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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윈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8 ㅣ 링컨 라임 시리즈 8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킬링 타임용을 찾다가 고른 디버의 작품이다. 요 시리즈를 다 읽겠다는 다짐을 몇 년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디버의 작품들은 기본 500쪽 이상인데, 느긋하게 읽어도 이삼일 이면 완독할 정도의 속도감을 지녔다. 이번에도 명불허전 페이지터너임을 증명했으나 솔직히 디버치고는 평범하다고 느꼈던 작품이었다. 디버를 읽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아이러니라 해두자.
8편의 빌런은 웹상에 등록된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악질 중의 악질이다. 타깃을 죽인 뒤 피해자가 사용하는 제품을 알아내, 무고한 사람의 집에다 그 물건들을 두어서 범인으로 누명을 씌운다. 또는 타깃의 신용 정보를 도용하여 빚쟁이로 만들어서 나락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읽고 조종하는 그는 전지전능한 신이나 다름없었는데, 이 엄청난 설정을 적극 활용하는 장면은 얼마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리즈만의 묘미인 빌런과의 대결이 빈약하게 느껴진다. 물론 링컨 수사팀은 정신없이 돌아갔지만.
작가는 그 빈약함을 메꾸고자 링컨의 개인사를 집어넣었다. 링컨의 절친이자 사촌인 아서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어 구치소에 잡혀간다. 아서의 아내에게 그 소식을 들은 링컨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참 친하게 지내던 대학시절, 사촌이 링컨의 애인을 뺏은 후로 쭉 손절해왔기 때문에. 그러나 링컨의 감지 센서는 증거가 명백한 이 사건에 이상함을 느껴, 사사로운 감정과 별개로 수사에 흥미를 갖게 된다. 예상대로 유사 사건들이 몇 건 더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거대한 데이터 마이닝 기업이 엮여있었다. 라임은 모든 데이터의 접근 권한을 가진 기업의 직원 중 하나를 용의자로 보았고, 즉시 대상을 물색하여 수사에 들어간다. 늘 그렇듯 전부 허탕이었고, 한쪽에서는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하여 수사에 혼선을 주었다. 역시 주인공들은 굴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
이 외에 라임의 파트너인 아멜리아 색스의 개인사도 나온다. 그녀가 딸처럼 아끼고 보호하는 여학생이 있는데,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데다 사건까지 휘말려서 아주 그냥 속이 타들어만 간다. 소녀로 인해 생겨나는 모정은, 형사라는 거친 직업에서 엄마라는 평범한 삶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소망이 커져갈수록 얼른 링컨과 합쳐서 심신의 안정을 얻고 싶어 함이 느껴진다. 허나 애석하게도 링컨의 고장 난 신체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나이 많은 유부남과의 사랑과, 전신마비 장애인과의 사랑 중 어느 쪽이 더 참담할까. 정말이지 이번 편은 메인 사건보다 서브 내용들이 더 흥미롭다.
제프리 디버는 온라인 범죄의 작품을 세 권이나 출간했다. 링컨 라임 시리즈의 <브로큰 윈도>,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도로변 십자가>, 스탠드 얼론인 <블루 노웨어>인데, 같은 소재를 여러 번 쓴다는 건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성을 강조하려는 뜻이 아닐까 한다. <브로큰 윈도>는 익히 들어온 ‘깨진 유리창의 법칙‘으로써, 사소한 문제를 방치했다가 훗날에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그 말대로 사소한 개인 정보들이 어느 한순간에 나락 가게끔 만드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특히나 요즘같이 SNS나 블로그가 대중화된 시점에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경고를 백날 해봤자 어찌할 수도 없는 현실 아닌가. 사는 동안 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