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본다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나면 몇가지 서로 다른점에서 소설과 책을 기억하게 된다.

어떤 책을 읽게 되면 소설의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 소설과 함께 캐릭터를 기억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책을 읽게 되면 사건과 그 사건의 전개과정에 도취되어 소설을 사건으로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나는 너를 본다>는 사건이라고도 볼수 있지만, 사건의 아이디어때문에 기억에 남을 소설인거 같다.

이 사건의 아이디어가 특히 나와 동떨어지지 않은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속에 도사릴수도 있는 범죄의 냄새를 맡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각인될만 하다.

나도 최근에 경차를 마련하기전 서울에서 출퇴근을 할때 거의 같은 시간에 회사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매번 같은 시간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출근했다.

물론 퇴근시간은 야근도 많고 회식도 많은 편이라 일정하지 않았지만, 출근시간의 거의 90% 시계같이 움직였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에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경우는 가벼운 목례정도는 나눌정도기도 했다.

이런 일상을 살아왔기에, 이 소설을 읽고나서 그 아이디어에 매우 섬뜩한 공포심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조 워커는 매트와 헤어지고, 사이먼을 만나 전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 저스틴과 케이티와 함께 사는 평범한 주부이다.

그녀도 출퇴근을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하는데, 퇴근길 지하철에서 <런던 가제트>라는 신문을 보다가 자신의 사진이 광고에 등장한 것을 발견한다.

아무런 문구도 없이, 웹 주소 www.findtheone.com과 0809 4 733 968이라는 전화번호같은 숫자와 같이 실린 개인 서비스 광고였다.

이 웹페이지 비밀번호를 넣어야만 들어갈수 있는 계정이었고, 전화번호도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

그러다 우연히 캐시 태닝이 센트럴 라인을 타고 가다가 잠이 들었고, 그 사이 무릎에 놓아둔 열쇄를 도난당한 사건을 알게되었고, 그녀 역시 같은 개인 서비스 광고에 얼굴이 실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 워커는 캐시 태닝의 담당 경찰인 켈리 스위프트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된다.

켈리 스위프트는 센트럴 라인 치안교통담당 경찰관으로, 재소자를 폭행하여 전출된 아픔을 갖고 있고, 쌍둥이 형제가 겪은 아픔으로 분노조절 장애, 또는 외상후 증후군을 겪고 있는 상태이다.

이 두명의 여성의 시각으로 이야기는 진행되고, 결국 이 개인 서비스 광고는 결국 타냐 베켓이 살해당하는 사건과 연계되면서 이야기는 급진전되기 시작한다.


초반부에는 조 워커와 캐시 태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기우인듯 두려움인듯 드러나지 않은 실체때문에 약간은 지루함이 있을수 있지만, 타냐 베켓의 살인사건 이후에는 이야기가 급진전되면서 흥미롭게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초반부의 100~150페이지 정도만 잘 읽어낸다면 뒤부분은 거의 막힘없이 읽혀 나갈것이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 이야기의 결말보다는 개인적으로 출퇴근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상생활속의 두려움과 공포를 건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놀랄 만하였다.

<그녀가 나빴을 때> 작가 태미 코헨이 "나는 어째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을까"라고 추천사에 고백했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매력적이었다.

동떨어진 공포가 아니라 내 주변에서 언제든지 일어날수 있는 공포에 더욱 몰입감이 있었고, 책을 읽고나서 비록 경차를 타고 출근하지만, 5~10분 정도 일찍 나오거나 늦게 나올정도로 내 생활에도 약간의 변화를 준 책이었다.

이런 면에서 다른 미스터리 소설이나 추리소설과 달리 공감대가 형성되어 매우 즐겁게 읽어낼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분들에게 읽어보라는 추천을 할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서 평점을 준다는 것이 좀 죄스럽다.

그냥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자신의 삶과 경험을 담담히 적은 것인데, 그의 삶을 살아보지도 않고 그의 책과 글을 평가한다는 것이 왠지 모순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서평에서 이번은 평가를 빼고 쓰려고 한다.

  

학교를 다니던 건강한 아이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 조퇴를 하고 팔다리가 안으로 말리면서 결국 12살의 나이에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어느날 마틴은 16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목소리와 턱수염을 깍아줘야 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식이 깨어났다.

16살 생일 선물처럼 의식이 돌아왔지만, 그후로 9년이 지나는 동안 아무도 그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을 가족도 주변에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스스로는 움직을수 없는 감옥같은 몸속에 갇혀서 9년이라는 세월을 지냈던 것이다.

내가 본 9년은 악몽같았던 기억이었다.

깨어났다는 기쁨보다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두려움과 좌절 그리고 공포속에서 마틴은 살아간 것이다.

더구나 움직이지 못하고, 보기에는 전혀 호전조차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마틴의 아버지는 어떠한 고난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마틴의 곁에서 그를 지키면서 보낸다.

하지만 엄마의 경우는 남은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담감과 아들 마틴의 상황을 호전시킬수 없다는 좌절감에 그의 아들에게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기까지 이르렀고, 그리고 자살시도도 하였다.

그렇게 마틴과 마틴의 가족에게는 매우 힘든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천사같은 버나가 찾아오게 되고, 그녀는 마사지를 하면서 유일하게 마틴과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었고, 결국 그녀는 마틴이 의식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로부터 마틴에게는 변화가 생겼고, 컴퓨터를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고 이로인해 점점 조금씩 운동신경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담담히 자신이 겪었던 의식이 있는 식물인간의 삶을 이 책에서 조용히 구술하고 있다.

엄마의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게 되었던 것,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자신때문에 싸우는 것,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봤던 것등 많은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돌봄센터에서의 추악하고 이해할수 없는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도 진술하고 있었다.

범죄인 강제적 성폭력과 성추행, 언어폭력 및 신체적 폭력까지.

가장 약한 장애인인 마틴에게 가해지는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그 끔직한 기억에 억매이지 않고 앞으로 느리지만 의미있는 전진을 하게 되면서, 그는 결국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찾아온 선물로 마틴은 그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잔혹함과 나약함을 잘 알지만, 반대로 그의 선택은 가장 빛난 희망과 끊임없는 전진이었다.

"힘들세요. 마틴을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하고 싶다. "힘든게 인간사입니다. 포기하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움직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싫은 여자
가쓰라 노조미 지음, 김효진 옮김 / 북펌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출품작 [얄미운 여자]의 원작소설", "NHK 6부작 드라마 [나쁜 여자]의 원작소설"이라는 이 책 소개를 보면서 꽤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나와 영화에 동시에 만들어질 정도면 스토리의 깊이감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감이 높아졌고, 제목 <싫은 여자>라는 단어도 꽤 많은 상상을 하게 하였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사다 데쓰코라는 변호사이다.

그녀에게는 먼 친척인 고타니 나쓰코라는 여자가 있는데, 할머니 집에 갔을때 만났던 기억외에는 왕래가 없는 관계이다.

나쓰코, 즉 낫짱이라고 불리는 그녀에 대한 데쓰코의 기억은 어릴적 할머니가 나쓰코와 데쓰코에게 만들어준 원피스를 나쓰코가 찢어버린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울면서 자기에게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했던 모습이다.

이 에피소드는 낫짱을 가장 잘 표현할수 있는 모습이라고 본다.

기질적으로, 태생적으로 낫짱은 표정이 풍부하고, 질투도 많으나, 남자들은 그녀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그녀를 싫어한다.

여고, 여중을 다닌 나의 경험상 이런 여자아이는 반드시 한반에 한명정도는 있다.

예쁜 것보다는 귀염상이면서 주변에 남자아이들만 있고 여자친구 없는 여자아이.

그러다가 필요할때만 친한척하면서 여자들에게 접근하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으면 다시 모른척 하는 여자아이.

그래서 따지면 뭐 대수롭지도 않은 일인듯 대꾸하는 아이. 하하

그렇다 반드시 이런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나쓰코도 같은 부류로 데쓰코에게 적게는 5년 많게는 9년만에 연락을 한다.

일생을 통해 데쓰코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자신의 수호자라 이야기할 정도이지만, 평생동안 8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이다.

더구나 연락할때마다 나쓰코는 항상 소송에 휘말리거나 곤경에 처해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데쓰코에게 연락을 할뿐이고, 비용도 항상 지불하지 않는 뻔뻔함을 보인다.

데쓰코는오기와라 변호사에서 근무하면서 '변호사는 듣는 직업'이라는 오기와라 미치야 변호사의 가르침속에서 변호사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나쓰코의 일을 처리해주면서 나쓰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쓰코뿐만 아니라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이 소설은 첨에는 나쓰코의 얄미운 생각이 들면서 참 이런 여자들이 있었지라는 추억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쓰코의 의뢰가 횟수를 더해가고 나쓰코와 데쓰코가 나이를 들어가면서 나쓰코는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였지만, 데쓰코는 생각이 변화하고 행동이 변화해 갔다.

나역시 데스코를 따라 생각이 변화하고 관점이 변화하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결혼 사기, 보험 사기, 네거티브 옵션 사기 등등 다양한 사기를 치면서 남자들의 소위 등을 쳐서 먹고 사는 나쓰코의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삶이란 인간이란 이란 생각이 들게 된다.

또한 더불어 늙어감에 대한 생각도 같이 하게 된다.

상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는 나쓰코와 그에 당하는 남자 여자 피해자들을 보면서 삶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동시에 위로를 받게 된다.

자신이 바라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이책에 단 한명도 없었다.

생각하는 것처럼 바라는 것처럼 일이 되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바라던 인생이 아니고, 생각처럼 되는 일이 없는 것이 나만은 아니고, 대부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이런 인생에서 적절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맞춰가면서 살아갈수 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나쓰코의 영악함이 비록 극대화되었지만, 그녀나름의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사 데쓰코 역시 자신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남녀 상관없이 읽어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추천해서 생각을 들어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실점이란 '회화나 설계도 등에서 투시하여 물체의 연장선을 그었을때,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두산 백과 사전)

즉 평면 또는 입체적인 물체가 하나의 점으로 사라지게 되는 그 지점이 소실점인 것이다.

출처기계공학용어사전, 기계공학사전편찬위원회, 1995. 3. 1., 한국사전연구사

 

책을 읽고 나니, 이 책 소설의 내용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소실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근감을 더하고 결국 점으로 소멸하는 지점이 소실점이듯 그 모습이 소설속의 인물 최선우와 서인하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며느리, 잘 나가는 외교관 박무현의 아내, 유재석 다음으로 전 국민이 아는 유명세의 아나운서인 최선우가 목이 이상하게 꺾인채로 서인하의 집에서 알몸으로 발견된다.

서인하는 최선우의 죽음에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체포되고 이를 강주희 검사가 담당하게 된다.

소설에서 최선우의 실체적 등장은 딱 2번 뿐이다.

죽음을 중심으로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과 죽음이 일어나기 전이다.

맨 앞부분과 소설의 맨 마지막 에필로그에만 최선우는 실제 등장하는 것이다.

소설은 최선우의 죽음에서부터 출발하여 유력한 용의자 서인하의 진술과 그를 조사하는 강주희의 두뇌와 심리싸움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최선우의 실체적 등장은 두번 뿐이지만, 최선우의 죽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선우는 누군가가 진술하는 모습으로 계속적으로 등장한다.

서인하가 알고 있는 최선우, 남편 박무현이 알고 있는 최선우, 최선우의 지인들이 진술하는 최선우, 그리고, 강주희가 생각하는 최선우로 소설내내 중심은 최선우이다.

그러나 진술된 최선우의 모습이 서로 완전히 달랐으며, 이 서로 다른 모습속에서 사건은 미로속을 헤매게 된다.

특히 강주희 검사는 서인하의 진술 태도에 혼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결정적인 물증을 찾아내게 된다.


소설을 읽고 나니 묘하게 내 주변의 상황과 비교되는 맥락이 있어서 뭔가 씁쓸함이 입에 남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 사회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것이며, 얼굴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거나 오히려 감정을 숨기고 상대방의 의도대로 가면을 써야하는 상황들이 들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새 내 주변상황이 특히 그러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면을 써야하고 결국 그 가면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지 여부를 떠나 한 인간의 능력치와 결부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가면을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서 마치 중국의 변검쇼를 하듯이 바꿔쓸수 있는 사람이 능력있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치부되고 인정받고 승승장구한다.

요새 가면을 쓰는 것도 못하고 실제 가면조차 없는 나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1000% 감정이 드러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에게 사람들은 "순진하다 = 무능하다" 이야기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소설을 읽고나니 참 묘하게 씁쓸했다.

최선우 뿐만 아니라, 최선우의 남편 박무현, 최선우의 살해 용의자 서인하, 그리고 검사 강주희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가면속에서 자신과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

그 가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주인공들이 가면을 벗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바로 '소실점'이었다.

과연 실제 현실에서도?? 난 단연코 아니라고 보며, 이런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실점으로 달려간 주인공들이 그들이 가면속에 완벽 적응하지 못한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측은지심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소리와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 소리에 의지를 갖고 행하는 것일까?

솔직히 가면을 쓰지 마세요 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못쓰는 나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가면을 쓰던 쓰지 않던,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는 귀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무거운 가면의 무게에 사라지는 것보다는 가벼운 가면의 무게 속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거라는 개인적 생각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못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에게는 더 못되게 구는 경우가 많다.

항상 옆에 있다고, 옆에 있어서 익숙하다 못해 지루하기 때문에 표현을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주 지겨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이였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면, 그때 그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상속에서 현실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이런 부부들이 꽤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직 미혼 상태에서의 이런 상황은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들에게 전하는 섬뜩하고도 슬픈 이야기가 <아주 긴 변명>이 아닌가 싶다.


기누가사 사치오는 예명 쓰무라 케이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그에게는 무명시절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아내 나쓰코가 있다.

사치오는 아내를 두고 바람을 필 정도로 아내에 대한 사랑은 식었고, 아내에 대한 의무감과 빚진 감정때문에 아내와 거리감을 두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것도 편집부원인 한 여자와 아내의 침대에서 바람을 피던 그 순간 아내는 여행길에 버스 전복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사치오는 혼자 남았다.

커다란 슬픔에 오열하지도 못하고, 담담하게 묵묵히 아내의 죽음과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다.

아내의 죽음 이전에 출연하였던 TV프로그램과 소설로 나름 유명세를 갖고 있던 사치오이므로, 많은 언론이 그를 조명한다.

사치오는 갑작스럽게 떠난 아내에게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조용히 아내의 죽음과 그로 인한 혼돈속에서 머물고 있던 사치오에게 아내의 친구이자 사고로 함께 세상을 떠난 오미야 유키의 가족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그곳에는 아내 유키를 잃은 오미야 요이치와 아들 신페이 그리고 어린 딸 아카리가 있었다.

요이치는 아내를 잃은 분노로 소리를 지르고, 울고 화내고, 그리고 집안에 불당까지 차려놓고 있었지만, 아들 신페이와 어린 딸 아카리는 엄마의 부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사치오와 같이 말이다.

그 가족은 엄마 유키의 부재로 신페이의 중학교 입학과 아카리의 돌봄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차에 사치오가 그들을 돕기로 한다.

그렇게 사치오와 오미야 집안의 만남이 이뤄지면서, 사치오는 아내의 죽음의 의미를 점점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버스추락사고가 없었다면 나쓰코와 사치오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중간중간 일들이 비슷하게 바뀌었겠지만, 사치오가 자신에게 아내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 과정은 같았을것이라고 본다.

그럼 왜 사치오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내 나쓰코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까?

심지어 그와 바람을 핀 상대와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았던 아내의 존재를 정작 왜 그만은 몰랐을까 싶다.

바로 이기심때문이 아닌가 싶고, 자존감이라 칭하는 자격지심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 자격지심과 이기심에 눈멀고 귀막고 생각조차 막혀서, 사랑해야 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 하고 오히려 사랑하기보다 도망쳐왔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사치오만이 그런 바보같은 삶을 사는 것일까?

이책의 오미야 요이치도 같은 바보같은 삶을 살아왔으면, 우리 역시 그럴 것이라고 본다.

사랑해야 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한 대가는 작지 않고 혹독하다.

우리 주변에 가장 사랑해야 할 존재에게 사랑의 눈길과 손길 그리고 말을 나누기 바라는 마음이다.

특히 권태기의 부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고, <어느 긴 변명을 통해> 진정한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