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가미 1 - 복수의 끝
마세 모토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만화를 볼 때 자주 감탄하게 되는 것은 그 소재의 무한성과 누구도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창의성 때문이었다.  입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이키가미'도 그와 같은 충격을 같이 안겨 주었다.

이키가미는 사망 예고장이다.  국가는 '국가 번영'이라는 목표 아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동들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한다.  이때 1,000명당 1명 꼴로 죽음을 예고받는 학생들이 나온다.  이 학생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심장에 도착한 캡슐로 인해 심장 파열로 죽게 되고, 그 24시간 전에 '사망예고장'을 받는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국민들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충실히 살게 한다는 것이 이 법률 시행의 목표다.  작품 속에선 이 법률의 시행으로 범죄율이 줄어들고 출산율은 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1권에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지독한 왕따와 폭력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왕창 무너진 한 아이가 이키가미를 배달받고는 자신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던 자들을 찾아가 복수하다가 죽는 이야기였다.  아이는 소년도 아닌 채 어른이 되지 못했고, 자신을 기억도 하지 못하는 가해 학생으로 인해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 법률의 잔인함과 주도면밀함을 보여주는 것은, 혹여 이키가미를 받은 사람이 무모한 분노로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유가족들이 그 책임을 지느라 온통 빚더미에 오를 수밖에 없는 기막힌 구조를 갖추고 잇다.

두번째 이야기에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두 친구 중 하나만 연예계에 스카웃 되었는데, 초심을 잃어버리고 인기에 편승했다가 이키가미를 받아들고는 후회와 참회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열정을 다해 노래를 불러 사람들에게 깊은 각인을 남겨주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보면, 이키가미 배달부의 상사의 말대로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참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보는 내내 소름이 돋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국가'가 국민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 생명마저도 인위적으로 관장하고 있다는, 혹은 그런 발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너무 무섭고 끔찍하고 또 두려운 일이었다.

단순히 '창작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일들이 언젠가 미래에...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엄습하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종종 영화나 문학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정말 우리 사회는 이런 것으로부터 안전할까?  국가는 국민을 이런 식으로 통제/관리하는 일이 없는 것일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선 잠재적 범죄자를 찾아내어 미리 잡아들이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었다.  주인공 탐 크루즈는 이 체제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이었고, 그 체제의 불합리함을 깨부수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영화는 스필버그답게 빼어난 볼거리를 자랑하면서 큰 재미를 주었지만, 보면서도 무섭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었다.  뿐이던가.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미래 사회의 '클론'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하찮게 취급되고 거래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만화 '월광천녀'를 보면 그 내용의 오리지널판을 볼 수 있다.)

비약이 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미FTA가 같이 떠올랐다.  이키가미에서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구별하여 사망 예고장을 배달한 것은 아니지만, 졸속으로 타결된 한미FTA가 강행될 때에 벌어질 비극이 꼭 이키가미를 통보받은 억울한 인생들처럼 여겨져서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아직 1편 밖에 보지 못해서 뚜렷이 무언가를 말하기 어렵지만, 무섭다고 느끼는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서는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무섭고 말도 안 되는 사회의 틀이 깨져버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통제되고 관리되는 사회의 틀을 국민들 스스로 깨부술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무섭고 놀랐지만, 작품은 대단한 듯 보여진다.  이러한 상상력에는 박수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7-05-11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신파'가 된다구요? 이건 뜻밖의 사실인 걸요..ㅠ.ㅠ 1권은 참 재밌게 읽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