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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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 홍승은.

내가 좀체 안 읽던 책인 글쓰기책+에세이책=글쓰기에 관한 에세이책을 읽는다. 굴곡 많은 독서 인생. 나는 언제까지 읽는 사람으로 살까.
나는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왜 쓰냐고 물으면 답할 말이 없다. 다른 사람과 닿기 위해서라는 따뜻한 말이나, 상처의 치유,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나라는 사람, 이런 이유를 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럴 듯한데다 신기한데 나도나도! 할 만한 이유는 남들 입에서 찾지 못했다.
나는 그저 말하기 위해 말하고 쓰기 위해서 쓰는 것 같아요. 쓰기는 듣는 이 없는 곳에서 늘어놓는 긴 수다 같은 것. 심심해서요. 외로워서요. 힝힝힝.
그러다보니 마냥 읽고 쓴다고 나라는 인간이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모진 말도 아무렇게나 쓰고, 그냥 나는 이렇게나 못난이야 힝힝힝 하는 것만 확인한다.

홍승은 작가를 처음 본 건 책이 아니고 기사문이였다. 폴리아모리의 삶을 사는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 현실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사이좋게 살고 있다니!! 그러나 역시나 꿈같은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작가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란 책을 낸 것을 알았다. 그 책을 궁금해하다보니 어, 전자책 중에 작가 책 쟁여둔 거 있는 것 같은데, 하고 찾아보니 글쓰기 책이였다.

집필 노동자의 삶. 산문 또는 에세이, 칼럼이라 불리는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 나는 작가라고 하면 소설가, 시인만 알고 있었는데 에세이를 읽으면서 생각보다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일기작가도 있어…
많이 읽고, 많이 돌아보고, 또 많이 쓰고, 그러다 좌절도 하고 성장도 하는 쓰는 사람의 이야기와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서 좋았다. 이거 읽다 말고 결국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사버렸잖아…

밑줄을 어찌나 많이 쳤는지....

+밑줄 긋기

-언제나 긍정적이고 행복하기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상처와 슬픔, 절망을 말하기는 어렵다. 말하는 순간, 자신이 불행한 존재로만 보일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글은 존재를 고정하지 않는다. 상처와 고통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글을 쓰고 나면, 그다음을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입 없이 몸만 있었던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는 ‘여성은 성기가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권리 선언과도 같다. 지금도 소수자의 말하기는 계속되고 있다. 더는 상처받은 사람이 침묵하는 일이 없도록, 나도 목소리들 사이에서 말을 보탠다.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리는 사람에게 감정을 배제하고 쓰라는 말은 쉬워서 잔인하다. 문장에 감정이 뒤섞일 때는 강박적으로 거리를 두기보단 쏟아지는 글을 가만히 풀어내며 감정 역시 풀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게 나았다. 몇 번을 혼자 곱씹으면서 쓰고 나면, 그 일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겨 비로소 다르게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한가,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은 아닌가,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가 들어갔는가’와 같은 큰 줄기와 ‘주어와 동사가 연결되는가, 접속사와 조사·관용어가 과하진 않은가, 급하게 마무리 맺진 않았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쓰기의 법칙을 공유했다. 이후에는 각자가 꾸준히 쓰는 만큼 글은 늘었다.

-우리는 쉽게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 있으니 지금은 판단을 유보한 채 상대의 글에 감응하며 글을 읽자고. 내가 더 감응할 수 있도록 상대가 어떤 부분을 보충해줬으면 좋겠는지 조심스럽게 말하는 연습을 하자고. 이러한 자세는 누군가의 글과 삶을 존중하는 방식일 뿐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익히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인터넷 댓글 문화가 그렇듯 글의 흠결을 잡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고, ‘깔’거리는 어느 글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까.

-나르시시즘에 빠진 글은 위험하지만,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게는 ‘자기 뽕’보다 과한 ‘자기부정’이 글쓰기에 더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는 어릴 때부터 자기부정과 자기혐오를 배우니까.

-어떤 글은 존재의 목을 조르고, 어떤 글은 존재를 자유롭게 한다. 편견을 재생산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침묵은 욕망의 그림자였다. 나는 욕망과 함께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침묵만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그토록 쉽게 나를 배신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피해를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까. 가해자를 지목하는 방식이 아닌 구조를 짚는 글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 경험을 피해 서사의 전형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그는 데이트와 이벤트에 능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원하는 낭만적인 사랑 각본에 생각하고 글 쓰는 애인의 자리는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생각하는 ‘여자 친구’의 자질에는 불편하고 위험한 생각하기, 라는 항목은 없었다.

-‘부디 제가 쓰는 글이 오해 없이 전달되게 해주세요. 자극적인 소재로만 읽히지 않게 해주세요. 경험을 섣부르게 일반화하는 글을 안 쓰게 해주세요. 제 글이 다른 존재를 소외하지 않게 해주세요. 복잡한 현실을 뭉개지 않게 해주세요.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저에게 부지런함을 더해주세요.’ 

-‘자, 모든 건 먼지가 됩니다. 잔뜩 굳은 어깨에 힘을 푸세요. 지금 우리가 쓰는 글은 언젠가 먼지가 되고 세상에는 수많은 먼지 같은 말들이 떠다니다가 가라앉을 거예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해요. 나를 망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에요. 다른 말로, 나를 망칠 권리는 오직 나에게만 있어요. 굳이 지금 그 권리를 써야겠습니까?’

-나는 글의 고유성과 힘은 문장력 이전에 서사와 질문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내가 통과해 온 시간을 말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기에 내 이야기를 쓸 때 글은 가장 고유해진다.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다른 존재의 불행 위를 걸어가는 것이라고.

-자신으로 인해 슬픔을 가져야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기대를 건다.

-남에게는 평범한 존재가 내게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존재가 나와 맺고 있는 관계 때문이다. 평범한 존재는 나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특별해진다.

-쓰는 사람은 ‘특별하게 관계 맺는 사람’과 같은 말 아닐까. 누군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일, 관성적인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을 던지는 일, 애정 어린 관심을 갖는 일. 존재를 다각도로 볼 수 있을 때, 글에도 숨이 붙는다. 아마도 내 애정의 크기만큼.

-빈 곳을 메우는 사람. 말해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사람.

-내 표현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누구의 얼굴을 지우는지, 그 표현으로 누가 사회적 공간에서 밀려나는지 살펴야 한다.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은 기꺼이 상처받겠다는 다짐과 다르지 않다. 내 세계가 타자가 경험하는 폭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 느끼는 정직한 절망에서부터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삭제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솔직함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없고 진실함’이다. 어떤 작가가 거짓 하나 없이 진실만을 쓸 수 있겠느냐는 의문과 더불어 과연 객관적인 진실이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오래 묵혀둔 비밀이 타인의 솔직함 앞에서 비밀이 아니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어쩌면 솔직함이란 각자가 가진 경험을 불러내는 용기의 도미노가 아닐까 싶다.

-유독 마무리하기 힘든 글 앞에서는 잠깐 멈추는 게 좋다. 급하면 익숙한 길로 빠지니까. 한 가지 이정표만 기억하면 된다. 익숙한 방법으로 쉽게 닫지 말고, 차라리 마침표를 열어두자고.

-어떤 글을 읽을지에 대한 선택은 앞으로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글을 쓸 것인가로 연결되는 글의 서문과도 같다.

-글에 드러난 글쓴이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가 어떤지, 나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지 살피고 나누기. 공감하거나 감동하거나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상황이나 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나누기.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 문단, 사유 나누기.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전달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보충되면 좋을지 이야기하기. 한 명의 발언이 길어지면 정해진 시간에 모든 사람이 골고루 의견을 나누기 어려우므로 발언 시간을 조절하기.

-글이 쉽게 쓰일 때면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찾아 읽는다. 특히 마지막 〈작가의 말〉에 실린 진심을 되새긴다.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 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나쁜 어른, 나쁜 작가가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은영 작가님 며칠 전 독후감 죄송해요...잉잉잉)

-간결하되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할지 드러내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면 좋다. 인상적인 대화로 글을 시작하는 방식도 몰입에 도움이 된다. 

-“언니 괜찮아요. 우리는 어차피 다 망하는걸요.”

-“지치지 말고 힘내지 말아요.”

-나는 어쩌다가 태어났고 정신 차리니 지금의 내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놓인 시대와 상황에 반응하면서 그때그때 살아가면 되는 거였다.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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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그리기 2020-07-21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문장이 많은 책이라니, 읽지않을 수가 없겠네요. ‘사회적 약자에겐 자기 뽕보다 과한 자기부정이 글쓰기에 더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문장이,
객관화라는 이름으로 끊임 없이 자기 부정을 해온 제겐 특히 아프게 다가옵니다. 좋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 언제 다 읽을까요? 또 한권을 추가 해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07-20 22:16   좋아요 2 | URL
즐거운 독서 시간이 되시길 기원해요 ㅎㅎㅎ그런데 또 남이 좋다던 책이 의외로 안 좋기도 하고 그렇다는 ㅋㅋㅋ

syo 2020-07-24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괜찮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반유행열반인 2020-07-24 12:43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존경심마저 들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7-29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님 저 좋아한다고요. 발견 하셨구나!! 흐흐 (기쁨) 뭐랄까 진짜 착한데 진짜 급진적인(?) 글들이지 않나요? 은유 작가님 한테서 글 배웠다고 어디서 읽엇는데 개인적으로는 은유작가님보다 더 잘쓰시는 거 같아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7-30 06:50   좋아요 2 | URL
오오 그랬군요 제게도 은유작가님보다 더 잘 맞는 글이었어요 래디컬한 건 저랑 비슷한데 착한 건 제 열 배 되는 글 ㅋㅋㅋ난 또 으둠을 맡을게...쟝쟝님께 몰아받는 좋아요 왜 이리 큰 기쁨인가 ㅋㅋㅋㅋ

공쟝쟝 2020-07-30 07:50   좋아요 2 | URL
으둠의 반반🙊흡 넘 조앜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7-30 09:37   좋아요 2 | URL
저는 (실물은 몰라도 글은 넘나) 쾌활한 쟝쟝님이 넘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