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가토 구니오 그림, 히라타 겐야 글, 김인호 옮김 / 바다어린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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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바다 위에 쌓아 올린 낡은 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처음엔 이 마을도 다른 마을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 이곳엔 할아버지만이 외로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바닷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이 차올라서 살던 집이 물속에 잠겨 버리면 잠긴 집 위에 새로 집을 지었다.
그 집이 또 잠기면, 그 위에 또 새집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마치 나무 상자를 몇 개씩이나 쌓아 올린 듯한 집이 되고 만 것이다.
어찌 보면 바벨탑이 연상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이 집에 홀로 남게 된 것은 삼년 전부터다.
할머니가 그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아침에일어나면 집 한가운데에 있는 낚시터 뚜껑을 열고 물고기를 잡았다.
맛좋은 아침 반찬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지붕 위에는 달걀을 낳아주는 닭이 있고, 빵을 굽기 위해 밀도 기른다.
부족한 물건들은 집 근처를 오가는 보따리장수의 배에서 산다.
아마도 할아버지처럼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쓰던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짓는다.
이웃집 할아버지와 체스를 두기도 하고
멀리 사는 자식들이 보낸 편지를 읽기도 하면서
나름 하루하루 즐거운 날들을 보내고 계신다.
그리고 밤이 되면 밖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잠이 든다.
어찌 보면 참으로 평화롭고 아늑한 삶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또다시 바닷물이 마루까지 차올랐다.
할아버지는 다시 새집을 짓기 위해 준비운동을 했다.
예전에는 할아버지처럼 이렇게 집을 짓는 이들이 많았지만,
계속해서 차오르는 바닷물에 지쳐서 이제는 모두들 이사를 가버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집을 짓던 할아버지는 실수로 연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연장은 바닷속으로 떨어졌고, 연장을 찾기 위해 할아버지는 잠수복을 입었다.
연장은 삼 층 아래 집에 떨어져 있었다.
이 집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의 집이었다.
짐작키로, 아마도 일년에 한차례씩 집을 지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과거로 내려가면 좀 더 오랜 기간 살 수 있었는데, 점차 물이 차오르는 시간이 빨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장을 줏으려던 할아버지는 추억에 젖어들고 말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어느 봄날의 풍경이다.
할머니는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좀 더 아래쪽 집으로 헤엄쳐 가 보고 싶어졌다.
예전에 살던 집과 마주칠 때마다 거기서 살던 옛 시간들이 새롭게 재생되었다.
마을에 축제가 있어서 자식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왔던 기억과,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맛있는 파이를 구워 준 시간들이 떠올랐다.
집집마다 창문을 예쁘게 꾸미고 퍼레이드 배가 음악을 연주하며 다가오기도 했다. 화려하고 즐거운 기억이다.

또 그 아래의 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째 딸이 새 신부가 되어 시집을 갔던 곳이었다.
할머니가 만든 드레스를 입은 딸은 무척이나 예뻤다.
아마 어제 일처럼 손에 잡힐 듯 만져지는 시간일 것이다.

또 어느 집에서는 키우던 새끼고양이를 잃어버려서 비가 오는데도 열심히 고양이를 찾았던 게 떠올랐다.
아직 어리던 아이들은 슬피 울다가 편지를 써서 병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새끼 고양이가 그 편지를 받기는 힘들었을 테지만, 그리운 마음은 꼭 전해졌을 것만 같다.
그리고 이 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아기가 태어났던 집이다.
아직 젊던 할머니가 아기에게 입힐 옷을 지었고, 할아버지는 아기를 태울 그네를 만들었다.
행복이 가득한 풍경이다. 소박하고 아름답다.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벅찬 추억들과 조우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아래 층에 있는 집까지 내려왔다.

그 집은 이곳에 아직 물이 없고 뭍이었던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이였던 시절의 집이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함께 자랐고, 어른이 되어 결혼을 했다.
결혼한 두 사람은 이곳에 작은 집을 지었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처음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인 것이다.

그랬던 집이 물에 잠기면서 새로이 집을 짓고, 다시 물이 차오르면 그 위에 집을 지으면서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집들은 겹겹이 쌓여 있고, 추억도 그렇게 포개져 있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은 할아버지의 모든 것, 가장 소중한 기억들이 잠겨 있는 곳이니까.
바닥에 앉은 채 추억에 젖은 할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이 아련하다.
하지만 분명 그 고운 기억들을 가득 품고서 다시 씩씩하게 살아갈 할아버지를 알고 있다.

봄이 되어 할아버지의 새집이 완성되었다.
벽 틈으로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서 할아버지의 소박한 집을 멋스럽게 빛내고 있다.
집은 이전보다 훨씬 작아졌지만, 언젠가 집을 올릴 수 없을 만큼 더 작아질 수도 있겠지만, 할아버지의 사랑의 크기와, 그 안에 깃든 기억의 힘들은 결코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하신 분!

책의 마지막 장에 실린 그림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의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둘이 함께 수상 자전거를 몰고 계시다.
이렇게 해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아주아주 부러운 풍경이다.



이 작품의 원작 애니메이션이다. 짧지만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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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12-01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추억을 공유해야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젊어서 함께 해야 늙어서도 함께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도 함께 하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마노아 2012-12-02 00:07   좋아요 0 | URL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과 그 무게를 무시할 수 없을 거예요.
좋은 기억으로 많이 쌓고 싶어요. 아아, 저도 어여 옆지기를 만나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