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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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1 김영하.

낮에는 신사동의 극장에 다녀왔다. 넉 달 전 같은 영화를 본 이후 처음인 극장 나들이였다. 탕웨이는 다시 봐도 예쁘다. 예쁘게 늙는 건 부러운 일이다. 처음 헤어질 결심을 볼 때는 이것은 아이폰을 위한 영화인가…싶었다. 오늘 같이 영화를 본 엄마도 휴대전화를 매개로 전개되는 부분은 많이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휴대전화의 등장은 많은 서사 창작자들에게는 난점이지 싶었다. 뭔가 서로 단절되고 그래서 오해도 쌓이고 갈등도 심화되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너무도 서로와 쉽게 연결되는 시대를 산다. 반대로 배터리가 나가거나 전화기를 두고 오거나 고장이 나거나 화면이 깨지거나 하여간에 인연을 엇갈리게 하는 방식이 너무 뻔하고 빈곤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비루한 이야기가 될까 걱정하면서도 또 그게 그나마 개연성 있는 전개일 때도 많겠다. 박찬욱이 그런 점을 나름 고민하다가 아예 대놓고 휴대전화로 메시지도 하고 녹음도 하고 스마트워치도 동원하고 폰도 폰1, 2, 3 대포폰 바꿔치기 한 폰 새로 산 폰 등등…갈 데까지 해보자 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일찌감치 아이폰만 이용해 영화를 찍는 시도도 했었으니 뭐…

그렇지만 지는 해와 밀려드는 조수와 파도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찍으려면 바다에 가야만 한다. 폰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폰으로 바다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사랑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을 수는 있겠네… 넌 그걸로 충분하니?

집에 오니 문제집을 팔아 생긴 적립금으로 주문한 김금희 신작 소설책이 와 있었다. 아니 내년에도 공부하신다면서…왠지 안 푼 문제집 중 꼴 보기 싫은 것들을 내놓았더니 금세 주문이 밀려들어 수능 전 사흘 내내 매일 택배를 부치러 편의점에 다녀왔다. 5만 원 좀 안 되는 돈이 생겼다. ㅋㅋㅋ(정가는 막 권당 3만 원인 문제집을 세 권에 3만 원도 안 되게 팔았다지…)
문득 알라딘 매장 가서 김애란 산문집 팔아 김금희 소설을 사들고 오던 날이 생각났다. 그것이 나와 금희 언니의 시작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최강희가 양희로 나오는 티비문학관 드라마도 봤지… 거기는 서울역 고가도로에 만든 도보 공원이 나오지… 그때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돼지처럼 막 종이책 두 권 전자책 세 권 그리고 또 대기타는 종이책들 옆에 하나씩 꽂는 게 늘어나고 문득 이런 날들 생각보다 길지 않겠다…마냥 책만 보라면 보겠는데 다음 달이 되면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고 조급해졌다. 어느 것을 볼까요, 하다가 빌린 김영하 소설을 마저 읽기로 했다.

김영하가 최애 작가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가 낸 소설은 빛의 제국, 에세이는 보다 시리즈 두 권 빼고는 다 봤더라… 관성처럼 올해 신작 나온 게 있길래 또 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로봇, 이런 게 또다시 등장해서 그간 보았던 비슷한 소재들을 떠올려 보았다. 윤이형의 대니, 레스터 델 레이의 헬렌 올로이, 카렐 차페크의 로봇, 구병모의 한 스푼의 시간,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소설이 아니라도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 채피,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는 서사는 차고 넘쳤다. 그래서 전혀 정보 없이 펼친 소설에서 인공 지능 운운하니까 저절로 또야…하고 말았다. 화자나 그 주변 인물들이 초반에 어린 나이로 설정되어 그런가 캐릭터가 많이 약하고 특색 없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게 의도한 건지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 후반부는 채피 같기도 하고 왠지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생각났다. 제목을 쓰고 보니 이 영화도 다시 보고 싶다. 전 부인이랑 애들한테는 참 개새끼인데 영화로 보는 빵발이는 참 좋아했다…일단 파이트클럽 먼저…세븐은 참자…곱고 예쁜 거만 보기로…(파이트클럽이 곱냐…)

선택 과목으로 지구과학을 고르자 지구의 과거와 우주를 동시에 배우게 되었다. 이 우주에 우리가 없던 시간은 참 까마득하게 길었고, 우리가 없어진 이후로도 그럴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별에서 왔어.(아니야 금희언니가 페퍼로니에서 왔대) 하고 예쁘게 생각하려 해도, 그냥 우리는 먼지야 먼지, 잠시 뭉쳐 있다 다시 흩어질 거야, 하면 허무하기도 한데. 소설 속 선이는 이름처럼 불교 느낌 나는 우주철학을 설파하며 이상은 언니처럼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하고 있었다. 선이 철이 민이 달마 김영하가 이번에는 이름 참 구수하게 지었다. 오히려 고양이 이름이 막 칸트 데카르트 갈릴레오 그랬다. 이름 불릴 수 있는 존재로 잠시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온통 나를 죽이려는 우주 안에서 버티고 살아 있는 나한테, 버티도록 돕는 주변 이들에게 감사해야겠다.

같이 늙어가는 소설가들에 대해 생각했다. 다들 필립로스처럼 노년에 더 뜨겁고 치열하게 펑 터지는 걸 쓰기는 쉽지 않겠지만… 너무 젊을 때 빤짝이고 날카롭던 소설가들이 약간은 뭉툭하고 잔잔해지고 어느 정도는 착한 글을 쓰는 걸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드디어 안식을 얻으셨군요, 싶기도 하고, 살만하냐, 하고 삐딱해지기도 하고.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던 가수는 미처 더 나이 먹지 못하고 그 물음에 대해 먼저 살고 답해주지도 않고 일찍 죽어버려서 슬프기도 하다. 저도 안식을 얻을 때까지 살아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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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11-21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구과학 선택하셨군요...전 지구과학이랑 물리가 너무 싫어서 생물1,2화학1,2 선택했었어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11-22 07:31   좋아요 0 | URL
전 생명과학1(이제 생물을 이렇게 부른대요 언어영역 이러면 옛날 사람 취급 받음 국어영역이라고 ㅋㅋㅋ)지구과학1 했는데 생명과학은 뭔가 생명과 관계 없는 퍼즐 게임 같이 나오고 지구과학이 그나마 지리랑 비슷해서 공부할 만하더라구요. 화학은 잠깐 하다 바로 접고 나중에 하자 이러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