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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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정은정

브로콜리너마저-보편적인 노래
https://m.youtube.com/watch?v=LQ6WVNqa4uo

책을 읽으며 나의 치킨 역사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가장 오래된 치킨의 기억: 전날 술마신 아빠가 사왔다고 엄마가 전기밥통에 든 처갓집 양념통닭을 꺼내주었다. (‘술마신’이 볼드체라 ‘아빠가 사왔다’는 데 인터넷에 떠도는 미담 같은 애틋함은 없다.) 80년대이고 5살이 안 됐던 것 같다. 고추장 맛이랑 케찹맛이랑 단맛이 나는 고기라니.
2. 초딩 때 드나들던(?) 치킨집: 걸어서 십분도 안 되는 데라 배달도 되긴 했을텐데 심부름으로 엄마가 준 지폐들고 가서 양념치킨 주세요, 하면 허름한 잠바 입고 눈썹 진하고 얼굴 빨간 치킨집 아저씨가 치킨을 튀기고 양념그릇에 버무려서 상자에 담아 주었다. 아저씨 손이 느려서 의자에 앉아 한참 기다렸다. 홀에 손님이라도 오면 대기시간은 무한대로 길어졌다. 아저씨가 치킨 만들다 말고 손님이 주문한 술안주로 노가리를 구우려고 석쇠에 넣는 걸 구경했다. 메뉴로만 보던 노가리가 그런 자그마한 생선인 걸 처음 알았다.
3. KFC: 군에서 90년대 중반에야 겨우 도농복합시로 승격한 촌 출신이라 KFC는 중3 때 친구들하고 대학로에 과학전시관 갔다 처음 가봤다. 처음 먹은 징거버거 우와 예술. 대학생 되고 서울 통학하면서 과외 가기 전 KFC에서 스마트초이스라는 메뉴로 자주 끼니를 때웠다. 알바비라도 버니 그런 걸 내 돈 주고 먹게 되었다.
4. 녹두 거리 치킨집: 대학 때 자취-산꼭대기 신혼집 시절, 솔직히 녹두 거리는 가격은 싼데 내 입엔 맞는게 별로 없었다. 구이통닭해주는 딱한잔은 싼 가격에 선후배들이랑 몇 번 갔다. 파파스 치킨은 너무 짰다. 또래오래나 페리카나 돈 좀 있을 땐 교촌치킨도 시켜 먹어 봤지만 내겐 별로 맛없는 치킨. 난 굳이 시켜먹으라면 피자를 먹었다.
5. 뿌링클: 치킨계의 치토스 같은 뿌링클(특히 순살)은 퍽퍽살 매니아, 뼈 바르는 것이 귀찮고 징그러운 환자, 초딩으로 이루어진 가족에게 특화된 메뉴였다. 과자 먹듯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종종 애용했다.
6. 에어 프라이어: 집에 이 요물이 들어오니 신세계가 열렸다. 취향에 맞는 부분육이나 닭볶음탕용 절단닭 준비. 전날 우유에 재웠다 소금 적당히 넣어 염지. 봉지에 닭+카레여왕에 끼워주는 라면스프 같은 마법의 매운 양념+튀김 가루 적당량 넣고 흔들기. 올리브유 적당량 발라 에어프라이어에 튀겨주면 핫크리스피 치킨을 저렴하고 담백하게 먹을 수 있다.
작년 4월 이렇게 닭다리 8개 튀겨 놓고 딱 한 개 먹었는데 진통이 와서…급히 119 전화해 구급차에 실려가...닭 튀겨 놓은지 40분 만에 애를 낳았다…2박3일 후 퇴원해서 그 때 남은 치킨을 다시 데워 먹었다. 닭다리만 보면 둘째한테 너만 빼고 치킨 먹는다고 화나서 튀어나왔지, 하고 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돌쟁이라 못 알아 듣는다.)

이렇게 치킨 가지고 풀어 놓을 썰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채식주의자 빼고 몇이나 될까.

5년 전 쯤 나온 책이고 책이름에 치킨이 들어가니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그 때도 궁금했지만 이제야 봤다.
치킨의 지위는 여전히 확고부동한 치느님.
책에서 다룬 그 때 막 성장 시작한 배달앱들은 이제 공룡을 넘어 고질라가 되었고 서로 점유율 싸움 하느라 행사 남발해서 자영업자들만 피터지는 중.
정부에서 치킨은 서민 음식이라 값 못 올리게 한 아이러니. (치킨집 사장님도 재벌 아니고 서민인데.) 배달료 별도라는 수로 결국 명목 치킨값은 동결이나 실질 치킨값은 상승했음.
KFC도 결국 생맥주를 팔기 시작했음.
뭐 이런 소소한 달라짐이 있었지만 프랜차이즈나 양계 등의 상황은 그닥 달라진 게 없어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보편적 기억과 경험으로 공유되는 치킨이라는 음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치킨을 다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닭요리로서 접근할 뿐 아니라 닭을 키우는 양계농가, 프랜차이즈 회사의 운영방식과 가맹점 점주들의 고충, 배달, 사람들의 공유 기억, 문화적 의미, 치킨의 부재료인 기름, 닭의 사료, 그 원료인 콩, 옥수수 등등, 치킨의 원조인 미국의 원형 치킨과 한국화된 양념치킨, 오븐구이치킨, 프라이드 치킨의 세분화된 종류, 월드컵, 야구장, IMF, 식품 기업, 축산 기업, 축산 농가, 물류 방식, 다룰 것이 끝도 없다.
그 끝도 없는 것을 세세하게 파고들고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함의를 돌아보게 한 것이 흥미롭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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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4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닭다리 8개와 같은 날에 태어난 돌쟁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귀여울 것만 같다......

반유행열반인 2019-05-24 14:01   좋아요 0 | URL
치킨 잘 뜯어먹게 생기고 튼실했으면 좋았을텐데...바람일 뿐 작은 부모가 낳은 제 아이들도 어디가나 제일 작고 말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