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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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1 김영하.

낮에는 신사동의 극장에 다녀왔다. 넉 달 전 같은 영화를 본 이후 처음인 극장 나들이였다. 탕웨이는 다시 봐도 예쁘다. 예쁘게 늙는 건 부러운 일이다. 처음 헤어질 결심을 볼 때는 이것은 아이폰을 위한 영화인가…싶었다. 오늘 같이 영화를 본 엄마도 휴대전화를 매개로 전개되는 부분은 많이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휴대전화의 등장은 많은 서사 창작자들에게는 난점이지 싶었다. 뭔가 서로 단절되고 그래서 오해도 쌓이고 갈등도 심화되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너무도 서로와 쉽게 연결되는 시대를 산다. 반대로 배터리가 나가거나 전화기를 두고 오거나 고장이 나거나 화면이 깨지거나 하여간에 인연을 엇갈리게 하는 방식이 너무 뻔하고 빈곤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비루한 이야기가 될까 걱정하면서도 또 그게 그나마 개연성 있는 전개일 때도 많겠다. 박찬욱이 그런 점을 나름 고민하다가 아예 대놓고 휴대전화로 메시지도 하고 녹음도 하고 스마트워치도 동원하고 폰도 폰1, 2, 3 대포폰 바꿔치기 한 폰 새로 산 폰 등등…갈 데까지 해보자 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일찌감치 아이폰만 이용해 영화를 찍는 시도도 했었으니 뭐…

그렇지만 지는 해와 밀려드는 조수와 파도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찍으려면 바다에 가야만 한다. 폰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폰으로 바다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사랑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을 수는 있겠네… 넌 그걸로 충분하니?

집에 오니 문제집을 팔아 생긴 적립금으로 주문한 김금희 신작 소설책이 와 있었다. 아니 내년에도 공부하신다면서…왠지 안 푼 문제집 중 꼴 보기 싫은 것들을 내놓았더니 금세 주문이 밀려들어 수능 전 사흘 내내 매일 택배를 부치러 편의점에 다녀왔다. 5만 원 좀 안 되는 돈이 생겼다. ㅋㅋㅋ(정가는 막 권당 3만 원인 문제집을 세 권에 3만 원도 안 되게 팔았다지…)
문득 알라딘 매장 가서 김애란 산문집 팔아 김금희 소설을 사들고 오던 날이 생각났다. 그것이 나와 금희 언니의 시작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최강희가 양희로 나오는 티비문학관 드라마도 봤지… 거기는 서울역 고가도로에 만든 도보 공원이 나오지… 그때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돼지처럼 막 종이책 두 권 전자책 세 권 그리고 또 대기타는 종이책들 옆에 하나씩 꽂는 게 늘어나고 문득 이런 날들 생각보다 길지 않겠다…마냥 책만 보라면 보겠는데 다음 달이 되면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고 조급해졌다. 어느 것을 볼까요, 하다가 빌린 김영하 소설을 마저 읽기로 했다.

김영하가 최애 작가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가 낸 소설은 빛의 제국, 에세이는 보다 시리즈 두 권 빼고는 다 봤더라… 관성처럼 올해 신작 나온 게 있길래 또 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로봇, 이런 게 또다시 등장해서 그간 보았던 비슷한 소재들을 떠올려 보았다. 윤이형의 대니, 레스터 델 레이의 헬렌 올로이, 카렐 차페크의 로봇, 구병모의 한 스푼의 시간,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소설이 아니라도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 채피,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는 서사는 차고 넘쳤다. 그래서 전혀 정보 없이 펼친 소설에서 인공 지능 운운하니까 저절로 또야…하고 말았다. 화자나 그 주변 인물들이 초반에 어린 나이로 설정되어 그런가 캐릭터가 많이 약하고 특색 없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게 의도한 건지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 후반부는 채피 같기도 하고 왠지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생각났다. 제목을 쓰고 보니 이 영화도 다시 보고 싶다. 전 부인이랑 애들한테는 참 개새끼인데 영화로 보는 빵발이는 참 좋아했다…일단 파이트클럽 먼저…세븐은 참자…곱고 예쁜 거만 보기로…(파이트클럽이 곱냐…)

선택 과목으로 지구과학을 고르자 지구의 과거와 우주를 동시에 배우게 되었다. 이 우주에 우리가 없던 시간은 참 까마득하게 길었고, 우리가 없어진 이후로도 그럴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별에서 왔어.(아니야 금희언니가 페퍼로니에서 왔대) 하고 예쁘게 생각하려 해도, 그냥 우리는 먼지야 먼지, 잠시 뭉쳐 있다 다시 흩어질 거야, 하면 허무하기도 한데. 소설 속 선이는 이름처럼 불교 느낌 나는 우주철학을 설파하며 이상은 언니처럼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하고 있었다. 선이 철이 민이 달마 김영하가 이번에는 이름 참 구수하게 지었다. 오히려 고양이 이름이 막 칸트 데카르트 갈릴레오 그랬다. 이름 불릴 수 있는 존재로 잠시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온통 나를 죽이려는 우주 안에서 버티고 살아 있는 나한테, 버티도록 돕는 주변 이들에게 감사해야겠다.

같이 늙어가는 소설가들에 대해 생각했다. 다들 필립로스처럼 노년에 더 뜨겁고 치열하게 펑 터지는 걸 쓰기는 쉽지 않겠지만… 너무 젊을 때 빤짝이고 날카롭던 소설가들이 약간은 뭉툭하고 잔잔해지고 어느 정도는 착한 글을 쓰는 걸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드디어 안식을 얻으셨군요, 싶기도 하고, 살만하냐, 하고 삐딱해지기도 하고.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던 가수는 미처 더 나이 먹지 못하고 그 물음에 대해 먼저 살고 답해주지도 않고 일찍 죽어버려서 슬프기도 하다. 저도 안식을 얻을 때까지 살아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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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11-21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구과학 선택하셨군요...전 지구과학이랑 물리가 너무 싫어서 생물1,2화학1,2 선택했었어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11-22 07:31   좋아요 0 | URL
전 생명과학1(이제 생물을 이렇게 부른대요 언어영역 이러면 옛날 사람 취급 받음 국어영역이라고 ㅋㅋㅋ)지구과학1 했는데 생명과학은 뭔가 생명과 관계 없는 퍼즐 게임 같이 나오고 지구과학이 그나마 지리랑 비슷해서 공부할 만하더라구요. 화학은 잠깐 하다 바로 접고 나중에 하자 이러고요 ㅋㅋㅋ
 
민낯들 -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오찬호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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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오찬호.

영화를 소설화한 책 한 권으로 이유식을 마친 내가 시험 다음 다음날도 책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욕심을 내어 전자도서관에서 홍승은의 말에 관한 에세이, 김영하의 신작 소설, 바다에 관한 도감을 동시에 빌리고, 집에 갖춘 김연수의 신작 소설, 그리고 오찬호의 사회학 책도 돌아가며 읽는다. 수학에 치중했다고는 해도 국어 과학 영어 모두 방치할 수는 없어서 이 과목 저 과목 돌아가며 하던 버릇이 독서에도 옮았나 보다. 아니 전부터 그랬던가. 커피는 삼일 연속 캡슐 하나 안 먹고 미리 사 둔 원두로 드립 커피만 먹는다. 최대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다. ㅋㅋㅋㅋ

사회학 책을 읽을 때가 고향에 돌아온 것 마냥 편안하다. 소설이 가장 재미있고 좋지만 읽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결심까지 필요하다. 너무 사랑하면 너무 경건해지기도 하나 보다. 이야기에 깊이 빠져 같이 괴롭고 같이 슬플까 봐 주저한다. 다행히도 이제 겨우 두 편 읽은 김연수의 단편들은 이전에 나 잘 쓰지 메롱 메롱, 힘주던 젊은 시절 단편들보다는 꽤나 조심스럽게 그냥 살아보지요, 해서 좋았다. 홍승은은 글에 관한 글이 정말 좋았어서 말에 관해서는 어떨까, 하고 읽기 시작하다가 처음에는 웬일인지 버겁다가 그래도 역시 좋네, 했다. 나는 말로 먹고살다 보니 목에 관한 병을 얻고 수술까지 해서, 그리고 말의 무게와 책임도 너무 무겁고 힘이 들어서 자꾸 도망갈 궁리만 하는데 끝없이 글과 말에 관해 특히 어눌함과 조리 없음을 탓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래도 용기 내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작가의 마음이 좋았다.

그래도 제일 빨리 읽은 건 역시나 사회에 관한 책…나는 사회로 15년 가까이 밥벌이를 했고 사회 과목을 가장 좋아하고 제일 잘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왠지 수능 볼 때 사탐 보면 반칙 같아서 쏙 빼고 과탐 선택자가 되었지…그런데 이번에 정답률이 너무 낮아 논란이 된 사회문화 문항을 보고는 음…사회 안 보길 잘 했다…진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했다. ㅋㅋㅋㅋㅋ

철모르고 그냥 무슨 책이든, 무슨 수단이든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교과서 몇 권이랑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문제집, 이비에스 강좌 몇 개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입시에 관해 제법 정보를 수집하고 사교육에 관한 이런저런 풍문을 주워 모은 한 친구는 조심스레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신만만했나 보다 초반에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뭐 남들 어떻게 하는 걸 다 신경 쓰냐…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그러면서 하루 몇 시간씩 혼자 붙들고 끙끙 앓는 몇 달이 지났다.

그러고 나서 여름에 평가원이 시행하는 첫 모의고사를 한 번 보고 나서 나는 공황상태에 빠져 엉엉 울면서 주식만 샀지 쳐다도 안 봤던 인터넷 사교육 기관의 프리 패스를 끊고 내가 제일 싫어하던 강사의 가장 유명한 수학 강좌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 강사는 매우 꼼꼼하고 영리하고 준비를 많이 하고 집요한 사람이었지만, 시험에 관한 총평에서 학생들에게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싼다, 지랄 떨지 마시라고요 내가 너보다 훨씬 똑똑하고 하여간에 내가 옳아, 이걸 몇 번이나 설명해도 너는 내 머리는 돌이요 깨보시오 나는 말하는 감자요 이러고 있다는 둥 중간중간 뜨악할 말들로 모욕감을 선사했다. ㅋㅋㅋㅋㅋ 아니 뭔 강사들이 대체 왜 수학 강사가 국어 강사나 사회 강사한테 댓글이나 단톡방으로 모욕하는 말을 날리고 댓글 공작을 펼치고 이게 한두 놈도 아니고 다른 과목들도 강의 듣다 문득 강사에 관해 궁금해서 검색해 보면 댓글로 명예훼손해서 징역형에 집행유예 선고받은 경력이 떡하니 뜨곤 해서 자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죄다 전과자 새끼들이나 개싸가지들한테 배우고 있구나… 내 자질을 의심하며 애정도 열정도 없는 내가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하고 몇 년을 고민하다 도망칠 준비를 하는 나의 멘탈은 무엇인가… 아 참 난 저렇게 몇십몇백억 못 버니까 따콩 ㅋㅋㅋ 하여간에 그럼에도 예전에는 대치동에 가서 새벽부터 아님 전날 밤부터 줄을 서야 겨우 수강신청 가능하던 강사들 강의를 집이나 스터디 카페에 앉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니 기회가 많이 열렸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테스트를 거쳐 선발되어야 입학이 가능한 재수종합 기숙 학원에 머무는 데는 연간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재수 학원에서 자체 발간하는 교재들, 또는 상위권 돈 많은 강남 아이들이 선호한다는 문제집들은 서점에서 접하는 문제집들보다 문제 수도 적고 얄팍했지만 가격은 훨씬 비쌌고, 중고 시장에서도 제법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인터넷 강좌를 수강해야만 살 수 있는 문제집들도 비싸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나마도 패스를 끊지 않은 아이들은 살 수 없으니 중고 거래를 이용하고, 패스 이용자들은 그걸 이용해 교재를 여러 권 구입해 자기도 쓰고 남에게도 팔아 이득을 누리는 짓을 하니까 인터넷 교육기관들은 일 인당 교재 구매 권수를 제한하기까지 했다.
상위권 학생들이 모인다는 커뮤니티에서는 피뎁충(…)을 두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싼 교재값에 반발하는 아이들이 자기가 구한 유명 강사 교재나 비싼 사설 문제집을 스캔해서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하는데, 그걸 두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고 욕하는 목소리와, 그래도 누구나 문제집 걱정 없이 돈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는 성찰(?)의 목소리까지 젊은 친구들 나름대로 입시판의 계층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오히려 판 안에 있다 보니 내 앞의 컨베이어 벨트를 거친 가련한 친구들이 그 끝에서 어떤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지 정말이지 너무너무도 몰랐었다. 굳이 그 벨트 위에 올라 끄트머리에 뭐가 있나, 한 해를 그렇게 보내고 보니, 정말이지 참담했다. 내 아이들이 몇 년 후에 이런 힘들고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하고 이걸로 좋은 성취를 얻어야 자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할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진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다. 나는 겨우 몇 달로도 이렇게 와르르 몇 번을 무너졌는데 말야.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적어도 나 고3 때보다는 몇 배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말야. 세상이, 시스템이 여전한 듯, 또 많이 변했다. 더 지독하게. 더 치밀하고 복잡하게.

눈 감고 귀 막고 비뚤어진 세상에 관해 모른 채 살고 싶지만,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죽음들, 그리고 시험 준비하는 동안에도 뉴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또 다른 죽음들, 이전과 형태가 다른 유례없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선상의 구조적 죽음들을 내내 마주해야 했다. 사람들은 가장 편안해야 할 내 집안에서, 즐거워야 할 축제의 거리에서, 빠져 죽었다. 살기 위해 하는 노동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맹세문 앞에 자부심을 느끼기보다 의구심과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억울하고 힘들고 그래서 서로를 탓하고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혐오하고 그걸 표출하는 데도 망설임이 없어졌다.
그래서 한없이 슬프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래서 어쩌라고,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알고 듣고 찾아보고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아야 한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는 아니라고 안도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저게 나일 수도 있었다고 끝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그래서, 계속 수많은 이면들을 들추고 생각할 수 있어서 사회를 좋아했었는데. 수학도 과학도 세상과 담쌓는 수단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기초적인 입시 공부할 때에야 무관해 보이겠지만 그것도 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람에게 도움이 되니까 계속 존재하는 것일 테니… 그치만 국어도 수학도 사회도 과학도 뭐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슬픔…얌전히 책 읽고 독후감 쓰는 것 말고는 꾸준한 게 없어 또 슬픔…



+밑줄긋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이 허락한 만큼만, 주어진 팔자대로만 살아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평생 비슷한 집단의 사람들만 마주 보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 한 단계 상승할 때마다 삶이 달라지리라는 기대를 신분이나 지위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노소 꿈꾸게 한 체제는 인류 역사상 자본주의가 처음이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건방진 포부는 그동안 금기였지만, 자본주의는 ‘희망’을 개인에게 선사했다.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사람들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겠다는 각오로 버틴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란 기대로 고통을 참는다. 그 결과 불평등을 전제한 자본주의는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진 개인들 덕분에 맹렬히 전진했다.
우리는 일곱 번 넘어져서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껐다. 우리의 ’정의‘ 관념은 이런 적자생존의 법칙 위에서 빚어졌다. 사람들은 ’정의‘를 모두가 동등하게 실질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누린다는 측면이 아니라, 노력의 크기에 따라 각자 도달하는 지점이 불가피하게 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과가 불평등해도 노력한 만큼이니 공정하다 여겼다.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형태를 갖춘 근대 공교육은 ‘공정한 불평등’ 논리를 부단히 가르쳤다. 계급과 상관없이 누구나 학교를 다니니 기회는 평등해졌다고 포장했다. 그러니 시험 결과에 승복하라고 주술을 건다. “결과로 증명하라!”라는 말이 부유하는 세상에선, 결과를 의심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조국 사태는 이 판이 깨진 게 아니다. 이 판의 정밀함, 견고함, 그리고 무서운 폭력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일이었다.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작용 정도가 아니라, 매우 정교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매일 속고 있다.(258-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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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1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1-20 19: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 열반인님의 열반적인 리뷰를 많이 볼 수 있겠네요~!! 전 사회학은 너무 어려워서 소설만 읽기로 했습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2-11-21 19:31   좋아요 1 | URL
열반적인 리뷰는 뭘까 고민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ㅋㅋㅋ 저도 사회학 책은 주로 청소년용을 많이 읽었습니다 ㅋㅋㅋ

Yeagene 2022-11-20 2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리뷰 오랜만이네요 ㅎㅎ전 어렸을 땐 사회학책도 잘 찾아 읽었는데 지금은 안읽습니다;;;;어쩌다보니 그리 됐네요;;;;

반유행열반인 2022-11-21 19:32   좋아요 1 | URL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끌리는 거만 읽어도 남은 삶이 모자란 기분인데…저는 자꾸 가장 하고 싶은 것보다 후순위의 것들을 하느라 에둘러 가는 기분입니다…그리 됐네요;;; ㅠㅠ ㅋㅋㅋㅋ
 
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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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8 박찬욱, 정서경, 최인.

그날 공부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 시험이 끝나면, 박찬욱이랑, 데이빗 핀처 전작을 다시 다 봐버려야겠다. 잠시 쉬는 틈에 갑자기 파이트 클럽의 이런저런 장면들이 떠오르곤 했다. 스무 살 언저리에 정말 좋아하던 영화라 새내기 때 대학 국어 수업 발표 시간에 그 영화에 대한 발표를 했었던 기억도 났다. 나는 다시 열아홉, 스물을 살고 싶은 것일까. 어두컴컴한 집구석에서 달아나 넓은 세상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면서 내가 갈구한 것은 아마도 사랑이었다. 그렇지만 스무 살 내내 많은 연애 시도가 실패했고 나는 많이 외로웠다.
늦게 시작한 공부에 짓눌려 살고 힘들긴 했지만, 평안한 서른아홉을 보냈다. 마흔도 그럴 것이다. 어떤 날들보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걸 느낀다. 다만 그 사랑이 무색하게도 나 스스로가 기대만큼 잘하지 못하는 나를 많이 미워하고 많이 울렸다. 내게 더 잘해야 한다고, 못해서 밉다고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도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이제 술주정뱅이 아버지도, 내 애정과 관심을 거절하는 다른 사람도 아닌 나 하나였다.

수능 전날 수험표를 받으러 간 학교 앞에서 같은 과를 나오고 우연히도 같은 교육청에 발령받아 뭔 일만 있으면 신기하게 마주치곤 하던 친구 선생을 또 만났다. 갑자기 몰려든 엔수생 무리와 엉킨 자동차들 사이에서 교통정리랑 질서 요원을 하고 있었다. ㅋㅋㅋ 나는 반가운 마음에 엔수생들이 길게 늘어선 줄 뒤에 붙으면서 어이, 00(친구이름), 이 학교로 옮겼어? 했고 뒤늦게 나를 알아본 친구는 어, 니가 여기 왜, 뭐야 의대라도 가게?! 하면서 큰 눈이 더 휘둥그레지게 놀랐다. 아니, 약대 갈래다가…망했어. 사실 감독 안 갈라고ㅋㅋㅋ 그런데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내년에 또 만나자. 이 학교는 교육청 옆에 붙어 있어서 수험표 배부 업무를 맡는 대신 감독을 빠지는 은혜 받은 학교였고, 내년에도 높은 확률로 얘는 여기서 또 이러고 있고 나 역시 여기에 또 줄을 설 예정이었다. 하긴 우리 대학 갈 때 수학 점수 안 들어갔잖아. 그 점을 간과했다…그러고 좀 웃다가 얘는 계속 차량 정리를 해야 돼서 나는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떴다.

일단 다시 집 앞으로 돌아와서 시계를 보고, 시험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심 이 버스가 가는 중간에 있는 여고 떨어지면 참 좋겠네, 했는데, 역시 여고 앞까지는 이십분이면 닿았는데, 아쉽네. 차는 고개를 넘어 서울대 정문에서 턴을 하고 종점인 회차 지점에 멈췄다. 차에서 내리니 늦은 가을을 맞은 관악산 자락과 새로 단장한 샤짜 정문이 보였다. 여러모로 복잡한 공간이었다. 내가 시험을 볼 학교는 서울대에서 가장 가까운 공학 고등학교였고, 그 바로 건너편에 직전까지 근무하던 중학교가 있었다. 끝끝내 수학 과학 점수를 엔간한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나는 시험 여드레쯤 남기고 이제 더는 애쓰지 말자, 하고 무너져서 몇 날 며칠 울기만 하고 공부를 거의 손에 잡지 못했었다. 학교 앞에서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을 보다, 다시 학교 안쪽을 멀거니 보며 생각했다. 나는 저 깊은 구석구석에 뭐가 있는지 알아. 너무 오래 머물렀잖아. 저곳은커녕 서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할 점수가 나온다고 절망할 일이 아니야. 나는 저기에서 아직 나오지도 못했어. 그랬다. 나는 딱 이십 년 전에 저기에 들어갔고, 또 십 년 전에 논자시까지 다 보고 수료만 해놓고는 석사 학위를 포기해서 아직 적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걸 잊고 올 한해 인생이 다 걸린 고3처럼 대학 못 가면 뭐 큰일 나는 것처럼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친 것이다. 곁의 사람이 그게 이상하다고, 왜 진지하게 고3이냐고 그냥 편하게 놀듯이 해야지 일찍부터 열두시까지 안 되는 거 붙잡고 있는 게 스트레스 관리에 너무 안 좋아 보였어, 지금 내가 해도 최소 일 년 해도 될까 말까 한데 이십 년 가까이 문과로 산 네가 그 짧은 시간에 수학 실력이 올라오면 그건 나보다 네가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거지. (그니까 아니란 거 알겠구요…) 당연한 결과이고 또 그렇다고 일 년을 더 해도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세상에는 수학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라고 나름대로 위로의 말을 건네왔었다.
그래서 그럭저럭 남은 닷새 정도를 얼른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며 버텼다. 그리고 첫 수능에 비하면 오롯이 오줌 안 마렵게 물 안 마시고, 컨디션 관리에 치중했고, 막 시험장에 같은 학교 선생님들 오는 바람에 게다가 내 시험실에도 나랑 동갑인 동료 교사가 부감독 들어와서 그냥 웃으며 손 흔들어주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았다.
시간 부족한 적 없던 국어마저 지문 한 개를 통으로 날리고 수학은 평소 나오던 반타작보다는 몇 문제 더 풀어서 히히 기분 좋네 영어랑 과학은 준나 모르겠네… 어려서는 가채점표에 답을 모조리 적어와서 집에 돌아와 이비에스 보면서 답 맞추고 엉엉 울었었는데 이번에는 가채점표 작성은커녕 거의 모든 과목을 제시간 내에 다 풀지도 못해서 하하 내가 대체 답을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다, 하고 그냥 시험지를 다시 들여다보기 싫어서 채점은 안 하기로 했다. 수험 기간 내내 강의 딱 세 시간 들었던 한국사는 확실히 1등급이겠다. (특: 예전과 다르게 엄청 쉬움. 막 작년에는 세종대왕 이런 거 나와서 감독 갔다 와서 재미로 풀어봤는데 한 개 틀리고…올해는 그거보다는 덜 쉽지만 그래도 쉬웠다.) 내 점수는 딱 올해 들인 시간에 반비례해서 나올 예정이다. 12월에 성적표 나오고 기분 좋으면 공개하는 걸로…ㅋㅋㅋㅋ

와 뭔 독후감 쓰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회고담이 되었다…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첫 수능 때 줄줄 울던 것과 달리 그냥 끝났다는 사실만 너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았다. 시험 이틀 전에 저렴이 초밥집에 예약해둔 초밥을 휴가 낸 곁의 사람이 찾아와서 온 가족 모여 앉아 초밥을 맛있게 냠냠 먹었다. 다른 변고는 없는 시험이었는데 남고생 뭔 키 180 짜리가 앉던 자리인지 책상이랑 의자가 너무너무 높아서 종일 여덟 시간 가까이 발이 동동 뜬 채 높은 책상에 팔꿈치 얹고 고개 수그리고 문제를 풀었더니 저녁에 목이랑 위팔이랑 어깨랑 하여간에 상체 근육이 너무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웠다. 타이레놀 먹고 곁의 사람이 마사지해준 덕에 조금 풀려서 겨우 잠들긴 했는데 아직 목덜미가 많이 아프다. 여기서 나의 노화를 절감했다. ㅋㅋㅋㅋ겨우 하루 시험 보는 동안에도 작살이 나고 마는 나의 모가지여…

벌써부터 내년도 개념 강의를 듣겠다고 난리 칠까 두려운가 옆에서는 당분간 좀 쉬라고 미리부터 걱정하는 말을 해서 나도 뭘 하고 놀까 곰곰 생각했다. 박찬욱 영화를 보고 싶은데 음 어느 하드에 영화를 쟁여놨더라…브이오디 이런 거 사서 보면 되나 생각만 하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아직 헤어질 결심 상영하는 극장이 있길래 월요일에 또 보러 가자 하고 예매해놨다.
그러고는 그냥 책을 보자…모가지 아프긴 한데 나에게는 튼튼한 엘리베이터 독서대가 있잖아… 시험 끝나면 보겠다고 김연수랑 이미상 신작도 미리 모셔두고 그거 말고도 필립 로스 오찬호 이 책 저 책 예비 후보가 많았지만, 뭔가 그냥 통속적이고 쉬운 거 보고 싶어, 이미 아는 이야기, 하다가 책꽂이에 오래 묵혀 있던 박쥐를 꺼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irst 였던가…아 ㅋㅋㅋ피에 굶주린 흡혈귀마냥 나는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그래도 매 장면이 생생한 서사를 한 번 더 복습하듯 순식간에 읽었다. 박쥐의 소설 버전은 박찬욱과 정서경이 각본 써둔 것을 최인이라는 소설가에게 의뢰하여 소설화한 것이라 했다. 인물 내면 묘사를 직접 자세히 해주니까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번에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강우가 상현도 태주도 그렇게 좋아하는데 죽이지 말고 셋이 사이좋게 살면 안 됐니…테레즈 라캥도 그렇고 뉴스에 나오던 범죄도 그렇고 누가 자꾸 물에 빠뜨리래… 테레즈 라캥 책과 영화도 본지 아주 오래되었다. 그냥 슬픈 일들이다. 사랑이 식는 순간 그래서 서로 미워하다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걸 지켜보는 일은… 영원한 젊음과 생명과 활기를 얻자고 남들을 죽이는 삶을 기꺼워할 순 없겠다. 다들 그냥 조금 덜 불행하고 더 행복하고 따뜻한 온기에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도 물에 빠져 죽고 피 빨려죽고 햇볕에 타죽고 바닷가 구덩이 속에 가라앉아 죽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끝까지 사랑받고 싶었을 거야…

어쨌거나 가벼운 공부 이유기, 독서 회복기(?)로 하루를 보내고, 내일도 또 놀아야지, 공부 안 해도 되지, 하는 생각만으로도 신이 난다. 헤헤. 뭘 잘했다고 신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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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1-18 2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능시험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결과 나올거라 확신합니다. 찍은것도 왠지 많이 맞으셨을거 같아요 ^^

반유행열반인 2022-11-20 07:46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확신은 넣어두셨다 내년에 꺼내주세요 ㅋㅋㅋ찍기 인생으로 운좋게 살아왔는데 전생에 그 운 다 쓴 것 같긴 해요.ㅎㅎㅎ

scott 2022-11-18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뒤늦은 N수생 공부 탐험기 연재 시작 하면 대박 조짐이 ㅎㅎㅎ

코로나 시국에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건강하게 무사히 시험 마쳤으니
대박의 결과를 ㅎㅎㅎ

지난 시절 수능 끝나자 마자 극장으로 달려 갔지만

이제 집에서 편안히 채널만 돌리면 ㅎㅎ

열반이님 북플에서
끝까지 사랑받고 계십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2-11-20 07:47   좋아요 1 | URL
늘 환대해주시는 scott님 감사합니다. 끝까지 사랑해주신다는 다짐으로 듣겠습니다. ㅋㅋㅋ 대박은 첫 수능 보는 어린이들에게 돌리고 저는 소박한 일상을 당분간 즐기려구요.

햇살과함께 2022-11-18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수능 끝나자마자 서재 달려오신 ㅎㅎ
알라딘 찐사랑!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좋은 결과 있으실겁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1-20 07:48   좋아요 2 | URL
햇살과함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일독 일독후감 이게 원칙(?)이 된 독후가미스트(?)라 시험 끝나니 저절로 발닿고 보니 알라딘이네요.

프레이야 2022-11-19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님 수능 보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무조건 좀 쉬고 노는 걸로요 ^^

반유행열반인 2022-11-20 07:49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 감사합니다. 노는 게 제일 좋네요. 이렇게 좋은 걸 왜 못하고…

라로 2022-11-19 0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능끝났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ㅠㅠ) 다 잘되고 있지? 이 지랄을!! ㅠㅠ 암튼 결과는 미리 예측할 수 없잖아요!! 잘 하셨을 거라고 믿어요!!! 결과 나오면 뭐든 꼭 알려주셈!! 제 자신의 확신을 위해서. 반열샘위해서 많이 기도하였습니다. 끝까지 두고 보자요!!!👍👍👍

반유행열반인 2022-11-20 07:51   좋아요 1 | URL
다정한 영어판 지랄이라 그것마저 정말 감사합니다 라로님 ㅋㅋㅋ 저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 덕에 반전과 함께 지금껏 살았는데요. 이번 시험 만큼 거치기 전에도 후에도 명료하게 아닌 게 없더라구요. 미리 슬퍼하고 지금은 그냥 편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라로님 먼저 잘 되시고 기 나눠 주세요 ㅋㅋㅋㅋ

파이버 2022-11-20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요즘 수능 시간표를 보니 하루 종일 시험을 보더라구요. 저는 다시는 그렇게 오래 책상에 앉아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시험 무사히 끝마치신 열반인님 대단하세요. 모쪼록 결과 나오시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잊고 즐겁게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1-20 07:53   좋아요 2 | URL
파이버님 감사합니다! 저는 첫 수능 문과 시절에는 제2외국어도 보아서 요즘엔 과목도 줄고 다섯시 안 되서 보내주더라구요. 그래도 여덟 아홉 시간 시험장 있는 건 근육이 못 버텨주네요…결과 나온 후에도 결과에 상관없이 앞으로는 파이버님 기원 덕에 조금 더 즐겁게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11-20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그동안 공부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당분간 하고 싶었던 것, 많이 누리시고
결과 나오는대로 원서 넣으면 됩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11-20 07:56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정말 감사합니다!! 원서는 제가 한 분야만 목표로 하는 거라 이미 불합격권이 자명해서 내년에는 꼭 넣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 읻다 시 선집
폴 발레리 외 지음, 윤유나 엮음, 김진경 외 옮김 / 읻다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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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여, 가만히 있을 때에는 가라앉으며 애쓸 때는 휩쓸려 갑니다. 이와 같이, 벗이여, 가만히 있지도 않아 애쓰지도 않아 폭류를 건넜습니다. (‘폭류경’ 중)
가까이 닿는 책 한 권 간만에 펴보니
온갖 빛나는 말들이 어디 가지 않고 서가에 가지런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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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19 12: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건강히😊
무사히😊
마지막까지
힘내여🤗

반유행열반인 2022-10-20 22:08   좋아요 1 | URL
scott 님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10-19 1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 수능이 얼마님지 않았습니다 만점 기원~!!

scott 2022-10-19 13:39   좋아요 3 | URL
만점 기원 저도 🖑

반유행열반인 2022-10-20 22:09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파이버 2022-10-19 13: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힘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2-10-20 22:09   좋아요 2 | URL
파이버님 감사합니다!

Yeagene 2022-10-19 1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얼마 안남았어요
마지막까지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2-10-20 22:09   좋아요 1 | URL
예진님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10-19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수능대박 기원합니다.
마지막까지 건강 유의하시고요^^

반유행열반인 2022-10-20 22:09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라로 2022-10-20 0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넘나 반가운 내 알라딘 플친 반열샘!!!! 저도 반열샘에게 자극 받아서 학교 신청하려구요. 안 붙으면 그만이고. ㅎㅎㅎㅎ 하지만 당신은 꼭 우수한 성적으로 붙을 것을 알아요!!! 끝까지 지치지 말고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2-10-20 22:09   좋아요 0 | URL
라로님 감사합니다!

2022-11-18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8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link123q34 2023-02-04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까스로 책 한 권 덮고 알라딘에 오니
온갖 빛나는 말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네요.
이런 글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열반님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진심이니까.
고생 많으셨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2-04 21:42   좋아요 1 | URL
링크님 ㅋㅋㅋㅋ링크님 후배되기 힘드네요 ㅋㅋㅋ 저는 아직은 읽기를 완전 중단은 안 하고 다시 시지프스처럼 수학 과학 국어 처음부터 시작해서 뽈뽈뽈 그러고 하루 공부 다 하고 책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ㅎㅎㅎ늘 건강하셔야 해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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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어느 아침. 일어나보니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곧 전화벨이 울리고 엄마는 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밥 잘 챙겨먹고 걱정하지 말고 있으라고 했다. 누워 있던 아빠는 엄마가 방에 들어가자 몸을 일으키며 구역질을 시작했고, 엄마는 옆의 쓰레기통을 잽싸게 가져다 대 이불을 구했고, 토사물에서 처음 맡는 쌔한 냄새가 올라왔고, 구토를 마친 아빠는 기절했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오래 의식을 잃다 깨어나서는 약을 먹었다고 했고, 그제서야 위세척을 했다는 건 내가 성인이 된 후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두꺼운 캡슐제 안에 청산가리를 채우고 삼켰는데, 할아버지 말로는 천운으로, 삼키자마자 녹거나 터지기 직전에 다시 몸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엄마가 쓰레기통을 한참 살폈지만 밖에 나온 위액과 섞여 녹은 건지 흔적조차 없었다고 했다. 음독 후유증은 없었지만 심해진 우울증 때문에 아빠는 정신과로 전원해서 한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3초만, 3초만 지체할 것을. 이후 십 몇 년 더 가정폭력과 주사에 시달린 엄마는 서러움과 울분이 폭발한 어느 날 그런 말을 입밖에 내기도 했다. 귀금속 세공사인 아빠는 우울증과 자살시도 이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온갖 화공 약품과 날카로운 연장들과 화력 좋은 버너 토치램프 같은 걸 구해 쟁일 수 있었다. 집집마다 염산이나 황산이나 청산가리 같은 건 간장 소금 후추처럼 갖추는 거 아니었어? 유년기는 그렇게 불안을 넘어 위험과 공포가 일상이었다. 벗어나기 위해 몇 번의 시험 통과와 탈출극이 있어야 했다.

그런 덕인가, 전쟁과 학살과 패배 앞의 집단자살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시안화합물이 친숙하게 읽혔다. 전범의 삶의 말미와 도덕감 결여된 과학자의 불행한 개인사 같은 것에 몰입하게 만드는 과거사는 싫다. 화려한 장신구를 볼 때마다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새빨갛고 새파란 보석을 연마하고 반짝거리는 금은의 광을 살리기 위한 약품 몇 방울이 동네 전체를 몰살할 만큼 유독하고, 연장들은 쉽게 살갗을 베거나 뚫고, 금을 무르게 하려면 유기체 쯤은 쉽사리 태워버릴 수 있는 온도까지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먼저 떠올리는 일은 진저리가 난다.

삶을 그때보다는, 그때 내 나이쯤이던 내 부모보다는 낫게 하겠답시고 뒤늦게 수학공부도 과학공부도 시작했다. 그렇지만 겨우 삼차함수 그래프의 미분과 비율 관계 앞에서 주저 앉아 엉엉 울며 생각했다. 나는 아인슈타인이나 슈바르츠실트가 끄적여 놓고 흐뭇해하거나 절망했던 방정식의 어느 한 줄에도 죽을 때까지 다가가지 못하겠구나. 양자 역학에 대한 교양서는 그저 비유로 가득찬 시집이나 신화집, 경전 같은 걸 읽듯 그저 어떤 느낌만 받거나 받지 못하고 이해나 깨달음의 영역에는 발가락 하나 디밀지 못하겠구나.

뭐 그래도, 숫자와 기호와 공식의 세계와 끝내 화해하지도 그곳에 접근하지도 못한다해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산문으로 어슴푸레한 윤곽이나마 구경시켜주는 책들이 있어 다행이다. 무슨 말인지 완전하게는 모르더라도 내내 빠져 읽을 수 있었던 라바투트의 소설이 그랬고, 평생을 바쳐 알아낸 것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저술된 과학책들이 또 그렇다. 그래서 언제 다 읽을지도 모르면서 다윈과 월리스와 칼 세이건과 제임스 글릭과 올리버 색스 등등 수많은 책들을 자꾸만 쟁인다. 이 책들 다 읽을 때까지는 독에 담근 사과든 캡슐이든 삼킬 생각은 말아야지. 매끈한 곡선과 수식들이 자꾸만 눈에서 머리에서 튕겨나가도 오래 붙잡고 아는 데까지,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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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8-11 23: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수능 그날까지
아프지 말귀😸
울지 말귀😹

반유행열반인 2022-08-16 21:32   좋아요 1 | URL
맨날 수학 풀다 울어요 ㅋㅋㅋscott님도 늘 건강하시길 감사합니다!!!!

파이버 2022-08-11 23: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제 수능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요사이 내내 흐린 하늘만 계속되지만 그래도 늘 건강하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과학책, 수학책 이해도 못하면서 쟁인거 엄청 많습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08-16 21:32   좋아요 2 | URL
얼른 공부 마치고 쟁인 책들 하나하나 읽고 싶어요 ㅎㅎㅎㅎ 힘내라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파이버님 오늘 하늘은 맑아서 좋았어요 ㅎㅎㅎ

새파랑 2022-08-12 07: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아픈 기억이 있으시군요 ㅜㅜ
그래도 마지막까지 열공하셔서 만족하실만한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08-16 21:33   좋아요 2 | URL
아픈 기억보다도 청산가리 먹고도 안 죽은 사람이 있어! 하는 서프라이즈 나올 거 같은 느낌이었는데 너무 어둡게 썼나보네요 ㅋㅋㅋㅋ 올해 만족 못 하면 소인에게는 내년이 있사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2-08-12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덥고 습도도 높아요.
이 시기가 공부하는데 젤 힘이 들 것 같아요.
건강 잘 챙기시며 열공하시기 바래요^^
책 쟁이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가 될 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2-08-16 21:34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그 사이 귀뚜라미도 울고 최고기온 앞자리도 삼이 안 넘게 되었어요. 그런 날이 오네요 ㅎㅎㅎ 저 올해는 근래 들어 정말 책 많이 안 산 해 될 거 같아요. 역시 사는 만큼 읽는 거 같습니다 ㅎㅎㅎ응원 감사합니다.

Yeagene 2022-08-12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제 친구들이 그랬거든요.제가 지켜봐서 잘 압니다.
열반인님 마지막까지 힘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2-08-16 21:36   좋아요 2 | URL
예진님이 지켜보신 결과라면 분명 믿을 만 할 텐데!!!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리고 늦더라도 안 멈추고 천천히 가 볼게요. (그런데 이과 머리는 따로 있는 게 맞나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수학 너무 힘들다ㅠㅠ) 예진님도 곰탱이도 남은 여름 덜 덥게 잘 지내시길!!!!

link123q34 2022-08-16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엉엉에서 뭔가 버튼이 콱 눌리네요. 안은 세상 멈춘듯 조용히 서늘하고 밖은 맴맴 무덥고. 저도 내적으로 엉엉 울다가 한번 눈물이 콱 터져서 에라 모르겠다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이게 왜 안되나 황당하고 불쾌해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원래 다 그런 거라고 하면 그런줄은 아는데 그게 왜 나한테도 그런지 화를 내고.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들은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내 안까지 닿지 못하고 일정거리에서 프스스 흩어져버리기만 했었어요. 따뜻한 말들을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힘든 게 줄어들지 않지만 더 수월하게 그 시간을 넘어올 수 있었을 텐데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엉엉 울고나니 속시원했고, 울었던 자리를 시작점으로 삼을 수 있었어요. 눈물코 휴지로 팽팽 하고 뱉으면 되지~ 운동화끈 다시 꽉 매고 나서면 되지~ 결연하게 아이스커피타서 딱 앉으면 되지~ 밥 꼭꼭 씹어먹으면 되지~ 우선 이거 한 문제 풀어보지~ 하고. 나를 보듬고 응원하는 글로 가끔 소식 들을 수 있어서 행운으로 생각해요. 파이팅!!

반유행열반인 2022-08-16 21:38   좋아요 2 | URL
와 ㅋㅋㅋㅋ 링크님 저의 요즘이랑 앞에 몇 줄 싱크로율 딱 맞아요. 저는 엉엉 우는 데 까지는 같은데 시원해지지 않고 자꾸 울기만 해요 ㅋㅋㅋ링크님 만큼 조금 더 씩씩해졌으면 좋겠는데!!!! 그냥 느리게 천천히 한 문제씩 하고 있습니다. (겨우 안 멈추는 수준에서요. ㅋㅋㅋ) 파이팅 감사합니다. 얼른 자격증 들고(?) 동종업자(?)되어 찾아뵙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scott 2022-09-14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열공 하시느라 하루에 몇시간도 못 주무실 것 같습니다.

두달 남은 시간동안 열!공
응원합니다!

٩(˘◊˘)۶

반유행열반인 2022-09-28 21:17   좋아요 1 | URL
scott님 늘 건강히 저 대신 좋은 책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계셔요!!! 언젠간(?) 저도 다시 독후감을…한 권도 안 읽는 9월 곧 지나가겠네요 ㅠㅠ ㅋㅋㅋㅋ

라로 2022-09-28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빠의 해방일지> 읽다가 반열샘 생각났어요!! 물론 그 전에도 생각했지만 그 책 읽으며 더욱요. 공부 잘 되시나요?? 너무 열심히 하고 계시는 샘이 떠오릅니다. 열심히 하셔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길 멀리서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

반유행열반인 2022-09-28 21:16   좋아요 0 | URL
라로님 응원 감사해요. 라로님 이룬대로 저도 열심히 따라가야 하는데 ㅋㅋ 길게 보고 꾸준히 가려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