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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카사베츠 감독, 리안 고슬링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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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훨씬 더 성숙하고 멋진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단지 그가 궁금해서 들렀던 그녀는 자신의 모든 선택들을 뒤로 하고 그의 곁에 영원히 남기로 결정한 것이겠지. 외부적 강압에 의해 헤어졌을 때에도 그녀는 되돌아 올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확신도,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도 없었으니까. 첫사랑의 뜨거움과 달콤함은 강렬했지만 아직 덜 여문 과일처럼 단단하지 못했다. 

그는 365통의 답장없는 편지를 쓰며 단단해져 갔고, 수없이 많은 대패질과 못질을 하며 여물어져 갔다. 공허한 눈빛과 허한 마음은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본능적 갈망과 뒤섞여 더 깊고 더 진한 그만의 향기로 빚어져갔다. 어린 청년의 모습에서 단단한 남자의 모습으로 성장해 간 그는 매력적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그녀를 되돌아오게 할 만큼.  

 

나는 그의 입장이었다. 떠나고 돌아오는 그녀의 마음보다는 사랑을 품고 약속을 지키고 끊임없이 기다리던 그의 마음이 훨씬 더 공감이 갔다. 시종일관 무심하고 덤덤했던 그의 표정에서 나는 온갖 고통과 절망과 인내와 공허를 읽을 수 있었다. 7년만에 그를 보러 온 그녀 앞에서 아무 말도, 어떤 표정도 짓지 못했던 그의 마음은 내 마음이었다. 그녀를 그리며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그녀의 화실을 선사할 때도, 그토록 기다려왔던 그녀와의 격정적인 사랑의 시간에도, 다시 떠나겠다며 일어서는 그녀를 바라 볼 때도 그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얼마나 오래 그녀를 기다려왔는지, 얼마나 간절히 그녀를 원하는지..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심. 그 마음이 내 마음 같더라.  

그래..여기까지는 그들이 젊기에 가능하다 여긴다. 또한 마음은 아프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보여진다. 수많은 젊은 남녀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고 그 중에 또 많은 이들은 떠난 이를 오래도록 기다린다. 하지만...

 

# 그토록 오래 기다릴 수 있을까 

난 뭐든 잘 기다리는 편이다. 오랜 시간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어떤 일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도, 마음이 변한 누군가의 마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도, 뭐든 진득하니 하는 것은 잘 하는 편이다. 그래서 자신있다. 하지만 '그'처럼 기다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엔 대답하기 어렵다. 별로 기다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 

젊은 시절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일이다. 고통스럽다지만 기다릴 만한 일이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얻은 사랑, 오래도록 자식 낳고 살 부비며 이꼴 저꼴 다 보고 산 배우자를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오래도록 기다리는 일....그건 사실 자신 없다. 오래도록 살아 온 정이 있으니 의무감으로, 혹은 사람된 도리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온전히 상대를 위한 사랑 하나로 조금씩 기억 저편으로 들어가 죽어가는 배우자를 그렇게 기다리는 일은....자신 없는 일이다. 

젊고 건강하고 나를 열렬히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희망과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지만, 늙고 병들고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기적을 바라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쏟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혹여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 하여도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완벽한 기적과 희망으로 끝난다. 가능하지 않은, 쉽지 않은 기다림과 사랑의 결론은 기적, 그 자체이니까. 

 

# 오랜만에 코드 맞는 영화 

이 영화는 극과 극의 평을 받았다 한다. 클래식한 멜로 영화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라는 평과 진부하고 지루한 영화라는 평. 나에게 이 영화는 아주 대단한 감동을 주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영화 보기를 그닥 즐겨하지 않는 나였지만, 쉽게 지루해지지 않았고 집중력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배경과 한템포 느린 전개 속도, 어쩌면 뻔하게 예상할 수 있는 안정적인 스토리. 긴장하고 예민하게 보지 않아도 되었던 영화.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뭔가 뭉클하면서도 해피엔딩이었기에 더 좋았다. (난 해피엔딩이 좋다~^^) 

이런 영화라면 일주일에 한 편 정도는 부담없이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보고 나서 멍해지고 머리 아픈 영화, 혹은 무슨 이야기인지 계속 추측해야 하는 영화, 다양한 해석을 하도록 열어 두는 영화 등은 재미있고 기발하고 멋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를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즐기지 않는다. 복잡한 일상을 어느 정도 뭉뚱그리고 융화시킬 수 있는 정도의 나른함과 평범함, 바쁜 삶을 잠시 멈출 수 있을만큼의 속도감. 밋밋한 해피엔딩...  

음...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나랑 딱 맞는 스타일인 것 같다. 게다가 부담없는 멜로에 적절한 해피엔딩.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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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2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피엔딩이 좋아요. 아니.. 해피엔딩 영화만 골라 봐요.
책이든 영화든, 끝을 볼 수 있어서 좋구요.
현실이 꼭 그렇진 않다는 걸 알기에 더욱..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4-25 11: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현실에선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이나 미적지근한 엔딩이 많죠..ㅎㅎ
저도 영화나 책 만큼은 가뿐하고 행복했음 좋겠어요.
나이 드니까 더 하네요..ㅎㅎ

마녀고양이 2011-04-2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운 영화지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예요.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연인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진정 아름다운 연인들의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중간도 아름답지만,,,, 엔딩에서는 너무 울어버려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4-25 11:25   좋아요 0 | URL
이 영화 좋다고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봤네요.
잔잔하고 아름답고 예뻤어요..^^
엔딩...너무 마법같아요. 그런 해피엔딩 참 좋더라구요.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 격동의 20세기를 살았던 15인의 예술가
진회숙 지음 / 청아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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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손에 들게 된 책인데 읽다보니 마치 한 명 한 명의 예술가들을 그 시대로 돌아가 만나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우연히 만난 것치고는 정말 뿌듯한 기분을 안겨준 책이랄까. 막연히 이름만 들었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알게 되어 즐거웠고, 암울했던 20세기 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던 예술가들의 생애를 보며 우리 사회에서 과연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다분히 여러 견해나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나 예술가 개인의 정치적이고 사회적 입장에 어떤 평가적인 토를 달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여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다큐멘터리적인 기술인데, 난 오히려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접하는 것이 더 좋았다. 

조선 말의 어지러웠던 상황이나, 일제 시대때의 암울했던 사회 문화, 그리고 해방 후 맞았던 정치적 격동기를 온 몸으로 겪어냈던 예술가들을 어떤 정치적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맞닥뜨리고 평가는 각자 알아서 하도록 독자에게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사실, 친일파 혹은 빨갱이로 불리는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예술가들을 가르다 보면, 정작 그 사람의 본질과 그의 예술의 핵심은 간과되기 마련이다. 물론 예술이란 것이 사회적 문화적 산물이긴 하지만 사실은 가장 먼저 그 예술가의 개인적인 자질과 능력, 관심사와 재능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사회 역사적 맥락에 너무 갇히게 되면 대상 그 자체를 왜곡할 수 밖에 없다. 

 

건축가 김수근이나, 영화인 나운규 같은 사람들이 현시대에 태어났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예술적 정신과 결과물들은 또 다른 평가들을 받고 그들의 정신세계는 다른 면으로 조명되었을테지. 그 시대였기에 존중되었던 면도 있겠고, 그 시대였기에 평가절하된 부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야 알게되는 예술의 가치들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이 암울했던 시기의 조선의 혹은 대한제국 하의 우리나라 예술인들은 제대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건축이던, 음악이던, 미술이던...그들의 혼이 발현된 것은 다 다른 분야였지만, 여러 공통점 중 몇 가지에 눈이 간다. 무엇보다 예술이란 것은 숨겨진 혹은 잠재된 재능이 일단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 시대로 말하면 '끼'가 될 수도 있겠고, 어떤 예술적 감수성이나 타고난 재주 같은 것일 수도 있을텐데 어쨌든 좋아하고 노력만 한다고 다 이 책 속 예술가들처럼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이 책에 이름이 올려진 예술인들 같은 경우는, 암울했던 근현대의 한국에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선사하고 오랜 역사 속 우리나라의 예술혼을 이었다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한다.  

 

그리스 로마 문화와 유럽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일생과 작품은 줄줄 꽤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닥 멀지 않은 과거의 우리나라 예술인들과 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들게 한 책이고, 동시에 진흙 속에서 빛났던 보물들을 찾아낸 느낌을 갖게 한 책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 때문에 보존되어지지 않은 작품들, 혹은 활동 들이 아쉽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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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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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나에게 과거로 돌아가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있긴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가서 실컷 욕 해주고 싶은 사람ㅋㅋ)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게 해 주는 (단 2~30분 정도지만) 신비의 알약이 10개가 있다면?  

나같은 현실주의자는 그 알약 자체를 믿지 못하겠지.
그리고 우황청심환인지, 개똥인지 모를 그 약을 먹지도 않겠지. 
그리고 과거의 나 따위는 만나고 싶지 않을지도...

그러니까 소설의 주인공 엘리엇은 폐암말기의 60대 남자다.
이 '시간여행'이 말이 되기 위한 적절한 상황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무엇이 두려울까?
게다가 마지막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을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 

그는 과거로 돌아가 30년 전 똑같은 날의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운명을 거스르고자 하는 위험하지만 흥미진진한 도전을 하게 된다.
과거 어느 순간을 살짝 바꿀 수 있다면...
또는 어떤 사람과의 만남을 과거에서 지우고 그 옆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면...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는 결과들이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런 구조를 가지고 마치 TV 속 <미니시리즈 드라마>처럼
가볍고 경쾌하지만, 때론 긴장감 넘치는 구조로 쉽게 읽힌다. 
아쉽게도 그리 치밀하거나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딱 드라마 수준.
결국 결말도 아주 착하고 정직하게 해피엔딩.
 

 

2.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 그럼 우리 아이들은 이 세상에 없었겠지. 
   '그럼 25년 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 그럼 난 지금 존재하지 않았겠지. 
  

만약에 만약에...만약에는 위험하다.
딸린 과거의 가지들이 너무 많고, 한 가지를 자를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너무 쉽게 그 가지를 잘라 버리고 다른 데 붙인다.
소설이니 가능하지만.
소설이라 아쉽다. (복잡한 구조를 너무 간단하게 풀어버렸달까.)  

 

3.  공감 가는 몇 구절들.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도 믿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과학을 다 손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 마르셀 소바죠- 
   
 

우리는 두 눈에 붕대를 감고 현재를 통과한다. 시간이 흘러, 붕대가 벗겨지고 과거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살아온 날들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밀란 쿤데라-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가 죽어야 하는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알베르 까뮈- 
   
     
 
당신 앞에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를 때, 무턱대고 아무 길이나 택하지 마라. 차분히 앉아라. 그리고 기다려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꼼짝하지 마라. 입을 다물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가슴이 당신에게 말할 때, 그때 일어나 가슴이 이끄는 길로 가라. - 수잔나 타마로-  
    
 
 
특히 마지막 구절은 마음에 와 닿는다.
지금 내가 내리는 어떤 순간의 선택이 미래에 엄청난 일을 일으키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쉬운 선택이 후회와 회환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모든 인생 앞에서 겸손해 질 것.
 
 

4. 사실, 이 책은 그냥 재미 정도로 읽었고
내가 내내 즐거웠던 이유는 딴 데 있다.
ipod으로 본 최초의 e-book이었다는 것!
다운 받아 놓은지 백만년은 되었던 것 같은데
이곳저곳 바쁘게 다니는 틈에 틈틈이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의외로 집중이 잘 된다.
종이책으로 읽을 때는 그냥 쑥쑥 넘기던 부분들을
꼼꼼하게 읽게 되는 색다른 느낌이랄까.
 
똑같은 본문도,
종이책에서의 느낌과 작은 화면에서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왠지 메세지까지도 다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하튼, 색다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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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2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2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3-23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려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꼼짝하지 마라. 입을 다물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저도 이 구절 굉장히 좋아요.
아이패드로 읽으신 거예요? 이북? 우아... ^^

시간 여행이라.. 영화 <나비 효과>를 봤을 때 정말 참담했어요.
아무리 바꿔도 결론이 바뀌지 않더라구요.... ㅠ, 그 영화 보셨어요?
기욤 뮈소의 이 책은 제목 때문에 사놓고... 몇년째 방치 중이랍니다. ㅠ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23 17:06   좋아요 0 | URL
아이패드가 아니라 아이팟으로 봤어요.ㅋㅋㅋ
작은 화면으로 책 읽는 기분도 괜찮더라구요.

<나비효과>는 보지 않았는데 대충 줄거리는 알아요.
이 책에선 결국 운명을 바꾸지만,(줄거리는 통속적이랄까...)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이 책은 저도 제목때문에 읽었어요.
제목이 너무 낭만적이예요.ㅎㅎ
 
화장실에서 3년 - 레벨 1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조성자 지음, 이영림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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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소공포증>
 

이건 시크릿가든의 주원이 때문에 알게 된 질환이다. 출구 없는 공간에 갇혔을 때 병적인 공포증을 느끼는 질환인데, 주원이가 보여줬던 호흡곤란과 병적 증세는 사실 과거의 심한 트라우마에서 발생된 것이라 그 증상이 두드러지게 심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만약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갑자기 덜컹~하며 멈춘다거나, 좁은 공간에 문을 닫고 들어갔는데 다시 나올 수 없게 순간적으로 문이 열리지 않다거나 할 때 나 같은 경우는 주원이 못지 않은 공포감에 사로잡힐 것 같다. 사실 누구나 살면서 그런 경험들은 한 두번쯤 있지 않을까 싶다. 고장난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본 적은 한 세네 번 된 것 같고 (엘리베이터가 층과 층 사이에 서서 멈추면 진짜 무섭다.) 화장실 문이 잠겼는데 안에서 못 나갔을 때가 한 두어번, 새벽에 핸드폰도 없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열쇠로만 열리는 집 현관이 닫혀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한 번 (이때는 동 틀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ㅠ.ㅠ)... 

여하튼, 전혀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공포심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 전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닥치는 당황스럽고 두려운 순간이 과연 우리에겐 어떤 의미일까. 

 

<화장실에서...>  

그러니까, 단 몇 분만 갇혀도 죽을 것 같은데, 좁은 화장실, 그것도 아주 냄새나고 더럽고 비좁은 간이 공중 화장실에 세 시간이 넘게 갇혀 있다면? 사실, 난 상상만 해도 속에서 뭔가 올라올 것 같고 머리가 어질거린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이 작은 여자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아예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속 아이는 비현실적이다. 현장학습을 떠난 상아가 숲 속으로 사라진 다람쥐를 뒤쫏다가 우연히 화장실 안에 갇히게 된 사건 자체가...게다가 기절하고도 남았을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집을 나간 아빠,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나를 괴롭히던 친구, 쳇바퀴를 돌던 키우는 다람쥐를 생각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하나 하나 이해해 가는 시간을 보내다니... 

집을 나가면서 아빠는 3년 있다 돌아올 거라고 했다. 그래서 주인공 상아에게 3년은 정말이지 끔찍하고 긴 시간이다. 이제 1년을 기다렸을 뿐인데...마음 속 상처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만들었고 늘 자기 안의 우울에 빠져 다른 이들의 입장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자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런 공간에 갇혀 스스로의 힘으로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나와야 한다.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보고, 메모지를 접어 좁은 창문 밖으로 날려 보기도 하고, 화장실 문을 있는 힘껏 두두려 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소용이 없는 일이 되자 상아에게는 결국 혼자만이 남는다. 스스로를 도울수 있는 것도 용기를 내어 보는 것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달렸음을 알게 되는 것. 

집을 나간 아빠를 생각하고, 개 대신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자신의 바램들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자기를 괴롭히던 친구가 준 초콜렛을 먹으며 힘을 내어 보고, 쳇바퀴 돌던 다람쥐의 처지도 한 번 생각해 보고,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할머니의 말을 기억해 내며 꿋꿋이 도시락도 까먹는다. 아이에게 3년보다 더 길었을 그 시간. 어쩌면 최악의 상황 속에서 겪는 많은 생각과 상념들은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3년...> 

판타지 같은 동화다.
너무나 동화처럼 없어진 아이를 뒤늦게 발견한 친구 덕에, 한 걸음에 딸을 찾으러 온 집 나간 아빠 덕에 동화는 뭉클한 결말로 끝이 나지만, 사실 현실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상황이다. 아주 현실적인 나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해! 라고 여전히 말하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집중하고 흥미를 가지게 되는지도... 

'화장실'이라는 외적 어려움의 상황과 '3년'이라는 물리적 심리적 어려움의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집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어느새 마음 속 깊은 상처들을 스스로 보듬을 수 있게 된다. 흘려듣던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위로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도움이 된다는 교훈도 얻게 되고, 정말 어려운 처지에서도 정신을 바로 차리고 지혜를 발휘하여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내는 주인공을 통해 아직은 겪어 보지 않은 미지의 어려움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도 갖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에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아빠가 자신을 구하러 와 주었을 때 뭉클한 감동도...

 

<그럼에도...> 

난 이런 상황은 절대 피하고 싶다. 워낙 겁이 많은 나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이 동화가 뭉클하고 감동적이기는 하지만...난 우리 아이가 이런 상황에 잠깐이라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내가 먼저 기절하지 않을까 싶다~고통과 고난이 없다면 정말 '최고의 깨달음과 성장'은 없는 것일까? 

답은 없지만, 그런 것도 같다. 진주는 오랜 인내의 시간과 고통의 무게를 겪어야 탄생하듯이, 인간의 성장 역시 어려움과 고난과 고통에서 진정한 빛을 내는 것을, 경험으로 지식으로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정이랄까. 신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고 하니까. 그 고난과 어려움이 그저 내가 감당할 만한 것이기를, 그 안에서 절망하여 주저앉지 않고 살아갈 희망을 얻기를, 간절히 원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나는 기회가 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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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3-2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들이 읽는 책 치고는 화장실 안에서 김밥 먹는 설정은 좀 그렇네요,, ^^;;
저는 한밤중에 화장실에 혼자 있으면 은근히 무섭더라구요,,ㅎㅎ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22 12:3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맞아요.
이상하게 가족들이 다 있어도 한 밤중에 화장실은 무서워요.
거울보는 것도...ㅎㅎㅎ

극적 전개를 위해 설정했다지만,
저런 상황은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에게는요.

마녀고양이 2011-03-2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장실에 갇혀 공포증에 시달리는 것 말고
화장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 들어.. 저두 화장실에서 한발짝도 나오고 싶지 않아요. 그럼 안 되겠죠?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23 17:04   좋아요 0 | URL
마고님..토닥토닥...
나오고 싶지 않은, 나오기 싫은 그 마음 이해할 것 같아요.
조금 쉬셨음 좋겠다. 몸도 마음도 말예요.
얼른 기운차리고 행복한 햇살 같은 기운이 쫙 퍼지시길 바래요.
진짜 그랬음 좋겠어요!
 
날마다 택시 타는 아이 -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 2
한혜영 지음 / 함께자람(교학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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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는게 우리 인생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 나랑 코드가 잘 통하는 사람, 나를 무조건 좋아해 주는 사람,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
물론 살면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많다.
돈을 떼어 먹었다던지, 내 험담을 해서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했던 사람, 직장생활 중에 이유없이 나를 시기질투했던 사람, 혹은 온갖 상처를 주고 떠난 옛 애인이라던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특히나 '사람'에 대한 기억력이 아주 떨어지는 나같은 경우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도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얼굴과 이름을 연결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는 아주 약과다.
얼굴을 보고도 누구시더라..하는 경우는 최악이다. 상대방은 반갑게 인사하는데 나는 멀뚱한 그 때, 나도 상대도 잠깐이나마 무안한 순간을 경험한다. 

이런 최악의 경우만 아니라면, 정확한 신상정보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 사람과 있었던 다양한 사건과 겪었던 그 시간의 무게만큼 추억의 향기라는게 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정확한 사건사고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인상, 그에게서 받았던 다양한 영향과 감동은 어떤 느낌을 품은채 고스란히 전해진단 말이다.
특히, 내가 참 어려웠거나 힘들었던 시기에 만나 말로든, 물질적으로든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선 더욱 그렇다. 힘들 때 겪었던 일들은 그 어려움의 경중만큼 그 사람과의 추억에 더해져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승리라는 7살 난 어린 아이다.
돈을 떼먹고 도망간 친구때문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설상가상 승리 엄마까지 교통사고로 죽게되자 택시를 운전하게 된 승리 아빠는 어린 승리를 밤늦게까지 집에 두고 다닐 수가 없어서, 택시 옆 자리에 승리를 태우고 날마다 일을 한다.
어린 승리는 택시 앞 자리에 앉아 내리고 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어른들의 세계를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일곱살 아이의 시선으로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사실 승리는 여러모로 아빠의 택시를 타는 일이 쉽지 않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즐거워했겠지만, 시간에 맞추어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포기하고 오후부터 밤 늦게까지 택시 안에 갇혀 지내야 한다. 늦은 밤까지 돌아다니다 아침에 일어나려면 힘도 들고, 엄마 없는 생활이라 끼니도 식당에서 해결해야 한다. 아직 어리광 피울 나이인 7살 아이에겐 녹녹치 않은 생활이다. 
그렇기에 좁은 택시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은 승리에게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인생의 다양한 교훈과 경험들을 선사한다. 어려운 시절 만나는 모든 것은 다 위로다!

엄마를 닮은 달래 아줌마의 친절함에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받고,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다는 젊은 음악가 아저씨에게선 희망의 노래를 선물받는다. 높은 빌딩에 올라가 유리창을 닦는다는 아저씨에게선 인생을 보는 눈을 어렴풋이 배우고 천문학자 할아버지에게선 마음의 별을 보는 법 등을... 
승리는 어른들이 아빠와 나누는 대화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시각으로 질문하고 소통하며 조금씩 성장해 간다.
돈을 떼먹고 도망간 친구 동만을 만난 아빠의 태도를 보면서, 승리도 역시 미워했던 친구 용수를 이해하는 한층 성장한 모습을 배우게 된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나누며 힘이 되어주는 그런 인생의 법칙들을... 

승리가 성장하여 성년이 되었을 때. 그리고 가정을 꾸려 사회인이 되었을 때,
승리의 마음속엔 그때 아빠의 택시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에서 지워질 지라도, 그들과 나눈 대화에서 느꼈던 뭔지 모를 희망과 교훈들은 어떤 느낌과 감동으로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택시에 탄 승리같은 인생을 산다. 오며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잠시잠깐 관계들을 맺고 살아가는데, 그 속에서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가가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매겨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택시라는 공간은 어쩌면 어려운 환경을 대표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사람들일테다. 승리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내 인생에도 또 다른 사람의 어떤 인생에서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겠지. 또한, 나 역시 택시에 타고 내렸던 많은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희망의 손님'이 되야지 싶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나의 인생에 손님처럼 타고 내렸던, '희망의 손님' 몇몇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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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1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눔으로 많은 이를 만나고 도움을 받는다면 좋을텐데
너무 빨리 커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네요. ㅠ

택시에서 크는 아이, 맘이 아파요, 소설이라 할지라도.

2011-03-18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8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