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란을 날려라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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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만에 읽는 조지 오웰이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심한 작가로 분류되는데 일단 나는 오웰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랬는데 이번 작품은 여태까지의 애정이 팍 식어질 정도로 거북했던, 다른 말로는 지나치게 날 것인 글이어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엽란을 날려라>는 오웰 스스로도 돈벌이를 위해 썼다고 고백한 바 있고, 그래서인지 그의 6편의 장편소설 중에 가장 인기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국내 한정이다. 이 책 또한 저자의 자전소설로써, 지독한 가난과 돈에 대한 열등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가난‘이라는 주제를 평생 천착했다던데 글쎄, 적어도 이 책에서는 화두만 던져놓고 나 몰라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방 점원으로 일하는 서른 살의 고든 씨. 가난하지만 품격 있는 시인의 삶을 꿈꾸며 잘나가는 광고사의 카피라이터를 때려치운 상남자이다. 뜻은 좋았는데 막상 현실에 부딪히자 창작열은 줄어들고 풀칠하기에 바쁜, 본인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영락없는 실패자로 살아가고 있다. 글을 쓰고 살겠다는 집념 하나는 인정하겠으나 이이도 참 어지간히 현실감각과 융통성이 없는 부류였다. 도대체 옛날 문인들은 죄다 유아독존인 걸까. 가난이 낳은 피해의식은 전부 돈 문제로 귀결시키고 있었다. 소소한 일상생활부터 관계 유지까지 모든 게 돈이 개입되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고든 씨. 그래서 남들의 호의와 배려도 싹 다 거절하고 저 혼자만의 체통을 지키느라 고군분투 중인데, 으아아아 증말 피 말리는 줄 알았다.


가난한 문인들의 자존심 사수 궐기. 솔직히 이런 류의 서사는 워낙 많은 데다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 이젠 좀 질리는 맛이 있다. 그나마 오웰이 썩어도 준치였던 게, 돈의 세계를 제 발로 걸어 나와서 가난함을 탓하는 이중성을 그려냈다는 데에 점수를 주고 싶다. 가난한 예술가의 영혼을 찬미함과 동시에 돈에 대한 질투의 모순을 보면서 독자는 옳고 그름의 분별력이 흐려지게 된다. 이 모호한 선의 기준은 최종 장까지 이어져, 열린 결말도 아닌데 마치 독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다소 무책임한 태도로 보인다. 특히나 이런 사디즘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욕정으로 넘치는데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빌어먹게도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왜 우리는 그것을 박탈당해야만 하는가? (203p)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건 모두 돈이 없는 탓이라고 믿는 고든 씨. 왜곡된 해석과 억지 주장들이 어찌나 치를 떨게 하는지, 이 응석을 받아주는 주변인들이 죄다 보살이었다. 얼마 전 읽은 <지하에서 쓴 수기>의 주인공과도 닮았는데, 그 친구는 그래도 문인의 프라이드만은 고수했던 반면에 고든 씨는 매번 돈 타령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꼴불견인 것이다. 이에 비하면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은 신사였다고 느껴질 정도니 말 다 했다. 아니, 그렇게 돈에 쪼들려서 체면 구기는 게 싫다면 더 나은 직장을 구하던가, 왜 세상이 제 기준대로 안 돌아간다며 불평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해설에서는 그의 고집과 저항이 연민의 정을 자아낸다고 하던데, 미천한 일개 독자로써 한 말씀 올립니다. 엿이나 드세요. 본인이 백 번 옳다 한들 남들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되는 건 아니거든. 이렇게 겉멋만 든 모순 덩어리보다는 차라리 자본주의를 숭배하는 속물이 훨씬 낫다고 본다.


고든 씨는 투고했던 시가 팔리면서 들어온 돈을 하루 만에 탕진해버리고 만다. 또한 경찰 폭행죄까지 범하여 결국 직장도 잘리고 하숙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만약 이 부분도 저자의 자전적 경험이라면 정말 박수 쳐주고 싶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밑바닥의 삶을 몸소 체험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 아무튼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이 악화되자 고든의 심신은 반대로 안정되어간다. 급여가 더 낮은 일자리를 얻고, 더 누추한 방을 구했지만 그게 오히려 체면 차리지 않아도 될 구실을 준 셈이었다. 이 얄팍한 자유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나니 그 자신이 런던 어딜 가든 눈에 보이는 엽란과 같은 신세로 느껴졌다. 즉 자신은 길모퉁이와 집구석마다 자리하고 있는 풀 한 포기처럼 흔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임을 자각한 것이다. 그런 게 싫어서 이제껏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다 손절하고 살았거늘, 보다시피 결과는 이 모양 이 꼴이다.


이렇게 대책 없고 무책임한 인간에게, 모든 걸 내려놓고 자포자기할 만큼 열심히 살긴 했는지 물어나 보고 싶다. 스스로를 존중치 않는 이들은 결국 제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사는 것과 다름 아니다. 결국 돈과의 전쟁에 굴복한 고든 씨는 남들처럼 돈의 규범에 따라 품위를 유지하기로 한다. 끔찍했던 광고사에 다시 들어가고, 애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돈이 주는 명예와 존경은, 자신과 다름없었던 엽란을 날려버리는 행위로 얻을 수가 있었다. 이로써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건만 전의를 상실한 그는 더 이상 펜을 잡지 않는다. 과연 고든 씨는 패배자에서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니 다행인 것일까.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살았지만 보여지는 걸 중시한 탓에 남의 인생을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 자신의 이상을 앞세워서 세상과의 타협을 불경한 것으로 여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고독한 싱글 플레이어로 살아갈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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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09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아독존 맞습니다. 기승전결을 알고 써야하니 그럴 수 밖에요. 그러니 물감님이 너그럽게 봐주십쇼. ㅋ
전 조지오웰 불호에 가깝죠. 글을 어렵게 쓰는 건 아닌데 또 딱히 와 닿지는 않더라구요. 하긴 주요작 동물농장이나 1984도 안 읽어 본 제가 이렇게 말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ㅠ

물감 2024-02-09 17:01   좋아요 1 | URL
캐릭터를 그렇게 잡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왜 하나같이 대중의 비난을 한 몸에 받겠다는 듯한 스탠스여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인 셈인가..
말씀하신 <동물농장>과 <1984>는 활동 후반에 나온 작품이라서 그런지 전 좋았어요. 이 책은 활동 초반에 나와서 그런지 다듬어야 할 구간이 꽤 보입니다. 왜 인기없는 작품인지 단번에 알겠네요 ㅋㅋㅋ

stella.K 2024-02-09 17:09   좋아요 1 | URL
아참, 이게 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잖아요. 혹시 보셨나요? 엽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혹시 아시겠는지요?

물감 2024-02-09 17:14   좋아요 1 | URL
영화가 있었군요. 딱히 보고 싶지는 않네요 ㅋㅋㅋ
책 서두에 엽란 설명이 있는데요, 화초처럼 여러 잎사귀가 달린 관상용 식물이라네요. 아마도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풀때기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끼 2024-02-09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난은 구조적인 게 맞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자기자신을 존중하려 해도 그것마저 어려운 게 가난이라고 보고요. 성격이야, 가난에 처한 존재만 나쁜 것도 아니고요.

물감 2024-02-09 19:54   좋아요 0 | URL
제 글이 가난의 여러 모양을 고려치 않고 일반화한 것처럼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요 친구가 재능, 인맥, 기회도 있으면서 활용할 생각은 안하고 이런저런 탓만 하는 게 꼴뵈기 싫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성격이야 어떻든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주변에 피해는 주지 말아야죠.

페크pek0501 2024-02-23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동물농장, 1984년, 그리고 에세이인 코끼리를 쏘다, 나는 왜 쓰는가 등을 읽었는데 이 작품은 몰랐네요. 저도 조지오웰의 글을 좋아합니다. 어떤 에세이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평을 썼던 이야기를 했는데 서평가로도 유명하죠. 물감 님 덕분에 알게 된 이 작품을 검색해 보겠습니다.

물감 2024-02-25 09:40   좋아요 1 | URL
이제는 좀 식상하다고 느껴질 문필가의 이야기였고요, 스토리텔링도 다 아는 맛이어서 그냥 그랬습니다. 이런저런 경험이 많은 작가라 그런지 생동감만은 끝내줘요. 근데 어쩐지 주인공을 일부러 욕 먹이려고 작정한듯한 느낌이었어요. 여기에 어떤 의도가 있는듯한데 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페크 님이 읽어보시고 한번 확인해봐주심이...^^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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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물간 MBTI 얘기를 이제 그만 좀 하고 싶은데, 솔직히 너무나도 유용한 글감인지라 가끔씩은 써줘도 된다고 우겨본다. 가장 희귀하다는 남자 INFJ의 속내를 깊이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으며, 그러니 몇십 번 우려먹는다 한들 그리 민망할 건 아니라는 정신승리 하에 이 글을 적고 있다. INFJ의 대표적인 특징은 16가지 유형 중에 N성향이 가장 높다는 것인데, 생각이 워낙 많다 보니 전지적 본인 시점의 상상을 하면서,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참 쓰잘데없는 염려를 해가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좀먹는 셀프 에너지 뱀파이어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추가로 INFJ의 두뇌는 24시간 오토매틱으로 풀가동하기 때문에 ‘머리를 비운다‘라는 개념이 잘 없다. 여하튼 아이러니하고 미스테리한 나 자신에게 대체 왜 그렇게 사느냐고 셀 수 없이 자문한 끝에, 그것이 INFJ의 1순위 되는 ‘욕구‘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을 통해서 각자의 DNA 속에 잠재된 욕구가 자신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렇듯 나의 무수한 염려들은 모든 사태와 사고를 방지하여 나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과연, 너 자신을 알라던 테스 형의 말씀은 아멘 또 아멘이시다.


실컷 쓰고 보니 또 재미없는 인트로가 되었지만 좋게좋게 넘어가자. 다름 아니라 간만에 청소년 문학 한 권 읽었는데, 이 주인공 또한 뭔 생각이 그리 많은지 사는 데에 꽤나 애먹고 있더라고. 어떤 면은 나의 옛 모습을 보는 듯도 하고 그래서 감정이입이 마구 샘솟았던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를 소개해 본다. 고등학생 에이자는 D머시기라는 박테리아에 감염된다는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하여 불안해질 때면 신체를 반드시 소독하고 세척해야만 겨우 진정된다. 매사에 이렇다 보니 일상이나 인간관계도 무너져버렸고, 그렇게 어려서부터 체념하는 법을 배우며 자라난 소녀. 아빠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죽고, 날마다 속상해하는 엄마의 얼굴은 피하기에 급급하다. 그나마 깨발랄한 데이지 덕분에 외톨이는 면했다지만 이 친구도 나를 버거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소녀는 지금 자기 외에 누군가를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 거지 같은 세상. 아니, 거지 같은 나여...


에이자는 생각한다. 머릿속을 침투해대는 불청객의 속삭임에 대해. 의식 너머의 자아는 끝없는 강박 증세와 불안장애를 가져다주었고, 통제 불가한 정신은 손가락에 상처 내고 새 반창고를 붙이는 습관을 갖게 하였다. 박테리아에게 점령당한 몸뚱이가 역겨웠고, 그걸 측은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도 지긋지긋했고, 뭐 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통제치도 못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주치의는 계속해서 약 먹고 경과를 지켜보자는데, 약을 먹어야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내키지가 않는 거다. 또 다른 자아에게 굴복당하는 일이 정녕 약을 안 먹어서 생긴 일 같지도 않고 말이다. 하여간 이런 자신의 처지는 마치 기생충에 감염된 물고기와도 같은 꼴이었다. 몸은 있지만 나를 조종하는 건 내가 아니었고, 따라서 육체 안에 갇혀 있는 나를 과연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이에 주치의는 말하길, 나의 의심은 나를 실존하게 만든다고 했다. 실존의 증명을 위하려던 데카르트의 말처럼, 계속 그렇게 부딪히기라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에이자는 또 생각한다. 마구 엉킨 욕구의 매듭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지를. 불안과 우울을 교차하면서 커오는 동안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도 글렀고,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고 여긴지 오래이다. 가장 가까운 절친 데이지에게조차 깊은 속내를 꺼내지도 못한다.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젠 세상에 별 미련도 없지만 밑바닥에 눌려있던 욕구는 꼭 한 번씩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에이자도 남들처럼 좋은 대학을 가고 싶고, 데이지처럼 거리낌 없는 일상도 갖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 지독한 공황에서, ‘나‘라는 감옥에서 부디 해방되기를 바라는 그 욕구가 혹여 괜한 욕심은 아닐는지. 이렇듯 제 머릿속에 갇혀서 지내다 보니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바닥을 찍었고, 이것은 끝내 데이지마저 뚜껑 열리게 하였다. 그러자 매사에 진지함이라곤 1그램도 없이 태평하게 사는 친구가 얄미웠고, 내 고통에만 집중하느라 친구가 어떤 아픔을 겪는지도 몰랐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왜 날 뷁!!!


이런 총체적 난국에서도 다행히 숨 쉴 통로가 있었으니, 수년 만에 다시 만난 남사친 D였다. 현재 D는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는 아빠의 실종사건으로 패닉 상태였다. 재벌가인 소년의 아빠는 이미 미국 전역의 화제거리였고, 세간의 주목을 받느라 지쳤던 D는 에이자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아빠를 잃고 자유를 뺏긴 그 기분을 잘 아는 소녀는 D에게 동질감을 갖고서 마음 문을 열게 된다. 그렇게 서로는, 세상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을 만나 고통을 나누기 시작한다. 이로써 에이자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었고, 의심과의 충돌에서 떨어져 나온 진리의 조각들을 맞춰보게 된다. 안으로 향했던 관심과 생각들이 바깥을 향하게 되자, 인생이라는 소설에는 자기 얘기만 있는 게 아님을 이해한 것이다. 여전히 불청객은 자신을 괴롭혀댔지만 이제 생각은 생각이고 불안은 불안일 뿐이다. 앞으로 그것들이 나를 삼키우지 못하도록 달라져야 하겠지.


우리를 프레임에 가두고 넘어지게 하는 삶의 이벤트는 참으로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소년처럼 환경 문제로, 또 어떤 이에겐 소녀처럼 트라우마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의사도 전문가도 아니지만 내 경험을 빗대어볼 때, 계속해서 통증을 동반해야만 고통과 방황에서 탈출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집안의 기나긴 가난에서, 오른쪽 목이 허전하다는 강박에서, 지나간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그리고 누누이 말했던 생각의 저주에서 얽매여살다가 이제는 다 해방되었다. 참 많이도 무너지고 좌절했지만 지지 않고 나를 불편케 하는 모든 요인에 대해 회의하고 반문하였다. 그 길었던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은 나라는 인간을 200% 빠삭히 알게 되었고, 덕분에 인생의 리즈시절을 살아가는 중에 있다. 물론 이날이 있기까지 오래 걸렸고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지금 보니 그토록 울부짖고 발버둥 치던 과거의 내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당신도 부디 사소한 부조리일지라도 절대 납득하지 않기를 바라겠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좋았던 청소년 소설이 있었던가. 정말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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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2-04 2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이 많으면 확실히 고달픈거 같습니다. 저도 N 성향인데 가끔은 힘들어요ㅋㅋ

청소년 소설에 별 다섯이라니 정말 좋으셨나 봅니다~!!

물감 2024-02-04 22:59   좋아요 2 | URL
생각 자체를 막지는 못하니, 차라리 생각의 흐름을 안정적인 데로 흘려보내는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고와 비판적인 시각의 균형잡는 법을 알겠더라고요. 정말 오래(?)살고 볼 일입니다ㅋㅋ
그보다 새파랑 님 되게 오랜만이네요. 어째 저보다 더 뜸하신듯? 저도 분발해야겠습니다 ㅋㅋㅋ
이 작품 대체로 평이 우수하네요. 존 그린의 작품들이 다 괜찮은 편인가 봅니다. 더 찾아봐야겠어요.

coolcat329 2024-02-05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닌거 같은데 ISFP가 자꾸 나오네요. 물감님 글을 읽으니 저랑 많이 다르시긴 한 거 같아요. 생각이 많다...저는 깊게 생각을 안하는 거 같아요. ㅠㅠ
저 지금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있는데 이 책 물감님 읽고 주인공의 mbti를 좀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뭔가 나올 거 같은데 저는 잘 몰라서요. ㅎㅎ

지금은 수많은 좌절을 이겨내고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된 물감님이 저는 참 훌륭하게 보입니다.

물감 2024-02-05 13:24   좋아요 1 | URL
정 안맞다 싶으시면 정식 검사를 받아보실 수 밖에요 ㅋㅋㅋ
반대로 저는 _S_P 처럼 되려고 노력중이에요.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단순 심플하게 사고하는 스탠스가 필요하거든요. 본인의 부족함을 느끼는만큼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조만간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을 읽을 건데요, 이후에 <인간의 굴레에서>도 읽어볼게요. 말씀하신 주인공의 MBTI로 추측해보겠습니다 ㅋㅋㅋ
아까까지 비가 오더니 이젠 눈이 내리네요. 감기조심하세요 쿨캣님ㅎㅎ

반유행열반인 2024-03-07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또다른 INFJ 물감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인프제라는 것만 알지 아이랑 이랑 제이랑 피랑 뭐가 다른지도 모르고 제 주변인들은 너 티야??!!를 제게 외치는 일이 많습니다…

물감 2024-03-07 10:23   좋아요 1 | URL
인프제 열반인 님 반갑습니다! mbti에 그닥 관심없으신 편이 더 다행입니다. 세상을 균형있게 살고 있다는 뜻이니깐요ㅎㅎ 저처럼 한쪽으로 크게 쏠린 유형들이나 삶이 힘들어서 이같은 검사에라도 매달리는 것이지, 사실 몰라도 전혀 상관없어 보입니다. 솔직히 어떻게 16가지로 인간이 나뉘겠어요... 글고 저 역시 직장에선 일부러 T처럼 행동합니다. F로 지냈다가 상처만 입어서 내사람한테만 F로 대합니다요 🙂🙂🙂
 
개의 심장 창비세계문학 18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세일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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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죽은 남성의 뇌하수체와 고환을 개한테 이식하여 탄생한 돌연변이의 내용이다. 이 뇌를 교체한다는 소재는 현대문학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무려 1925년에 <개의 심장>이 쓰인 걸 보면 인격에 대한 관심사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엽기적인 발상이지만, 수술받은 개는 점차 인간의 외형으로 변해가고 인간의 말도 할 줄 알며 지능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다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떠올릴 텐데, 이 책에서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입장이 역전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이 기괴한 수술의 목적은 인간의 노화를 막고 젊음을 되찾는 실험이었다. 그 바램과는 딴판인 실험이 되었지만 이건 이거대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셈이었고, 수술을 집행한 교수는 개-인간을 교육하여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골목살이 하던 개의 습성이 참된 인간이기를 거부하는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의 행세를 반복하는 실험체였다. 하여간 이런 꼴을 볼 때마다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개-인간과 교수 일행의 부딪힘은, 신 인류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비판을 나타낸다. 출간 당시 아주 핫하던 볼셰비키의 혁명주의를 개-인간으로 압축해냈다고 볼 수 있겠다. 작중에서는 노동 계급인 프롤레타리아 무리가 교수 일행을 찾아와 고발하겠다며 시비를 건다. 이 아파트에서 교수 당신만 방 8칸을 쓴다면서. 하지만 교수는 허가된 대로 쓰는 거라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불청객은 훗날 개-인간을 꼬드겨서 교수가 눈 뒤집힐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도록 교묘히 조종한다. 또한 개-인간에게 직책을 주어 사회의 일원처럼 느끼게 해주기도 하는데, 교수 일행은 아직 한참 발달 단계인 실험체가 맨날 이상한 것만 배워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인 것이다. 이 양측의 상황들로써 당시 러시아의 혁명 운동 분위기를 대강 알게 해준다. 이 신 인류가 얼마나 눈엣가시였을지 참.


주제나 메시지가 명확한 작품이라 딱히 더 말할 게 없다. 이미 다른 분들이 더 상세하게 리뷰했기도 하고. 그나저나 작가는 왜 이토록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를 썼을까. 본인이 의사 출신이라서 더 실감 나게 쓸 자신도 있었겠지만, 신 인류의 등장을 ‘인간으로 진화한 개‘로 설정한 것은 대놓고 프롤레타리아를 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반대로 자신의 권위와 계급만을 신경 쓰는 교수의 모습은, 우파에 대한 비난이자 우롱인 셈이다.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는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다고 보았을까. 개-인간의 거친 말과 행동을 통하여 기존의 스탈린 체제가 여러모로 문제 있으며, 작품 해설대로 점진적 변화를 거쳐서 혁명을 완성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비록 러시아의 역사 배경은 잘 모르지만 그런대로 알아듣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프랑켄슈타인>같은 임팩트는 없어서 별 점은 높게 못 주겠군요. 스미마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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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4-01-3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불가코프가 기괴하고 코믹하게 체제를 비판한점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나저나 물감님, 프사 느낌이 너무 따뜻해졌는데요? 차가운게 더잘어울리시는데ㅋㅋㅋ실망입니다ㅋ

물감 2024-01-30 22:56   좋아요 1 | URL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른 작품도 찾아볼까봐요ㅎㅎㅎ
그리고 저도 차가운 걸 선호하는 편인데, 마음 좀 다잡아볼라고 요렇게 바꿔봤어요😃😃😃

stella.K 2024-02-01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공유! 멋지네요. 어쩌면 전 물감님을 공유로 인식하게 될지도 몰라요. ㅎㅎ
불가코프가 이런 책도 썼군요. 마르가리타 오래 전에 사 놓고 여태 안 읽고 있습니다. 이 사람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야말로 피의 인생이라고나 할까? ㅠ

물감 2024-02-01 13:16   좋아요 1 | URL
하하하 어쩌면 그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ㅋㅋㅋ
<마르가리타>가 대표작이던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같이 도전하시죠ㅋㅋㅋㅋ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창비세계문학 20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박원복 옮김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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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 기준에서의 소설이란, 머리와 가슴 중 어느 한쪽으로는 읽혀져야만 한다.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느낀 플롯이나 구성은 ‘이야기‘로 받아들이질 못한다. 그게 촌스럽다 해도 나는 주제를 벗어나거나 흐름을 비껴가는 스타일이 극도로 싫다. 그 특유의 초점 없는 문장들이 연달아 나올 때의 당혹감은 몇 번을 반복해도 적응이 안 된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또한 그러했다. 일단 사후 기록이라 해서 달리 특별할 것도 없었고, 어중간한 의식의 흐름 또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찐따 화법을 쓰고 있어서 집중이 하나도 안된다. 초반까지는 커가면서 있었던 일들을 짤막하게 설명하는데 흥미가 1도 안 생겨서 차라리 나님의 썰들을 대충 써도 이거보단 재밌겠다는 생각이 백만 번쯤 든다. 그러다 중반쯤 되면 결국 뻔하고 진부한 사랑 내용으로 넘어간다. 그것도 애까지 있는 유부녀와의 긴장감 1도 없는 사랑놀음으로. 그래, 이왕 그쪽으로 갈 거면 MSG라도 좀 뿌려서 그럴듯하게 꾸며나 보든가, 이건 뭐 콘텐츠도 컨셉도 없이 아무 생각이나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휘갈겨 쓴, 무성의함의 표본이다. 좀 더 팩폭하자면 딱 초딩 수준의 감성이어서 문법이고 맥락이고 뭐고 싹 다 무시한 허술함 그 자체이다. 이 지루하고도 정신 산만한 글들을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될 때쯤, 71.장에서 갑자기 셀프 디스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작가 본인도 문제점을 잘 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컨셉이 없다는 말은 취소하겠다. 전력으로 컨셉에 충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 이상 같지도 않은 말장난에 지쳐서 그만 중도 하차해버렸다. 그래도 뭔가 좀 얻어 갈까 했었지만 이 책은 풍자와 해학 어느 쪽도 아니었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작가라는데 이 작품만으로는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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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1-27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라이, 에서 빵터짐..

물감 2024-01-27 14:00   좋아요 1 | URL
휴, 한명 웃겼다..

stella.K 2024-01-27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웃었습니다. 근데 다른 리뷰어들은 좋다고 날린데 시크하신데요? 전 팩폭에서 빵~ㅎㅎ

물감 2024-01-27 18:37   좋아요 2 | URL
한국인들은 보여지는 게 중요해서 싫어도 싫다고 안합니다. 저는 한국의 서평 문화는 글러먹었다고 생각한지 오래됐어요ㅋㅋㅋ

coolcat329 2024-03-15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 책 읽다가 그만두셨군요! 빛소굴에서 나온 <정신과 의사> 읽고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 지금 이 책 40페이지 쯤 읽고 있는데 너무 산만하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서 읽는 게 괴롭네요. 포기하려고 90프로 맘 먹고 그래도 이웃님들 글을 보고 다시 결정하자 하고 찾아보는데 별2개 반가운 물감님 글 발견 😂😂
저도 그만 읽으려구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가서 힘드네요.

물감 2024-03-16 22:08   좋아요 0 | URL
정신과의사는 멀쩡한 편이던가요?ㅋㅋ 그래도 저는 절반 넘게는 읽었습니다. 뒤에 뭔가가 있을거라는 기대는 싸그리 무너지더라고요. 일찍 하차하길 잘하셨습니다요😁😁😁
 
브로큰 윈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8 링컨 라임 시리즈 8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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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타임용을 찾다가 고른 디버의 작품이다. 요 시리즈를 다 읽겠다는 다짐을 몇 년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디버의 작품들은 기본 500쪽 이상인데, 느긋하게 읽어도 이삼일 이면 완독할 정도의 속도감을 지녔다. 이번에도 명불허전 페이지터너임을 증명했으나 솔직히 디버치고는 평범하다고 느꼈던 작품이었다. 디버를 읽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아이러니라 해두자.


8편의 빌런은 웹상에 등록된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악질 중의 악질이다. 타깃을 죽인 뒤 피해자가 사용하는 제품을 알아내, 무고한 사람의 집에다 그 물건들을 두어서 범인으로 누명을 씌운다. 또는 타깃의 신용 정보를 도용하여 빚쟁이로 만들어서 나락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읽고 조종하는 그는 전지전능한 신이나 다름없었는데, 이 엄청난 설정을 적극 활용하는 장면은 얼마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리즈만의 묘미인 빌런과의 대결이 빈약하게 느껴진다. 물론 링컨 수사팀은 정신없이 돌아갔지만.


작가는 그 빈약함을 메꾸고자 링컨의 개인사를 집어넣었다. 링컨의 절친이자 사촌인 아서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어 구치소에 잡혀간다. 아서의 아내에게 그 소식을 들은 링컨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참 친하게 지내던 대학시절, 사촌이 링컨의 애인을 뺏은 후로 쭉 손절해왔기 때문에. 그러나 링컨의 감지 센서는 증거가 명백한 이 사건에 이상함을 느껴, 사사로운 감정과 별개로 수사에 흥미를 갖게 된다. 예상대로 유사 사건들이 몇 건 더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거대한 데이터 마이닝 기업이 엮여있었다. 라임은 모든 데이터의 접근 권한을 가진 기업의 직원 중 하나를 용의자로 보았고, 즉시 대상을 물색하여 수사에 들어간다. 늘 그렇듯 전부 허탕이었고, 한쪽에서는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하여 수사에 혼선을 주었다. 역시 주인공들은 굴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


이 외에 라임의 파트너인 아멜리아 색스의 개인사도 나온다. 그녀가 딸처럼 아끼고 보호하는 여학생이 있는데,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데다 사건까지 휘말려서 아주 그냥 속이 타들어만 간다. 소녀로 인해 생겨나는 모정은, 형사라는 거친 직업에서 엄마라는 평범한 삶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소망이 커져갈수록 얼른 링컨과 합쳐서 심신의 안정을 얻고 싶어 함이 느껴진다. 허나 애석하게도 링컨의 고장 난 신체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나이 많은 유부남과의 사랑과, 전신마비 장애인과의 사랑 중 어느 쪽이 더 참담할까. 정말이지 이번 편은 메인 사건보다 서브 내용들이 더 흥미롭다.


제프리 디버는 온라인 범죄의 작품을 세 권이나 출간했다. 링컨 라임 시리즈의 <브로큰 윈도>,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도로변 십자가>, 스탠드 얼론인 <블루 노웨어>인데, 같은 소재를 여러 번 쓴다는 건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성을 강조하려는 뜻이 아닐까 한다. <브로큰 윈도>는 익히 들어온 ‘깨진 유리창의 법칙‘으로써, 사소한 문제를 방치했다가 훗날에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그 말대로 사소한 개인 정보들이 어느 한순간에 나락 가게끔 만드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특히나 요즘같이 SNS나 블로그가 대중화된 시점에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경고를 백날 해봤자 어찌할 수도 없는 현실 아닌가. 사는 동안 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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