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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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 홍승은.

내가 좀체 안 읽던 책인 글쓰기책+에세이책=글쓰기에 관한 에세이책을 읽는다. 굴곡 많은 독서 인생. 나는 언제까지 읽는 사람으로 살까.
나는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왜 쓰냐고 물으면 답할 말이 없다. 다른 사람과 닿기 위해서라는 따뜻한 말이나, 상처의 치유,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나라는 사람, 이런 이유를 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럴 듯한데다 신기한데 나도나도! 할 만한 이유는 남들 입에서 찾지 못했다.
나는 그저 말하기 위해 말하고 쓰기 위해서 쓰는 것 같아요. 쓰기는 듣는 이 없는 곳에서 늘어놓는 긴 수다 같은 것. 심심해서요. 외로워서요. 힝힝힝.
그러다보니 마냥 읽고 쓴다고 나라는 인간이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모진 말도 아무렇게나 쓰고, 그냥 나는 이렇게나 못난이야 힝힝힝 하는 것만 확인한다.

홍승은 작가를 처음 본 건 책이 아니고 기사문이였다. 폴리아모리의 삶을 사는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 현실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사이좋게 살고 있다니!! 그러나 역시나 꿈같은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작가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란 책을 낸 것을 알았다. 그 책을 궁금해하다보니 어, 전자책 중에 작가 책 쟁여둔 거 있는 것 같은데, 하고 찾아보니 글쓰기 책이였다.

집필 노동자의 삶. 산문 또는 에세이, 칼럼이라 불리는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 나는 작가라고 하면 소설가, 시인만 알고 있었는데 에세이를 읽으면서 생각보다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일기작가도 있어…
많이 읽고, 많이 돌아보고, 또 많이 쓰고, 그러다 좌절도 하고 성장도 하는 쓰는 사람의 이야기와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서 좋았다. 이거 읽다 말고 결국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사버렸잖아…

밑줄을 어찌나 많이 쳤는지....

+밑줄 긋기

-언제나 긍정적이고 행복하기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상처와 슬픔, 절망을 말하기는 어렵다. 말하는 순간, 자신이 불행한 존재로만 보일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글은 존재를 고정하지 않는다. 상처와 고통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글을 쓰고 나면, 그다음을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입 없이 몸만 있었던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는 ‘여성은 성기가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권리 선언과도 같다. 지금도 소수자의 말하기는 계속되고 있다. 더는 상처받은 사람이 침묵하는 일이 없도록, 나도 목소리들 사이에서 말을 보탠다.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리는 사람에게 감정을 배제하고 쓰라는 말은 쉬워서 잔인하다. 문장에 감정이 뒤섞일 때는 강박적으로 거리를 두기보단 쏟아지는 글을 가만히 풀어내며 감정 역시 풀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게 나았다. 몇 번을 혼자 곱씹으면서 쓰고 나면, 그 일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겨 비로소 다르게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한가,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은 아닌가,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가 들어갔는가’와 같은 큰 줄기와 ‘주어와 동사가 연결되는가, 접속사와 조사·관용어가 과하진 않은가, 급하게 마무리 맺진 않았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쓰기의 법칙을 공유했다. 이후에는 각자가 꾸준히 쓰는 만큼 글은 늘었다.

-우리는 쉽게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 있으니 지금은 판단을 유보한 채 상대의 글에 감응하며 글을 읽자고. 내가 더 감응할 수 있도록 상대가 어떤 부분을 보충해줬으면 좋겠는지 조심스럽게 말하는 연습을 하자고. 이러한 자세는 누군가의 글과 삶을 존중하는 방식일 뿐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익히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인터넷 댓글 문화가 그렇듯 글의 흠결을 잡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고, ‘깔’거리는 어느 글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까.

-나르시시즘에 빠진 글은 위험하지만,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게는 ‘자기 뽕’보다 과한 ‘자기부정’이 글쓰기에 더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는 어릴 때부터 자기부정과 자기혐오를 배우니까.

-어떤 글은 존재의 목을 조르고, 어떤 글은 존재를 자유롭게 한다. 편견을 재생산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침묵은 욕망의 그림자였다. 나는 욕망과 함께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침묵만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그토록 쉽게 나를 배신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피해를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까. 가해자를 지목하는 방식이 아닌 구조를 짚는 글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 경험을 피해 서사의 전형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그는 데이트와 이벤트에 능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원하는 낭만적인 사랑 각본에 생각하고 글 쓰는 애인의 자리는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생각하는 ‘여자 친구’의 자질에는 불편하고 위험한 생각하기, 라는 항목은 없었다.

-‘부디 제가 쓰는 글이 오해 없이 전달되게 해주세요. 자극적인 소재로만 읽히지 않게 해주세요. 경험을 섣부르게 일반화하는 글을 안 쓰게 해주세요. 제 글이 다른 존재를 소외하지 않게 해주세요. 복잡한 현실을 뭉개지 않게 해주세요.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저에게 부지런함을 더해주세요.’ 

-‘자, 모든 건 먼지가 됩니다. 잔뜩 굳은 어깨에 힘을 푸세요. 지금 우리가 쓰는 글은 언젠가 먼지가 되고 세상에는 수많은 먼지 같은 말들이 떠다니다가 가라앉을 거예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해요. 나를 망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에요. 다른 말로, 나를 망칠 권리는 오직 나에게만 있어요. 굳이 지금 그 권리를 써야겠습니까?’

-나는 글의 고유성과 힘은 문장력 이전에 서사와 질문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내가 통과해 온 시간을 말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기에 내 이야기를 쓸 때 글은 가장 고유해진다.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다른 존재의 불행 위를 걸어가는 것이라고.

-자신으로 인해 슬픔을 가져야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기대를 건다.

-남에게는 평범한 존재가 내게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존재가 나와 맺고 있는 관계 때문이다. 평범한 존재는 나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특별해진다.

-쓰는 사람은 ‘특별하게 관계 맺는 사람’과 같은 말 아닐까. 누군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일, 관성적인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을 던지는 일, 애정 어린 관심을 갖는 일. 존재를 다각도로 볼 수 있을 때, 글에도 숨이 붙는다. 아마도 내 애정의 크기만큼.

-빈 곳을 메우는 사람. 말해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사람.

-내 표현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누구의 얼굴을 지우는지, 그 표현으로 누가 사회적 공간에서 밀려나는지 살펴야 한다.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은 기꺼이 상처받겠다는 다짐과 다르지 않다. 내 세계가 타자가 경험하는 폭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 느끼는 정직한 절망에서부터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삭제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솔직함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없고 진실함’이다. 어떤 작가가 거짓 하나 없이 진실만을 쓸 수 있겠느냐는 의문과 더불어 과연 객관적인 진실이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오래 묵혀둔 비밀이 타인의 솔직함 앞에서 비밀이 아니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어쩌면 솔직함이란 각자가 가진 경험을 불러내는 용기의 도미노가 아닐까 싶다.

-유독 마무리하기 힘든 글 앞에서는 잠깐 멈추는 게 좋다. 급하면 익숙한 길로 빠지니까. 한 가지 이정표만 기억하면 된다. 익숙한 방법으로 쉽게 닫지 말고, 차라리 마침표를 열어두자고.

-어떤 글을 읽을지에 대한 선택은 앞으로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글을 쓸 것인가로 연결되는 글의 서문과도 같다.

-글에 드러난 글쓴이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가 어떤지, 나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지 살피고 나누기. 공감하거나 감동하거나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상황이나 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나누기.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 문단, 사유 나누기.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전달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보충되면 좋을지 이야기하기. 한 명의 발언이 길어지면 정해진 시간에 모든 사람이 골고루 의견을 나누기 어려우므로 발언 시간을 조절하기.

-글이 쉽게 쓰일 때면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찾아 읽는다. 특히 마지막 〈작가의 말〉에 실린 진심을 되새긴다.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 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나쁜 어른, 나쁜 작가가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은영 작가님 며칠 전 독후감 죄송해요...잉잉잉)

-간결하되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할지 드러내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면 좋다. 인상적인 대화로 글을 시작하는 방식도 몰입에 도움이 된다. 

-“언니 괜찮아요. 우리는 어차피 다 망하는걸요.”

-“지치지 말고 힘내지 말아요.”

-나는 어쩌다가 태어났고 정신 차리니 지금의 내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놓인 시대와 상황에 반응하면서 그때그때 살아가면 되는 거였다.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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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그리기 2020-07-21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문장이 많은 책이라니, 읽지않을 수가 없겠네요. ‘사회적 약자에겐 자기 뽕보다 과한 자기부정이 글쓰기에 더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문장이,
객관화라는 이름으로 끊임 없이 자기 부정을 해온 제겐 특히 아프게 다가옵니다. 좋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 언제 다 읽을까요? 또 한권을 추가 해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07-20 22:16   좋아요 2 | URL
즐거운 독서 시간이 되시길 기원해요 ㅎㅎㅎ그런데 또 남이 좋다던 책이 의외로 안 좋기도 하고 그렇다는 ㅋㅋㅋ

syo 2020-07-24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괜찮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반유행열반인 2020-07-24 12:43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존경심마저 들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2020-07-29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님 저 좋아한다고요. 발견 하셨구나!! 흐흐 (기쁨) 뭐랄까 진짜 착한데 진짜 급진적인(?) 글들이지 않나요? 은유 작가님 한테서 글 배웠다고 어디서 읽엇는데 개인적으로는 은유작가님보다 더 잘쓰시는 거 같아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7-30 06:50   좋아요 2 | URL
오오 그랬군요 제게도 은유작가님보다 더 잘 맞는 글이었어요 래디컬한 건 저랑 비슷한데 착한 건 제 열 배 되는 글 ㅋㅋㅋ난 또 으둠을 맡을게...쟝쟝님께 몰아받는 좋아요 왜 이리 큰 기쁨인가 ㅋㅋㅋㅋ

- 2020-07-30 07:50   좋아요 2 | URL
으둠의 반반🙊흡 넘 조앜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7-30 09:37   좋아요 2 | URL
저는 (실물은 몰라도 글은 넘나) 쾌활한 쟝쟝님이 넘넘 좋아요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 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윤이형 지음 / 문학사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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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6월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한 편 빼고 나머지는 다 7월에 읽었으니 이제 이달 여섯 권째 읽은 소설이야! 만세! 쓸데 없는 숫자를 부풀린다. 마음을 부풀려야 쓸모가 없으니 기왕 쓸모 없는 것 중에 덜 해로운 걸로.

-김희선, 해변의 묘지
이전에 같은 작가의 축구공 나오는 소설을 읽고 두번째 읽었는데 전에 것보다는 나았고 음 그런데 또 기억나는 게 딱히 없다. 대탈출 중인 난민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있던 것도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디를 가도 바이러스가 기승이고 이제는 국경을 닫아 걸 의료적 명분마저 갖춘 나라들 앞에서 절망하고 있을 사람들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제는, 조국이 엉망이어도 정말, 갈 데가 없겠구나.

-장강명 -현수동 빵집 삼국지
장강명의 단편집에서 읽고 두 번째 읽었다. 삼국지까지 붙이기에는 극적이지 않다 싶은 사건이지만 또 현실적인 갈등이었다. 자영업자의 먹고사니즘 앞에 실종되는 인간성 같은 것. 집 가까운 데 맛있는 빵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마트에서 파는 크로아상 찰빵 냉동생지, 대기업이 내놓은 간편 크림파이 스콘 같은 걸 에어프라이어에서 돌려 먹고 있다. 이쯤 되면 이 상황을 겪는 현수동 사람들에게는 삼국지 정도가 아니라 (거대기업의) 외계침공 수준이 아닐까 싶다.

-장은진 -울어본다
냉장고 끌어안고 몸을 냉기에 맡기고 하는 소설을 어쩌다보니 두 편 비슷한 시기에 읽는데 둘다 그저 그랬다. 지하철 출근길에서만 만나던 연인 이야기는 조금 흥미로웠다. 헤어지자는 이유에 못 생겨서, 애교도 없고...하는 말을 들으면 진짜 멘탈 개박살 날 것 같다 ㅎㅎㅎㅎㅎㅎ

-정용준 -사라지는 것들
이웃과 선릉산책 가지고 정릉산책인 줄, 호호호 하다가, 떠떠떠, 떠 하는 소설 보고 폭풍오열에 그래도 스위트하잖아- 소리 나누고 나서 결국 정용준 소설책을 세 권이나 집에 들였다. (물론 중고) 그 중 단편집 하나만 보고 킵해놨는데, 이 소설 읽고 나니까 아 다시 봐야지 싶었다. 뭔 군더더기가 없어. 그러면서도 뭔가 속답답하고 울컥하는 걸 잘 쓴다. 강화도 가고 싶다. 맞은 편 앉은 직장 동료였나, 지난 주에 강화도 가고 싶다, 했는데 이 소설에 강화도가 나왔다. 동료는 바다 보고 싶다, 고도 했다. 바다 가고 싶다, 하던 말이 또 생각나 괜히 울컥했다. 요즘은 툭하면 울컥울컥. 주둥이 찢어놓은 우유팩마냥 툭 치면 자꾸 넘침.

-최은영 -일 년
나는 몇 달 전 비공식으로 이웃들끼리 조잘대던 김금희VS최은영 에서 소수파로 김금희 손을 들어주던 사람인데, 이번 소설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는 최은영 안 좋아하나 봐...그래놓고 작가의 단편소설집 두 권은 또 다 챙겨봤다.
소설 앞부분 읽을 때는 문장이 되게 거슬렸다. 오, 거슬리다가 맞나 싶어 사전 찾아보니 이 말 되게 센 말이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문장이 술술 읽히지 않고 자꾸 걸리고 막혔다. 반복되는 군더더기 단어, 문장 위치나 순서도 아 나라면 이렇게 안 할 건데 왜, 이러면서. 퇴고가 좀 덜 된 글 같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내 주제에 누구 문장을 탓해 ㅋㅋㅋ독후감 조차 이따위로 쓰면서 감히 최은영님을 ㅋㅋㅋㅋㅋㅋㅋㅋ
특히 읽기 힘들었던 게 중심화자를 내내 ‘그녀’로 지칭하다보니 다희와의 일화를 소개할 때 그녀가 다희인가, 하고 처음에는 자꾸 헷갈렸다. 그러다가 계속 불편함을 느꼈고, 꾸역꾸역 참고 읽다보니 이건 정말 작가가 뭔가 작정하고 의도를 가지고 이름을 쓰는 대신 ’그녀’라고 썼구나 싶었다. 마지막 문장에서 ’그녀는 여전히 그녀인 채로 살아 있었다.’ 하길래 역시 일부러 그녀를 고집했군요, 했지만 문제는 일부러 그런 이유를 멍청한 독자 새끼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내가 살아진다, 사라진다, 했던 걸 작가가 소설에 써버려서 음, 이것조차 상당히 진부한 표현이었군 하고 버려버렸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는 밑줄 칠 말 찾음.
+밑줄 긋기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늙었다, 왜! 이…...씨발년아.
‘그녀’의 외할머니가 소심한 마음에도 손녀딸을 지키려고 내뱉은 말이 이 소설에서 제일 강렬했다. 웃으면 안 되는 맥락인데 웃기면서도 슬펐다. 그런 애틋한 관계를 가져 본 기억이 없어서 사실 잘 모르겠는 감정이기도 하다. 가희와 그녀의 관계도 그렇다. 최은영 소설에 나오는 사람 사이의 그 찐득 진득 막 눈물 찡한 이어짐과 멀어짐과 애틋함 같은 걸 나는 잘 모르겠어서 막 거부감이 든다. 그걸 공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심이 들고 내가 잘못 자라온 것만 같아서 심통도 부린다. 핏. 쳇. 흥칫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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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그리기 2020-07-19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감상에 흥칫뿡이라니 신선한데요?
저는 님께서 거부감이 든다고 하신 그런 애틋함같은 감정들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 어쩐지 님의 질투에 괜히 으쓱해진달까 그러네요.^^ 최은영 작가의 작품은 저도 호불호가 약간 있지만 최근 읽었던 ‘쇼코의 미소‘ 속 단편들이 정말 좋아서 계속 그녀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같은 책을 나와 다르게 느끼는 감정들을 찬찬히 듣고 알아가는 것도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신선한 즐거움이란 걸 요즘 이웃님들 글에서 배웁니다. (오늘은 님께 가장 많이 배우네요. ㅎㅎ) 님 덕분에 읽고싶은 책 목록이 확 늘었어요. 숙제 감사해요~

반유행열반인 2020-07-19 14:52   좋아요 1 | URL
쇼코의 미소가 좋으셨으면 내게 무해한 당신은 더 좋고 더 잘 썼어요 ㅋㅋㅋ 흥칫뿡

바다그리기 2020-07-19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었는데 제겐 쇼코의 미소가 더 취저였나봐요. 흥칫뿡에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할 줄은 몰랐네요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7-19 15:17   좋아요 1 | URL
역시나 취향은 다양하고 ㅋㅋㅋ심통은 안 부리고 댓글 오늘 많이 남겨주셔서 감사인사만 남길게요 ㅎㅎㅎㅎ

무식쟁이 2020-07-19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겐 김금희=최은영 :-p

반유행열반인 2020-07-19 15:39   좋아요 0 | URL
황희정승 같은 너도 옳고 너도 옳다 인지 둘다 고만고만 별로여 인지 궁금해요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세상을 이분법하려다 삼분법 했거든요. 따른데 쓴 댓글 복붙 하면....”이쯤 되면 세상은 최은영을 좋아하고 선함을 믿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뉜다...하는 이분법 아 아니지 최은영이 누군지도 모르는 자...로 천하 삼국지 하려는 욕심이 생깁니다....저는 그렇지 않은 자 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07-19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의외로 평화로운.....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7-19 16:02   좋아요 0 | URL
수연님 막 싸움 구경 하러 온 거 같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0-07-29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최은영 최은영 최은영!!!!! (왜때문에ㅜ김금희 작가님과 자꾸 매치되는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최은영 작가님 저에겐 우주최고임.. 뭐 그렇다고요(쭈글)

반유행열반인 2020-07-30 06:48   좋아요 2 | URL
최은영 작가님 자꾸 건드려서 죄송합니다...중학생 때도 자꾸 에쵸티 까다 왕따 당한 전력이 있는데도 ㅋㅋㅋㅋ둘이 매치 시작한 건 s모 이웃(최은영은 손오공 김금희는 베지터 막 이러고 ㅋㅋㅋ)도 있고 알라딘에서도 예전에 그런 기획한 적 있음
정작 우리말고는 최은영도 아나운서인 줄 알고 김금희 하면 이금희 잘못 말한 줄 아는 사람이 더 많은 현실입죠 ㅋㅋㅋ

- 2020-07-30 07:51   좋아요 1 | URL
문체나 구성 스토리? 이런건 모르고 최은영님 소설은 저를 막 찌름... 온몸 듀들겨 맞으면서 읽는 기분.. 흑
 
[전자책]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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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장류진.

지난 달에 소설을 하도 안 읽어서 이번 달에는 다섯 권 읽을 거야! 했는데 이 책과 함께 미션 완료. 전자책 중 짧은 소설 쟁여둔 게 많아서 그런 걸 동원하는 꼼수를 쓰긴 했지만. 다섯 권 넘게 더 볼 것 같기도 하다.

사둔 지는 꽤 되었는데 늦게 펼쳤다. 사진을 보고 예쁘네, 예뻐. 나의 나쁜 버릇인 외모 품평을 하고. 직장인 출신의 소설가, 등단 후 겨우 1년 만에 소설집을 낸 사람, 뭐 그런 이야기들을 열심히 찾지 않아도 들려오고, 젊은작가수상작품집에서 운전 연수 받는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어봤다.
유독 직장인이 많이 나오는 소설집인데, 약간 설익어서 작위적이다 싶은 것도 있고, 읽고 나면 글썽글썽하게 만들거나 여운이 남는 글도 많이 있었다. 그냥저냥 잘 읽었다.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가의 말 마지막이 좋았다. 나도 언젠가 다짐한 말인데 요즘은 그런 마음이 희미해지고 있어서 그런가 한 번 더 그 말을 보았다.

-잘 살겠습니다 …… 『현대문학』 2018년 12월호
청첩장, 친분과 자본의 손익계산, 겪고 나면 정확한 수치로 명확히 갈리지 않는 관계와 마음 같은 걸 늦게 알게 된다. 아무도 그런 걸 가르쳐주진 않더라.

- 일의 기쁨과 슬픔 …… 『창작과비평』 2018년 가을호
월급을 포인트로 주는 새끼 진짜...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포인트나 화폐나 뭐가 다른가 싶기도.,.이 소설도 그렇고 많은 소설이 약간 판타지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나치게 훈훈한 직장인 판타지...위로와 공감...내 동료들 꽤나 다정한데 왜 나새끼 비관적임...

-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 『문장 웹진』 2019년 3월호
화자는 나쁜놈일까? 나쁜놈 까지는 아니더라도 속물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조금 가혹한 느낌도 들었다.

- 다소 낮음 …… 『문학3』 문학웹 2019년 6월
이 책이랑 작년도 이상문학상 작품집도 같이 읽고 있는데 장은진의 냉장고 나오는 소설이랑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홍대에서 10년 전에 인디밴드한다고 깝치고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눈물 쥬르륵...

- 도움의 손길 …… 『악스트』 2019년 9 /10월호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게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책에 부자집앞 거지가 등장하는 장면과 가사도우미와의 미묘한 갈등은 병치하기 무리였던 것 같고. 집주인도 도우미도 둘다 얄밉고 치사하고 어느 하나도 애정이 안 가게 그려놔서 더 애매했던 것 같다.

-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 『릿터』 2019년 2 /3월호
짧은데도 뭔가 짠한 느낌. 일 시작도 전에 돈부터 미리 쓰는 기분이란… 커피 값 몇 천원에 속은 기분 드는 것도 알 것 같고...사실 나는 며칠 전에 아이스 가격이 더 비싼 카페에서 그 더운 날 굳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먹었거든...나는 택시를 타는 대신 젖은 겨드랑이로 버스를 기다릴 놈이거든...
나의 첫 출근길은...다른 건 기억 안나고 아주 이른 아침 나보다 한참 앞서 걸어가던 포니테일의 뒷모습. 늘씬하고 왠지 예쁠 것 같은. 실제로 예뻤고 내 첫 직장동료였다. 일도 잘하고 싹싹하고 다정하고 귀여웠던 내 동료는, 원래 그 자리였던 사람이 예정보다 일찍 복직하는 바람에 겨우 11개월 남짓 채우고 한달도 안 되는 기간 때문에 퇴직금 못 받고 떠났다. 엄청 화나는 일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슬펐다. 그래 놓고 나는 그 친구에게 제대로 연락도 하지 못하고 벌써 십 년이 넘게 흘러 버렸어...

- 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
음. 으음. 성인 스팸메일과 오피스텔 성매매와 잘못 찾아오는 사람과 성매수자로 마주한 전애인과… 정신 없는 이야기였다.

- 탐페레 공항 …… 『모티프』 2019 신인 특집호(발표 당시 제목 ‘Do or Do Not’)
마지막이 좀 억지 감동 같긴 해도 그런 억지 감동 같은 게 나한테는 좀 필요한 거 같다...그런 걸 못 만들어서 내내 퍽퍽하게 살고 퍽퍽한 것만 쓴다. 닭가슴살 퍽퍽해.
자일리톨, 핀란드, 경유지, 할아버지, 폴라로이드 사진(그냥 그 자리에서 주면 될 건데 그냥 필름카메라로 하지…), 오로라, 잃어버린 꿈, 부채감, 뒤늦지만 아예 늦지 않아 할 수 있는 안도.
완벽하진 않아도 이 소설이 이 책에서 제일 좋았다.

+밑줄 긋기(거의 안 침...밑줄 치고 싶은 문장 쓰고 싶다…하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이십평대 아파트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아이를 그랜드 피아노에 비유하는 비정함, 그런데 그런 심정이 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라...피아노가 들어오면 공간을 넓히게 되더라구요…이상하게도 피아노 두 대 들여놓으니 자꾸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공간보다는 시간과 자유도의 문제인 듯. 그것도 도우미 부르듯 돈으로 해결하는 집도 많더이다...저는 몸으로 때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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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7-19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움의 손길‘에서 등장인물 ‘둘다 얄밉고 치사‘하게 느껴졌어요...그래서 ‘도움의 손길‘보다 ‘연수‘가 개인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7-19 09:5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작가님이 애초부터 인간은 얄밉고 치사한 존재야! 하고 그걸 설파하려는 분이라면 성공한 글일텐데 다른 글 대부분은 또 되게 온정의 손길이 많이 느껴져서 그런 쪽을 더 잘 쓰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알고 보니 따뜻한 작가님...그런 따뜻한 글 좋아하시는 파이버님...

무식쟁이 2020-07-19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한다면한다 반반님.
뭔가 되게 보기좋습니다. ^^
저는 올해 일주일에 한권 겨우겨우 읽어내고 있어요.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하며 자기만족 중^^

반유행열반인 2020-07-19 16:05   좋아요 0 | URL
저 한다면 다 한다, 내가 못할 건 뭐냐,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겸손해지네요. 제 뜻대로 안 되는 게 생각보다 아주아주아주 많더라구요. 하나라도 잘 하고 싶은데 알고 보니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그래서 책 권수 뿔리기 같은 쉬운 과제에만 집중중....
 
[전자책] 관능수업
리디 살베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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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리디 살베르.

이 책을 펼치려는 분께.
-제목에 속지 말 것
-목차에 속지 말 것
-공쿠르상 수상작가란 홍보문구에 속지 말 것
-시대착오적인 제안. 여기 나온대로 여기서 배운대로 행동하다가는 수치심을 느끼며 자살할 확률을 높일 수 있음
-1980년대쯤 나왔나 했는데 2016년에 출판된 경이로움
-시간이 쳐남아돌고 심심하면 금세 읽으니 읽겠다고 고집하면 말리지는 않음
-하나도 안 관능적임
-내 시간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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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6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7 0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7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그리기 2020-07-19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내 글로 인해 혹시라도 책을 보고싶은 마음을 접을까 소심한 염려에 홍길동처럼 별로인 책을 별로라고 못한채 망설이는 저는, 이런 솔직한 평 너무 좋네요^^
마지막 내 시간 내놔.. 하나로 모든 것이 다 설명되니 완전 취저. ㅋㅋ
유쾌하면서 날카로운 님의 글 부러워요

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55   좋아요 1 | URL
좋은 평 많이 남기셔서 너그러운 독자시구나...했는데...숨겨둔 속마음 한 번 펼쳐보기 시작하시져...
글쓰시는 솜씨를 보니 이렇게 열심히 다른 분과 댓글 교류하시면 반 년 안에 알라딘 인싸 정도는 담당하실 듯합니다....핵아싸인 제가 하는 말이라 공신력은 없지만요...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엘살바도르 엘 보르보욘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안녕 커피. 커피 리뷰 안 쓴다고 하고는 적립금에 눈이 어두워 매달 줄창 쓰는 구나. 
어제는 19살 때 딱 한 번 본 친구를 18년 만에 만났다. 어떤 인연들은 대면 없이 말로만 오래 이어지기도 한다. 밀레니엄 때 청소년기 보낸 내 또래들은 그런 친구들이 꽤나 있을지도. 가족이나 직장 동료외의 사회적 소통은 알라딘 댓글이 거의 전부인 나새끼를 보면 뭐...끄덕끄덕. 히키고모리의 사회생활이란. 
아, 여튼 신촌의 커피숍에 갔는데 커피 원두를 고를 수 있다고 했어. 커피 산지 같은 걸 알려주나 했는데 블루 브라운 옐로우(?마지막 건 정확한 색도 기억 안나...)중에 고르래. 산미가 있다는 블루를 골라서 이층 흡연실 옆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친구를 보았다. 너는 무슨 색 골랐냐. 나 블루. 나돈데. 그런데 친구는 아이스 나는 뜨거운 걸 마셨으니 원두가 같아도 같은 맛은 아니었겠지. 

원두볶아서 갈아놓은 거 보면 다 비슷비슷한 똥색 가루로 보이는데. 우리는 신맛 단맛 쓴맛 따지고 온갖 알고 있는 꽃과 과일의 향을 동원하여 다른 커피와 내가 마시는 커피를 구분하려고 애를 쓰지. 특히나 커피 마케팅을 위해 그런 표현들이 동원되고. 블렌딩에는 예쁜 이름이 붙고 싱글 원두에는 미지의 나라 이름과 지역명과 농장 이름이 붙은 채 흥미를 끌지.

우리의 상상력은 재미있어서, 언어로 지시되는 맛과 향과 식감을 정말 느끼는 것처럼 여기게 돼. 반대로 우리가 느끼는 맛과 향과 식감을 언어로 자꾸 표현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기록된 기억은 생각보다 불완전해서, 막상 예전에 써 둔 커피 리뷰 보면서 원두 주문하려고 보면 먹었던 커피인데도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ㅋㅋ 그래서 커피의 이름과 원산지와 포장지 디자인을 보며 어렴풋하게 다시 살지 말지 고민하지. 그냥 그렇다는 말이 써 있거나 한 번 먹었으니 됐다, 하는 걸 거르는 정도. 

그래서 결국에는 신제품을 산다. ㅋㅋㅋㅋ그러니까 커피콩아 매달 신제품을 내는 전략은 구매욕을 자극하는 데는 나름 효과적이지 싶다. 미지의 맛과 향을 기대하며. 보랏빛 하늘에 먼곳을 바라보는 (아마도 재규어 같은) 고양이과 동물의 실루엣, 멀리 놓인 산이 포장에 그려져 있어.
엘 살바도르를 검색해보았어. 우리나라 자치도 하나 만한 작은 나라래. 저위도의 더운 나라. 살인율이 무지하게 높은 암울한 나라. 
그곳의 커피를 아침에 드립해 먹고 왔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ㅋㅋㅋㅋㅋㅋ
코코넛, 아몬드, 그런 설명을 읽으면 정말 견과류 같은 고소함? 구수함? 이 있었던 것 같아. 산미는 지난 주까지 먹던 수국보다는 조금 약한 것 같다. 그냥 저냥 무난했다.
알라딘 커피는 마트에서 사는 거보다는 비싸지만 신선한 원두 먹는 건 좋아서 한 달에 한 번 할인쿠폰 핑계로 사치를 부린다. 내가 소비하는 건 결국 이미지, 순간의 향과 맛, 카페인으로 얼마간 번뜩이는 정신. 달아난 잠. 

뭔 쓸데 없는 소리를 주절주절 길게도 써놨다. 이럴 거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책 읽고 독후감이나 쓰라고 말해다오 커피야. 암튼 잘 먹을게. 빠이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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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7-15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전 중학교 졸업하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언니는 재수를 했는데 꼴에 성인 됐다고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기 시작했는데
뭐 나라고 못 마셔? 그래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중독성이 꽤 강하더군요.
마약 같아서 세상이 달라보이더라구요.
커피 마실 욕심에 아침에 눈도 잘 떠지고.
암튼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7-15 22:10   좋아요 0 | URL
저는 성인되고도 한참 자라서 (아마도 서른 넘어서 수유 끊고) 커피를 시작했는데
커피 마시는 일이 그저 습관 같다는 생각이 부쩍 듭니다.

바다그리기 2020-07-19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 맛을 온갖 과일향으로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껴본 적은 있지만(그 과일향을 1도 못느껴본 초딩 입맛이라^^), 무엇보다 커피에서 시작해 엘 살바도르란 나라를 검색까지 해보는 님의 호기심에 저는 또 호기심이.. ㅎㅎ 반갑습니다. 가끔 들러서 좋은 글 즐기고 갈께요~

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1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바다그리기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07-29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쓸데 없이 진지하고 고퀄인 반님의 ㅋㅋㅋ 커피콩리뷰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7-30 06:4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쓸진고 아직 이 커피 많이 남았어요...읽은 책 없는데 뭐 쓰고 싶으니 아무말잔치 ㅋㅋㅋ

얄라알라 2020-08-09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 리뷰 쓰면 적립금 이벵이 있었네요^^ 커피향 음미하시길~~^^

반유행열반인 2020-08-09 15:16   좋아요 0 | URL
네 이번에 또 신제품이 나와서 마침 얘 다 떨어져서 살까 말까 하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