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 - 5.18 20주년 기념 소설집
최인석, 임철우 엮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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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90529 공선옥, 문순태, 박양호, 윤정모, 이삼교, 이청해, 임철우, 채희윤, 한승원, 홍희담

5.18 20주년 기념 소설집. 5월 18일 무렵 읽어야지 했는데 열흘이나 또 늦었다. 5월 가기 전에 다 읽은 것에 만족하기로.
이 책이 나오고도 또 20년 가까이 지났다. 서문의 말이 가슴을 친다. 그 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여전한 것들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말한다. 이젠 역사의 한 장으로 정리할 때가 충분히 되었지 않느냐고. 이제 그만 화해하고 용서하자고. 하지만 그들은 정작 망각하고 있다. 그러기엔 아직 너무나 많은 문제와 상처와 아픔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진정한 화해와 용서란 가해자 쪽의 뼈저린 참회와 속죄가 선행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 동시대인 저마다의 겸허한 반성과 책임의식을 통해 상처받은 쪽의 고통과 슬픔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오월은 결코 아직 과거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서 내건 조건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오월은 현재형이다. 사월도 현재형이다.

여러 소설가들 작품을 모은 책은 언제나 편차가 크다. 윤정모의 밤길은 서정성이 좋았고 임철우의 어떤 넋두리의 날 것 같은 사투리를 가진 화자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도 좋았다. 지까심=김치 거리 라는 호남말도 알게 되었다. 재미나 세련미가 떨어지는 소설들도 있지만, 문학의 입을 빌어 생생하게 그 때 광주 사람들의 경험과 마음을 전해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5.18에 대해 이전까지 접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새내기 때, 전공이 전해지기 전 배정된 과반에는 NL?이라 하는, 수배상태로 학교에 숨어지내는 고학번 선배나 이미 잡혀갔다 나온 선배들이 있었다. (산목련 사진 보여주며 봐봐, 북한 국화야. 김일성화 김정일화 그런게 국화가 아니란다, 하던 출소한?선배의 말을 들으며 삐질대던 때가 떠오른다...하하;) 오티(새로배움터라고 우리말로 순화된)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 참교육의 함성으로 같은 노래를 배워 의미도 모르고 신나게 불렀다. (나중에 전교조도 안 들어갔건만…) 학과에서 선배들이랑 전태일 평전, 우리 역사 이야기 같은 책 같이 읽으면서 5.18을 처음 제대로 접했다. 스무살에야 전두환이 왜 나쁜놈인지 알았다.
친해지지도 못한 3월에 과선배에게 대시하다 대차게 차이고 그 과반이 아닌 다른 전공을 선택했지만 짧은 시간 다양한?체험을 할 수 있었다.
과에서 멀어지면서 졸업 때까지 뿌리내린 곳은 노래패 동아리였다. 여기는 과거에 PD? 학생 운동 노선은 잘 모르고 내가 들어갔을 땐 그 흔적도 거의 없었다. 선배 중엔 내가 선동적?으로 노래부른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미 민중가요는 술자리나 동아리방에서 심심풀이로 부르며 겨우 명맥을 이어간 수준이었다. 공연에서는 인디밴드 노래나 에반게리온 수록곡 같은 걸 불러 공연 보러 온 졸업생 선배들이 고개를 저었다. 막스 어쩌구 하는 책들이 동아리방에 굴러다녔지만 선배 중엔 그걸 같이 읽고 설명할 사람도 이미 없었다. 최소한의 고민은 하고 공연을 꾸리자, 하며 겨우 유지된 세미나에서 공연 주제에 따라 파시즘, 군사문화, 여성주의, 대중문화, 철학 관련 교양서를 조금 읽은 수준이다. 정기 공연 외에 외부 행사는 419문화제나 월경페스티벌 공연 참가하고. 나머지 시간은? 연애하고 대항해시대하고 놀았지 뭐.

그런 경험들이 나중에 이상한데서 발목?을 잡았다. 사립학교 최종 이사장 면접이었다. 자기 소개서에 대학 생활 중 공부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학내활동을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삼았다(=놀았다)며 사례로 노래패 활동을 적었는데, 이사장이 걸고 넘어졌다.
운동권이었지?
아닙니다.
집회라곤 이라크 파병 반대 한 번 나가봤는데 운동권이라 하긴 운동권들한테 부끄러운 수준 아닌가.
운동했네.
아니에요. 그냥 문화운동을…
노조할 거지?
안 합니다.
할 거 잖아.
피터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하듯 아니에요만 하다 나왔지만 최종 합격은 술 잘먹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선배에게 돌아갔다. 다행히 떨어진 줄 알았던 1차 시험 합격을 전날 밤 알게 되서 마음은 덜 무거웠지만. 기왕 떨어질 거면 폼나게 개길 걸. 그래 나 빨갱이다 이 더러운 자본가 친일 조상 덕에 사학재단 끼고 노조 탄압하는 나쁜 할배야. 빨갱이도 운동권도 아니니 거짓말이지만…

이후 현대사 민주주의 발전을 다루는 시간에 민주화기념영상 아이들이랑 같이 보고, 화려한 휴가도 보고, 소년이 온다도 읽고, 택시 운전사도 보고. 가르치며 배운 게 더 많다.

벌써 오 년 전 여름이네. 네 살된 애기 데리고 첫 장거리 여행으로 광주에 갔다. 삼만원 주고 산 휴대용 유모차는 송정역에 내려 개시와 함께 고장났고(어찌어찌 겨우 끌고 다니고), 송정리가서 맛없는 떡갈비도 먹고(호남 음식은 다 맛있다며!), 담양 죽녹원 갔다 돌아와 상무지구에서 먹은 콩나물 국밥은 맛있었다. 유흥가의 휘향찬란한 불빛을 보며 여기, 서울이랑 똑같잖아, 했다. 한밤 자고 518기념공원에 갔다. 기념관의 민주열사들 이름을 둘러 보고 518책자도 얻었다. 올해초에야 처음 다 읽었다. 김대중컨벤션센터도 구경가고(별 거 없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빙 돌며 구경하다 조선대에 가서 장미 구경을 하고 광주역 아름다운 가게에서 오백원짜리 동화책 두 권을 사서 서울로 돌아왔다. 진짜 한 게 없네. 동네 주민 체험하며 버스타고 돌아다니는게 매 여행마다 고집하는 방식이라 (같이 간 이들은 늘 개고생을 하고 그 덕에) 대단한 건 없었지만 소소한 여정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오월과 광주다.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마 계속 들여다봐도 그 열정과 아픔은 제대로 알지 못할 것 같다.

올해 5.18 문학상 본상에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이 선정되었다. 옳은 것을 향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나 어디에나 있다. 탄핵 집회 딱 한 번 나가고 소심하게 집안에 노란 리본 열쇠고리 걸어 놓는 작은 마음이 옳음으로 나가는 물결에 보탠 바 거의 없지만, 책으로만 역사를 접하고 전두환 회고록에 100자평으로 욕하는(그러다 글 짤리고 더 분개하는) 방구석 투사일 뿐이지만, 어딘가 힘이 필요한 곳에 마음으로나마 원기옥에 기를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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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9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립학교 이사장이라는 존재들은 정말 멸종했으면 좋겠어요...... 아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반유행열반인 2019-05-29 21:54   좋아요 0 | URL
초중고 공립 나와 직장 조차 사립하곤 인연이 멀었으니..운이 좋았던 거겠죠. 사립학교의 폐단?은 저때 베타버전 맛보기 쬐끔한 정도...구인하면서 응시료 받기, 종교재단은 법명이니 교인증명서니 요구, 합격되어도 발전기금 요구받는다는 소문까지...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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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가와바타 야스나리

밖은 30도라고 한다.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에 눈 고장의 겨울, 여름, 가을, 또 겨울을 읽었다.
집안에 갇혀 있지만 길을 나선다고 해도 그 계절의 그런 고장들을 그 시간들을 홀로 거닐수는 없다. 고마코도 요코도 만날 수 없고 유리창이나 거울에 비친 눈 등불 붉은 뺨 검은 머리도 볼 수 없다.
유유히 시골을 돌며 여행 다니고 그런 것들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글로 담은 백 년 좀 안 되는 옛날에 살던 탐미주의자 아저씨 덕에 나도 그 예쁜 것들을 글로 마음으로 보는 호사를 누린다. 차갑고 뜨겁고 눈이고 고타츠고 시원한 감촉의 지지미고 말이 그런 심상을 만들어내는 건 놀랍다.
불구경하다 은하수 쏟아지는 걸 신경쓰다 하는 부분에서는 버럭 짜증도 난다. 남은 죽네 사네 하고 불끄느라 애쓰는데,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듯 분명 요코가 저 불길 근처에 있을 건데 자꾸 예쁜 것만 그리고 있을래. 이쯤되면 미친 거 아냐. 괜히 혼자 감상에 빠져 가여운데 내가 해줄게 없네 마네 하면서도 여자들을 슬프게 만드는 시마무라가 얄미워서 옆에 있으면 딱밤을 갈겨주고 싶다. 감상에 빠지게 만드는 고마코도 요코도 될 수 없고 길 가다 혀 차는 동네 아낙1이 될 수 밖에 없어서 더 그렇다. 실내온도도 29도가 넘는데 서늘해져 가디건 입고 아 예쁘네, 참 이렇게 예쁘게 써도 되는 건가 하고 질투하는 풍경도 괴상하다. 다 읽고 나니 더워지는 걸 보면 다행히 미치진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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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6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싸 설국 별 다섯개!! 찌찌뽕....

반유행열반인 2019-05-27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찌뽕은 저번에 만화책 겹칠 때 할라다 꾹 참았는데...괜히 참았스요...ㅋㅋ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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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5 강준만
같은 시리즈의 생각의 문법을 먼저 봤었다. 
비합리적으로 사고, 행동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틀 50가지를 제시하고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다. 
제목은 왜 이렇게 붙였을까. 다 읽고 나서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감정에 사로잡혀 이성적 판단을 그르치는 걸 표현하고 싶었나 본데 아무리 봐도 독재라는 말이 붙을 만 한지, 적절한 비유인지 납득이 안 된다. 
50가지 이론틀은 커뮤니케이션학, 심리학, 경제학, 조직학 등등 뿌리를 둔 학문이 다양하다.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각각의 이론을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싶으면 저자가 인용하고 맨 뒷면에 붙여둔 참고문헌들을 파 보면 좋을 것 같다.
 
모학문 없이 사회과학과 교육학을 잡다하게 버무린 전공이라 내가 뭘 가르쳐야 되는지 여전히 헷갈린다. 사회과학도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낯 뜨거운 수준이지만 제법 사회 현상과 사람들에 대해 설명할 때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론이 많다. 
 (개별적이든, 모여있든)인간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많은 틀을 두루 알고 있는 것은 좋은 일 같다. 어느 하나의 틀과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를 시도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은 이유로 왜 남들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거기에 더해 결국 우리가 본질에 다가서고 진리라 이름붙이며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아는 것. 흑흑) 그게 좋아서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한편으론 이런 책들을 훑는 이유가 어떤 이론이라도 거스르는 사고와 행동을 위해 (난 아닌데?하고 설명할 수 없는 예외가 되기 위해) 무의식한테 스캔을 시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를 어떻게 키우면 이렇게 반골에 반항아가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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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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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정은정

브로콜리너마저-보편적인 노래
https://m.youtube.com/watch?v=LQ6WVNqa4uo

책을 읽으며 나의 치킨 역사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가장 오래된 치킨의 기억: 전날 술마신 아빠가 사왔다고 엄마가 전기밥통에 든 처갓집 양념통닭을 꺼내주었다. (‘술마신’이 볼드체라 ‘아빠가 사왔다’는 데 인터넷에 떠도는 미담 같은 애틋함은 없다.) 80년대이고 5살이 안 됐던 것 같다. 고추장 맛이랑 케찹맛이랑 단맛이 나는 고기라니.
2. 초딩 때 드나들던(?) 치킨집: 걸어서 십분도 안 되는 데라 배달도 되긴 했을텐데 심부름으로 엄마가 준 지폐들고 가서 양념치킨 주세요, 하면 허름한 잠바 입고 눈썹 진하고 얼굴 빨간 치킨집 아저씨가 치킨을 튀기고 양념그릇에 버무려서 상자에 담아 주었다. 아저씨 손이 느려서 의자에 앉아 한참 기다렸다. 홀에 손님이라도 오면 대기시간은 무한대로 길어졌다. 아저씨가 치킨 만들다 말고 손님이 주문한 술안주로 노가리를 구우려고 석쇠에 넣는 걸 구경했다. 메뉴로만 보던 노가리가 그런 자그마한 생선인 걸 처음 알았다.
3. KFC: 군에서 90년대 중반에야 겨우 도농복합시로 승격한 촌 출신이라 KFC는 중3 때 친구들하고 대학로에 과학전시관 갔다 처음 가봤다. 처음 먹은 징거버거 우와 예술. 대학생 되고 서울 통학하면서 과외 가기 전 KFC에서 스마트초이스라는 메뉴로 자주 끼니를 때웠다. 알바비라도 버니 그런 걸 내 돈 주고 먹게 되었다.
4. 녹두 거리 치킨집: 대학 때 자취-산꼭대기 신혼집 시절, 솔직히 녹두 거리는 가격은 싼데 내 입엔 맞는게 별로 없었다. 구이통닭해주는 딱한잔은 싼 가격에 선후배들이랑 몇 번 갔다. 파파스 치킨은 너무 짰다. 또래오래나 페리카나 돈 좀 있을 땐 교촌치킨도 시켜 먹어 봤지만 내겐 별로 맛없는 치킨. 난 굳이 시켜먹으라면 피자를 먹었다.
5. 뿌링클: 치킨계의 치토스 같은 뿌링클(특히 순살)은 퍽퍽살 매니아, 뼈 바르는 것이 귀찮고 징그러운 환자, 초딩으로 이루어진 가족에게 특화된 메뉴였다. 과자 먹듯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종종 애용했다.
6. 에어 프라이어: 집에 이 요물이 들어오니 신세계가 열렸다. 취향에 맞는 부분육이나 닭볶음탕용 절단닭 준비. 전날 우유에 재웠다 소금 적당히 넣어 염지. 봉지에 닭+카레여왕에 끼워주는 라면스프 같은 마법의 매운 양념+튀김 가루 적당량 넣고 흔들기. 올리브유 적당량 발라 에어프라이어에 튀겨주면 핫크리스피 치킨을 저렴하고 담백하게 먹을 수 있다.
작년 4월 이렇게 닭다리 8개 튀겨 놓고 딱 한 개 먹었는데 진통이 와서…급히 119 전화해 구급차에 실려가...닭 튀겨 놓은지 40분 만에 애를 낳았다…2박3일 후 퇴원해서 그 때 남은 치킨을 다시 데워 먹었다. 닭다리만 보면 둘째한테 너만 빼고 치킨 먹는다고 화나서 튀어나왔지, 하고 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돌쟁이라 못 알아 듣는다.)

이렇게 치킨 가지고 풀어 놓을 썰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채식주의자 빼고 몇이나 될까.

5년 전 쯤 나온 책이고 책이름에 치킨이 들어가니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그 때도 궁금했지만 이제야 봤다.
치킨의 지위는 여전히 확고부동한 치느님.
책에서 다룬 그 때 막 성장 시작한 배달앱들은 이제 공룡을 넘어 고질라가 되었고 서로 점유율 싸움 하느라 행사 남발해서 자영업자들만 피터지는 중.
정부에서 치킨은 서민 음식이라 값 못 올리게 한 아이러니. (치킨집 사장님도 재벌 아니고 서민인데.) 배달료 별도라는 수로 결국 명목 치킨값은 동결이나 실질 치킨값은 상승했음.
KFC도 결국 생맥주를 팔기 시작했음.
뭐 이런 소소한 달라짐이 있었지만 프랜차이즈나 양계 등의 상황은 그닥 달라진 게 없어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보편적 기억과 경험으로 공유되는 치킨이라는 음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치킨을 다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닭요리로서 접근할 뿐 아니라 닭을 키우는 양계농가, 프랜차이즈 회사의 운영방식과 가맹점 점주들의 고충, 배달, 사람들의 공유 기억, 문화적 의미, 치킨의 부재료인 기름, 닭의 사료, 그 원료인 콩, 옥수수 등등, 치킨의 원조인 미국의 원형 치킨과 한국화된 양념치킨, 오븐구이치킨, 프라이드 치킨의 세분화된 종류, 월드컵, 야구장, IMF, 식품 기업, 축산 기업, 축산 농가, 물류 방식, 다룰 것이 끝도 없다.
그 끝도 없는 것을 세세하게 파고들고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함의를 돌아보게 한 것이 흥미롭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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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4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닭다리 8개와 같은 날에 태어난 돌쟁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귀여울 것만 같다......

반유행열반인 2019-05-24 14:01   좋아요 0 | URL
치킨 잘 뜯어먹게 생기고 튼실했으면 좋았을텐데...바람일 뿐 작은 부모가 낳은 제 아이들도 어디가나 제일 작고 말랐네요.
 

-20190521 필립 로스

처음 읽은 필립 로스.
작가 이름을 주워 듣고 친구에게 물었다. 필립 로스 어때?
응. 밀란쿠 영감과 함께 세상을 지탱하는 또하나의 기둥이지.

기둥 둘 중 하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건 나중에 알았다.
책 네 종을 모았고 아직 읽지 않은 세 종이 책꽂이에 남아 있다. 흐뭇.

이 책은 내 나이 무렵에 작가가 쓴 것이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자신만만함이 있었다. 씹, 보지, 자지, 씨발, 딸딸이, 야 난 이런 말 거리낌없이 잔뜩 쓴단다. 쓰고 또 쓸 거야.
포트노이는 유대인 가족의 강박적 교육과 엄마의 강도 높은 잔소리와 나약한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수치심, 욕망, 결벽증 등이 비벼진 채 삐뚤어진 사람이다. 겉보기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정의 실현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성적으로 강박적이고 제대로 된 사랑도 못하고 새로운 가족도 못 이루고 기존의 가족도 끔찍스럽게만 느낀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게 문제인가? 다들 그러고 살지 않을까? 싶고 측은한 느낌도 드는데 뒷부분에서 이스라엘에서 만난 여성에게 부당하게 (아니 그 정도가 아니지. 미친 개새끼같이) 구는 걸 보면 확실히 빌런이다.
왜? 난 왜 이모양인데? 난 왜 고통 받아야 되는데? 과거엔 이랬지 가족은 이랬고 만난 여자들은 저랬지 좋은 기억도 조금은 있지만 좆같은 기억이 더 많지. 누군가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주절거리는 듯한 말투로 인생을 회고한다. 사실 인생을 반추하기엔 화자 역시 삼십 대의 젊고 창창한 사람이지만 온통 불평과 괴로움의 토로 뿐이다.
그런 포트노이에게 이스라엘 키부츠 여성의 입을 빌려 뼈때리는 일침도 날아오지만 뭐 그렇다고 포트노이의 현실 인식이 변한다든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극적인 깨달음을 얻는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악당에 가까운 인물들에 이입되고 평소에는 발휘하지 못하는 공감능력마저 슬슬 돌아가는 게 이상하다.
포트노이 엄마가 강박적으로 구는 걸 보면 내가 키우는 아이들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 (개 같은 아버지가 키운 좆같은 어머니가 키운 삼대 째의 미래는...아 생각하기 싫으네…)

세상엔 나같은(나보다 더한 또는 나만도 못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니 위안을 삼자, 이건 아닌 거 같고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 그러려니 이해하자,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사실 다 저 모양이야. 아닌 척 하는 거야, 이것도 아닌 듯하고

객관화와 반성의 기회를 조금이나마 갖는다면 가망이 없는 건 아냐, 나아질 여지가 있는 거야.
잘 쓴 걸 보고 재미있었으면 된 거야.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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