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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 격동의 20세기를 살았던 15인의 예술가
진회숙 지음 / 청아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도서관에서 우연히 손에 들게 된 책인데 읽다보니 마치 한 명 한 명의 예술가들을 그 시대로 돌아가 만나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우연히 만난 것치고는 정말 뿌듯한 기분을 안겨준 책이랄까. 막연히 이름만 들었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알게 되어 즐거웠고, 암울했던 20세기 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던 예술가들의 생애를 보며 우리 사회에서 과연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다분히 여러 견해나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나 예술가 개인의 정치적이고 사회적 입장에 어떤 평가적인 토를 달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여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다큐멘터리적인 기술인데, 난 오히려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접하는 것이 더 좋았다.
조선 말의 어지러웠던 상황이나, 일제 시대때의 암울했던 사회 문화, 그리고 해방 후 맞았던 정치적 격동기를 온 몸으로 겪어냈던 예술가들을 어떤 정치적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맞닥뜨리고 평가는 각자 알아서 하도록 독자에게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사실, 친일파 혹은 빨갱이로 불리는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예술가들을 가르다 보면, 정작 그 사람의 본질과 그의 예술의 핵심은 간과되기 마련이다. 물론 예술이란 것이 사회적 문화적 산물이긴 하지만 사실은 가장 먼저 그 예술가의 개인적인 자질과 능력, 관심사와 재능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사회 역사적 맥락에 너무 갇히게 되면 대상 그 자체를 왜곡할 수 밖에 없다.
건축가 김수근이나, 영화인 나운규 같은 사람들이 현시대에 태어났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예술적 정신과 결과물들은 또 다른 평가들을 받고 그들의 정신세계는 다른 면으로 조명되었을테지. 그 시대였기에 존중되었던 면도 있겠고, 그 시대였기에 평가절하된 부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야 알게되는 예술의 가치들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이 암울했던 시기의 조선의 혹은 대한제국 하의 우리나라 예술인들은 제대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건축이던, 음악이던, 미술이던...그들의 혼이 발현된 것은 다 다른 분야였지만, 여러 공통점 중 몇 가지에 눈이 간다. 무엇보다 예술이란 것은 숨겨진 혹은 잠재된 재능이 일단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 시대로 말하면 '끼'가 될 수도 있겠고, 어떤 예술적 감수성이나 타고난 재주 같은 것일 수도 있을텐데 어쨌든 좋아하고 노력만 한다고 다 이 책 속 예술가들처럼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이 책에 이름이 올려진 예술인들 같은 경우는, 암울했던 근현대의 한국에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선사하고 오랜 역사 속 우리나라의 예술혼을 이었다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한다.
그리스 로마 문화와 유럽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일생과 작품은 줄줄 꽤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닥 멀지 않은 과거의 우리나라 예술인들과 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들게 한 책이고, 동시에 진흙 속에서 빛났던 보물들을 찾아낸 느낌을 갖게 한 책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 때문에 보존되어지지 않은 작품들, 혹은 활동 들이 아쉽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