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 로드 - 3천 년을 살아남은 기묘한 음식, 국수의 길을 따라가다
이욱정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읽은 지 한참 되었는데 리뷰를 쓰지 않은 게 생각났다. 소회도 다 잊어버릴 지경이 되었건만 간단하게나마 기록을 남겨야겠다.  

어느 분 블로그에서 읽은 극찬 때문에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게 되었는데,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크게 재밌지 않았다. 국수의 기원을 찾아서 대장정을 벌인 그 노고를 깎을 마음은 없지만 뭔가 기대했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이 책은 '다큐'나 '여행기'라기 보다는 '인문'이나 '역사' 쪽의 느낌이 더 강했다. 방송용 다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책만 보면은 그들의 기나긴 '여정'의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사진이라도 좀 더 많았더라면 좋았겠는데 사진도 부족했고, 실린 사진도 현장감을 느끼기엔 뭔가 2% 부족했다.   

그래도 지적 충족감은 제법 채워주어서 오홋! 하며 읽은 부분은 제법 된다. 개인적으로 중국 '송나라'에 대한 관심이 많았느데 그 무렵에 폭발적으로 발전한 국수 문화에 눈이 번쩍 뜨였다. 확실히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 사극을 보면 등장 인물들은 항상 국수를 먹는다. ^^ 

송대 연구소장은 카이펑의 도시 규모가 인구 150만 명-당시 유럽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인구는 40만, 런던의 인구는 10만 명이었다-에 이를 정도로 점점 커지면서 사람들이 성을 나가기 힘드니까 성벽을 없애고 가게를 열어 24시간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청명상하도」와 함께 북송시대 카이펑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동경몽화록』을 통해 당시 이곳 거리에 새벽 4시에 문을 열어 한밤중까지 영업을 하는 음식점과 상점들이 즐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경몽화록』은 남송 시대 맹원로가 쓴 역사서로, 북송이 금나라에 패해 어쩔 수 없이 남쪽에서 살게 된 맹원로가 옛 수도의 번영을 그리워하며 저술한 책이다. 때문에 이 책에는 북송의 풍속과 건축, 문화 등 다양한 모습이 아주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음식문화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 제작진의 흥미를 끈 것은 송대에 이르러 국수가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들이었다. – 146쪽

이를 테면 당시 북송 카이펑 사람들이 먹었던 다양한 국수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양고기 국물을 낸 암생연양면, 마늘과 귤껍질로 만든 소스로 무친 이탈리아 파스타와 닮은 세물료기자, 돼지고기와 닭고기로 국물을 내서 담백한 동피면, 물로 식혀서 먹는 냉동기자, 밀반죽을 손으로 비틀어 불규칙하게 썰어 고기, 야채와 함께 먹는 흘달, 동피숙회면, 혼돈, 채면, 호접면 등 그 종류가 수없이 많았다. 이를 통해 국수가 송나라 때 매우 보편화되고 인기 있는 음식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 147쪽

송대에 국수가 대중화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은 “옛날에는 그저 숟가락을 쓰고 지금은 모두 저(箸)를 사용한다”는 보편화된 젓가락 사용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는 면 요리가 대중화되어 젓가락으로 먹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추측하게 했다. 실제로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당나라 때 밀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제분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달하면서 밀가루 가격이 하락해 귀족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분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면(麵)’과 ‘병(餠)’이라는 글자가 온전히 구분되지 못했다. 당시 밀가루 음식을 가리키는 병처럼 면도 밀가루라는 뜻 이외에 밀가루로 만든 요리를 총칭하는 말로 쓰였다.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국수처럼 밀반죽을 끓는 물에 데치거나 삶은 형태로 먹는 음식을 ‘탕병(湯餠)’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국수는 탕병의 부분집합에 불과했다. – 147쪽

수많은 학자들은 송대 사람들이 많은 음식들 중에서 특히 국수를 즐겼던 이유를 도시발달로 인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상공업에 종사했던 송대 사람들은 그 전의 중국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처럼 대단히 바빴다. 때문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없어 주로 외식을 했다.
– 150쪽

당시 카이펑은 음식 배달이 대단히 일상적일 정도로 외식문화가 꽃 피웠다.
일상의 속도가 빨라져 외식을 즐겼던 송대 사람들. 이들은 외식을 할 때도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국수는 길고 가늘어 삶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조리법도 간단해 빨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원했던 송대 사람들에게 최적의 메뉴였다.
파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식사 시간 때마다 밀어닥치는 손님들을 감당하기에 국수만큼 훌륭한 상품은 없었다. 국수는 다른 재료와 함께 조리를 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고, 심지어 미리 삶아 놓았다가 살짝 데쳐서 국물을 붓고 고명만 얹으면 음식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단시간에 손님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 151쪽

송나라 당시 식당 점원들은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을 들고 가서 주문을 받아 정확하게 기록을 해두었다가 주방으로 가서 주문 내용을 큰 소리로 전달했다. 그러면 주방에서는 빠른 속도로 음식을 완성했고, 때문에 서빙을 하는 점원들은 쉴 틈 없이 양손은 물론 어깨까지 사용해 많은 음식을 날라야 했다. 그들은 아무리 음식의 가짓수가 많아도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정확하게 그 손님 앞에 놓았다. 하지만 주문을 잘못 받아 다른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점원들은 주인에게 야단을 맞거나 월급이 깎이기도 했고, 심지어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 153쪽  

그 시대에 급격히 발달한 도시 생활, 인구 증가, 시장 문화 등을 구체적인 '국수'라는 매개체로 설명을 하니 좀 더 그 시대가 가깝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일본에서 만난 사찰 국수에는 '들깨'가 들어가는데 '기름진' 음식을 접하지 못하는 그들 승려들에게는 고기 파티와 가까운 즐거움을 주는 국수라는 사실이 재밌었다. 묵언수행에 가까운 침묵 속에서 국수 먹는 날만은 요란스럽게 소리내며 식사를 해도 된다는 금기의 깨뜨림에 같이 신이 나기도 했다.  

일본 에도 시절에 국수가 발달한 것도 중국 송나라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사회가 바뀌고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면서 빨리 빨리 해먹을 수 있는 간편한 식사가 필요했던 것. 

그리고 이런 사정은 일본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과히 국수의 세계화와 국수의 문화사랄까. 

이러니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라면이 그토록 사랑받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유전자에는 국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역사가 새겨진 듯하다.  

날은 덥고, 목은 자꾸 타들어가고... 이런 날은 냉면을 먹는 게 제격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