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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엘 베나도 라 로마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7월
평점 :
품절
크라잉넛-갈매기
https://youtu.be/dRn6trsY59M
다달이 새로 나오는 알라딘 커피 찾아 먹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월간 구독으로 운영해도 찾는 사람이 제법 많을 것 같다. 나는 평일에는 겨우 캡슐이나 믹스 챙겨 먹고 주말에나 드립을 내리니 한 달에 200그램 한 봉다리면 족하다. 지난 달 엘살바도르 커피도 아직 다 못 먹었는데 오늘 새 커피 까고 보니 내 입에는 산미나 단맛 쓴맛 비율이나 향이나 이번 달 코스타리카가 더 낫다. 11월8일에 구워 부순 신선함 덕일지도...가장 맛있는 커피는 새로 만든 새 커피 입니다…풍요로운 해안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지난 번 코스타리카도 맛있게 먹었던 것 같은데 개별 원두의 맛과 향을 다 기억할 만큼 똑똑하지가 못합니다.
다들 늦잠자는 주말에 평소대로 일어나 커피 한 잔 내리는 시간이 좋다. 언제들 깨서 아침 먹고 부산 떨까 싶어 아 조금씩만 더 주무시라, 바라며 조바심 나는 짧은 시간이지만. 언제부터 왜 핸드 드립하는 일이 호사롭고 사치로운 일이 되었을까, 사실 핸드 드립 커피 직접 내린지는 채 2년이 안 되었군요…ㅋㅋㅋ
삶은 견디는 일로 알고 그와중에 게임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일기도 써보고, 소설도 써보고, 이거저거 하며 지내왔다. 마지막 소설 완성한 지 이제 일 년이 넘었다. 그러고나서 가을부터 갑자기 이사 준비를 하고, 올봄에 이사를 마치고, 잠시 아 편안하다, 하다가 여름에 뜬금없이 주식을 하고(여러분, 마지막 비관론자가 낙관론자가 될 때가 제일 위험합니다…그때 코스피가 최초 3300을 찍고 이후로 주우우우우욱…), 추석 좀 안 되서는 고등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틈틈이 책 읽고 독후감쓰기는 여전하지만 조금 줄어든 듯. 아침 출근길에는 영어 문제집 회사에서 공짜로 뿌리는 독해 지문 읽어주는 mp3를 반은 알아 듣고 반은 흘려가며 걷고 오후 퇴근길에는 단풍이랑 파랑하늘 보며 또 걷는다.
빈틈 없이 꽉 채워 사니까, 그리고 나는 중3이다…하고 남몰래 시간을 이십년 쯤 돌려 그렇다면 나는 새 삶을 어찌 다시 그릴까 하며 지내니까 삼십년 쯤 견디던 불안, 외로움, 불면증은 많이 가신 느낌이다. 사십년 쯤 살면 그제야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적당히 만족하고 살면 좋은데 월급 따박따박 주는 직장 만큼은 어쩌다보니 견디는 것조차 힘든 장소가 되어 밥 먹다 말고 중3 때 듣던 크라잉넛의 갈매기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자동재생이 되었다. 난 여길 떠나고 싶어. 난 여길 떠나가야 해. 내가 하는 모든 일도 조직이 유지되고 돌아가기 위해 정해지고 요구되는 모든 규정도 다 의미 없고 불합리하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다. 그러다가도 생각해보면 정말로 쓸모 있는 실물을 만들어내는 건 일이차산업 빼고는 대부분 아니잖나, 소위 가치와 서비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편의와 삶의 질 향상을 느끼게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나, 결국 내가 채우고 있는 자리도 누군가 해야 하는 시간 때우기, 문서 채우기, 관리하기, 시간에 맞추기, 뭔가를 알리고 알려주고 연락하고 그런 일도 사람이 해야 돌아가는 일이잖아, 그러니 너무 폄훼하지 말자,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추운 복도를 걸었다. 자기 일에 만족하며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동료들 앞에서 다 쓸데 없어!하는 마음은 티 내지 말아야지.
로또도, 부동산도, 주식도 나를 구해주지는 못하니 결국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면서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고 틈틈이 책 읽고 커피 마시면서 잘 살자(?) 아무말 잔치나 가끔 하면서 남은 삶을 버티자, 하는 결론 이상 가지 못했다. 이제 거의 다 읽은 오바마 회고록 속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세상을 바꾸거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꿈은 꾸지 못하겠다. 나 자신을 조금 더 견딜만한 쪽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일 밖에는. 그거라도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