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보는 길 - 개정판 정채봉 전집 3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이미 고인이 되신 선생님의 작품을, 그것도 당신이 투병 중에 써내려 간 글들을 보는 것은 몹시도 아픈 경험이었다.  그러나  병과 싸우느라 지쳐간 육신에서 나온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서는 생명력이 가득 묻어 있었다.  스스로도 고꾸라지지 않고 더 악착같이 매달렸노라 고백했듯이, 그가 지금 고인이 되어 땅 속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글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살아 생전 그의 종교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글 속에서 그의 종교는 기독교의 하나님, 천주교의 천주님, 그리고 불교의 석가모니 등등... 종교와 분파를 뛰어넘어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됨, 혹은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플 적에 절대적 존재에게 의지하는 모습들이 그대로 담긴 글들은, 그러나 그가 회복되어감에 따라 더 강경한 어조로, 더 자신 있고 포부 있는 얼굴로 바뀌어 나갔다.  작가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책을 구성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작할 때의 유하고 수동적인, 그래서 약한 자아로서의 인간을 보여주던 글이 뒤로 가면은 보다 딱딱하고 능동적인, 그리고 강한 자아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곳곳에 소개된 작가 자신의 동화와 우리 나라 혹은 외국의 동화들이 짧은 글귀임에도 긴 여운을 안겨주는데, 그 동화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예쁜 순수 우리말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제법 컸다.  아름다운 우리 글이 그와 같은 예쁜 작가들에 의해 세상에서 빛을 잃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채봉,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자연에 더 다가가고픈 충동을 느낀다.  자연을 닮은 그의 언어도 배우고 싶다.  눈을 감고 보는 길... 그 길은 어떤 색깔로 내게 다가올까, 그 길은 곧게 뻗어 있을까, 굽이굽이 휘어져 있을까....... 어느 쪽이든 그 길은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그런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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