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심장 창비세계문학 18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세일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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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죽은 남성의 뇌하수체와 고환을 개한테 이식하여 탄생한 돌연변이의 내용이다. 이 뇌를 교체한다는 소재는 현대문학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무려 1925년에 <개의 심장>이 쓰인 걸 보면 인격에 대한 관심사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엽기적인 발상이지만, 수술받은 개는 점차 인간의 외형으로 변해가고 인간의 말도 할 줄 알며 지능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다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떠올릴 텐데, 이 책에서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입장이 역전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이 기괴한 수술의 목적은 인간의 노화를 막고 젊음을 되찾는 실험이었다. 그 바램과는 딴판인 실험이 되었지만 이건 이거대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셈이었고, 수술을 집행한 교수는 개-인간을 교육하여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골목살이 하던 개의 습성이 참된 인간이기를 거부하는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의 행세를 반복하는 실험체였다. 하여간 이런 꼴을 볼 때마다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개-인간과 교수 일행의 부딪힘은, 신 인류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비판을 나타낸다. 출간 당시 아주 핫하던 볼셰비키의 혁명주의를 개-인간으로 압축해냈다고 볼 수 있겠다. 작중에서는 노동 계급인 프롤레타리아 무리가 교수 일행을 찾아와 고발하겠다며 시비를 건다. 이 아파트에서 교수 당신만 방 8칸을 쓴다면서. 하지만 교수는 허가된 대로 쓰는 거라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불청객은 훗날 개-인간을 꼬드겨서 교수가 눈 뒤집힐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도록 교묘히 조종한다. 또한 개-인간에게 직책을 주어 사회의 일원처럼 느끼게 해주기도 하는데, 교수 일행은 아직 한참 발달 단계인 실험체가 맨날 이상한 것만 배워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인 것이다. 이 양측의 상황들로써 당시 러시아의 혁명 운동 분위기를 대강 알게 해준다. 이 신 인류가 얼마나 눈엣가시였을지 참.


주제나 메시지가 명확한 작품이라 딱히 더 말할 게 없다. 이미 다른 분들이 더 상세하게 리뷰했기도 하고. 그나저나 작가는 왜 이토록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를 썼을까. 본인이 의사 출신이라서 더 실감 나게 쓸 자신도 있었겠지만, 신 인류의 등장을 ‘인간으로 진화한 개‘로 설정한 것은 대놓고 프롤레타리아를 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반대로 자신의 권위와 계급만을 신경 쓰는 교수의 모습은, 우파에 대한 비난이자 우롱인 셈이다.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는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다고 보았을까. 개-인간의 거친 말과 행동을 통하여 기존의 스탈린 체제가 여러모로 문제 있으며, 작품 해설대로 점진적 변화를 거쳐서 혁명을 완성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비록 러시아의 역사 배경은 잘 모르지만 그런대로 알아듣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프랑켄슈타인>같은 임팩트는 없어서 별 점은 높게 못 주겠군요. 스미마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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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1-3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불가코프가 기괴하고 코믹하게 체제를 비판한점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나저나 물감님, 프사 느낌이 너무 따뜻해졌는데요? 차가운게 더잘어울리시는데ㅋㅋㅋ실망입니다ㅋ

물감 2024-01-30 22:56   좋아요 1 | URL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른 작품도 찾아볼까봐요ㅎㅎㅎ
그리고 저도 차가운 걸 선호하는 편인데, 마음 좀 다잡아볼라고 요렇게 바꿔봤어요😃😃😃

stella.K 2024-02-01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공유! 멋지네요. 어쩌면 전 물감님을 공유로 인식하게 될지도 몰라요. ㅎㅎ
불가코프가 이런 책도 썼군요. 마르가리타 오래 전에 사 놓고 여태 안 읽고 있습니다. 이 사람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야말로 피의 인생이라고나 할까? ㅠ

물감 2024-02-01 13:16   좋아요 1 | URL
하하하 어쩌면 그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ㅋㅋㅋ
<마르가리타>가 대표작이던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같이 도전하시죠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