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케이크
샤메인 윌커슨 지음, 서제인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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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이현우 서평가가 말하길, 읽고 나서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야 좋은 책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충분한 생각거리를 갖게 할수록 건강한 독서가 된다는 말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말했던 ‘책은 도끼여야 한다‘라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일수록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문학만큼은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인종차별과 정체성 혼란, 아픈 역사 등등 흑인문학은 온통 비애로 가득 차 있어 ‘좋은 책‘의 조건은 다 갖췄으나 딱 거기까지, 이게 다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랬다. 적어도 내게는 흑인문학들마다 접근 방식이 비슷비슷하여 사유의 확장에 한계가 있었거든. 그랬던 반면, 이번에 읽은 <블랙케이크>는 민족 고유의 톤을 유지하면서 다채로움을 보여준, 정말 보기 드문 ‘좋은 작품‘이었다. 앞으로 윌커슨의 작품은 내 무조건 읽어주시겠다.


엘리너는 죽기 전 8시간이나 되는 긴 음성 파일을 남겼다. 시작부터 숨겨둔 첫째 딸이 있다는 말에 멘탈이 무너진 오빠와 동생. 엄마는 왜 지금 와서 커밍아웃으로 골치 아픈 숙제를 남겼을까. 이제 이야기는 엄마 엘리너의 과거로 넘어간다. 카리브해 지역의 섬 출신인 그녀는 부친을 잘못 만나 원치 않는 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갑자기 신랑이 거품 물고 죽자 그 틈에 달아나 영국으로 건너간다. 사실 먼저 간 남친따라 온 거지만, 살인범으로 찍힌 지금은 죽은 듯이 지내야 했다. 이후 새로 사귄 친구와 에든버러로 떠나던 중 열차 사고가 난다. 이때 살아남은 그녀는 죽은 친구의 신분을 가져와 ‘엘리너‘로 살아가게 되고, 본래의 자신은 사망한 걸로 놔둔다. 이로써 가족도 친구도 고향도 없는 국제 고아이자 이방인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운 좋게 직장을 구했지만 상사의 아이를 가져버린 엘리너. 결국 퇴사하고 미혼모 쉼터에 가서 무사히 출산하지만, 그곳 수녀들이 딸아이를 강제로 입양 보내버린다. 그렇게 반복된 아픔 가운데, 우연하게도 남친과 만나 부부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온 엄마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사. 두 남매는 어째서 이 얘기들을 진작에 하지 않은 건지 의문이었고, 죽기 직전까지 거짓된 삶을 살아왔으면서 자식들한텐 이것저것 코칭 했던 엄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대략 난감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오빠와 동생은, 자신들의 뿌리가 미국이 아닌 서인도 제도라는 것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반듯하게 자란 오빠는 현재 해양학자가 되어 국가에 많은 공헌을 쌓는 중이다. 그러나 동생은 멀쩡한 대학을 중퇴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제멋대로 살았다. 또한 동성애를 밝힌 이후로 가족과 멀어져 8년 동안 왕래도 연락도 끊어버렸다. 그 사이에 죽은 아빠의 장례식에도 불참했던 동생은 이미 가족들 눈밖에 나버린 상태. 하여 오빠는 대체 무슨 낯짝으로 찾아와 엄마의 유언을 듣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생을 이뻐했던 옛날이 떠올라 심난한 와중에 여태 몰랐던 누나까지 신경 써야 했으니. 엄마의 유언이란 냉동실에 넣어둔 블랙케이크를 꼭 세 명이서 함께 먹어달라는 거였다.


알코올이 가미된 블랙케이크는 서인도 제도의 문화 식품이었다. 맨손으로 섬을 나갔던 엄마가 가진 거라곤 블랙케이크 레시피뿐이었고, 엄마의 엄마에게 전수받았던 이 레시피는 훗날 동생에게 전수되었다. 알고 보니 가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 하나의 상징인 셈. 케이크를 만들면서 엄마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름과 떠나온 곳을 곱씹었을 것이었다.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간신히 얻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속을 눌렀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가장 괴로웠던 일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수영을 못 하게 된 일이다. 별명이 돌고래였던 엘리너는 수영을 정말 잘하고 좋아했다. 그러나 영국에 와서는 죽은 듯 살다 보니 수영은커녕 물에도 갈 수 없었고, 끝내 수영선수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다. 훗날 엄마에게 서핑을 전수받은 오빠는, 아마도 못다 이룬 엄마의 꿈을 이은 게 아닌가 싶다. 한편 함께 수영하던 엄마 친구는 세월 지나 바다를 횡단하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유명 인사가 된 친구를 볼 때마다 얼마나 복잡 미묘했을지. 어쩌면 엄마도 저렇게 멋진 흑인으로써 세상의 편견을 깨뜨렸을지도 모르는데.


변호사를 통해 큰 딸을 데려오는 일에 성공한 남매. 어색해죽겠지만 일단 케이크를 먹어보는데, 케이크 안에 숨겨둔 엄마의 유품들이 세 사람의 가슴을, 특히 동생의 가슴을 마구마구 후벼판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가족들에게 등 돌린 동생의 마음을 엄마도 이제야 알겠다면서. 괴로울 때마다 도망쳤었던 생애를 되돌아보며, 동생의 회피 성향을 뒤늦게 이해함에 사과하는 엘리너. 이제 동생은 전수받은 블랙케이크를 만듦으로써 엄마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거짓말들을 용서한다. 큰 딸도 진짜 혈연을 알게 돼 기뻐하는 눈치다. 그럼 오빠는? 동생과는 예전 사이로 돌아갔지만 엄마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엘리너의 사랑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헌데 이제 와서 진실을 밝혔다는 건, 그동안 거짓으로 자식들을 대한 당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게 아닌가. 엄마는 자녀들에게 용서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너희들의 엄마라고, 이게 나의 가장 진실한 부분이라고만 했다. 그렇다, 그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스토너>의 리뷰에서 그런 말을 적었었다.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것이 곧 나의 정체성을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더욱 힘써서 매달려야 한다. 엘리너가 블랙케이크에 열과 성을 다했던 것처럼. 출신이나 핏줄도 중요하겠으나 다민족/다문화 사회가 된 지금은 ‘뿌리‘보다도 ‘줄기‘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하간 정말 잘 읽었고 불편한 느낌 가득했던 좋은 작품이었다. 차기작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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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24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저도 읽었는데 물감님도 읽었다고 해서 방금 읽고 왔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인데 전 왜 물감님처럼 쓰지 못했을까요? ㅎㅎㅎ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읽어 제 글은 어디에 파묻혔는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제 서재 소설 카테고리에서 찾는 게 더 빨랐는데 다시 읽어 볼 가치는 없고
전 내내 읽으면서 괜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생각한 것 밖에는. ㅋㅋ

낮선 작가네요. 근데 왠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흑인문학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정서와 일맥상통한 점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도 억압 받았고 제 나라 정체로 살아 보지 못한 세월도 있고.
전 어렸을 때 앨랙스 헤일리의 <뿌리>를 TV 시리즈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거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책으로 나왔는데 모르긴 해도
그게 우리나라 최초 흑인문학 번역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할머니 같죠? ㅋㅋㅋㅋ
할머니죠 뭐. 옛날엔 제 나이 때 손주가 서넛은 있었을테니.. ㅠㅠ 잉~
어쨌든 그 책 읽는데는 실패했습니다. 넘 두껍고 진도가 안 나가서.
나중에 이 작품은 다시 영화화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면 함 보세요.
그래도 지금은 여러 작가의 작품이 나와있긴 하지만 그래도 주류 문학에 비하면 턱없죠?

물감 2024-06-25 09:22   좋아요 1 | URL
으하하 그것은 인생책이냐 아니냐에 따른 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인한테 얼마나 울림이 있었는지가 아웃풋으로 나올테니까요 ㅋㅋㅋㅋ 각자한테 맞는 게 있는거죠 뭐.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 작가래요. 아직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듯하고, 게다가 흑인문학이라 더 인기가 없어보여요. 서사를 어떻게 변형했든지간에 흑인문학은 인상이 거기서 거기라 썩 당기지가 않네요. 어쩌면 국내 옛 소설들도 그래서 안보게 되는 건지도...
<뿌리> 찾아보니까 퓰리처 수상작이네요? 언젠가 기회되면 읽어볼게요. 언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