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들 -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오찬호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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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오찬호.

영화를 소설화한 책 한 권으로 이유식을 마친 내가 시험 다음 다음날도 책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욕심을 내어 전자도서관에서 홍승은의 말에 관한 에세이, 김영하의 신작 소설, 바다에 관한 도감을 동시에 빌리고, 집에 갖춘 김연수의 신작 소설, 그리고 오찬호의 사회학 책도 돌아가며 읽는다. 수학에 치중했다고는 해도 국어 과학 영어 모두 방치할 수는 없어서 이 과목 저 과목 돌아가며 하던 버릇이 독서에도 옮았나 보다. 아니 전부터 그랬던가. 커피는 삼일 연속 캡슐 하나 안 먹고 미리 사 둔 원두로 드립 커피만 먹는다. 최대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다. ㅋㅋㅋㅋ

사회학 책을 읽을 때가 고향에 돌아온 것 마냥 편안하다. 소설이 가장 재미있고 좋지만 읽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결심까지 필요하다. 너무 사랑하면 너무 경건해지기도 하나 보다. 이야기에 깊이 빠져 같이 괴롭고 같이 슬플까 봐 주저한다. 다행히도 이제 겨우 두 편 읽은 김연수의 단편들은 이전에 나 잘 쓰지 메롱 메롱, 힘주던 젊은 시절 단편들보다는 꽤나 조심스럽게 그냥 살아보지요, 해서 좋았다. 홍승은은 글에 관한 글이 정말 좋았어서 말에 관해서는 어떨까, 하고 읽기 시작하다가 처음에는 웬일인지 버겁다가 그래도 역시 좋네, 했다. 나는 말로 먹고살다 보니 목에 관한 병을 얻고 수술까지 해서, 그리고 말의 무게와 책임도 너무 무겁고 힘이 들어서 자꾸 도망갈 궁리만 하는데 끝없이 글과 말에 관해 특히 어눌함과 조리 없음을 탓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래도 용기 내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작가의 마음이 좋았다.

그래도 제일 빨리 읽은 건 역시나 사회에 관한 책…나는 사회로 15년 가까이 밥벌이를 했고 사회 과목을 가장 좋아하고 제일 잘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왠지 수능 볼 때 사탐 보면 반칙 같아서 쏙 빼고 과탐 선택자가 되었지…그런데 이번에 정답률이 너무 낮아 논란이 된 사회문화 문항을 보고는 음…사회 안 보길 잘 했다…진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했다. ㅋㅋㅋㅋㅋ

철모르고 그냥 무슨 책이든, 무슨 수단이든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교과서 몇 권이랑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문제집, 이비에스 강좌 몇 개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입시에 관해 제법 정보를 수집하고 사교육에 관한 이런저런 풍문을 주워 모은 한 친구는 조심스레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신만만했나 보다 초반에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뭐 남들 어떻게 하는 걸 다 신경 쓰냐…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그러면서 하루 몇 시간씩 혼자 붙들고 끙끙 앓는 몇 달이 지났다.

그러고 나서 여름에 평가원이 시행하는 첫 모의고사를 한 번 보고 나서 나는 공황상태에 빠져 엉엉 울면서 주식만 샀지 쳐다도 안 봤던 인터넷 사교육 기관의 프리 패스를 끊고 내가 제일 싫어하던 강사의 가장 유명한 수학 강좌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 강사는 매우 꼼꼼하고 영리하고 준비를 많이 하고 집요한 사람이었지만, 시험에 관한 총평에서 학생들에게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싼다, 지랄 떨지 마시라고요 내가 너보다 훨씬 똑똑하고 하여간에 내가 옳아, 이걸 몇 번이나 설명해도 너는 내 머리는 돌이요 깨보시오 나는 말하는 감자요 이러고 있다는 둥 중간중간 뜨악할 말들로 모욕감을 선사했다. ㅋㅋㅋㅋㅋ 아니 뭔 강사들이 대체 왜 수학 강사가 국어 강사나 사회 강사한테 댓글이나 단톡방으로 모욕하는 말을 날리고 댓글 공작을 펼치고 이게 한두 놈도 아니고 다른 과목들도 강의 듣다 문득 강사에 관해 궁금해서 검색해 보면 댓글로 명예훼손해서 징역형에 집행유예 선고받은 경력이 떡하니 뜨곤 해서 자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죄다 전과자 새끼들이나 개싸가지들한테 배우고 있구나… 내 자질을 의심하며 애정도 열정도 없는 내가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하고 몇 년을 고민하다 도망칠 준비를 하는 나의 멘탈은 무엇인가… 아 참 난 저렇게 몇십몇백억 못 버니까 따콩 ㅋㅋㅋ 하여간에 그럼에도 예전에는 대치동에 가서 새벽부터 아님 전날 밤부터 줄을 서야 겨우 수강신청 가능하던 강사들 강의를 집이나 스터디 카페에 앉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니 기회가 많이 열렸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테스트를 거쳐 선발되어야 입학이 가능한 재수종합 기숙 학원에 머무는 데는 연간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재수 학원에서 자체 발간하는 교재들, 또는 상위권 돈 많은 강남 아이들이 선호한다는 문제집들은 서점에서 접하는 문제집들보다 문제 수도 적고 얄팍했지만 가격은 훨씬 비쌌고, 중고 시장에서도 제법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인터넷 강좌를 수강해야만 살 수 있는 문제집들도 비싸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나마도 패스를 끊지 않은 아이들은 살 수 없으니 중고 거래를 이용하고, 패스 이용자들은 그걸 이용해 교재를 여러 권 구입해 자기도 쓰고 남에게도 팔아 이득을 누리는 짓을 하니까 인터넷 교육기관들은 일 인당 교재 구매 권수를 제한하기까지 했다.
상위권 학생들이 모인다는 커뮤니티에서는 피뎁충(…)을 두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싼 교재값에 반발하는 아이들이 자기가 구한 유명 강사 교재나 비싼 사설 문제집을 스캔해서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하는데, 그걸 두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고 욕하는 목소리와, 그래도 누구나 문제집 걱정 없이 돈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는 성찰(?)의 목소리까지 젊은 친구들 나름대로 입시판의 계층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오히려 판 안에 있다 보니 내 앞의 컨베이어 벨트를 거친 가련한 친구들이 그 끝에서 어떤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지 정말이지 너무너무도 몰랐었다. 굳이 그 벨트 위에 올라 끄트머리에 뭐가 있나, 한 해를 그렇게 보내고 보니, 정말이지 참담했다. 내 아이들이 몇 년 후에 이런 힘들고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하고 이걸로 좋은 성취를 얻어야 자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할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진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다. 나는 겨우 몇 달로도 이렇게 와르르 몇 번을 무너졌는데 말야.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적어도 나 고3 때보다는 몇 배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말야. 세상이, 시스템이 여전한 듯, 또 많이 변했다. 더 지독하게. 더 치밀하고 복잡하게.

눈 감고 귀 막고 비뚤어진 세상에 관해 모른 채 살고 싶지만,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죽음들, 그리고 시험 준비하는 동안에도 뉴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또 다른 죽음들, 이전과 형태가 다른 유례없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선상의 구조적 죽음들을 내내 마주해야 했다. 사람들은 가장 편안해야 할 내 집안에서, 즐거워야 할 축제의 거리에서, 빠져 죽었다. 살기 위해 하는 노동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맹세문 앞에 자부심을 느끼기보다 의구심과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억울하고 힘들고 그래서 서로를 탓하고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혐오하고 그걸 표출하는 데도 망설임이 없어졌다.
그래서 한없이 슬프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래서 어쩌라고,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알고 듣고 찾아보고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아야 한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는 아니라고 안도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저게 나일 수도 있었다고 끝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그래서, 계속 수많은 이면들을 들추고 생각할 수 있어서 사회를 좋아했었는데. 수학도 과학도 세상과 담쌓는 수단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기초적인 입시 공부할 때에야 무관해 보이겠지만 그것도 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람에게 도움이 되니까 계속 존재하는 것일 테니… 그치만 국어도 수학도 사회도 과학도 뭐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슬픔…얌전히 책 읽고 독후감 쓰는 것 말고는 꾸준한 게 없어 또 슬픔…



+밑줄긋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이 허락한 만큼만, 주어진 팔자대로만 살아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평생 비슷한 집단의 사람들만 마주 보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 한 단계 상승할 때마다 삶이 달라지리라는 기대를 신분이나 지위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노소 꿈꾸게 한 체제는 인류 역사상 자본주의가 처음이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건방진 포부는 그동안 금기였지만, 자본주의는 ‘희망’을 개인에게 선사했다.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사람들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겠다는 각오로 버틴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란 기대로 고통을 참는다. 그 결과 불평등을 전제한 자본주의는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진 개인들 덕분에 맹렬히 전진했다.
우리는 일곱 번 넘어져서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껐다. 우리의 ’정의‘ 관념은 이런 적자생존의 법칙 위에서 빚어졌다. 사람들은 ’정의‘를 모두가 동등하게 실질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누린다는 측면이 아니라, 노력의 크기에 따라 각자 도달하는 지점이 불가피하게 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과가 불평등해도 노력한 만큼이니 공정하다 여겼다.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형태를 갖춘 근대 공교육은 ‘공정한 불평등’ 논리를 부단히 가르쳤다. 계급과 상관없이 누구나 학교를 다니니 기회는 평등해졌다고 포장했다. 그러니 시험 결과에 승복하라고 주술을 건다. “결과로 증명하라!”라는 말이 부유하는 세상에선, 결과를 의심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조국 사태는 이 판이 깨진 게 아니다. 이 판의 정밀함, 견고함, 그리고 무서운 폭력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일이었다.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작용 정도가 아니라, 매우 정교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매일 속고 있다.(258-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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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1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1-20 19: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 열반인님의 열반적인 리뷰를 많이 볼 수 있겠네요~!! 전 사회학은 너무 어려워서 소설만 읽기로 했습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2-11-21 19:31   좋아요 1 | URL
열반적인 리뷰는 뭘까 고민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ㅋㅋㅋ 저도 사회학 책은 주로 청소년용을 많이 읽었습니다 ㅋㅋㅋ

Yeagene 2022-11-20 2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리뷰 오랜만이네요 ㅎㅎ전 어렸을 땐 사회학책도 잘 찾아 읽었는데 지금은 안읽습니다;;;;어쩌다보니 그리 됐네요;;;;

반유행열반인 2022-11-21 19:32   좋아요 1 | URL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끌리는 거만 읽어도 남은 삶이 모자란 기분인데…저는 자꾸 가장 하고 싶은 것보다 후순위의 것들을 하느라 에둘러 가는 기분입니다…그리 됐네요;;; ㅠ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