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 박희정 단편집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박희정의 글에는 사람 내음이 묻어 있다.  그녀의 그림에는 따뜻한 인간의 표정이 살아 있다.  몹시 서구적인 그림체이지만, 그녀의 감성은 동양적 섬세함이, 그녀의 나래이션에는 한국인의 서늘한, 그러면서도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정서가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고르고 부담 없이 소장책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의 단편집 "너무 오래..."

칼라로 시작한 작품은 색깔이 없는 그에게 색깔을 입히는 blood로 문을 열었다.  두 번째인 “너무 오래”와 세 번째의 “미친놈” 그리고 네 번째인 “feel so good"은 마치 연작소설처럼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데, 각 주인공들이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교차해서 지나가는 장면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다섯 번째의 ”불면증“은 꽤 오래 전, 아마도 윙크였을 거라고 짐작하는데, 이미 읽었던 작품이었다.  그때는 컬러로 보았는데, 이번엔 흑백으로 다시 본 셈이다.  오래 전 작품인지라 아무래도 관록과 연륜은 조금 부족하다 느껴졌다.  여섯 번째 작품 ”ember"는, 그녀의 이미지와 너무 동떨어진 공포물이었다.  무서운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나로서는 다소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일곱 번째 “광림이는 대단해”는 대사가 몹시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평범함을 갈구하는 그 마음에 더 공감이 갔는데, 특별함을 원하는 평범한 이들, 그래서 감사가 부족한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여덟 번째 “뮤직박스”는 참 아팠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부러 속여서 판 불량 뮤직박스, 그걸 알아차렸을 때의 듣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어,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비극보다 더 안쓰러웠다.  아홉 번째 “어흘리”도 역시 윙크를 통해서 이미 접했던 작품이었지만 다시 읽어도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역시 그녀의 감성은 너무 섬세하고 너무 적나라하다.  난 그녀가 오래도록 작품 활동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열 번째 마지막 작품 “울보천사”도 역시 예전에 보았던 칼라 그림이었지만, 다시금 엔딩으로 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조금 오래된 작품은 아무래도 초기의 미숙함이 조금은 드러나 있다. 


그래도 이 책은 전반적으로 몹시 수작으로 보여지고, 또한 감동을 줌에 있어서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그녀의 완성시키지 못한 다른 장편들의 뒷이야기를 기다리며, 간간이 이런 맛깔스런 단편도 접하게 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그녀의 그림에는 영혼이 살아있는 것 같다.  특히 눈동자가 그렇다.  그녀의 옷 주름은 가히 환상적이다.  얼마만큼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토록 자연스러운 신체 곡선이 그려질까?  만화가는 박희정, 그녀의 천직인가 보다.  난 그녀의 독자로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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