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양장, 조선시대 삽화수록 에디션)
존 번연 지음, 김준근 그림, 유성덕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소설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17세기 작가 존 번연이 지은 소설로 우화(allegory)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어느날 성경책을 읽고 세상 멸망의 두려움으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 좁은 문을 통해 빛나는 성(천국)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우화 소설의 대표작답게 수많은 추상명사가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나태, 천박, 거만, 위선, 등등. 또다른 특이한 점은, 크리스천이 순례 여정 속에서 만나 싸우게 되는 악마(바알세불, 아볼루온)를 대항하기 위해 무장하는 갑옷과 무기가 성서에 등장하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인 존 번연이 청교도라서 청교도적인 사상과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적인 부분이다: 예를 들면, 칼빈주의에 기반한 금욕적인 생활 태도와 경건한 생활 자세 등은 [믿음과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에서, 근면, 자각, 겸손 등의 생활 자세는 [무지와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에서, ‘헛된 확신에 대한 비판과 끊임없는 성찰과 확인은 [소망과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죄의식과 두려움에서 시작되어 죄를 뉘우치고 생활 개선을 시도하면서 신앙 고백을 하고 기도에 의한 계시를 통해 구원을 받게 되는 진정한 청교도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신앙 생활의 일련의 과정이 [소망과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 무지와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에서 기술되고 있다.

17세기 후반 시점에서 종교개혁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 소설 중에 나오는 교황과 카톨릭 교회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와 비판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또한 작가가 청교도 입장에서 전통적인 카톨릭교도나 비기독교신자와의 사이에서 논쟁에서 다루어진 주제들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도 특징적인 부분이다: [사심씨, 세상 욕심씨, 돈 사랑씨, 구두쇠 씨 사이의 대화]에서 목사와 상인의 태도를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에서 묘사함으로써 청교도적인 교리와 대비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광범위한 성경 구절의 인용은 작가가 청교도로서 이해하는 성경 교리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서 경이롭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책만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1895년 최초 한글 번역본 [천로역정]에 수록된 조선화가 김준근의 작품 42점의 삽도를 그대로 싣고 있다는 점이다. 박효은 교수의 지적대로 19세기말에 활동한 조선 풍속 화가가 이해한 기독교, 특히 청교도의 교리의 뜻을 살펴볼 수 있고 서양 미술의 양식을 참고하여 동양화 기법으로 표현해낸 표현 양식의 대비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역사적 그리고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자료라고 판단된다: 예를 들면, 천국의 모습은 동양의 신선 사상에서 나오는 신선들의 세계로 묘사한다거나 크리스천이 여러 세속적인 관념들에 모욕과 조롱을 당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화된 인물의 등장으로 그림을 표현한 것은, 교리에 대한 이해보다는 서양 삽화의 모방에 충실한 모습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천사를 신선이나 선녀로 묘사한다든지, 원전 속의 이야기와 서양 삽화 속의 등장 인물을 반드시 일치시키지 않았으며, 서양 삽화에서 묘사되는 주인공 이외의 일체의 배경은 생략한다든지, 서양 삽화에 사용된 명암기법이나 원근기법을 무시하고 단순화한다든지 하는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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