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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카사베츠 감독, 리안 고슬링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 그는 훨씬 더 성숙하고 멋진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단지 그가 궁금해서 들렀던 그녀는 자신의 모든 선택들을 뒤로 하고 그의 곁에 영원히 남기로 결정한 것이겠지. 외부적 강압에 의해 헤어졌을 때에도 그녀는 되돌아 올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확신도,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도 없었으니까. 첫사랑의 뜨거움과 달콤함은 강렬했지만 아직 덜 여문 과일처럼 단단하지 못했다. 

그는 365통의 답장없는 편지를 쓰며 단단해져 갔고, 수없이 많은 대패질과 못질을 하며 여물어져 갔다. 공허한 눈빛과 허한 마음은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본능적 갈망과 뒤섞여 더 깊고 더 진한 그만의 향기로 빚어져갔다. 어린 청년의 모습에서 단단한 남자의 모습으로 성장해 간 그는 매력적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그녀를 되돌아오게 할 만큼.  

 

나는 그의 입장이었다. 떠나고 돌아오는 그녀의 마음보다는 사랑을 품고 약속을 지키고 끊임없이 기다리던 그의 마음이 훨씬 더 공감이 갔다. 시종일관 무심하고 덤덤했던 그의 표정에서 나는 온갖 고통과 절망과 인내와 공허를 읽을 수 있었다. 7년만에 그를 보러 온 그녀 앞에서 아무 말도, 어떤 표정도 짓지 못했던 그의 마음은 내 마음이었다. 그녀를 그리며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그녀의 화실을 선사할 때도, 그토록 기다려왔던 그녀와의 격정적인 사랑의 시간에도, 다시 떠나겠다며 일어서는 그녀를 바라 볼 때도 그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얼마나 오래 그녀를 기다려왔는지, 얼마나 간절히 그녀를 원하는지..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심. 그 마음이 내 마음 같더라.  

그래..여기까지는 그들이 젊기에 가능하다 여긴다. 또한 마음은 아프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보여진다. 수많은 젊은 남녀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고 그 중에 또 많은 이들은 떠난 이를 오래도록 기다린다. 하지만...

 

# 그토록 오래 기다릴 수 있을까 

난 뭐든 잘 기다리는 편이다. 오랜 시간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어떤 일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도, 마음이 변한 누군가의 마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도, 뭐든 진득하니 하는 것은 잘 하는 편이다. 그래서 자신있다. 하지만 '그'처럼 기다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엔 대답하기 어렵다. 별로 기다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 

젊은 시절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일이다. 고통스럽다지만 기다릴 만한 일이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얻은 사랑, 오래도록 자식 낳고 살 부비며 이꼴 저꼴 다 보고 산 배우자를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오래도록 기다리는 일....그건 사실 자신 없다. 오래도록 살아 온 정이 있으니 의무감으로, 혹은 사람된 도리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온전히 상대를 위한 사랑 하나로 조금씩 기억 저편으로 들어가 죽어가는 배우자를 그렇게 기다리는 일은....자신 없는 일이다. 

젊고 건강하고 나를 열렬히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희망과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지만, 늙고 병들고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기적을 바라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쏟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혹여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 하여도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완벽한 기적과 희망으로 끝난다. 가능하지 않은, 쉽지 않은 기다림과 사랑의 결론은 기적, 그 자체이니까. 

 

# 오랜만에 코드 맞는 영화 

이 영화는 극과 극의 평을 받았다 한다. 클래식한 멜로 영화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라는 평과 진부하고 지루한 영화라는 평. 나에게 이 영화는 아주 대단한 감동을 주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영화 보기를 그닥 즐겨하지 않는 나였지만, 쉽게 지루해지지 않았고 집중력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배경과 한템포 느린 전개 속도, 어쩌면 뻔하게 예상할 수 있는 안정적인 스토리. 긴장하고 예민하게 보지 않아도 되었던 영화.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뭔가 뭉클하면서도 해피엔딩이었기에 더 좋았다. (난 해피엔딩이 좋다~^^) 

이런 영화라면 일주일에 한 편 정도는 부담없이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보고 나서 멍해지고 머리 아픈 영화, 혹은 무슨 이야기인지 계속 추측해야 하는 영화, 다양한 해석을 하도록 열어 두는 영화 등은 재미있고 기발하고 멋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를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즐기지 않는다. 복잡한 일상을 어느 정도 뭉뚱그리고 융화시킬 수 있는 정도의 나른함과 평범함, 바쁜 삶을 잠시 멈출 수 있을만큼의 속도감. 밋밋한 해피엔딩...  

음...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나랑 딱 맞는 스타일인 것 같다. 게다가 부담없는 멜로에 적절한 해피엔딩.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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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2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피엔딩이 좋아요. 아니.. 해피엔딩 영화만 골라 봐요.
책이든 영화든, 끝을 볼 수 있어서 좋구요.
현실이 꼭 그렇진 않다는 걸 알기에 더욱..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4-25 11: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현실에선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이나 미적지근한 엔딩이 많죠..ㅎㅎ
저도 영화나 책 만큼은 가뿐하고 행복했음 좋겠어요.
나이 드니까 더 하네요..ㅎㅎ

마녀고양이 2011-04-2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운 영화지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예요.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연인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진정 아름다운 연인들의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중간도 아름답지만,,,, 엔딩에서는 너무 울어버려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4-25 11:25   좋아요 0 | URL
이 영화 좋다고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봤네요.
잔잔하고 아름답고 예뻤어요..^^
엔딩...너무 마법같아요. 그런 해피엔딩 참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