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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평점 :
하도 피곤해서 일찍 뻗느라 요즘 책 읽을 시간이 잘 없다. 그래서 호흡이 짧은 책이 필요하여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를 집었는데 결과는 매우 만족. 솔직히 국내 에세이들, 다 고만고만해서 안 읽지만 독서나 글쓰기에 관한 거라면 읽어줘야제. 일단 저자가 자신을 작가나 소설가가 아닌 ‘읽고 쓰는 인간‘으로 소개하고 있어, 이건 또 뭔 어그로인가 싶었는데 읽어보니 왜 그렇게 정의했는지 알겠더군. 장강명 작가. 이젠 꽤나 유명하시지. 책도 많이 내고, 상도 많이 타고, 팬들도 많이 확보했고.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어본 바 나랑은 잘 맞지 않는 작가 중 하나였다. 내가 또 르포 장르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데 지금은 이 사람이 좀 좋아져 버렸다.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는 말들처럼 장강명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이 분도 타 작가들처럼 생계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 솔직히 장강명 정도면 스타 작가 아이가? 나야 뭐 안 맞아서 그렇다 치고, 내 주변에 장강명 책 안 읽는 사람이 없던데? 찾아주는 사람도 많고 본업도 부지런히 하는 데다 여러 방송과 강연도 나가는데, 이만하면 충분히 성공한 거 아닌가? 하지만 태생이 아웃사이더인 그는 모든 것이 부담 위에 부담이었음을 이 책으로 고백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고충은 나오지만 그걸로 내내 징징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근데 기자 활동은 대체 어떻게...
나와 저자의 공통점이 생각보다 많았다. 내 좌우명이 ‘쓰기 위해 읽는다‘인데, 나 또한 읽고 쓰는 인간의 범주에 있지 않겠나. 저자는 나처럼 다독에 집착하지 않고, 한 권을 읽어도 깊이 이해하려는 타입이다. 이런 사람들은 꼭 텍스트를 뽑아내야만 숨통이 트인다. 글쓰기에 어떤 의미나 목적을 두는 게 아닌데 누군가가 왜 글을 쓰냐고 물어오면 달리 할 말이 없어진다. 차라리 잠은 왜 자는 거냐고 물어봐라.
다양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데 그중 ‘서평‘에 대한 일가견이 가장 와닿았다. 이 분은 국내 서평 문화에 정말 관심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한국 서평은 악평이 없어서 문제라고 한다. 읽는 책마다 만점 주고, 어디가 어떻게 좋은 지도 모르면서 마냥 좋았다는 부류들을 싫어하는 것도 나하고 똑같다. 사실 나는 혐오에 가깝지만. 진정성 있는 서평에 굶주린 저자에게 나의 글들을 읽게 해주고 싶군. 작가님, 제가 솔직함으로는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는 프로까칠러랍니다. 부디 이 글을 보신다면 흔적을 남겨주십쇼. 저는 인싸보다 아싸를 좋아합니다.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만난 작가들과 신간들, 그리고 방송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그것보다는 저자 본인의 평소 생각을 말하는 장면들이 훨씬 재밌고 유익하다. 그는 말하고 듣는 유형과, 읽고 쓰는 유형으로 사람들을 나눈다. 전자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후자는 시대를 앞서가느라 미래를 살아간단다. 나는 말하고 듣는 걸 참 좋아하지만 그래도 후자에 가깝다. 뭔가를 쓰기 위해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길 반복하다 보면 확실히 현재보다 훗날을 더 내다보게 된다. 단점은 자꾸 시대를 초월하려다 보니 현재가 시시해진다는 것. 그래서 미래로 가기 위해 책을 계속 읽게 되나 보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말과 행동에 더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사상을 심어준 대가는 서로를 구덩이에 빠뜨린다. 그래서 나는 언변이 뛰어나고 입담이 화려한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는다. 기 빨려서 피곤하기도 하고. 여튼 장강명은 내가 좋아하는 신중한 아싸인데 적당히 대화를 즐기는 사람 같다. 그가 소신 있게 적은 여러 가지 대목 중에서, 꼭 창작을 못하는 것들이 비평을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게 정말 멋있었다. 모 축구선수의 유명한 어록이 있었지.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했으랴 싶지만,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타인의 평가는 혹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장강명은 자신의 책을 읽고 신랄하게 까줘도 좋다는 마인드를 보여주어 멋지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책뿐 아니라, 한 사람에 대해서도 좀 리뷰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나도 누군가가 나와 내 글들에 대해 리뷰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설령 그게 악평이라도 진정성이 담겨있다면야.
진짜 간만에 이야기 다운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다. 저자는 좋은 책의 기준을 취향이 아닌 가치관의 차이라고 하였다. 그 말인즉슨 세상에는 가치 없는 책이 한 권도 없다는 말일 테다. 각자에게 맞는 책을 부지런히들 읽고 쓰는, 보다 더 진정성 있는 독자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작가는 작가로써, 독자는 독자로써 의무를 다하기로 하자. 만 권을 읽어도 제자리걸음이면 이 무슨 시간 낭비야, 안 그래? 그럴 바엔 맛집이나 찾아다녀라 말해주고 싶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