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1 필립 로스

처음 읽은 필립 로스.
작가 이름을 주워 듣고 친구에게 물었다. 필립 로스 어때?
응. 밀란쿠 영감과 함께 세상을 지탱하는 또하나의 기둥이지.

기둥 둘 중 하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건 나중에 알았다.
책 네 종을 모았고 아직 읽지 않은 세 종이 책꽂이에 남아 있다. 흐뭇.

이 책은 내 나이 무렵에 작가가 쓴 것이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자신만만함이 있었다. 씹, 보지, 자지, 씨발, 딸딸이, 야 난 이런 말 거리낌없이 잔뜩 쓴단다. 쓰고 또 쓸 거야.
포트노이는 유대인 가족의 강박적 교육과 엄마의 강도 높은 잔소리와 나약한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수치심, 욕망, 결벽증 등이 비벼진 채 삐뚤어진 사람이다. 겉보기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정의 실현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성적으로 강박적이고 제대로 된 사랑도 못하고 새로운 가족도 못 이루고 기존의 가족도 끔찍스럽게만 느낀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게 문제인가? 다들 그러고 살지 않을까? 싶고 측은한 느낌도 드는데 뒷부분에서 이스라엘에서 만난 여성에게 부당하게 (아니 그 정도가 아니지. 미친 개새끼같이) 구는 걸 보면 확실히 빌런이다.
왜? 난 왜 이모양인데? 난 왜 고통 받아야 되는데? 과거엔 이랬지 가족은 이랬고 만난 여자들은 저랬지 좋은 기억도 조금은 있지만 좆같은 기억이 더 많지. 누군가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주절거리는 듯한 말투로 인생을 회고한다. 사실 인생을 반추하기엔 화자 역시 삼십 대의 젊고 창창한 사람이지만 온통 불평과 괴로움의 토로 뿐이다.
그런 포트노이에게 이스라엘 키부츠 여성의 입을 빌려 뼈때리는 일침도 날아오지만 뭐 그렇다고 포트노이의 현실 인식이 변한다든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극적인 깨달음을 얻는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악당에 가까운 인물들에 이입되고 평소에는 발휘하지 못하는 공감능력마저 슬슬 돌아가는 게 이상하다.
포트노이 엄마가 강박적으로 구는 걸 보면 내가 키우는 아이들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 (개 같은 아버지가 키운 좆같은 어머니가 키운 삼대 째의 미래는...아 생각하기 싫으네…)

세상엔 나같은(나보다 더한 또는 나만도 못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니 위안을 삼자, 이건 아닌 거 같고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 그러려니 이해하자,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사실 다 저 모양이야. 아닌 척 하는 거야, 이것도 아닌 듯하고

객관화와 반성의 기회를 조금이나마 갖는다면 가망이 없는 건 아냐, 나아질 여지가 있는 거야.
잘 쓴 걸 보고 재미있었으면 된 거야.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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