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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엘 보르보욘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안녕 커피. 커피 리뷰 안 쓴다고 하고는 적립금에 눈이 어두워 매달 줄창 쓰는 구나.
어제는 19살 때 딱 한 번 본 친구를 18년 만에 만났다. 어떤 인연들은 대면 없이 말로만 오래 이어지기도 한다. 밀레니엄 때 청소년기 보낸 내 또래들은 그런 친구들이 꽤나 있을지도. 가족이나 직장 동료외의 사회적 소통은 알라딘 댓글이 거의 전부인 나새끼를 보면 뭐...끄덕끄덕. 히키고모리의 사회생활이란.
아, 여튼 신촌의 커피숍에 갔는데 커피 원두를 고를 수 있다고 했어. 커피 산지 같은 걸 알려주나 했는데 블루 브라운 옐로우(?마지막 건 정확한 색도 기억 안나...)중에 고르래. 산미가 있다는 블루를 골라서 이층 흡연실 옆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친구를 보았다. 너는 무슨 색 골랐냐. 나 블루. 나돈데. 그런데 친구는 아이스 나는 뜨거운 걸 마셨으니 원두가 같아도 같은 맛은 아니었겠지.
원두볶아서 갈아놓은 거 보면 다 비슷비슷한 똥색 가루로 보이는데. 우리는 신맛 단맛 쓴맛 따지고 온갖 알고 있는 꽃과 과일의 향을 동원하여 다른 커피와 내가 마시는 커피를 구분하려고 애를 쓰지. 특히나 커피 마케팅을 위해 그런 표현들이 동원되고. 블렌딩에는 예쁜 이름이 붙고 싱글 원두에는 미지의 나라 이름과 지역명과 농장 이름이 붙은 채 흥미를 끌지.
우리의 상상력은 재미있어서, 언어로 지시되는 맛과 향과 식감을 정말 느끼는 것처럼 여기게 돼. 반대로 우리가 느끼는 맛과 향과 식감을 언어로 자꾸 표현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기록된 기억은 생각보다 불완전해서, 막상 예전에 써 둔 커피 리뷰 보면서 원두 주문하려고 보면 먹었던 커피인데도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ㅋㅋ 그래서 커피의 이름과 원산지와 포장지 디자인을 보며 어렴풋하게 다시 살지 말지 고민하지. 그냥 그렇다는 말이 써 있거나 한 번 먹었으니 됐다, 하는 걸 거르는 정도.
그래서 결국에는 신제품을 산다. ㅋㅋㅋㅋ그러니까 커피콩아 매달 신제품을 내는 전략은 구매욕을 자극하는 데는 나름 효과적이지 싶다. 미지의 맛과 향을 기대하며. 보랏빛 하늘에 먼곳을 바라보는 (아마도 재규어 같은) 고양이과 동물의 실루엣, 멀리 놓인 산이 포장에 그려져 있어.
엘 살바도르를 검색해보았어. 우리나라 자치도 하나 만한 작은 나라래. 저위도의 더운 나라. 살인율이 무지하게 높은 암울한 나라.
그곳의 커피를 아침에 드립해 먹고 왔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ㅋㅋㅋㅋㅋㅋ
코코넛, 아몬드, 그런 설명을 읽으면 정말 견과류 같은 고소함? 구수함? 이 있었던 것 같아. 산미는 지난 주까지 먹던 수국보다는 조금 약한 것 같다. 그냥 저냥 무난했다.
알라딘 커피는 마트에서 사는 거보다는 비싸지만 신선한 원두 먹는 건 좋아서 한 달에 한 번 할인쿠폰 핑계로 사치를 부린다. 내가 소비하는 건 결국 이미지, 순간의 향과 맛, 카페인으로 얼마간 번뜩이는 정신. 달아난 잠.
뭔 쓸데 없는 소리를 주절주절 길게도 써놨다. 이럴 거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책 읽고 독후감이나 쓰라고 말해다오 커피야. 암튼 잘 먹을게. 빠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