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 엘 베나도 라 로마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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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크라잉넛-갈매기
https://youtu.be/dRn6trsY59M

다달이 새로 나오는 알라딘 커피 찾아 먹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월간 구독으로 운영해도 찾는 사람이 제법 많을 것 같다. 나는 평일에는 겨우 캡슐이나 믹스 챙겨 먹고 주말에나 드립을 내리니 한 달에 200그램 한 봉다리면 족하다. 지난 달 엘살바도르 커피도 아직 다 못 먹었는데 오늘 새 커피 까고 보니 내 입에는 산미나 단맛 쓴맛 비율이나 향이나 이번 달 코스타리카가 더 낫다. 11월8일에 구워 부순 신선함 덕일지도...가장 맛있는 커피는 새로 만든 새 커피 입니다…풍요로운 해안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지난 번 코스타리카도 맛있게 먹었던 것 같은데 개별 원두의 맛과 향을 다 기억할 만큼 똑똑하지가 못합니다.

다들 늦잠자는 주말에 평소대로 일어나 커피 한 잔 내리는 시간이 좋다. 언제들 깨서 아침 먹고 부산 떨까 싶어 아 조금씩만 더 주무시라, 바라며 조바심 나는 짧은 시간이지만. 언제부터 왜 핸드 드립하는 일이 호사롭고 사치로운 일이 되었을까, 사실 핸드 드립 커피 직접 내린지는 채 2년이 안 되었군요…ㅋㅋㅋ

삶은 견디는 일로 알고 그와중에 게임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일기도 써보고, 소설도 써보고, 이거저거 하며 지내왔다. 마지막 소설 완성한 지 이제 일 년이 넘었다. 그러고나서 가을부터 갑자기 이사 준비를 하고, 올봄에 이사를 마치고, 잠시 아 편안하다, 하다가 여름에 뜬금없이 주식을 하고(여러분, 마지막 비관론자가 낙관론자가 될 때가 제일 위험합니다…그때 코스피가 최초 3300을 찍고 이후로 주우우우우욱…), 추석 좀 안 되서는 고등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틈틈이 책 읽고 독후감쓰기는 여전하지만 조금 줄어든 듯. 아침 출근길에는 영어 문제집 회사에서 공짜로 뿌리는 독해 지문 읽어주는 mp3를 반은 알아 듣고 반은 흘려가며 걷고 오후 퇴근길에는 단풍이랑 파랑하늘 보며 또 걷는다.

빈틈 없이 꽉 채워 사니까, 그리고 나는 중3이다…하고 남몰래 시간을 이십년 쯤 돌려 그렇다면 나는 새 삶을 어찌 다시 그릴까 하며 지내니까 삼십년 쯤 견디던 불안, 외로움, 불면증은 많이 가신 느낌이다. 사십년 쯤 살면 그제야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적당히 만족하고 살면 좋은데 월급 따박따박 주는 직장 만큼은 어쩌다보니 견디는 것조차 힘든 장소가 되어 밥 먹다 말고 중3 때 듣던 크라잉넛의 갈매기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자동재생이 되었다. 난 여길 떠나고 싶어. 난 여길 떠나가야 해. 내가 하는 모든 일도 조직이 유지되고 돌아가기 위해 정해지고 요구되는 모든 규정도 다 의미 없고 불합리하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다. 그러다가도 생각해보면 정말로 쓸모 있는 실물을 만들어내는 건 일이차산업 빼고는 대부분 아니잖나, 소위 가치와 서비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편의와 삶의 질 향상을 느끼게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나, 결국 내가 채우고 있는 자리도 누군가 해야 하는 시간 때우기, 문서 채우기, 관리하기, 시간에 맞추기, 뭔가를 알리고 알려주고 연락하고 그런 일도 사람이 해야 돌아가는 일이잖아, 그러니 너무 폄훼하지 말자,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추운 복도를 걸었다. 자기 일에 만족하며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동료들 앞에서 다 쓸데 없어!하는 마음은 티 내지 말아야지.

로또도, 부동산도, 주식도 나를 구해주지는 못하니 결국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면서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고 틈틈이 책 읽고 커피 마시면서 잘 살자(?) 아무말 잔치나 가끔 하면서 남은 삶을 버티자, 하는 결론 이상 가지 못했다. 이제 거의 다 읽은 오바마 회고록 속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세상을 바꾸거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꿈은 꾸지 못하겠다. 나 자신을 조금 더 견딜만한 쪽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일 밖에는. 그거라도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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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3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는 중3이다 좋네요ㅋ 열반인님은 그래도 바른생활 중이신거 같아요~!! 주식은 안타깝습니다 ㅜㅜ

반유행열반인 2021-11-13 13:51   좋아요 3 | URL
주식은 장기 투자야… 하고 그냥 내버려두고 있고요 ㅋㅋ(그러면서 또 자꾸 사모음…) 중3인데 수학도 풀고 맥주도 먹고 할 거 다(?)하는 날라리네요. 어릴 땐 안 그랬던 거 같은데 ㅋㅋㅋㅋ고1때 되어서야 소주마셨는데…

붕붕툐툐 2021-11-13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래 중3때가 술 가장 많이 마실 때 아닌가요?ㅎㅎ
주식이 반열님 구원할 거 같음!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11-13 19:35   좋아요 2 | URL
저는 좀 늦되서 첫 중3 때는 아직 못 마셔봤는데 현재 예비고1(?) 중에는 적당히 마시고 있네요. 알콜이 머리 둔하게 해서 수학 안 풀려서 이제 안 마셔! 하고는 또 어쩌다 보니 치킨 삼겹 앞두고는 쳐마시고 있음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11-13 19:36   좋아요 2 | URL
주식은 그냥…삶의 태도에 관해 배우는 하나의 방법입니다…누구도 구하지 못해 그놈들은… ㅋㅋㅋ

붕붕툐툐 2021-11-13 22:45   좋아요 2 | URL
그래도 혹시 구원 받으면.. 꼭 알려주세요~ㅎ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11-13 22:48   좋아요 1 | URL
넴 열반은 대승해야쥬 ㅎㅎㅎㅎ

Yeagene 2021-11-13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이런 글 너무 좋은데요..요즘 열반인님께 궁금해하던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요 ㅎㅎ뜬금없지만 열반인님 소설 보고 싶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11-13 19:48   좋아요 2 | URL
소설은 재미없고 구질구질해요 ㅋㅋㅋ 늘 좋게 봐주시는 예진님 감사합니다! 저는 겨우겨우 커피먹고 도핑하는데 차 한 잔 예쁜 잔에 담은 사진 올려주시는 거 보면 잔잔하고 차분한 기품이 느껴져요 ㅎㅎ
 
[전자책] 나의 대답은 오직 과학입니다 - 천체물리학자의 우주, 종교, 철학, 삶에 대한 101개의 대답들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음, 배지은 옮김 / 반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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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7 닐 디그래스 타이슨.

두 달 전쯤 고교 수학공부를 시작했다. 이과수학까지 해 보겠어! 하는 각오로 교과서를 구해 고1때 배우는 수학부터 수학1, 수학2 까지 다 풀고 나니 10월이 끝났다. 그런데 수2가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의 그 과목이 아니어서 그냥 내가 고딩 때 배운 거랑 거의 같은 단원이었다. 아이참 나는 극한이랑 미분이랑 적분도 배운 오래된 문과 사람이었어… 이과 수학 수능 선택 과목 중 미적분 교과서를 펼치니 첫 단원이 수열의 극한…이것도 배웠던 거였다. 그렇다고 엄청 잘 푸는 건 아니고 대단원 평가 같은 건 답을 봐야지 겨우 따라가는 문제도 있다. 많다.
곧 미분법 적분법 단원 들어가면 이제는 진짜 이과 수학 마스터…는 아니고 맛보기 한 바퀴는 도는 거다. 두근두근.

요즘은 공부할 마음만 먹으면 수단은 얼마든지 널려 있어서, ebs수능 페이지에 가면 강의도 무료 수강할 수 있고, 수능특강 교재는 pdf로 공짜로 받을 수 있다. 교과서도 풀어 봤으니 엣헴, 나도 수능 문제 도전! 하면서 무료로 다운 받은 수학1, 2 pdf 파일을 풀기 시작했는데…너무 어려워서 좌절하고 말았다. 답 안 보면 풀 수 없는 문제가 태반이다...시무룩…. 수능특강 레벨3 정도는 슥슥 풀 줄 알아야 진정한 이과생 아니겠는가!!! 그때까지 달리는 거다!!!하면서 꾸역꾸역 지수 로그함수를 거쳐 삼각함수를 통과중이다. 나중에는 강의도 들어봐야겠다. 아직은 동영상까지 볼 엄두도 시간도 안나서 그냥 풀이집만 열심히 끼고 틈틈이 풀고 있다.

그렇게 적분법까지 끝단원 찍고 나면 이제 진짜 이과생 흉내라도 낼 수 있도록 화학, 생물, (가능하면) 물리 과목 교과서도 훑어볼 예정이다. 수학은 그러니까 과학 공부를 제대로 하기 전 워밍업이다. 그런데 물리 안 할 거면 미적분은 그닥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지만 노쇠한 뇌가 연산 실수가 너무나 많다. 식 잘 세우면 뭐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자꾸 틀려…공식은 왜 이렇게 못 외우고 자꾸 까먹어… 앗, 그 공식이면 풀리겠는데 그 공식이 자세하게 뭐였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컨닝하길 반복…

헌법에 관한 청소년 교양서 읽다 미처 다 못 보고 반납되어 향에 관한 화학책을 봤었는데, 이번에는 오바마 자서전을 꾸역꾸역 700페이지까지 겨우 보고 주말에 다 볼 거야! 하는 중에 또 반납되어 버렸다. 그리고 예약된 이 책이 대출되어 있었다. 뭔가 자꾸 이제 문과생 노릇 그만하고 이과생의 교양을 익혀야지? 하는 대출 자동(?) 시스템이 작동하는 기분이라 가볍게 읽기로 했다. 사실 이 책 읽는다고 일요일에는 아직 수학공부를 못했습니다… 독서가 더욱 즐거워지는 수학문제 풀이의 마법…책이 안 읽히시면 수학공부를 해 보시길 권합니다…

닐 그래이스 타이슨은 이전에 재미있게 본 명왕성 연대기의 저자이다.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해 일반인 대상 교양서도 많이 쓰고 텔레비전 출연이나 팟캐스트 진행, SNS도 열심히 하고 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만큼 유명해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과학에 관해 묻는 편지나 메일을 보내왔고, 이 책은 그 서신 교환 중 일부를 엮어낸 것이다. 과학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해 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눈높이 맞춰 답변해주는 모습이 좋았다. 물론 늘 친절한 것은 아니고 과학을 엉뚱하게 부정하거나 헛소리하면서 자신의 근거 없는 믿음을 강요하는 무례한 사람들한테는 아주 냉정하게 때찌하는 글도 많았다.
그래, 불확실하고 불안한 삶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건 다정한 곁의 사람들, 그리고 과학, 과학이다!!! 내가 나인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건지 약간의 힌트를 건네준 것도 뇌과학, 심리학, 정신의학, 내분비의학, 화학, 결국에는 과학이었다. 우리는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대부분의 예측은 다 틀린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나온 일들을 설명하고 다시 닥쳐올 비슷한 일에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을 갖출 때 과학으로부터 도움 받을 수 있다. 만능은 아니지만 최선이 그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잘 맞지 않는다고 늘 욕을 먹는 기상예보도 사실은 엄청난 수준의 예측이 아닌가 싶었다. 오늘 추울지 더울지 미리 알려주는 하루 기온은 대개 정확해서 아침에 옷차림을 적당히 정할 수 있지 않은가! 비는…농사 짓는 직업은 아니니 비는 적당히 오면 좋고 안 와도 좋고…

내일 낮 한시 반 무렵부터 두시까지 달이 금성을 가리는 금성엄폐 현상이 있다는 걸 우연히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와, 그거 보고 싶어, 집에 있는 쌍안경으로 망원경 대신 되려나, 아니, 낮이라 달이 해쪽으로 남중하는 시간이면 눈 부셔서 못 보려나, 일하다 점심 때 나와서 잠깐 볼 수 있으려나, 낮에 천체를 보는 방법이 천체망원경 말고는 없나? 낮에는 달이 어느 위치를 지나지? 겨우 천체물리학자가 쓴 과학 교양서 한 권 읽은 것치고는 급작스레 천체 관측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지만 참 아는 게 없구나, 하면서 국립과학관 홈페이지도 가고 천문 달력 같은 것도 찾아보다가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은 새벽부터 한낮까지 비가 온다고 한다.
ㅎㅎㅎㅎ
그래도 왠지 날씨가 일찍 갤 수도 있으니까 쌍안경 챙겨서 출근해야지.
일단 밤에 쌍안경으로 하늘 보이나 오늘 밤에 방충망 열고 베란다에서 시험해봐야지.
망원경 당근마켓에 왜 검색하냐. 참아 좀…


+밑줄 긋기
-맞습니다. 우주는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살고 싶어 하지요. 그러니 소행성의 경로를 바꾸고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발견하고 허리케인, 지진해일, 화산 폭발의 위력을 줄일 방법을 함께 찾아봅시다. 이것은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함께 노력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지구를 위한 희망은 거기에 있습니다. 이 희망은 기도나 자기 성찰 같은 행위가 보장하는 희망보다 훨씬 더 큰 것입니다.

-IQ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의 학업 성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첫 직장에 입사하고 나면 대학 학점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대인관계, 리더십, 현실적인 문제 해결 능력, 성실성, 비즈니스 감각, 신뢰성, 야망, 근무 윤리, 친절, 따뜻한 마음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인종과 IQ의 관련성에 관한 문제는 인종과 머리카락 색깔, 또는 인종과 음식 선호도처럼 어떠한 실질적 결론도 내놓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수많은 속성들과 마찬가지로, 점성술은 문명의 성취물이 아니라 문화적 결함이었을 뿐입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영감을 얻기 위해 인류 전체를 돌아봅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조상이 왕족인지 극빈자인지, 성인인지 죄인인지, 용감한 자였는지 겁쟁이였는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지구는 지각을 화산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재활용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된 지각의 나이는 40억 년 ± 1,000만 년입니다.

-“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는 외부의 힘에 의해 정해진 삶의 목적 같은 것을 암시합니다. 나는 그런 목적은 우리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정의된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내 인생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것입니다.

-우주의 한 가지 좋은 점은 (물론 장점은 무수히 많겠지만) 우주가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주에 대해 더 많이 배울수록 우주의 더 많은 부분을 소유할 수 있지요.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아마도 나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말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성립 가능한 유전자 조합의 대부분)은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며, 따라서 죽을 기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적 관점은 지구를 티끌처럼 보이게 하지만, 이 티끌은 소중한 티끌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집이다.

-우주적 관점은 지구상의 생명체와 우리의 유전적 연대의식뿐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우주 안의 모든 생명체와의 화학적 연대의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더 나아가 우주 자체와 우리의 원자atom적 연대의식까지도.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이다.

-그래요. 관심 가는 대상을 만져볼 수 없다는 건 짜증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체물리학에서는 망원경이 손만큼이나 좋을 뿐 아니라 많은 측면에서 손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도대체 누가 퀘이사나 블랙홀 같은 걸 만지고 싶어 한단 말입니까? 그런 걸 만지는 게 그다지 안전하지는 않을 겁니다.

엊저녁의 공부…문제 똑바로 못 푸냐…계산 틀리는 거 봐라…아직은 문과 나부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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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1-07 17: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의 꾸준한 성취, 그리고 저리 난해한 기호를 해독해내시는 탁월한 능력에 감탄과 응원을 전해드립니다!! 정말 멋지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11-07 18:02   좋아요 3 | URL
성취라기엔 아직 비루한 기초 수준이지만 늘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능한한 오래오래 가보겠습니다 ㅎㅎㅎㅎ

Yeagene 2021-11-07 18: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일단 수2까지 보셨군요..열반인님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1-11-07 18:13   좋아요 3 | URL
수2가 그냥 예전 수1이고 요즘 문과생 수능도 수2까지 보나 보더라구요..수학도 선택과목이 있고 그게 이과용 과목…기하와 미적분 중 고민하다 일단 미적분 시작했어요 ㅋㅋㅋㅋ 화이팅 감사합니다!!!

scott 2021-11-07 20: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말씀이 맞습니다 요즘 맘만 먹으면 공부 할 수 있는 영상이 넘쳐 나능! 수2까지 섭렵하시는 열반이님! 뇌 건강을 위해 응원합니다! 아이들도 자극 받을 것 같습니다. 울 아부지 제가 수험생일때 같이 문제 푸시더니 만점을 ㅋㅋㅋ

2021-11-07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11-07 20:53   좋아요 2 | URL
대단한 scott님, 대단한 scott님 아부지!!!!!

2021-11-07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7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11-07 2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도 반열샘 따라 급 수학 공부 하고 싶다,,, 못말리는 모든 따라쟁이;;;;

반유행열반인 2021-11-08 07:12   좋아요 2 | URL
저는 라로님 따라서 공부하는 데요? ㅋㅋㅋ생리학 해부학까지는 못 갈 거 같지만 ㅋㅋㅋㅋ

라로 2021-11-08 18:27   좋아요 1 | URL
제 생각엔 충분히 하실 것 같아요!!! 반열샘 멋짐 터짐요!!!👍👍👍

psyche 2021-11-14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완전 이과사람인데... 심지어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저 문제가 외계어로 보이네요. 세상에! 하나도 모르겠어요. ㅜㅜ

반유행열반인 2021-11-14 11:26   좋아요 0 | URL
등차수열 등비수열 나오고 또 배우는 급수의 합? 구하는 문제인데 와 다 까먹었어- 하고 보니 겨우 일주일 전에 푼 거네요 ㅋㅋㅋㅋㅋ
 
[전자책] 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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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3 박서련.

장기하와 얼굴들-그러게 왜 그랬어
https://m.youtube.com/watch?v=t9GYZ2InEq0

체공녀 강주룡으로 감동 한 방 먹여줬던 박서련이 이후로는 크게 빛을 못 보는 것 같았다. 마르타의 일이 나온 건 알았는데 다른 독자가 그다지 좋은 평 안 하는 거 보고 읽기를 미뤘다. 그러다가 이 책이 눈에 띄어서 빌렸다. 책의 기획을 제대로 알고 봤으면 아마 안 봤거나 조금은 덜 뾰족한 마음으로 봤을 건데, 아 이거 뭐야 습작이야 왜 이 지경이야…두 작품까지는 보면서 재미도 없고, 감흥도 없고, 마냥 아쉽다가 마지막 작품 ‘총’은 조금 낫다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 작가의 에세이? 산문을 보니 이 소설들이 조금 더 어릴 때 쓴 글들을 고쳐 낸 것임을 알았다.
본인도 아쉽고 미흡하게 여기고 가끔은 부끄럽던 글들을 굳이 책으로 엮어 내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아직 잘 쓰고 창창한 것들만 보여줘도 더 사랑 받을까 말까 한 시절에. 그나마 시간 순으로 엮고 그렇게 점점 나아졌다, 그러니 끈질기고 꾸준하게 쓰는 거다! 쓸 테니 계속 읽어주십시오! 하는 건가… 그러느니 그냥 더 잘 쓴 최근 작품들에 집중하고 지나간 건 좀 더 미뤄두거나 굳이 세상에 내놓고 싶다면 더 고치고 고쳐 가망이 보이면 보여주지… 하여간에 이 책 덕에 박서련 글은 더 익을 때까지 최대한 미뤄두고 싶어졌다.

+밑줄 긋기

-1은 나의 애인이다. 나는 2의 애인이다. 1은 자신이 나에게 1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2는 스스로 2가 되기를 원했다. 둘은 어찌어찌 만난 적도 있다. 나중에 1은 확신 없이 2와 나의 관계를 추궁했고 2는 1이,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근사한 사람이 아니어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중)

-나는 그때 그 이상한 각오를 또 품고 모친의 애인을 기다리고 있다. 모친의 애인과, 자버리겠다. 모친의 연애를 망쳐놓고야 말겠다. 첫 섹스를 준비하던 때처럼 내가 무언가를 겁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서 더 불안하고, 그래서 더 가슴이 뛴다. (‘호르몬이 그랬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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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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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 김정연.

주말엔 만화책이지. 사실 이달엔 읽은 책 10권이 안 되어서 급하게 자릿수 바꾸기용으로 읽던 책을 마저 보았다. 미슐랭, 미쉘린 가이드 오마주 느낌의 제목 속 이세린이 이 책 주인공인 음식모형제작자이다. 일의 특성상 클라이언트 만날 때 말고는 홀로 작업실에서 모형을 만들다보니 만화 형식은 대부분 주인공의 독백 아니면 회상으로 차 있어 읽다보면 단조롭기도 한데, 이야기 따라가다 보면 지루하지는 않았다.

만화나 소설에서 욕 나오면 이상하게 신나가지고 찍어 놓는 나란 새끼의 취향…백년 가까이 욕만 하던 김첨지에게 어릴 적 세린이가 쌍욕하니까 더 신났다. ㅋㅋㅋ



딱딱해서 못 먹잖아. 김첨지 이 ㅅㅂ놈아.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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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10-31 19: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따라서 웃어도 돼죠? 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10-31 19:14   좋아요 4 | URL
같이 웃어요 깔깔깔깔

새파랑 2021-10-31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만화책이었군요 ㅋ 좀 엽기적이군요 ^^

반유행열반인 2021-10-31 20:51   좋아요 1 | URL
저 장면 말고는 대체로 잔잔하게 뼈때려요 ㅎㅎㅎㅎ

붕붕툐툐 2021-10-31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넘 재밌게 읽었어용!!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10-31 20:52   좋아요 2 | URL
붕툐님 먼저 읽으셨죠 ㅎㅎㅎ역시 만화책은 좋은 독서닷 ㅎㅎ

파이버 2021-10-31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딱딱해서 못 먹잖아 ㅋㅋㅋㅋㅋㅋ 김첨치에게 욕 먹이는게 속 시원하네요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11-01 07:05   좋아요 1 | URL
어려서 음식 모형 가지고 노는 걸 회상하는 장면인데 깨알 같은 게 마음에 들어가지고 ㅋㅋㅋ

Yeagene 2021-11-03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이거 궁금했는데 열반인님 보셨구나...한번 볼까 싶기도 하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11-03 14:29   좋아요 1 | URL
엄청 재밌는 건 아닌데 소소하고 촌철도 있네요 ㅎㅎㅎ
 
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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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0 정용준.

개를 잡는 걸 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까맣고 눈썹만 노란 개를 촐랑이라 부르며 예뻐했다. 사촌오빠와 나와 내 동생은 멋대로 땡칠이라고 불렀다. 땡칠이는 늘 식구들을 잘 따르고 순했지만,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낳았을 때는 계단 밑 어둠에 숨어 으르렁거리며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 땡칠이의 새끼가 다 큰 수캐가 되자 동네 할아버지들이 개를 줄에 매달고 몽둥이로 때렸다. 개는 오줌을 싸고 자는 듯 눈을 감았다. 집안에서 창문 바깥으로 끔찍한 광경을 그대로 보았는데도 슬픔이나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애써 덤덤하게 목격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방어 기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게 내버려 두고 그것도 모자라 냄비 가득 끓여낸 붉은 개국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야만의 시절이었다.
잡은 개를 손질하고 음식으로 만드는 일은 할머니 몫이었을 것이다. 삼십 년 가까이 지나 오늘 처음 든 생각이었다. 가장 아끼는 개가 낳은 새끼를 받은 것도 할머니, 미역국을 끓여 주고 새끼와 어미가 춥지 말라고 헌옷을 밀어 넣어준 것도 할머니였는데, 개를 잡자는 말에 어떤 저항도 못하고 아궁이에 땔감을 밀어넣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며 할머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몇 년 뒤 할머니는 꼭 그 개처럼 할아버지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 후유증으로 오래 앓다가 저녁 어두울 때 밭으로 나가는 길에 쓰러지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통곡을 하며 기어올라간 할머니의 옷자락을 슬며시 내려 멍자국을 가렸고, 그렇게 모든 게 가려졌다. 할아버지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지금도 용인 시골 구석에 살고 있다. 개만도 못한 여자로 살다 개같이 죽는 일을 피해 서울로 온 엄마와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네 식구들을 떠올리면 몸과 마음 깊은 곳 어딘가가 부르르 떨린다.

처음 읽었던 정용준의 소설집에 개 잡는 사람이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개가 죽던 날이 생각났다. 개 같은 아버지, 상처 받고 망가진 사람, 입에서 갇혀 있다 터지는 말더듬, 투렛 증후군, 뇌전증 발작, 누군가를 죽인 소년, 겨울의 한복판, 온통 어둡고 슬픈데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체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소설집 읽기 전 처음 읽은 정용준 소설이 젊은작가상 수상집의 ‘선릉산책’이었는데, 이것도 슬프긴 하지만 꽤나 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쓴 소설의 밝기가 이 정도라면 쓰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가 싶었다. 사 두고 읽지 않은 정용준 책이 세 권이나 있는데도 그래서 ‘선릉 산책’이 실린 신작 소설집을 먼저 보기로 했다. 작가들 프로필 사진은 시선을 내리깔거나 옆모습을 보이며 독자를 향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소설집의 작가 사진은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게 괜히 반가웠다. 영영 시커먼 어둠에 묻혀 있지 않고, 자식을 여럿 낳아 기르고, 쓰기를 멈추지 않고, 그런 건 약간은 희망적이어서, 나라고 늘 우울하겠나, 나아지고 있지 않나, 덩달아 나아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

소설 세 편은 수상작품집과 단행본으로 미리 읽었던 건데, 다시 읽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건 많이 고쳐서인지 내가 그 사이 많이 달라진 건지 늘 궁금하지만 알 수 없다. 나는 개를 예뻐하지 않고 지나가는 개를 보며 호들갑떠는 친구를 옆에서 보면 나보다 개에게 더 집중한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짧은 수명 때문에, 아니면 아빠나 할아버지가 개를 학대하고 마지막에는 건강원이나 가마솥으로 보내버리는 걸 반복한 탓에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일찍 떠나 보내야 했던 개에게 아예 정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강제로 개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개가 사라진 걸 보고도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슬퍼하지도 못하고 꾹꾹 눌러 참을 필요도 없이 살고 있으니까 억지로 개를 멀리할 이유가 없다. 무심할 땐 무심하고 귀여울 땐 귀여워하는 법을 배워야지.

-두부
이 소설에서는 두부, 또는 승희, 로 불리는 개였지만, 나도 남의 목도리를 내 목도리인 것으로 착각하고 집으로 들고 온 적이 있었다. 다시 돌려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사라지는 것들
두 번째 읽는데, 삶을 놓고 싶은 가족을 누군들 쉬이 놓을 수 있을까 싶다. 지난 주에 외할머니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가 외가에 갔다. 할머니 몸이 편찮으신 건 맞는데, 얼른 할머니를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던 큰외숙모가 과장해서 연락을 한 거라 놀라서 밤중에 먼길 달려갔던 엄마는 화가 많이 난 채 돌아왔다. 당장 다음 날 출근한 우리 대신 아이들을 봐야 하는 엄마가 굳이 붙드는 할머니를 만류하며 집으로 돌아오기 전, 나 며칠 후에 다시 올테니까 죽지 말고 있어, 하자 할머니가 안 죽으면 기다리지, 하고 얼려둔 떡이며 전이며 옥수수 같은 걸 잔뜩 싸서 배웅했다고 했다. 열심히 기다리셨는지 별고가 없이 한 주가 가고 엄마는 오늘 새벽 일찍 할머니를 뵈러 시골에 가셨다. 늙으면 오래 살아야 서로 힘들고 죽는 게 맞다, 하면서도 먼길 달려가는 마음이란, 사라지는 것들을 막을 수 없어도 그렇게 곁에 있어주는 마음을 언젠가 나도 알게 될까.

-선릉 산책
선릉에 한 번 가봤다. 정릉 산책이라고 이 소설을 자꾸 틀리게 말하는 친구를 놀리던 기억도 난다. 두 번째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와닿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음의 절정인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도 거기서도 남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안 망하고 이만큼이나마 버티고 있는 건가 싶었다.

-두번째 삶
약간은 작위적인 느낌도 들었지만, 오래 갇혀서 문제가 무언가 또 오래 고민하고 늦게나마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죽은 우지운은 돌아오지 못하잖아. 지긋지긋하지만 끝나지 않는 학교폭력 서사. 유튜브가 보편이 된 시대라 컨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코
단행본 나온 걸 작년 이 무렵 봤는데, 일러스트가 너무 강해서 그림 없이 텍스트만 본 이번 독서가 더 나았다. 그때는 뭔가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이번에는 더 밝게 읽혔다. 주변에 투렛 증후군 앓는 아이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걸 그 아이와 가족들의 엄살처럼 취급해서 언성을 높이고 싸운 적이 있었다. 이 책이나 올리버 색스 박사 책을 안 봤다면 나도 그들처럼 무지하고 잔인하게 굴었을 지도 모르겠다.

-미스터 심플
이건 뭔가…더 현대 식품관에서 김금희가 멸치 팔던 것처럼 당근마켓 피피엘(실제로는 아닐 겁니다…)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도 감동인 부분이 있는 소설이었다.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요. 중고직거래의 미묘함은 정말이지 소설 소재가 될 만한데 정용준이 먼저 써 버렸다. ㅋㅋㅋㅋ

-스노우
종묘가 사라졌다고 근심하는 주인공 볼 때는 할머니 학대하다가 돌아가시게 만들고 증조부한테 죽어야 돼, 하고 불효 저지르던 할아버지가 정작 죽은 이들의 제사를 엄청 챙기고 묫자리를 살피고 정돈하던 소름끼치는 모습이 생각나서 조금 짜증이 났다. 거대한 재해가 우리 사는 곳을 덮치고 그래서 사라지기 전에는 미처 소중한 줄 모르던 것들이 사라지는 상상, 사라지고 나서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누군가와 그래도, 지금 없어도 있었던 것을 말로 글로 마음으로 남기면 된다고 위로하는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대조해놓고 거기에 고양이까지 끼얹은(?)소설인데 약간의 훈훈함은 있었다. 이도보다는 서유성 쪽으로 확 기울게 호의적으로 써 놓았는데 뭐 글쟁이가 글쟁이 편 드는 게 당연한 일이지 하고 너그럽게 넘기기로 한다…(내가 뭐라고 넘기고 말고 함…ㅋㅋㅋㅋ)

+밑줄 긋기
-사람들은 날 거짓말쟁이나 나쁜 사람으로 취급했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다 같은 취급을 받을 거야. 난 그걸 알았지만 잊어버렸고 그 대가는 컸어. 나는 금방 잊혔어. 나를 아는 사람들, 내 증상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순진하게도 나만 있는 모습 그대로 말했어. 보호막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을 땐 온몸이 잠길 만큼 깊은 물속에 빠져 있었지. 질식할 뻔했어. 죽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죽을 줄 알았어. 사람들은 내가 아닌 내가 갖고 있는 증상을 알고 있던 거였고 그 증상을 통해 충격이든 감동이든 감상이든 그런 걸 받고 싶었던 것뿐이었어. (174, ‘이코’ 중)

-새벽의 빨래방은 아름답다. 기름과 섬유유연제가 섞인 묘한 냄새. 훈기와 습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공기. 시끄러운 세탁기 소리와 그것을 에워싸고 가만히 눌러주는 적막과 고요. 어두운 거리가 보이는 환하고 커다란 창문까지. 나른한 몸과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 밖을 보면 쓸쓸해 죽을 것 같은데, 그것도 좋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은 감상적인 기분까지 든다. 세탁과 건조에 각각 삼십 분. 짧지만 순도 높은 시간이다. 잘 읽히고 잘 써진다. 활자가 눈을 통해 뇌로 바로 인쇄되는 것 같다. 생각과 이미지는 막힘없이 단어와 문장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상하지. 여기에 오면 좋을 걸 알면서, 이렇게 써지고 읽게 될 것을 알면서, 안 오게 된다. 아니, 그래서 안 오는 것일지도. 좋아지는 것을 원하면서, 좋아지는 나 자신은 원하지 않는 마음. 지친다. 지겹고. (199, ’미스터 심플’ 중-루시아 벌린의 ‘에인절 빨래방’도 생각나고, 역시 쓰는 사람은 빨래방 한 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하면서도 아직 한 번도 못가보고 지나치기만 함…부르주아네…)

-이혼하고 상실을 겪고 슬픔을 느꼈다고 대단한 성찰을 한 건 아닙니다. 나이들면 뭔가 현명해지고 아는 것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착각이에요. 모르는 것만 많아지고 그만큼 의문만 깊어집니다. (216, ‘미스터 심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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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1-10-31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젊작상 수상집에서 <선릉산책>을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ㅠㅠ
열반인님 많은 어려움을 헤치시고 참 잘 자라신 것 같습니다.늘 응원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10-31 18:45   좋아요 2 | URL
네 저도 바로 그 2017년 수상집이 첫 젊작 독서였는데 그책에 김금희 최은미 백수린 정용준 최은영 강화길 골고루 다 있었습니다 ㅋㅋㅋ제 한국소설 독서의 씨앗 같은 책이었네요…정작 대상탄 임현 작가 책이 제일 드물게 보이네요. (라고는 해도 소설집 나오자마자 읽음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10-31 18:48   좋아요 1 | URL
아 ㅋㅋㅋㅋ그런데 저 중에 정용준만 2016년이네요 ㅋㅋㅋㅋ2016년은 나중에 봄 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1-10-31 18:50   좋아요 1 | URL
아 2017 년이군요!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이 넘나 강렬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