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창비세계문학 11
알베르 카뮈 지음, 유영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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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카뮈의 3대 장편을 완독했다. 그 밖에도 <반항인>, <시지프 신화> 등이 있지만 카뮈는 이 정도만 읽어도 될 듯싶다. 짧은 분량에 비해 너무도 어려웠던 이 작품은 기존 서평들을 참고하여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막 이렇다 할 서사는 없었고 주인공의 독백으로 진행되는데 웬걸, 무인도에서 탈출한 사람이 방언의 은사까지 생겨난 것처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말에 귓구녕에서 피가 철철 흐를 지경이다. 카뮈가 이만한 투 머치 토커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작가이자 기자에 철학가, 사상가인 저자의 깊은 속내를 헤아릴 자신이 없다. 하여 적당히 쓰고 싶지만 마지막 리뷰니까 성의를 보이기로 했다. 치안판사인 클라망스는 과거 자신이 얼마나 만 점짜리 알파메일이었는지를 소개한다. 본업 외에도 이런저런 도움을 주어가며 남들에게 점수 따내고 이미지 쌓는 일에 진심이었던 클라망스. 비록 계산된 행동이라곤 하나 선행 자체로는 문제랄 것도 없지 않은가. 뭐 그런갑다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한 여성을 방관한 이후로 자뻑에서 벗어나게 되었단다. 여기까지가 출판사들의 소개 글인데, 작중에서는 요 사건을 스치듯 다루어서 그게 그렇게 중요했었는지도 몰랐더랬다. 그 일이 계기가 되었다면 종종 언급이 되었을 법도 한데 그러지는 않았거든. 아무튼.


클라망스는 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할 만큼 매우 야무진 남자였다. 타인의 호감을 손쉽게 샀던 그는,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지녔으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남을 사랑할 수 없음을 간파했다(36p). 그래서 별다른 수고 없이도 알파남이 될 수 있었고, 그렇게 허영과 위선 속에 살다가 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폭력성을 마주하게 된다. 도로에서 엔진이 나간 오토바이의 주인과 실랑이하는 클라망스에게, 뒤 차량 운전자들이 와서 마구 쏘아댔고, 그 사이에 오토바이는 멀리 달아났다. 본때를 보여주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자, 문득 이 사건으로 그동안의 위선을 깨닫게 된다. 법으로 다스리는 재판관이 아닌 폭력으로 해결 보려는 폭군임을, 그렇게 자신에게도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서 이 일화를 설명하기 전, 굴종의 노예란 곧 자유인이며 떳떳한 양심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보상이라고 하였다(48p). 따라서 죄 앞에 피해자가 되거나 피고인이 되는 것도 본인에게 달렸다는 뜻일 터. 클라망스 명함에 적힌 ‘희극배우‘가 무얼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 보시라.


계속해서 그는 여자들과의 유흥을 예로 들어 자신을 정의하고 증명한다. 순조로운 교제와 섹스를 즐겼지만 되려 그것은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사랑이라는 오락거리를 통해서 제 능력의 탁월함을 확인하고 자기만족에 빠져살던 주인공. 이렇듯 그는 계산된 행동 속에서만 생명력을 부여받고 존재를 증명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 위 자살 사건에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자신에게 충격을 받는다. 전지전능했던 자기애가 무너져내리자, 그것이 폭력과 침묵으로 쌓아 올린 허상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로부터 클라망스의 고백은 온통 ‘자살‘로 귀결된다. 결국 죽어야만 자신이 겪는 고통의 깊이를 제대로 알아준다면서(73p). 하지만 클라망스는 삶에 대한 애착 또한 대단하다. 하여 그동안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심판받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행복해지고 심판을 받겠느냐, 용서받고 비참하게 살겠느냐(79p). 누구나 본인의 결백과 정당성을 위해 타인을 심판해대고, 어떤 반박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이 도덕적 결함이 사람의 천성 중 하나라면 그건 선악의 공존이 아니라 원래 일체였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이놈의 이중성은 죽음만이 정답이지만 그렇다 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좀 아닌 거 같으니 인간들의 심판의 때를 기다리기로 한 주인공. 하여 치안판사로 직업을 바꾸고 법을 선포하며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재판관을 자처했다. 심판을 거부했던 그는 스스로를 심판할 권리를 갖추어 죄인이자 의인이 되기로 한다. 모든 심판자가 결국 속죄자가 되는 이상, 마지막에 심판자가 되기 위해 먼저 속죄자의 일을 해야 한다면서(134p).


저자가 평생 동안 부조리에 집착한 이유를 그의 생애에서 알 수 있다. 결핵으로 대학 포기, 공산당 활동, 신문사 해고, 레지스탕스 활동 등 부당함 가운데 정의의 불완전함을 내내 목격했을 테고, 그것들은 카뮈의 저항심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전락>을 통해 부조리가 우리를 어떻게 인간답게 바꿔놓는지를 설명한다. 카뮈의 부조리란, 인간의 합리적인 욕구와 세계의 비합리적인 현실 사이에서 생기는 충돌이다. 이것을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계속 저항했던 카뮈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이따금 자신의 치욕을 대중 앞에서 큰 소리로 고백할 각오로, 무엇이든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38p).‘ 부당함과 무력함의 해방을 위해서 인간은 대항하고 또 대항해야 한다는 것, 부조리한 세계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인간 존재의 가치를 만드는 것임을 강조한 카뮈에게 박수를 쳐줍시다. 정말, 읽는 중에는 도통 뭔 얘긴지 몰랐는데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겨우 가닥을 잡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난 실존주의니 허무주의니 이런 거 잘 모르겠다. 그닥 알고 싶지도 않고. 아무튼 드럽게 재미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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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30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카뮈 별로 안 좋아합니다.
믿음도 없으면서 방언한다고. ㅋㅋㅋ
그래도 페스트가 그중 읽기가 낫다고하는 것 같기도 한데.
전 이방인 사 놓고 아직도 안 읽고 있습니다.
물감님 아는지 모르겠는데 몇년 전에 이방인 번역 문제로 알라딘에서
뜨거운 논쟁 있었잖아요. 바로 그 문제의 버전으로.
근데 까뮈 자체가 쉽지가 않은데 번역이 무슨 대순가 싶기도 하고.
<작가수첩>은 읽어보고 싶긴하던데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갖고 글을 쓰나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읽어 볼 생각은 없나요?

낼부터는 어느 덧 한 해의 반의 첫날이네요.
점점 더 더워져 정신 줄 놓기 딱 좋은 때라 쉽지 않겠지만
이럴 때 일수록 재밌는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암튼 힘차게 시작하십쇼!^^

물감 2024-07-01 09:43   좋아요 1 | URL
세 권 읽어보니까 확실히 종교 관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더군요.
말씀하신 번역 문제는 잘 몰라요. 뭐였을까요 ~
카뮈랑 카프카는 뭔가 알 것도 같으면서 어렵더라고요. 다른 저서들을 참고하면 좀 더 다가갈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쏟고 싶을만큼 매력은 못느껴서요ㅋ

벌써 상반기가 다 지나갔어요. 시간 왜이리 빠른지 원. 7월도 파이팅 하시고 즐독하셔요 ㅋㅋㅋ 저도 스릴러나 읽어야겠습니다!

2024-07-01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3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랙케이크
샤메인 윌커슨 지음, 서제인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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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이현우 서평가가 말하길, 읽고 나서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야 좋은 책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충분한 생각거리를 갖게 할수록 건강한 독서가 된다는 말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말했던 ‘책은 도끼여야 한다‘라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일수록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문학만큼은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인종차별과 정체성 혼란, 아픈 역사 등등 흑인문학은 온통 비애로 가득 차 있어 ‘좋은 책‘의 조건은 다 갖췄으나 딱 거기까지, 이게 다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랬다. 적어도 내게는 흑인문학들마다 접근 방식이 비슷비슷하여 사유의 확장에 한계가 있었거든. 그랬던 반면, 이번에 읽은 <블랙케이크>는 민족 고유의 톤을 유지하면서 다채로움을 보여준, 정말 보기 드문 ‘좋은 작품‘이었다. 앞으로 윌커슨의 작품은 내 무조건 읽어주시겠다.


엘리너는 죽기 전 8시간이나 되는 긴 음성 파일을 남겼다. 시작부터 숨겨둔 첫째 딸이 있다는 말에 멘탈이 무너진 오빠와 동생. 엄마는 왜 지금 와서 커밍아웃으로 골치 아픈 숙제를 남겼을까. 이제 이야기는 엄마 엘리너의 과거로 넘어간다. 카리브해 지역의 섬 출신인 그녀는 부친을 잘못 만나 원치 않는 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갑자기 신랑이 거품 물고 죽자 그 틈에 달아나 영국으로 건너간다. 사실 먼저 간 남친따라 온 거지만, 살인범으로 찍힌 지금은 죽은 듯이 지내야 했다. 이후 새로 사귄 친구와 에든버러로 떠나던 중 열차 사고가 난다. 이때 살아남은 그녀는 죽은 친구의 신분을 가져와 ‘엘리너‘로 살아가게 되고, 본래의 자신은 사망한 걸로 놔둔다. 이로써 가족도 친구도 고향도 없는 국제 고아이자 이방인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운 좋게 직장을 구했지만 상사의 아이를 가져버린 엘리너. 결국 퇴사하고 미혼모 쉼터에 가서 무사히 출산하지만, 그곳 수녀들이 딸아이를 강제로 입양 보내버린다. 그렇게 반복된 아픔 가운데, 우연하게도 남친과 만나 부부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온 엄마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사. 두 남매는 어째서 이 얘기들을 진작에 하지 않은 건지 의문이었고, 죽기 직전까지 거짓된 삶을 살아왔으면서 자식들한텐 이것저것 코칭 했던 엄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대략 난감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오빠와 동생은, 자신들의 뿌리가 미국이 아닌 서인도 제도라는 것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반듯하게 자란 오빠는 현재 해양학자가 되어 국가에 많은 공헌을 쌓는 중이다. 그러나 동생은 멀쩡한 대학을 중퇴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제멋대로 살았다. 또한 동성애를 밝힌 이후로 가족과 멀어져 8년 동안 왕래도 연락도 끊어버렸다. 그 사이에 죽은 아빠의 장례식에도 불참했던 동생은 이미 가족들 눈밖에 나버린 상태. 하여 오빠는 대체 무슨 낯짝으로 찾아와 엄마의 유언을 듣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생을 이뻐했던 옛날이 떠올라 심난한 와중에 여태 몰랐던 누나까지 신경 써야 했으니. 엄마의 유언이란 냉동실에 넣어둔 블랙케이크를 꼭 세 명이서 함께 먹어달라는 거였다.


알코올이 가미된 블랙케이크는 서인도 제도의 문화 식품이었다. 맨손으로 섬을 나갔던 엄마가 가진 거라곤 블랙케이크 레시피뿐이었고, 엄마의 엄마에게 전수받았던 이 레시피는 훗날 동생에게 전수되었다. 알고 보니 가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 하나의 상징인 셈. 케이크를 만들면서 엄마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름과 떠나온 곳을 곱씹었을 것이었다.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간신히 얻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속을 눌렀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가장 괴로웠던 일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수영을 못 하게 된 일이다. 별명이 돌고래였던 엘리너는 수영을 정말 잘하고 좋아했다. 그러나 영국에 와서는 죽은 듯 살다 보니 수영은커녕 물에도 갈 수 없었고, 끝내 수영선수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다. 훗날 엄마에게 서핑을 전수받은 오빠는, 아마도 못다 이룬 엄마의 꿈을 이은 게 아닌가 싶다. 한편 함께 수영하던 엄마 친구는 세월 지나 바다를 횡단하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유명 인사가 된 친구를 볼 때마다 얼마나 복잡 미묘했을지. 어쩌면 엄마도 저렇게 멋진 흑인으로써 세상의 편견을 깨뜨렸을지도 모르는데.


변호사를 통해 큰 딸을 데려오는 일에 성공한 남매. 어색해죽겠지만 일단 케이크를 먹어보는데, 케이크 안에 숨겨둔 엄마의 유품들이 세 사람의 가슴을, 특히 동생의 가슴을 마구마구 후벼판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가족들에게 등 돌린 동생의 마음을 엄마도 이제야 알겠다면서. 괴로울 때마다 도망쳤었던 생애를 되돌아보며, 동생의 회피 성향을 뒤늦게 이해함에 사과하는 엘리너. 이제 동생은 전수받은 블랙케이크를 만듦으로써 엄마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거짓말들을 용서한다. 큰 딸도 진짜 혈연을 알게 돼 기뻐하는 눈치다. 그럼 오빠는? 동생과는 예전 사이로 돌아갔지만 엄마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엘리너의 사랑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헌데 이제 와서 진실을 밝혔다는 건, 그동안 거짓으로 자식들을 대한 당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게 아닌가. 엄마는 자녀들에게 용서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너희들의 엄마라고, 이게 나의 가장 진실한 부분이라고만 했다. 그렇다, 그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스토너>의 리뷰에서 그런 말을 적었었다.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것이 곧 나의 정체성을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더욱 힘써서 매달려야 한다. 엘리너가 블랙케이크에 열과 성을 다했던 것처럼. 출신이나 핏줄도 중요하겠으나 다민족/다문화 사회가 된 지금은 ‘뿌리‘보다도 ‘줄기‘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하간 정말 잘 읽었고 불편한 느낌 가득했던 좋은 작품이었다. 차기작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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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24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저도 읽었는데 물감님도 읽었다고 해서 방금 읽고 왔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인데 전 왜 물감님처럼 쓰지 못했을까요? ㅎㅎㅎ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읽어 제 글은 어디에 파묻혔는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제 서재 소설 카테고리에서 찾는 게 더 빨랐는데 다시 읽어 볼 가치는 없고
전 내내 읽으면서 괜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생각한 것 밖에는. ㅋㅋ

낮선 작가네요. 근데 왠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흑인문학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정서와 일맥상통한 점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도 억압 받았고 제 나라 정체로 살아 보지 못한 세월도 있고.
전 어렸을 때 앨랙스 헤일리의 <뿌리>를 TV 시리즈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거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책으로 나왔는데 모르긴 해도
그게 우리나라 최초 흑인문학 번역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할머니 같죠? ㅋㅋㅋㅋ
할머니죠 뭐. 옛날엔 제 나이 때 손주가 서넛은 있었을테니.. ㅠㅠ 잉~
어쨌든 그 책 읽는데는 실패했습니다. 넘 두껍고 진도가 안 나가서.
나중에 이 작품은 다시 영화화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면 함 보세요.
그래도 지금은 여러 작가의 작품이 나와있긴 하지만 그래도 주류 문학에 비하면 턱없죠?

물감 2024-06-25 09:22   좋아요 1 | URL
으하하 그것은 인생책이냐 아니냐에 따른 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인한테 얼마나 울림이 있었는지가 아웃풋으로 나올테니까요 ㅋㅋㅋㅋ 각자한테 맞는 게 있는거죠 뭐.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 작가래요. 아직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듯하고, 게다가 흑인문학이라 더 인기가 없어보여요. 서사를 어떻게 변형했든지간에 흑인문학은 인상이 거기서 거기라 썩 당기지가 않네요. 어쩌면 국내 옛 소설들도 그래서 안보게 되는 건지도...
<뿌리> 찾아보니까 퓰리처 수상작이네요? 언젠가 기회되면 읽어볼게요. 언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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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낮 최고기온이 34도를 찍었다. 갈수록 더워지는 탓에 독서가 잘 안된다. 역시 이럴 땐 술술 읽히는 스릴러소설이 제격인데 고른 책이 영 별로라 솔직히 리뷰도 적고 싶지 않다. 할 수 없이 후다닥 쓰고 끝내련다. 스티븐 킹의 아들인 조 힐은 부친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호러/스릴러 소설가가 되었나 보다. 이 한 권만으로 판단하긴 뭐 하지만 킹보다는 좀 더 묵직한 색깔을 가진듯한데, 흐름도 매끄럽지 않고 전개 방식이나 구조도 좀 많이 미흡하더라. 뭐 초기 작품이라 이해한다만 내가 흥미 없는 오컬트 쪽이 취향인듯하여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싶네. 난 사실 스티븐 킹도 손이 잘 안 가거든.


내용은 사실 별거 없다. 여친이 살해당하고 얼마 뒤에 주인공 이마에 뿔이 자라난다. 그 후로 사람들이 추악한 속마음을 주인공 앞에 줄줄이 고백하고, 스킨십으로 상대의 과거나 생각들도 읽게 된다. 이 능력으로 범인이 절친이란 것과, 자신에게 범죄를 뒤집어 씌운 것까지 알아낸다. 그러나 절친은 잘나가는 사회인이고, 자신은 모두가 혐오하는 용의자라서 행동에 제약이 따랐다. 이제 그는 자라난 뿔의 능력에 의지하여 복수를 꿈꾸는 악마가 되기로 한다.


악마화되었다 해서 없던 괴력이 솟아나고 그러진 않는다. 그냥 남들의 속마음을 읽을 줄 알고, 남들의 성대모사를 할 줄 알게 되고, 다친 몸이 멀쩡하게 돌아오는 정도? 여튼 뿔의 능력으로 대단한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아 작가 나름대로 선을 지킨 건가 싶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내내 얻어터지고만 다니는 주인공한테 뭔 재미와 매력이 있겠냐고. 기왕에 비현실적인 설정을 넣었으면 확 대조되는 변화를 줘도 좋았을 텐데 이건 뭐 흑화하고도 여전히 평범함에 머물러 있달까. 그리고 이야기의 구조도 좀 맥빠지는 식이었다. 초반에 뿔이 난 상태에서 전개되지 않고 계속 과거와 회상 신만 나오는데 대부분 내용이 현시점과 크게 상관없어 보였다. 이미 사태와 범인이 드러났기에 이들의 삼각관계가 그리 흥미롭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리 과거 서사를 쌓아본들 이제 와서 캐릭터의 입체성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스토리 자체가 참 재미없었다. 쥐스킨트의 <향수>를 예로 들면, 냄새 수집에 미친 주인공이 순수 악이 된다는 내용으로, 어떻게 악마화되고 세상에 저항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었다. 헌데 <뿔>은 목적이나 목표가 없다. 물론 작중에서는 범인을 처단하고자 했으나 그것은 뿔(악마)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자체의 원한이다. 오히려 뿔의 능력에 대한 볼거리는 가족들의 속마음을 읽는 장면이 다였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가족들은 용의자가 된 자신을 극도로 꺼려 하고 저주하는 중이었다. 우물쭈물하던 그의 성격은 가족들의 마음을 확인한 뒤로 악마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악마의 탈을 쓴 친구 놈을 보면서 더더욱 인간이길 포기했다. 이렇듯 분노로 각성한 악마화까진 좋았는데, 처참히도 발리는 찐따의 현실은 참말로 볼품없었다. 그보다도 작가가 복수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애. <더 글로리>를 함 보셔야겠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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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지x100 했다가 까먹어서 이제야 적는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의 도장깨기 페이퍼 입니다. <100세 노인>으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전세계를 강타했던 익살꾼이시죠. 이후 내놓은 작품마다 특유의 병맛을 자랑하는데, 갈수록 퍽퍽해져가는 세상살이에 이만한 웃음을 선사해주는 작가도 없지 싶네요. 전 개인적으로 가수나 배우들보다 예능인들이 훨씬 더 멋지다고 보는데요. 마찬가지로 노벨상 받은 작가들보다 이런 유머러스함으로 독자들과 호흡하는 작가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하나하나 작품 소개 들어갑니다.




1.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009) 


https://blog.aladin.co.kr/loveoctave/9185392


요나손 월드를 개최한 기념비적인 작품. 다들 폭소를 터뜨리며 좋았다던데 전 그냥 그랬습니다. 오히려 차기작들이 훨씬 기발하고 재치있었걸랑요. 100세 노인의 현재와 과거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두 내용이 겹쳐지지 않고 끝까지 따로 놀아요. 그래서 연관성은 찾지 마시고 그냥 뇌 빼놓고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과거 폭탄 제조업자였던 노인의 활약이 기대만큼 재미나진 않더라고요. 





2.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2013) 


https://blog.aladin.co.kr/loveoctave/9258166


분뇨통 나르던 남아공 소녀는 어찌어찌해서 핵 개발 연구소에 하녀로 들어갑니다. 이후 기회를 엿보다 탈출하는데 또 어찌어찌해서 핵이 든 가방을 들고 나와버리죠. 그러면 요 애물단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건이겠구나 했는데 이 문제는 생각만큼 중요치 않구요, 뒤에 등장하는 동명이인의 남성 2인조와 만나면서 생기는 각종 에피소드와 풍자들로 승부하는 작품이었습니다. 하도 오래되서 가물가물한데, 이 말도 안되는 개연성을 이렇게 살려냈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3.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2016) 


https://blog.aladin.co.kr/loveoctave/9920785


저는 이 작품이 베스트였습니다. 진짜 이건 약 빨고 쓴 게 확실하다 했거든요. 흙수저 주인공이 은퇴한 킬러와 맛이 간 목사를 만나 청부살인 사업을 엽니다. 그러다 킬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살인을 그만두는데, 옆에서 목사는 살인을 부추기는 대환장 똥꼬쇼가 펼쳐지죠. 이건 뭐 풍자를 넘어서서 디스전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아무튼 이 책 만큼은 읽어봐도 좋겠습니다. 뒷심이 부족해 용두사미로 끝나지만 그럼에도 킹왕짱굳 핵폭풍 재미를 보장한답니다.





4.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2019) 


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1495117


화제의 문제작 입니다. 100세 노인의 재탕이나, 제목 따라 핵을 들고 다녀서가 아니고요. 김정은, 트럼프, 푸틴, 메르켈 등등 온갖 정치가들을 등장시켜 놀림감으로 삼고 있거든요. 왜 세계 정치판을 무대로 잡았는지 뒤에서 말해주지만 그건 뭐 중요치 않습니다. 이번에도 그냥 뇌 빼고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스케일이 커서 좀 산만하긴 해도 1편보단 나았어요~





5.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2020) 


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3094877


약간 폼이 떨어지긴 했어도 전 좋았습니다. 호불호가 있던데, 사실 요나손의 작품은 기대를 하고 읽으면 좀 실망하게끔 되어있어요. 참고하시고요, 이번 작품은 복수 회사를 차린 남자와 직원 둘의 이야기 입니다. 전직 마케터의 기지를 발휘하여 복수 서비스를 홍보하는 기발함이란. 요 스타트업 내용보다도 갑자기 날아든 케냐 남성의 실종된 아들 찾기 운동쪽이 훨씬 재밌습니다. 그의 돌발행동들이 저자의 뇌구조를 제대로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과연 혁신적인 또라이 답네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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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2~3년 주기로 작품을 내놓던데, 어쩌면 곧 신간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신간을 읽으면 요 페이퍼에 추가 작성해넣겠습니다. 설마 102세 노인은 아니겠죠...? 그나저나 완독한지 다 오래된 탓에 설명들이 좀 부실하네요, 하하하하핳 지금 바깥 날씨 엄청 꿉꿉한데, 다들 저처럼 맛팅이 가지 않게 조심하십셔. 그럼,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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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0 2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요나손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글이 통통 튀네요. ㅎ
근데 100세 노인 물감님도 그저 그랬군요.
저는 오래 전 영화로 본 적이 있는데 영화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막 책까지 사 보고 싶은 생각은 안 들더라는...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한가 봅니다.

이건 딴 얘긴데 공유는 어디로 갔나요? 서재 이미지 웃겨요.
설마 물감님이...?ㅋㅋ

물감 2024-06-10 22:13   좋아요 3 | URL
정말 좋아한다고는 못하겠는데 암튼 계속 손이 가네요ㅎㅎㅎ 100세 노인은 코믹의 탈을 쓴 역사 여행기? 같았어요. 생각보다 웃음포인트는 없었던...

공유는 너무 나이들어서 이제 그만 놓아줬습니다ㅋㅋㅋ 이번을 끝으로 프사 안바꿀라고요~ 으하핳

호시우행 2024-06-11 0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나손 작가님에 대해 독자들도 호불호가 분명 있을 것 같아요.

물감 2024-06-11 09:27   좋아요 2 | URL
이런 B급 정서가 싫은 분들도 많을테니, 아무래도 호불호는 갈릴 거에요. 그래도 전세계가 주목할 정도면 한 번 쯤은 관심 줘도 괜찮지 않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

구단씨 2024-06-12 22: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완독한 건 100세 노인 뿐이네요. ㅎㅎㅎ
나머지 작품은 읽다가 말고, 첫 페이지 읽고 덮고 그랬거든요.
근데 100세 노인 내용인 기억도 잘 안나요.
물감님 평점은 100세 노인이 가장 낮은 점수군요. ^^

물감 2024-06-13 08:5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는 100세 노인이 제일 별로였어요~ 중편 2개가 계속 교차되는 느낌? 그렇게 연관되지도 않고 말이에요. 개인취향 입니다^^
요나손 작품들은 휴가철에 타임킬링용으로 제격입니다. 머리 식힐 겸 읽으시면 딱ㅋ

singri 2024-06-12 2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킬러~ 읽어야겠네요ㅋ

물감 2024-06-13 08:57   좋아요 2 | URL
하하 킬러 안데르스는 정말 추천합니다 ㅋㅋㅋ
뭐이런 똘끼가 다있나 싶더라니까요 ㅋㅋ

잠자냥 2024-06-28 15: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왠지 이달의 페이퍼....예감

물감 2024-06-28 15:30   좋아요 2 | URL
그런 노래 가사가 있죠.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6-28 15:42   좋아요 2 | URL
내기하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7-06 12:35   좋아요 2 | URL
내기 적중!!!

물감 2024-07-06 13:15   좋아요 1 | URL
오잉 진짜네요ㅋㅋㅋ촉집게 잠자냥님ㅋㅋㅋ소원을 말해봐🙏
 
페터 카멘친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3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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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해질 때면 헤르만 헤세를 읽는다. 헤세 작품도 거의 다 읽어가는데 그다음엔 누구를 읽어야 하나. 헤세와 흡사한 기질을 지닌 나님은 이지러진 톱니바퀴 같아서, 잘 짜여진 세상의 틈바구니 가운데 쉽사리 염증을 느끼곤 한다. 스스로 방랑자라 일컫는 헤세처럼 나 역시 어느 한 곳에 마음을 정착시키지 못하는 병 아닌 병이 있다. 여러 번 옮겨 다닌 학교와 직장, 그 밖에 활동했던 단체와 각종 소모임들. 타고난 내향인임에도 남들과 어울리고 소통하길 반복했고, 어렵지 않게 사람들을 사귀긴 했지만 나와 맞지 않는 타입이 대부분이고, 정말 친해지고 싶은 이들은 나만큼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라더니 정말 맞는 말이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 저들은 즐거운 사람을 원하고 나는 편안한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마음이 가는 부류는 대개 온화하고 예의 있고 품성이 바른 면을 가진 쪽이었는데, 얼핏 노잼같아 보이는 타입들도 얼마든지 유머러스하고 핑퐁이 잘 되는 걸 봐온 터라, 나는 정반대에 끌리기보다 나와 비슷한 코드에게 끌리곤 했다. 하지만 뭐랄까, 그런 희귀종을 보기도 힘들뿐더러, 서로 간에 우정과 믿음이 돈독해지는 걸 가로막는 방해 요소가 너무도 많은 현대사회의 장벽을 자주 느꼈다. 차라리 나도 재능을 발휘하여 거기에 매달린다거나, 돈 버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거나 했으면 좋겠는데 당최 그런 의욕이 들지를 않으니 어쩔 땐 스스로도 참 못나 보이고,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바심도 들고, 돌고 돌아 결국 혼자라는 생각에 다 부질없다 싶고, 또 누군가 내민 친절에 사르르 녹아내리고. 나나 헤세 같은 부류는 절망 속에 내린 한줄기 빛을 발견할 때까지 평생 떠돌다가 운명할 팔자려니 한다.


헤세의 첫 장편인 <페터 카멘친트>는 시인 출신답게, 온통 시적 묘사로 수놓은 문장의 연속이었다. 아름다운 글도 좋지만 이처럼 정도가 과하면 나는 쉽게 물려버린다. 마치 한 가지 반찬만 여러 그릇에 담겨 내오는 식당에 간 기분이랄까. 이래서 나는 글보다 이야기를 더 우선시하는 편이다. 일단 첫 소설답게 자전적 경험들이 실려있지만 이후에 쓴 차기작들처럼 특정한 고뇌나 어떤 경험, 통찰에 대하여 깊게 파고든 게 아닌, 20대까지의 헤세의 일대기를 프리뷰했다고나 할까. 산골마을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페터 카멘친트는, 외국을 여행하며 시와 소설을 쓰고 우정과 사랑도 경험한다. 고향에서는 좀처럼 마음 맞는 사람이 없어 사람보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았지만, 외국 땅에서는 친절하고 잘 통하는 이웃들이 많았고,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 고향과 가족은 점점 뒷전이 된다. 이래저래 바쁜 청춘을 보내던 중 하나뿐인 친구가 죽고, 얼마 뒤에 모친도 운명한다. 그 후 다시 여행하다 머문 집의 어린 딸이 병으로 죽자, 홀로 남은 부친이 걱정되어 고향에 돌아간다. 이렇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들게 된 생각은, 어떻게 살아본들 죽음뿐이라면 대체 무엇을 위한 삶이어야 하는가였다.


죽음이 반복되지만 오히려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청년이 학업에 몸을 던지고, 처음으로 통하는 친구를 사귀고, 이뤄지진 못했지만 사랑에도 빠져보고, 자신 없던 글재주로 밥벌이도 해보고, 타지에 가서 환대를 받는 등 먹구름 가득한 내면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줄기가 주인공을 매번 일으켜주고 있었다. 비록 기쁨의 수명은 짧았고, 그 때문인지 거처를 계속 옮겨 다녔지만 도중에 만났던 인연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 같은 방랑자들은 남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남아도는 혼자의 시간들을 추억거리로 채워 넣지 않으면 안 된다. 잠깐이었지만 행복했던 찰나의 기억들로, 그 순간이 주었던 고마운 감정들로 밀려드는 외로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겨우 생긴 ‘내 사람‘들은 다 죽거나 멀어졌으니 불행하다고 해야 할까.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헤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온통 번민에 잠겨있고 허무와 씨름하며 결핍에 허덕인다. 하여 헤세의 삶은 불행했을지라도 이 작품만으로는 그렇게 보기 어려운 게 죄다 살짝 맛보기 식으로 다루고 있거든. 하지만 반대로 헤세의 전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후반부에 절친이 된 꼽추는 페터에게 없었던 관점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처럼 자신 또한 고통과 절망을 다각도에서 보고 접근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하여 자연으로 회피하기 바빴던 주인공과 헤세는,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와의 싸움을 계속해나가기로 한다. 이 책을 냈을 때가 27세였으니 그쯤이면 자신의 십자가를 인정하고도 남았을 테지. 나도 그걸 알아서 이 글 쓰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나의 글들은 서평의 형식을 하고 있는 자기 치유의 산물이다. 이렇게 또 한 번 외로움을 달래주고 불행을 견딘다고나 할까. 그 결핍 덕분에 꾸준한 글쟁이가 되었으니 고마워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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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7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춘기 때 헷세의 작품 몇권 읽었는데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싶다가도 읽을 자신이 없더라고요.
모르긴 해도 헷세가 요즘 사람이었으면 소수의 독자들만 좋아했을 것 같아요.ㅋ

물감 2024-06-17 14:36   좋아요 1 | URL
요즘 작가였다면 과하다 못해 쎄하죠 ㅋㅋㅋㅋ
헤세가 극소수 유형인지라, 헤세 좋아하는 독자들도 극소수이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인지 헤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금방 친해지고 끈끈해지는 그런게 있습니다 ㅋㅋ

stella.K 2024-07-06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은 우울질이어서 헤세 같은 거 읽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은데
알라딘이 이 사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물감님한테 덜컥 이달의 당선작을 줬네요.
더 우울해하지 말라고 준 것인지도 모르죠? ㅎㅎ
암튼 축하합니다. 저 이런 인사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좀 거시기한데 지난 번에
댓글 남긴 것도 있고 날씨도 하도 꿉꿉해서 남겨봅니다. ㅋㅋㅋ

저는 헤세 읽은지가 오래되서 물감님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릴지도. ㅋㅋ 3=33

물감 2024-07-06 21:57   좋아요 1 | URL
ㅋㅋㅋ더 우울해지는게 아니라 공명해서 위로를 받는 편입니다. 이 말 다른 리뷰에 적었었어요! 나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작가를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습니까요🙂🙂🙂
별셋 줬는데도 당선이 되었네요 신기...ㅋㅋ저는 이웃분들과 기꺼이 밖에서도 만나자 할 만큼 친하게 지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만, 저를 좋아하는 분이 없어서 말이지요 하하하

stella.K 2024-07-06 22:4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니 왜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안 그런 거 같은데.
괜히 연막치는 거 아닙니까? 하여간 툴툴이십니다. ㅋㅋ

저는 이번에 미끄덩이지 뭡니까? 지난 번 리뷰 때 너무 갠적인 얘기를 해서
규격에 안 맞아 탈락시켰나 봐요. 거기다 알라딘 생파에 찬물을 끼얹져서. ㅍㅎㅎㅎ
에이 뭐, 이젠 그러면 그런가 합니다. 제가 나름 또 막가파거든요. ㅋㅋ
암튼 남은 휴일 잘 보내시고 좋은 책 많이 읽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