 조성된다는 그간의 쓰라린 경험이 바탕이 된 결과이며
방법이였다.

결국 난 중학내내 다른 과목보다 월등한 수학성적 덕분에 경시대회까지 나가는 진기
한 결과물을 내놓았고 당시 학교에서 아버지의 눈과 귀가 되셨단 선생님들에게 "허헛
그녀석 아버지를 쏙 닯았구나" 라는 칭찬인지 꾸중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말을 들으며
중학시절을 마감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에게 있어 중학시절은 바이오도청과 감청의 시기였었던 듯 하다.
거기다가 어머니까지 중학교어머니회 임원이셨으니까...
그때 어머니 치맛바람도 참 대단하셨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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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2-0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적표 나눠주는 날, 모든 학부모님 핸드폰으로 문자를 날립니다. ㅎㅎㅎ

보석 2007-12-07 14:28   좋아요 0 | URL
나빠요!ㅜ_ㅜ

보석 2007-12-07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치게 학구열이 높고 성적에 관심이 많으신 부모님 덕분에 저 역시 성적표에 대해서라면 참으로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남부끄러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놈의 성적이 뭐길래;; 초등학교 때 단지 아빠 동창의 부인이 같은 학교 선생님이란 이유로 받은 관심도 참으로 과도했는데 메피님은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7-12-0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압...스트레스 보통이 아니었겠습니다...ㅡ.,ㅡ
그래도 장하십니다! 아버지를 생각하여 수학만큼이라도 빛을 발휘하였다는 것이.
특히 수학에!! (제가 수학을 잘했으면 좀 더 똑똑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웃음)

2007-12-07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08 0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12-07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는 받았을지언정 공부는 하셨겠네요.

Mephistopheles 2007-12-08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 // 전 갑자기 아이들이 마구 불쌍해지기 시작했어요..왜일까요? =3=3=3
보석님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굳히 공부 안했습니다..ㅋㅋ 보석님도 이래저래 사연이 많으신가 봅니다 브리니님의 댓글에 반응하시는 모습을 보면요..^^
살청님 // 으허허허..대단하십니다. 그럼 대체 가짜 졸업사건을 일으키셨던 가짜 졸업반에 쓰인 학비는 어디에 쓰셨을까요.^^
엘신님 // 하지만 고등학교 수학은 개판 오분전이였다는 거~~~
승연님 // 공부를 말 그대로 하기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해방감을 만끽하다 성적 개판으로 나왔다죠..^^
정아무개님 // 설마요. 전 수학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수학 중에 기하학은 좋아해도 말입니다..


춤추는인생. 2007-12-0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페이퍼를 보면 잽싸게 회전하는 두뇌가 보인답니다.. 남자들을 보면 어릴적 장난꾸러기들이 수학을 잘하더군요ㅎㅎ(춤인생은 메피님의 어린시절을 알고있다???) 저도 중학교때 성적 딱한번 위조한적이 있어요. 제가 봉투를 붙이곤했는데. 제 성적표를 가방에 넣어두고 빈봉투를 붙여넣었던.

BRINY 2007-12-08 20:03   좋아요 0 | URL
이것도 제가 성적표 우편발송을 안하고, 그냥 나눠주고, 대신 문자를 보내는 이유 중의 하나랍니다 ㅎㅎㅎ

ㅁㅁㅁㅁ 2007-12-09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성적표 나오면 집에 전화하는데;;; 위조이고, 우체부 아저씨 발목 잡아도 소용이 없;;/자신들의 점수를 알고, 부모님도 알아야 하는 게 고등학교 입시 철 되면 중요하더라구요 그래서..울 애들은 자포자기-_-

Mephistopheles 2007-12-0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추는인생님 // 허걱....언제나 말썽을 일으켰지만.(불법비디오, 만화책 유포) 점조직으로 유포하여 결코 걸려들지 않는 잔머리만큼은 확실하게 돌아가던 학창시절이였는데..그걸 간파하시다니..
브리니님 // 원천봉쇄방법을 택하셨군요..ㅋㅋ 아이들이 백기 펄럭이는 것이 보입니다..
아르카디아님 // 키득키득..아르카디아님도 역시나 원천봉쇄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