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없다 - 다시는 못 볼 아주 작은 추억 이야기
도종환 외 17인 지음,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엮음 / 학고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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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가득할 것 같은 책 속에서 밝은 표정의 대통령 사진을 보아서 마음이 좋았다.
봉하마을 방문객들과 함께 했을 때의 모습인데 덩실 춤이라도 출 것 같은 모양새다.
책 속에는 대통령이 사실은 무척 춤을 잘 췄다는 증언이 곧잘 나왔다.
그 춤이 우리가 생각하는 춤이 아니라 곱사춤이긴 했지만...^^

1990년 3당합당 직후 민자당 반대 시위에 나선 송기인 신부와 대통령 사진이다.
저때도 골 깊은 이마의 주름은 여전했구나.
그때도 소탈한 웃음은 그대로였구나.
노대통령은 나이가 들면서 더 멋지게 패이는 주름을 가진 이였다.
노간지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이 책에는 인간 노무현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과 소회가 잔뜩 담겨 있는데 가장 나를 울컥하게 만든 이는 만화가 정훈이였다.
글도 쓰긴 했지만,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만화가 그의 감정을 더 잘 전달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이보다 더 슬프게 들릴 수도 있을까.

뜻하지 않게 나를 팍 건드려 나도 모르게 엉엉 울게 했던 것은 저 부분 때문이었다. 탄핵 반대 시위를 하러 가던 길에 차려입은 점퍼. 찢어져도 눈물 안 날 것 같은 점퍼라는 구절이다.
웃겨서 빵 터지며 웃고 말았는데 그게 어느새 엉엉 큰 울음이 되어서 나도 당황했다.
이렇게 웃기면서 절박하게 만들 수 있었던 그 사람이었다.

심지어 남자로 하여금 남자를 사랑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
참 그립고 그립구나.

238쪽이다.

대통령이 사저 앞 만남의 광장에서
방문객들에게 인사하는 도중이었습니다.
진주에서 오신 88세의 어르신이 수백 명의 인파를 뚫고대통령을 향해 돌진해 왔습니다.
사진 한번 찍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경호를 뚫고 오는 분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거절하지 못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말씀도 나누었습니다.
이 할머니가 대통령에게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왜 요즘엔 텔레비전에 안 나옵니까?”

그러게 말이다. 이제는 그를 TV에서 보려면 가슴 한켠 찬 바람이 휙 불기 마련이어서......

249쪽이다.

대통령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잘 맞추었습니다.
인자하고 재미있는 할아버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대통령은 종종 꼬마들 사탕도 빼앗아 먹었습니다.
놀란 아이를 향해 익살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지요.
사탕을 빼앗긴 아이의 부모는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 박장대소합니다.

저 아이는 자신에게 어떤 추억이 있는지 먼 훗날 알아차릴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풍경 속에 자신이 놓여 있었는지 알게 될까. 기억 속에 따뜻한 웃음 짓던 대통령 할아버지의 모습,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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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24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높이 맞추는 할아버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이지요.
우리 애들은 할아버지는 다 자기 할아버지처럼 근엄한 줄 알았다고...

마노아 2011-05-24 10: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그 사람의 한 모습이, 그 사람의 전체를 보여줄 때도 참 많아요.
저 사진을 보니, 유독 더 그립네요.

책가방 2011-05-24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고 싶어졌어요.
사진을 보니 새삼 그립네요.

마노아 2011-05-24 10:15   좋아요 0 | URL
읽어보셔요. 코디나 요리사님 이야기는 이럴 때 아니면 접하기 힘들 것 같아요.
여러 곳에서 울컥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