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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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0 정용준.

개를 잡는 걸 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까맣고 눈썹만 노란 개를 촐랑이라 부르며 예뻐했다. 사촌오빠와 나와 내 동생은 멋대로 땡칠이라고 불렀다. 땡칠이는 늘 식구들을 잘 따르고 순했지만,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낳았을 때는 계단 밑 어둠에 숨어 으르렁거리며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 땡칠이의 새끼가 다 큰 수캐가 되자 동네 할아버지들이 개를 줄에 매달고 몽둥이로 때렸다. 개는 오줌을 싸고 자는 듯 눈을 감았다. 집안에서 창문 바깥으로 끔찍한 광경을 그대로 보았는데도 슬픔이나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애써 덤덤하게 목격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방어 기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게 내버려 두고 그것도 모자라 냄비 가득 끓여낸 붉은 개국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야만의 시절이었다.
잡은 개를 손질하고 음식으로 만드는 일은 할머니 몫이었을 것이다. 삼십 년 가까이 지나 오늘 처음 든 생각이었다. 가장 아끼는 개가 낳은 새끼를 받은 것도 할머니, 미역국을 끓여 주고 새끼와 어미가 춥지 말라고 헌옷을 밀어 넣어준 것도 할머니였는데, 개를 잡자는 말에 어떤 저항도 못하고 아궁이에 땔감을 밀어넣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며 할머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몇 년 뒤 할머니는 꼭 그 개처럼 할아버지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 후유증으로 오래 앓다가 저녁 어두울 때 밭으로 나가는 길에 쓰러지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통곡을 하며 기어올라간 할머니의 옷자락을 슬며시 내려 멍자국을 가렸고, 그렇게 모든 게 가려졌다. 할아버지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지금도 용인 시골 구석에 살고 있다. 개만도 못한 여자로 살다 개같이 죽는 일을 피해 서울로 온 엄마와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네 식구들을 떠올리면 몸과 마음 깊은 곳 어딘가가 부르르 떨린다.

처음 읽었던 정용준의 소설집에 개 잡는 사람이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개가 죽던 날이 생각났다. 개 같은 아버지, 상처 받고 망가진 사람, 입에서 갇혀 있다 터지는 말더듬, 투렛 증후군, 뇌전증 발작, 누군가를 죽인 소년, 겨울의 한복판, 온통 어둡고 슬픈데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체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소설집 읽기 전 처음 읽은 정용준 소설이 젊은작가상 수상집의 ‘선릉산책’이었는데, 이것도 슬프긴 하지만 꽤나 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쓴 소설의 밝기가 이 정도라면 쓰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가 싶었다. 사 두고 읽지 않은 정용준 책이 세 권이나 있는데도 그래서 ‘선릉 산책’이 실린 신작 소설집을 먼저 보기로 했다. 작가들 프로필 사진은 시선을 내리깔거나 옆모습을 보이며 독자를 향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소설집의 작가 사진은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게 괜히 반가웠다. 영영 시커먼 어둠에 묻혀 있지 않고, 자식을 여럿 낳아 기르고, 쓰기를 멈추지 않고, 그런 건 약간은 희망적이어서, 나라고 늘 우울하겠나, 나아지고 있지 않나, 덩달아 나아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

소설 세 편은 수상작품집과 단행본으로 미리 읽었던 건데, 다시 읽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건 많이 고쳐서인지 내가 그 사이 많이 달라진 건지 늘 궁금하지만 알 수 없다. 나는 개를 예뻐하지 않고 지나가는 개를 보며 호들갑떠는 친구를 옆에서 보면 나보다 개에게 더 집중한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짧은 수명 때문에, 아니면 아빠나 할아버지가 개를 학대하고 마지막에는 건강원이나 가마솥으로 보내버리는 걸 반복한 탓에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일찍 떠나 보내야 했던 개에게 아예 정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강제로 개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개가 사라진 걸 보고도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슬퍼하지도 못하고 꾹꾹 눌러 참을 필요도 없이 살고 있으니까 억지로 개를 멀리할 이유가 없다. 무심할 땐 무심하고 귀여울 땐 귀여워하는 법을 배워야지.

-두부
이 소설에서는 두부, 또는 승희, 로 불리는 개였지만, 나도 남의 목도리를 내 목도리인 것으로 착각하고 집으로 들고 온 적이 있었다. 다시 돌려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사라지는 것들
두 번째 읽는데, 삶을 놓고 싶은 가족을 누군들 쉬이 놓을 수 있을까 싶다. 지난 주에 외할머니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가 외가에 갔다. 할머니 몸이 편찮으신 건 맞는데, 얼른 할머니를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던 큰외숙모가 과장해서 연락을 한 거라 놀라서 밤중에 먼길 달려갔던 엄마는 화가 많이 난 채 돌아왔다. 당장 다음 날 출근한 우리 대신 아이들을 봐야 하는 엄마가 굳이 붙드는 할머니를 만류하며 집으로 돌아오기 전, 나 며칠 후에 다시 올테니까 죽지 말고 있어, 하자 할머니가 안 죽으면 기다리지, 하고 얼려둔 떡이며 전이며 옥수수 같은 걸 잔뜩 싸서 배웅했다고 했다. 열심히 기다리셨는지 별고가 없이 한 주가 가고 엄마는 오늘 새벽 일찍 할머니를 뵈러 시골에 가셨다. 늙으면 오래 살아야 서로 힘들고 죽는 게 맞다, 하면서도 먼길 달려가는 마음이란, 사라지는 것들을 막을 수 없어도 그렇게 곁에 있어주는 마음을 언젠가 나도 알게 될까.

-선릉 산책
선릉에 한 번 가봤다. 정릉 산책이라고 이 소설을 자꾸 틀리게 말하는 친구를 놀리던 기억도 난다. 두 번째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와닿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음의 절정인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도 거기서도 남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안 망하고 이만큼이나마 버티고 있는 건가 싶었다.

-두번째 삶
약간은 작위적인 느낌도 들었지만, 오래 갇혀서 문제가 무언가 또 오래 고민하고 늦게나마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죽은 우지운은 돌아오지 못하잖아. 지긋지긋하지만 끝나지 않는 학교폭력 서사. 유튜브가 보편이 된 시대라 컨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코
단행본 나온 걸 작년 이 무렵 봤는데, 일러스트가 너무 강해서 그림 없이 텍스트만 본 이번 독서가 더 나았다. 그때는 뭔가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이번에는 더 밝게 읽혔다. 주변에 투렛 증후군 앓는 아이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걸 그 아이와 가족들의 엄살처럼 취급해서 언성을 높이고 싸운 적이 있었다. 이 책이나 올리버 색스 박사 책을 안 봤다면 나도 그들처럼 무지하고 잔인하게 굴었을 지도 모르겠다.

-미스터 심플
이건 뭔가…더 현대 식품관에서 김금희가 멸치 팔던 것처럼 당근마켓 피피엘(실제로는 아닐 겁니다…)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도 감동인 부분이 있는 소설이었다.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요. 중고직거래의 미묘함은 정말이지 소설 소재가 될 만한데 정용준이 먼저 써 버렸다. ㅋㅋㅋㅋ

-스노우
종묘가 사라졌다고 근심하는 주인공 볼 때는 할머니 학대하다가 돌아가시게 만들고 증조부한테 죽어야 돼, 하고 불효 저지르던 할아버지가 정작 죽은 이들의 제사를 엄청 챙기고 묫자리를 살피고 정돈하던 소름끼치는 모습이 생각나서 조금 짜증이 났다. 거대한 재해가 우리 사는 곳을 덮치고 그래서 사라지기 전에는 미처 소중한 줄 모르던 것들이 사라지는 상상, 사라지고 나서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누군가와 그래도, 지금 없어도 있었던 것을 말로 글로 마음으로 남기면 된다고 위로하는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대조해놓고 거기에 고양이까지 끼얹은(?)소설인데 약간의 훈훈함은 있었다. 이도보다는 서유성 쪽으로 확 기울게 호의적으로 써 놓았는데 뭐 글쟁이가 글쟁이 편 드는 게 당연한 일이지 하고 너그럽게 넘기기로 한다…(내가 뭐라고 넘기고 말고 함…ㅋㅋㅋㅋ)

+밑줄 긋기
-사람들은 날 거짓말쟁이나 나쁜 사람으로 취급했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다 같은 취급을 받을 거야. 난 그걸 알았지만 잊어버렸고 그 대가는 컸어. 나는 금방 잊혔어. 나를 아는 사람들, 내 증상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순진하게도 나만 있는 모습 그대로 말했어. 보호막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을 땐 온몸이 잠길 만큼 깊은 물속에 빠져 있었지. 질식할 뻔했어. 죽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죽을 줄 알았어. 사람들은 내가 아닌 내가 갖고 있는 증상을 알고 있던 거였고 그 증상을 통해 충격이든 감동이든 감상이든 그런 걸 받고 싶었던 것뿐이었어. (174, ‘이코’ 중)

-새벽의 빨래방은 아름답다. 기름과 섬유유연제가 섞인 묘한 냄새. 훈기와 습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공기. 시끄러운 세탁기 소리와 그것을 에워싸고 가만히 눌러주는 적막과 고요. 어두운 거리가 보이는 환하고 커다란 창문까지. 나른한 몸과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 밖을 보면 쓸쓸해 죽을 것 같은데, 그것도 좋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은 감상적인 기분까지 든다. 세탁과 건조에 각각 삼십 분. 짧지만 순도 높은 시간이다. 잘 읽히고 잘 써진다. 활자가 눈을 통해 뇌로 바로 인쇄되는 것 같다. 생각과 이미지는 막힘없이 단어와 문장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상하지. 여기에 오면 좋을 걸 알면서, 이렇게 써지고 읽게 될 것을 알면서, 안 오게 된다. 아니, 그래서 안 오는 것일지도. 좋아지는 것을 원하면서, 좋아지는 나 자신은 원하지 않는 마음. 지친다. 지겹고. (199, ’미스터 심플’ 중-루시아 벌린의 ‘에인절 빨래방’도 생각나고, 역시 쓰는 사람은 빨래방 한 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하면서도 아직 한 번도 못가보고 지나치기만 함…부르주아네…)

-이혼하고 상실을 겪고 슬픔을 느꼈다고 대단한 성찰을 한 건 아닙니다. 나이들면 뭔가 현명해지고 아는 것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착각이에요. 모르는 것만 많아지고 그만큼 의문만 깊어집니다. (216, ‘미스터 심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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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1-10-31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젊작상 수상집에서 <선릉산책>을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ㅠㅠ
열반인님 많은 어려움을 헤치시고 참 잘 자라신 것 같습니다.늘 응원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10-31 18:45   좋아요 2 | URL
네 저도 바로 그 2017년 수상집이 첫 젊작 독서였는데 그책에 김금희 최은미 백수린 정용준 최은영 강화길 골고루 다 있었습니다 ㅋㅋㅋ제 한국소설 독서의 씨앗 같은 책이었네요…정작 대상탄 임현 작가 책이 제일 드물게 보이네요. (라고는 해도 소설집 나오자마자 읽음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10-31 18:48   좋아요 1 | URL
아 ㅋㅋㅋㅋ그런데 저 중에 정용준만 2016년이네요 ㅋㅋㅋㅋ2016년은 나중에 봄 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1-10-31 18:50   좋아요 1 | URL
아 2017 년이군요!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이 넘나 강렬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