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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폴리아모리 에세이
홍승은 지음 / 낮은산 / 2020년 7월
평점 :
처음 읽을땐 솔직히 궁금증과 호기심이 컸다.
폴리아모리라는 단어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관계를 지향하는 것인지, 실제로 어떻게 유지하고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하는건지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게 없는 무지상태였으므로.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분법적 사고로 남녀관계를 이해하는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편견이 없다고 생각해온 것 역시 교만이었음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반대와 비난을 하는 사람들 반대쪽에 서서 아무 반박도 평가도 하지않는 무심함(혹은 무지) 정도의 방관을 내딴엔 썩 괜찮은 이해의 자세라고 오해하고 있었다는걸.
나이가 들면서 이세상엔 무수히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성격과 가치관이 있으며, 그 엄청난 다양성들 중 어떤 것도 나의 잣대로 쉽게 단정하거나 비난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음에도 어떻게 그 많은 인간들의 연애나 사랑 방식에 있어서 무한한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고려해본 적이 없었을까?
동성이든 이성이든 사랑에는 일대일의 관계가 당연하다는 것이 나의 기본 사고였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사랑도 욕망하는 건 이기심을 감추기 위한 괘변일 뿐이며, 무책임한 만큼 존중 받을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 해왔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조금 혼란스럽긴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동안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마음과 관계와 지향들이 반드시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하게 되었고, 내가 믿어온 가치들이 내가 받아온 교육과 성장환경의 결과로 내게 주입된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편향된 자리에 서있던 나를 자각하고 나니
‘아무리 그래도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 솔직히 이기적인 욕심 아닐까? 진심이라 해도 결국
상대보다 나의 욕망을 우선하는 마음을 포장하는 것일 뿐인거 같은데..‘라는 생각에서,
‘하긴, 이 세상에 이렇게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있는데, 그들이 각자 다른 사랑을 원한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라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엔 ‘폴리아모리‘라는 생소한 단어에 집중해서 한 여자와 두 남자라는 낯선 조합의 남녀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며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생각과 요구에 귀 기울이고 이해와 포용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그들의 이상적인 ‘동거 형태‘에 더 집중하며 읽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일때문에 얼결에 독립 한 뒤로 자유로운 혼자만의 삶을 누리며 사는동안 해가 갈수록 확실해지는 것 중 하나는, 이제 누구와도 억지로 맞추려 애써가며 살기 싫다는 마음이 강해진다는 거였다.
정리강박이냔 소릴 들을만큼 모든 물건은 쓴 뒤에 바로 제자리에 두어야 하고, 저질체력인만큼 한꺼번의 노동에 지치지 않기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가볍게 쓸고 닦고를 실천하며, 말의 내용보다 태도가 중요한 성향상 거칠게 함부로 던지는 말에 상처받는 나이기에 서로 스트레스 받으며 나와 다른 생활방식에 맞춰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시간은 상상만 해도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세명이 함께 살면서도(게다가 연인과 연인의 연인이라는 미묘한 관계라니!) 섬세하게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맞춰가며, 성숙한 협의와 배려, 존중을 통해 누구 한명이 더 많이 양보하거나 그로 인한 불만이 생기지 않는 안정적인 동거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의 생활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나의 평온‘을 최우선의 기준으로만 생각해서 무조건 혼자이길 원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사람과 (동거나 결혼이 아닌) 연애만을 하려 해도 서로 다름으로 인해 수없이 부딪히고 싸우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두명의 연인과 한집에서 살며 심지어 라이벌이랄 수 있는 두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니..
저자인 홍승은이라는 사람과 그녀의 연인들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은 너무나 당연할 밖에.
이렇게 보수적인 나라에서(특히 페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심각하다 못해 공포스러울 지경인) 익명도 아닌 자신의 실명을 내세워
폴리아모리임을 당당하게 공표한 그녀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왜 굳이 그렇게 스스로의 삶을 오픈해 듣지 않아도 되는 악의적인 비난과 염려로 포장한 주제 넘는 참견의 말들에 상처받는 쪽을 선택했을까 안타깝기도 했었는데, 책을 읽는동안 변화하는 내 마음을 느끼면서 저자가 다른 이들에게 바라는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성적인 측면의 남녀관계에만 집중해서 자신들을 바라보지 말기를, 그저 한 공간에서 함께 살며 서로의 생활과 가치관과 욕망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세사람의 삶 그 자체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마음.
바로 그것이 수많은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승은과 우주, 지민 세사람이 자신들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다른 이들과 눈을 맞추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있는 이유가 아닐까?
책을 읽은뒤 평소 가장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평균적인 삶을 살고있다고 주장하는 언니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내용 설명과 함께 엄청난 비난과 혐오를 받고있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언니의 첫번째 반응은 이랬다.
‘어떻게 살든지 자기 맘인데 굳이 욕을 왜 하냐. 인간들 참 할 일도 없다‘
그 말에 곧바로 이어진 두번째 반응.
‘근데 그럼 잠은 어떻게 자냐? 오늘은 얘랑, 내일은 쟤랑 자는건가? 그건 좀 아니지 않나? 그 여자도 대단하지만 남자들 진짜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
그 여자, 진짜 난녀다 난녀.‘
역시 성적인 호기심이 가장 먼저고, 이 보수적인 세상에서 보편적이라 믿는 남녀 역할에 대한 차별적 편견이 이어진다.
그나마 누구에게든 대체로 무심한 편인 언니인지라
혐오나 욕은 표출하지 않았지만, 언니의 저 정도 시선도 관대함에 속할 법한 폭력적인 편견 속에 무수히 상처 받으며 살고있을 세 사람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우리는 보통, 평균, 정상이란 단어를 앞세운 무례함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무심히 상처를 주며 살고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고,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동안 세 사람이 궁금해(이놈의 호기심^^)
검색을 해봤고, 상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느낌 있는 외모의 승은과 지민을 보았다.
(사실 우주가 제일 궁금했는데 끝내 확인 못해서
섭섭했다는 건 안비밀. ㅎㅎ)
내 공간에 쓰는 나만의 독서감상조차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익명의 이웃들에게 받게될 비난까지 고려해서
무의식적 자기 검열을 통해 조심스럽게 쓰게 되는 나와 비교만 해봐도 그들은 얼마나 용감한가.
이기심이나 교만이 아닌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용기는 응원 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응원한다는 이유로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나를 비난한다면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성실하며 사랑하는 그들이 서로에게 받는것이 사랑과 그로 인한 안정과 행복이라면, 타인인 우리가 그들에게 감히 무언가를
요구해선 안되는 것이라 믿으니까.
나는 단 한사람과의 연애도 늘 버겁고 힘겨워 차라리
비연애 지향이 낫지 않을까를 고민 하기도 하는 어설픈 모노가미이지만, 내가 속한 쪽이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정상이라 단정하는 태도는 소수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폭력과 차별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행복 할 수 있는 ‘권리‘에는 나 아닌 남과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으므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 믿었던 나의 오만과 부족함을
깨우치게 해줄 또다른 책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이 책을 만나게 해준 저자인 승은님과 이 책을 소개 해주신 이웃님께도 감사를..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요즘 나의 모토이기도 한 이 문장으로 대신한다.
‘인생 뭐 있어? 걍 내맘대로 행복하게!‘
* PS : 별 다섯개는 80~100점 구간이 아니라
100점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나에겐 늘 별 네개가
가장 만족한 점수다. (당연히 아직 한권도 다섯개를
준 책은 없다.ㅜㅜ)
그러므로, 아쉬운 점도 있었던 책이기에 별 네개는
망설여져서 어쩔수 없이 세개로.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별 세개를 주기엔 너무
필요한 생각과 질문을 하게 해준 책이기에 네개로
수정했다.
별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 고민하는 나는 대체
얼마나 까다롭고 소심한 인간인 건지..
모든 책에 별을 하나도 안주는 것도, 다섯개씩
똑같이 주는것도 불공평한 것 같은데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할 일도 많은데 윤동주 시인도 아니면서 별 하나
별 둘..가지고 이러고 있다. 나 뭐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