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네껜 아이들 푸른도서관 3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검은꽃을 인상 깊게 보았다. 분명 소설인데 너무 리얼한 구석이 있어서 좀 더 찾아보고 싶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이 책을 발견해서 무척 반가웠다.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 노동자로 처음 간 곳은 하와이였지만, 고생길은 멕시코에서 더 크게 열렸던 것 같다. 살아온 환경이 더 크게 차이나는 것도, 그래서 더 고된 노동이 기다리는 곳도 멕시코였으리라. 조선에서의 삶이 너무 가혹해서,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혹은 어떤 이유로 조선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 1,033명이 멕시코로 이민을 갔다. 열심히 일을 해서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그곳이 지상 낙원일 거라고 기대에 부풀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혹한 어저귀 농장이다. 밧줄의 원료가 될 이 거친 식물은 가시투성이여서 작업 시간이 길다. 몇 개의 어저귀를 베어 묶는 데만도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만다. 게다가 채찍으로 사람을 치는 그런 감독관 밑에서 치르는 고역이라니...


태평양을 건너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거센 폭풍우를 견뎌야 했고, 아직도 양반입네 하며 목에 깁스한 사람들도 견뎌야 했다. 그 과정에서 덕배는 옥당마님이라고 불리는 양반의 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혼인을 앞두고 신랑이 급사하는 바람에 초야도 치르기 전에 과부로 살아야 할 팔자가 된 소녀를 위해 온 가족이 멕시코로 이민을 온 것이다. 죽어도 시댁 귀신이 되라고 떠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아무 대책도 없고 별다른 각오도 없이 머나먼 길을 떠난 이 세상물정 모르는 양반님네를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전직 백정인 덕배 아버지는 덕배만큼은 공부를 시켜서 사람답게 살게 하고 싶어했다. 조선에서의 백정에게 그런 기회가 있을 리 만무. 과감히 태평양을 건너온 것이다. 약초에 밝은 감초 아저씨 부부가 있고, 다리 밑에서 구걸하며 지내다가 일본인에게 속아서 배를 탄 봉삼이 등이 등장한다. 사연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사연 덩어리가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대개 전개가 짐작이 되는 것들이어서 소재의 신선함에 비해서 많이 식상했다. 캐릭터들도 뻔한 구석이 있어서 뒤로 갈수록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을 검은꽃보다 늦게 읽긴 했지만, 소설 집필은 검은꽃이 훨씬 앞쪽이다. 작가분도 검은꽃의 영향을 받으셨으려나? 


보진 못했지만 예전에 만들어진 영화 '애니깽'도 결국은 이 소재이지 싶다. 당시 개봉도 안 한 영화가 국내에서 시상식을 마구 휩쓸어서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돌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검색해 보니 내용들이 대개 비슷하다. 하하핫...;;;;


소설적 재미보다는 이 소설을 시작하게 만든 역사적 배경에 더 관심이 간다. 조선을 떠나 멕시코로 향했던 사람이 천 명이 넘으니,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손을 퍼뜨렸을 인원도 상당할 것이다. 그분들은 지금 조상들의 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한류 열풍이 부는 이 시점에서 어떤 느낌을 갖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좀 더 관련자료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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