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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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벗어난다는 것은 서울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서울이 한국의 수도여서가 아니다. 그 사실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다. 이 나라에 있을 바에는 이 도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 자체가 최선이 아닐 바에야 그 의미가 얼마나 중요할까 싶지만, 당분간 한국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을 테니 머무는 동안 만큼은 중요하다. 서울 자체가 지닌 매력보다도, 한국의 나머지 도시에 모자란 매력들 덕분에,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이 도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정치지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정치라는 단어와 결합한 데서 드러나듯, 서울의 지형, 기후, 식생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는 이 책의 대상과 거리가 멀다. 서울의 토지 위에 세워진 건물들과 그곳을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이면에서 좌우하는 정치와 자본의 원리가 대화의 중심에 놓였다. 이 도시가 너무나 구체적인 까닭에, 제도가 도시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모호해 보인다. 서울에는 가시적인 건물, 노골적인 욕망, 개별적인 시민들만 있는 듯하다. 바로 이러한 인상이야말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운영한 정치와 경제 권력이 얼마나 유능한지를 반증한다. 시민들의 욕망이 언제나 온갖 건물들로 수렴되도록 적절한 제도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임동근: (전략) 1975년에 아주 재미있는 보고서가 나옵니다. ‘주택 유효수요 추정 연구라는 역사적인 보고서입니다. 쉽게 말하면 주공이 집 살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일까를 검토한 보고서입니다. 결론은 아파트로 나옵니다. 당시 아파트 선호도는 6퍼센트가 안 되었고, 국민의 94퍼센트가 아파트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대졸자만 놓고 보면, 소득수준이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아파트 선호도가 11퍼센트 넘게 나옵니다. 더 재미있는 점은 여자 대졸자를 중심으로 조사하면 25퍼센트가 넘어버렸습니다.

 

김종배: 이해가 되죠. 단독주택에서 살 때와 아파트에서 살 때 가사의 범위와 강도와 양이 달라지잖아요. -p.194

임동근: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전두환 대통령 때까지 더 많이는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 분양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당시 사무직 노동자였습니다. 샐러리맨, 근속이 보장되는 임금 노동자들은 혜택을 확실히 봤습니다. -p.215

 

 아파트는 어떻게 지금처럼 서울의, 한국의 핵심적인 주거 양식이 됐을까? 이 건물을 선호한 특정한 소득, 학력 집단에 정부가 주목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정부의 정책 목표가, 대졸자 이상의 사무직 노동자 가정을 늘려서 사회와 시장과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국민들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아파트에 대한 선호는 매우 미미했지만, 애초에 모든 국민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 정부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여기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더 거칠게 말하면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은 94퍼센트의 국민 중 대다수는 결국 아파트가 대세가 되면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정책적 예측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현재 서울을, 한국을 채운 수많은 아파트들은 단순히 사람들의 욕망만으로 지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아파트를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다양한 제도와 수단으로 추진력 있게 공급해 낸 결과였다. 정부가 저가에 택지를 공급하는 대신, 기업들이 조성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대량의 아파트를 분양하고, 국민들은 그렇게 분양받은 아파트를 비싸게 시가로 서로 팔며 돌리는 부의 증식 체제는 어느 한 쪽의 노력이나 소망만으로 지탱된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의 화자들은 이 과정에 대한 가치 판단보다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정부와 기업이라는 두 주체의 관점에서 이 제도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하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섣부르고 어설픈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1970년대의 특정지구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 1980년대의 택지개발촉진법과 같이 정부가 추진한 개발 노선과 이에 따라 반포, 잠원, 압구정에 이어 개포 등에서 재벌 건설사들이 지어올린 아파트 단지의 내력을 짚어 냈다.

 

임동근: (전략) 말씀드렸듯이 돈을 한쪽(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체비지)으로 모으려는 의도와 관련해서는 돈이 빠져나가려는 곳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는 조치가 효과가 제일 큽니다. 그래서 부천, 소사 등 당시 발전하고 있던 곳이 그린벨트로 묶입니다. 부천은 여러모로 폭탄을 맞는데, 워낙 극비로 진행시키다 갑자기 터뜨렸기 때문에 정부기관 중에서도 미처 대응을 못한 기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한주택공사가 이 지역에 아파트를 분양하려고 토지조성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땅이 그린벨트로 묶인 겁니다. 결국 못 지었어요. 당시 태완선 건설부장관의 경우, 장관의 선산도 그린벨트로 묶여 버립니다. -p.126

 

 1970년대에 넓은 강남 땅을 아파트 단지로 개발해야 했던 또 다른 이유는 경부고속도로였다. 막대한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책으로 정부는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실시해 막대한 땅을 수용하고, 그 중 도로 부지를 제외한 체비지를 민간에 매각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의 유동 자금이 기반 시설도 변변치 않은 강남 일대의 체비지로 쉽사리 모이지 않자, 부동산 수요가 높던 지역들을 그린벨트로 묶어 자금 유입을 봉쇄한 것이다. 그 결과 정부가 팔고자 한 체비지로 자금들이 보다 수월하게 유입됐다. 강남이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진 셈이다. 양쪽 모두 자금은 적고 권력은 많았던 시대의 정부가 자의적인 동시에 효율적으로 집행한 정책의 소산이었다. 비록 강남 개발은 물론이고 그린벨트조차도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모순이 적지 않았지만, 경부고속도로가 한국 경제에 가져 온 효용성을 고려한다면, 그저 막다른 길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경부고속도로, 그린벨트, 강남 개발의 연관성은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을 보여 주었다. 더 나아가서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대도시의 개발은 표면에서는 관련성이 희박해 보이는 다양한 요소들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단연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상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대도시의 통치는 결국 어떤 문제를 없애고, 어떤 문제를 키울지의 끊임없는 선택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서울은 비록 완벽한 최선의 노선을 밟아 왔다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이 규모와 수준을 생각할 때 적어도 최악의 선택을 거듭했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그 선택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최선이라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다만 이 도시를 그나마 이 나라에서 쓸 만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다른 도시로 가기 곤란한 이유다.

 

임동근: 초고층 빌딩의 경우에는 경영 기법이 굉장히 다양해요. 저도 어렸을 때 꿈꾸었던 게 초고층 건물 매니저였어요. 그러니까 전 세계 100층 넘어가는 빌딩 중에서 흑자를 보는 빌딩 비율이 5퍼센트가 안 됩니다.

 

김종배: 진짜요? 왜요?

: 일단 고층 건물은 엘리베이터 제대로 만들고 운영하기가 너무 힘들고요. 물도 전기도 거기까지 올렸다 내렸다 해야 하고, 쓰레기 문제 해결해야 하고 세입자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게 원활해야 하는데 큼직큼직하게 세를 줬다가 큼직한 놈이 빠지면 끝장나는 거죠. 그래서 직원도 굉장히 많고, 거의 도시 경영이랑 비슷합니다. -p.324

임동근: (전략) 우파 교수에게 들은 재미있는 통계가 있는데, 파리의 경우 개인 소비를 놓고 보면 70퍼센트가 집하고 교통입니다. 그런데 이 70퍼센트가 국가에 속한 게 많습니다. 대중교통은 공영 버스, 공영 지하철이니까 대중교통도 국가 소유, 집도 공영 주택이 워낙 많으니까 국가 것입니다.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다른 나라에 돈을 많이 빌려준 나라이고 네 번째로 돈을 많이 빌려 온 나라랍니다. 그렇게 뻔질나게 돈이 국내외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경제가 안정되게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안에서 돈이 안정적으로 돌기 때문입니다. 안에서 돈을 어떻게 돌릴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대도시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p.409

 

 하지만 언제까지 서울이 지금의 구조나마 유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는 양보다, 그 소득이 효율적으로 순환하지 못하고 소수의 계층에 집중, 정체되는 양이 확대되고 있다. 개인들의 소비가 도시를 유지하는 데 쓰이지 못하고, 또 다른 소수의 개인만을 지탱하는 데 소모되는 상황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서울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시민들에게 수혜를 입힌다는 관점이 아니라, 그렇게 확보된 그들의 여유 자금이 모여서 도시 속에서 서로 순환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낱 빌딩을 운영할 때도, , 전기, 엘리베이터와 같은 자원의 순환이 중요한데 그런 빌딩들이 수없이 모인 도시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모든 엘리베이터가 이동할 때 언제나 그 층에서 멈추도록 강제한다면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이 증가할 뿐이다. 다수 시민들의 소득이, 규모가 크고 자산이 많은 소수 시민들에게 집중되는 동안, 서울의 엘리베이터는 내릴 사람이 없는 층에서 아무 때나 멈춰서 문을 여닫는다. 선택과 집중으로 성장한 도시라면, 선택과 순환으로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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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8 - 난리편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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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작품을 볼 때, 일부러 결말을 안 보려고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리 끝을 알고서야 안심하고 읽는 타입도 아니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은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이어서 냅다 샀어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탓에 읽는 동안 때때로 구글에서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가 양의 미래에 대해서 알게 됐다.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면 이런 사달이 난다. 다행히도 읽는 동안 긴장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사건이 언제 일어나는지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노력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여기서 양의 최후를 맞았다. 이제르론 요새를 둘러싸고 라인하르트의 제국군에게 벼랑 끝으로 떠밀렸던 공방전을 끝내 버텨낸 끝에 갑작스레 닥친 파국이었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압도적인 군세의 제국군과의 대결에서 패배를 면하고, 라인하르트와의 회견 및 종주권과 자치권 합의만을 남겨 둔 이상, 작품 속에서 양의 역할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양은 합리적이며 유능한 권력자의 전제주의가 패권을 장악한 은하제국에 강자의 자제를 법률과 기구로 제도화한”(은하영웅전설7, p.285) 민주주의의 씨를 무사히 뿌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장해서 수확할 때까지 지켜보는 것은, 양의 소임도 소망도 아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자 군인인 양 웬리는 그 체제와 이념을 온전히 수호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의무를 확장하지 않았다. 그 범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그가 이 작품에서 겪은 내적 갈등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의 손에서 이제르론을 지켜냄으로써 그가 할 일은 매듭지어진 셈이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결국 사람에 대한 불신이다. 양이 자유행성동맹 시절부터 몇 차례나 정치권력을 장악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끝끝내 그것들을 택하지 않았던 것은 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권력을 지닐 민주사회의 인간들 자체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제국과의 강화만 성립시키면, 그는 가장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은 이미 여러 차례 대답했다는 듯이 세상을 떠났지만. 만약 양이 살았다면, 그래서 또다시 엘 파실 독립정부의 직업군인 중 우두머리로만 남았을 때 그는 이 신생 민주국가에서 어떤 상황에 놓였을까?

 

 연전연승에 제국과의 화평과 공존을 서슴없이 주장하며, 말뿐인 주전론을 가차 없이 경멸하는 그는 결국 또 다시 정치적곤경에 빠졌을 것이다. 엘 파실의 사람들 역시 과거의 자유행성동맹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말뿐인 작자였을지라도 당당하게 주전론을 외치며 국민들을 결속시켰던 욥 트뤼니히트의 가치를 되새김질할 정도니까. 일 파실의 정치가와 국민들이라고 해서 양이라는 존재를 편안히 방관했으리라는 예측은 우연과 행운에 대한 맹신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양의 죽음은 사실상 지금까지 보았던 민주주의 국가의 발작적인 모순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선고와도 같았다. 그는 자신만을 믿는 정부도 언제나 원하지 않았고, 그의 충성심을 민주주의의 이념이 아닌 일개 국가나 인간에게 못 박으려는 정부나 권력자에게 오랫동안 시달렸다. 같은 모순과 파국을 또다시 보는 것은 독자에게도 곤혹스럽지만, 책 속의 인물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정반대로 이제르론을 지켜낸 양이 이제 와서 엘 파실의 정치 지도자가 된다면,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뒤엎는 꼴이 더 우스울 뿐이다


 공교롭게도 엘 파실 정부의 수반이었던 롬스키 역시 사망한 까닭에 더 수월해진 면도 있지만, 양의 피후견인 율리안 민츠와 그의 아내 프레데리카 G. 양이 엘 파실 정부가 해체된 후에 수립된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정무와 군무를 각각 대표하게 된 것은 양이 세상을 떠나면서 발생한 공백 덕분에 가능한 변화였다. 그들은 양 자신이 아니기에, 권위나 권력이 취약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양이 그토록 두려워했을 전제화의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졌다. 양 자신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면, 엘 파실 정부가 흩어지지는 않았을지라도 여전히 양과 민주정치의 활로를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여기까지 이른 이 작품의 세계관 속에서는, 적어도 그러했다.

 

이건 소설 집필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되겠지만, 양 웬리가 남에게 암살당한다고 했을 때, 양의 동료들은 적대하는 제국 내지는 동맹 누군가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때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가에 따라 소설 행방이 달라지는, 그 정도의 전환점 아니었나요?

다나카 요시키: ......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까지 스토리를 전개했으니까. 라인하르트는 적이지만 이런 수단을 쓸 놈은 아니라는 작품 내에서의 인물 평가를 확립해놓아야만 한다는 건 느꼈습니다. -p.332~333

 

 물론 프레데리카와 율리안이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이끌게 된 것은 내부적으로 양이 사라졌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도 존재했다. 은하제국의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양이 사라진 이제르론을 군사적으로 수복할 의지나 야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이 두 사람도 제국에 섣불리 항복하거나 무모한 결전을 추진하지 않고, 떠날 사람들은 보내고, 새로이 정부를 세워 일단 민주주의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제르론 요새의 사람들은 양이 사라진 이제르론 요새를 제국의 황제가 무리하게 정벌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공유했다. 그저 무리한 낙관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바로 직전의 치열한 전투에서야말로 라인하르트가 노리는 것은 단순히 이제르론 요새나 엘 파실 정부가 아니라 그저 그것들을 지키는 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잘 드러났으며, 그는 애초에 약자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궤멸시키는 성향도 아니었다. 하물며 그가 기량을 인정한 양의 뒤를 이은 세력이라면, 정복할 의욕을 잃을지언정 당장 뿌리를 뽑으려 들 가능성은 희박했다.


 실제로 아직까지는 제국이 양을 잃은 이제르론 요새에 다시금 출병하지 않았다. 이번 권 끝에서 저자는 직접 라인하르트의 기풍이 이 작품 속 세계관의 일부라고 밝힌다. 율리안과 프레데리카를 비롯해 이제르론 요새의 사람들이 양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채우고, 보다 작아졌지만 또한 가벼워진 민주주의의 공동체를 재정비할 수 있었던 데는 우주의 패자가 된 라인하르트가 보여 준 예측 가능성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라인하르트가 대공세를 펴지 않을 텐데, 율리안이 먼저 공격하거나 침공을 경계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양이 사라진 이제르론에 대한 라인하르트의 무관심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고사를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이제르론 요새에 다시금 제국의 대군이 몰려오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활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라진 양과 남은 라인하르트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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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7 - 노도편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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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들리 스콧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단연 야밤의 유성처럼 화살과 포탄이 날아다닌 예루살렘 공성전이었다면, 그처럼 빛났던 인물은 에드워드 노턴이 연기한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4세였다. 일찍부터 나병에 걸려 얼굴마저 허물어져 은 가면을 쓰고 다녀야 했던, 이슬람 세력에 밀려 나날이 기울어 가던 왕국의 사위어 가는 왕. 하지만 영화 속의 그는 근본적으로는 이슬람교도들과의 공존을 도모하면서, 때로는 과감한 군사 행동을 불사하여 기독교 국가의 존속을 위해 부심했다. 그런 까닭에 누가 봐도 위태로운 용태였던 국왕의 치세에도 왕국은 명목을 지킬 수 있었다. 정작 예루살렘 왕국을 자빠뜨린 왕은 기골이 장대하다 못해 비대해 보였던 기 드 뤼지냥이었다. 물론 나라를 죽인 왕은 제 목숨도 지키지 못했다

 

 10년 정도 전에 보았던 영화를 이번 권을 보며 새삼 떠올렸다. 양 웬리는 나병에 걸린 왕처럼 나른해 보이는 인사였지만, 동시에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이 그러했듯 전제국가의 군주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기량과 가치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은하제국과 라인하르트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그 아래서 자치권을 확보해서 민주공화정 체제의 장래를 도모하겠다고 구상할 정도로 유연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제 국가의 파멸이 아니라, 민주 국가의 존속이었다. 민주주의는 전제주의를 배격해야만 존립할 수 있을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는 신념을 지녔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은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는 라인하르트의 목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몰아넣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도 탁월했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자신의 신념에 태만하거나, 성품이 그저 수동적이어서 라인하르트나 그의 제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주권자로 인정하려 한 것이 아니다.

 

이제 와서 카이저 라인하르트의 전면공격이 닥쳐왔다고 동요하면서 잘도 독립정부니 재혁명이니 떠들어댈 수 있었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양이 라인하르트의 주권을 허용하는 것에 난색을 표한다. 위험 없이 이상을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도 양이 라인하르트를 전장에서 쓰러뜨리고 민주국가가 우주를 통일한다는 꿈을 소재 삼아 양에게 요리를 강요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들고 자수가 들어간 테이블보가 덮인 식탁 앞에서 기다릴 뿐이다. 민주주의란, 정치라는 이름의 고급 호텔에 손님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다. 우선 자력으로 통나무집을 짓고, 스스로 불을 일으키는 데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p.279

 

 민주국가의 군인은 신민이 아닌 국민이기에 그들의 생명 역시 국가의 한낱 수단으로 소모할 수는 없다. 호전성을 애국심의 징표로 내세우는 순간부터 민주주의는 서서히 퇴락한다. 개인보다 국가를 노골적으로 우위에 놓고 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순간, 전제주의와의 경계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를 위해 희생하느냐를 내세워, 누가 희생당했는지를 덮는 순간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전제화된다. 국민들을 전선에 내세워 전제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행성동맹에서 가장 빛나는 전공을 올렸던 양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라인하르트와의 공존을 구상할 수 있었다. 단순히 하이네센에서 도주해 겨우 이제르론 요새에 거점을 마련한 그의 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세력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지켜 주는 것이 생사를 걸고 무작정 제국과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제국가와 결전을 벌여 소멸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 체제의 존재를 신뢰하는 국민들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책무다.

 

옛날 은하연방이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찬탈로 멸망한 후로 알레 하이네센이 출현할 때까지 2세기가 필요했어. 민주공화정치의 뿌리를 한번 파내버리면 부활할 때까지가 힘들어. 어차피 몇 세대가 걸리는 일이라고는 해도, 다음 세대의 부담이 조금이나마 줄었으면 해.” -p.152

 

 은하제국과 그에 예속된 자유행성동맹에 반기를 든 엘 파실 독립정부의 이른바 민주주의자들도 결국은 자신들이, 정확히 말하면 국민들이 치를 희생보다도 기적의 양이 라인하르트를 격퇴하리라는 소망에 집착했다. 그 승리의 가능성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기대가 얼마나 민주주의와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이 정치가들은 자신들이 궁리하고 헌신하여 겨우 명맥만 잇고 있는 민주국가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보다, 양이라는 희대의 장수를 내세워 국민들을 고무시켜 전선에 내세워 제국에 승리하여 엄연한 독립 세력의 면모부터 세우는 것이 훨씬 수지맞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 영악했다. 그에 비하면 라인하르트에게 자치권을 인정받겠다는 소박한 목적의 군사 행동은 승리하더라도 손해였다. 제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민주 정치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결전을 벌여 제국군에게 불의의 패배를 당한다면, 대부분은 욥 트뤼니히트처럼 라인하르트에게 잽싸게 고개 숙이고 일부는 조안 레벨로처럼 뒤늦게 목숨을 내놓으면 그만이다. 어찌됐든 민주국가의 지도자들에게는 크게 손해 보지 않는 도박이고, 양은 같은 쇼를 두 번 보는 셈이다.

 

왜냐하면, 잘난 척하는 것 같지만, 민주주의란 대등한 친구를 만드는 사상이지 주종관계를 만드는 사상이 아니기 때문이오.” -p.220~221

 

 이번 권에서는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가 자신의 생명을 내 놓고 자유행성동맹의 장례를 치른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 양 웬리의 비정규함대가 제국의 코르넬리우스 루츠 상급대장을 상대로 벌인 이제르론 요새 재탈환 작전이 맞물려 돌아갔다. 마르 아데타 성역에서의 전투는 대군을 전개할 수 없는 복잡한 전술 환경 아래서 분투한 뷰코크 원수의 동맹군과 압도적인 전력을 최대한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활용한 라인하르트의 제국군의 필사적인 대결을 박력 있는 필체로 보여 주었다. 동맹과 제국의 마지막 전투답게 장절하면서도 급박한 장면들이 거듭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투항을 권하는 라인하르트에게 뷰코크 원수는 민주주의는 주종관계를 만들지 않는 사상이라고 단언하고서 최후를 맞았다. 한낱 개인을 위해 충성하지 않았던 민주국가의 군인으로서 스스로 결말을 택한 셈이다. 이제르론 재탈환전은 요새를 내놓을 때부터 준비했던 양의 기발한 책략이 빛을 발했다. 이 작전의 중요함을 냉소하는 듯한 암호명이 단연 압권이었다.

 

()도 사리사욕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야. 버밀리온 성역 회전 때, 나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어.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율리안.”

못을 박을 것도 없이 율리안은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인격적으로 완벽하지는 않다 해도, 최근 4, 5세기의 역사 속에서 가장 눈부신 개성인 것은 사실이야. 그걸 내 손으로 타도한다는 건 매우 끔찍한 기분이었어. 나는 그때 정부의 명령을 구실로 도피했던 걸지도 몰라. 어떻게 보면, 정부나 나 자신에게는 충실했을지 몰라도 전사한 병사들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배신행위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권략자의 보신이나 나의 감정 때문에 죽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양은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어 웃은 것 같았다. -p.286~287

 

 이렇게 흥미진진한 전투가 두 번이나 이어졌는데도 정작 길게 얘기한 것은 엘 파실 독립정부의 지도자와 양 웬리 사이의 미묘한 정치적 괴리였다. 이미 일어난 사건보다 앞으로의 조짐에 더 집착하는 성향 탓이기도 하고, 군사는 결국 정치의 결과일 뿐이라는 서생의 편견이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뷰코크 원수의 전사를 전해들은 후에, 양은 율리안에게 자신은 버밀리온에서 라인하르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가 불완전한 전제군주라 해도 그의 가치는 부정할 수 없었기에, 마침 내려온 정부의 명령을 구실로 삼았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의 군인으로서 타당한 회군이었다고 적었던 앞에서의 리뷰가 무색해지는 듯싶었지만, 더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순한 적장 내지는 적국의 군주로 라인하르트를 보지 않았다. 양에게 라인하르트는 그 시대의 가장 찬란한 광채를 지닌 친구였던 것이다. 격멸하거나 복종해야 할 제국의 주인이 아니라, 같은 전장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한 사람의 군인이자 전우로 이해했기에, 그는 라인하르트를 죽이지 않았다. 적국의 주종관계조차 양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물론 정부의 회군 명령이 없었다면 아마 양은 라인하르트의 목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은 전제주의를 소멸시키고 전 우주를 통일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목표라고 믿지 않았다. 그가 망설임 없이 라인하르트를 죽이기 직전에 돌아선 것은 그러한 회의의 결과였다. 비록 아주 우연히 그것을 지킬 수 있었을지라도.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 4세는 그저 힘이 없어서 살라딘의 이슬람 세력과 공존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과 예루살렘 왕국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통찰했을 뿐이다. 성지인 예루살렘의 수호와 기독교 신자들의 평화로운 생활이 그것이다. 이슬람과의 전쟁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적절한 군사 행동과 화친 교섭을 이용해 기독교 신자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적어도 영화 속의 국왕은 격멸이 아니라 공존을 통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쇠약해지는 몸을 붙들고 노력했다. 오직 이슬람을 박멸해야만 예루살렘을 지킬 수 있다는 맹신의 결과로, 그의 사후 기 드 뤼지냥은 살라딘과 격돌했고, 끝내 성지는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예루살렘 왕국의 존재 목적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원수님()과 카이저 라인하르트의 차이란 걸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재능의 차이겠지.”

아뇨, 재능의 차이가 아닙니다. 패기의 차이지요.” -64

 

 양 웬리 역시 민주국가의 목적을 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법과 제도로 강자를 통제하고 다수 국민들의 삶을 지켜 주는 데 있었다. 제국과의 전투는 전제주의의 압제를 막기 위해서였을 뿐, 제국을 박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에게 민주주의의 이름과 무력으로 전 우주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주종관계가 아닌 대등한 친구를 만드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파멸시키려는 패기의 부재, 그것이 양이 보여 준 나른함의 근원이었고, 동시에 그가 처한 곤경의 기저였다. 그가 버밀리온에서 라인하르트를 죽이지 않은 것도 라인하르트라는 인물의 개성을 깊이 인정했고, 그가 사라진 후의 우주에 대한 야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라인하르트가 지배하는 전제국가라면 자신이 지키는 민주국가와 공존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는 상당부분 적중했다. 다만 자유행성동맹이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뿐이다.

 

 제국에 대한 타협적인 태도가 동맹의 몰락을 초래했다고 비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맹은 애국심의 이름으로 대중의 호전성을 부추겼으나 암릿처에서 궤멸적으로 패배했고, 언제나 앞장서서 전쟁을 주장하던 국가원수는 홀로 제국에 빌붙었다. 제국과의 대결과 공존이라는 기조를 유지했다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재를 지킬 수 있었다. 단지 자신만의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 했던 트뤼니히트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았을 뿐이다. 민주국가의 국민들을 무작정 제국과의 전투에 내모는 것은 강자인 정부가 통제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전제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다. 트뤼니히트는 제국을 지배하기 위해, 국민부터 종속시켰다. 똑같은 전제국가라면 라인하르트가 트뤼니히트를 압도할 수밖에 없다. 전제국가끼리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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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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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답을 찾는 것도 아니면서 종종 떠올리는 질문이 있다. “왜 이렇게 교토를 좋아할까?”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1번씩 이 도시에 다녀왔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교토로 달려가 돌아가는 날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 여행이었다. 아직은 나라도, 오사카도 간 적이 없다. 오래 전 다녀온 덕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도시들까지 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로마에 갈 여유가 안 나서 이러나 싶기도 한데, 교토에는 그곳보다 호젓하고 눈을 누일 정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도시를 이야기하는 이 책을 보며 교토라는 도시에 대한 감정과 기억을 새삼 뒤적였다. 거리마다 상점이 늘어서서 다양한 경험과 선택의 기회를 건네거나, 가로와 세로 길이가 달라서 어느 방향으로 걷느냐에 따라 변화의 템포가 달라지는, 그리고 때때로 거리를 흐르는 시간이 나직하고 느직한 거리들이 그 도시에 사람을 모이게 만든다는 초반의 지적이 단연 인상적이었다. 교토에서 어느 거리를 특별히 걷겠다는 생각 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돌아다녔을 뿐인데도, 마치 이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애초의 내 목적이었던 양,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한산한 거리에서는 완만하게, 번화한 거리에서는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걷거나 수레를 타고 다니던 헤이안 시대부터 다듬어진 선율에 발을 맡기는 듯했다.

 

 저자는 어찌 보면 일반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도시의 거리에 사람이 모이는 요인들을 간명하게 정리했고, 그 내용을 계량적으로 뒷받침했다. 특히 서울 신사동의 가로수길은 회사에서 멀지 않아 종종 오가는 거리여서 이 거리의 한쪽 끝에 한강 고수부지로 가는 출입구가 옮겨진 것이 유동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에 눈길이 갔다. 대부분 점심시간에 가로수길만 한 바퀴 돌아보고 들어가는 처지에서는 이 길이 한강까지 이어진다는 점까지는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여름철이 그나마 좀 볼 만하다. 가로수와 잡초가 건물과 간판을 많이 가려 주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되려면 겨울에 아름다워야 한다. 가로수 한 그루 없는 유럽의 도시들이 가로수가 많은 우리나라 도시보다 더 아름답다면 우리 도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p.51

 

 공교롭게도 세 번의 유럽 여행은 모두 여름에 이루어졌다. 그런 까닭에 유럽의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모르는 셈이다. 하지만 여름에도 서울이 썩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여름의 유럽을 걷는 것만으로도 어째서 그렇게까지 행복했는지 알 것 같다. 교토를 그렇게 즐겁게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때 유럽의 도시들을 다니며 좋은 도시를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거듭 실감했던 데 있다. 게다가 교토는 서울만큼은 아니어도 가로수가 제법 많은 덕분에 늦여름, 늦가을에 찾을 때마다 그저 거리를 더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는 가로수들이 건물과 간판을 꾸며 주는 듯했다. 어째서 교토가 마음에 스몄고, 눈을 홀렸는지 이 책은 스스로에게 나름대로 설명할 수 있게 도와줬다. 그렇게 그곳을 걷는 사이사이에 가고자 하는 곳이 자리 잡았을 뿐이다. 슈가쿠인 리큐, 가츠라 리큐, 다이토쿠지의 고토인 같은.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양하게 기억되는 공간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이벤트 별로 각기 다른 공간으로 각기 다른 기억의 서랍들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서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인식된다. -p.195

 

 대학에 다닐 때 간사이의 다른 도시들과 함께 처음 교토를 찾았을 때는 한겨울이었고, 지난 3년간은 각각 10월 초, 12월 초, 11월 말~12월 초에 이 도시에 들어갔다. 덕분에 아이폰에는 같은 장소의 서로 다른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몇 년째 이 도시만 찾을 정도로 경로 의존적인 인간인지라, 그곳에서 찾는 장소들도 아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도리어 좋았던 곳이 새롭게 좋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다시 찾는 편이다. 그렇게 같은 도시와 같은 사찰, 명소, 정원이 제각각의 장소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찾은 것은 특정한 좌표에 붙박인 물리량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장소였다. 어쩌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같지만 같을 수 없는 곳들을 계속 찾아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납득하게 된 지금은, 더 기꺼운 마음으로 거듭해서 찾고 싶다. 앞으로도 이 장소들은 더 넓어지고 깊어질 테니 말이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장소이다. 장소가 만들어지려면 사람이 모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이 모일 목적지가 될 만한 가게나 랜드마크 건물이 필요하고, 사람이 정주할 식당이나 카페가 필요한 것이다. -p.280

 

 읽는 도중에 이 책의 의미를 거듭 생각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말은 소멸하지 않고 존속한다는 생존의 뜻도 있겠지만, 생기가 돌아서 남의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의 뜻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두 가지 의미 모두를 염두에 두고, 중시했을 테지만, 아마도 후자의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했을 듯하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저마다의 경험을 충족시키는 거리, 오직 유일한 대지와 특정한 사회의 맥락에서만 탁월한 건물의 가치를 다양한 방향에서 강조하는 까닭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서는 도시 자체의 특성에서는 오히려 경시되는 부분이 발생한다. 세종로를 다루면서, 주변에 가게가 너무 없고 10차선의 속도를 늦춰줄 소소한 옥외 공간 대신 정부종합청사와 같은 대형 건축물만 있기 때문에, “시민에게 개방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지만 항상 정치적 시위 공간이 되는 것”(p.43)이라고 지적한 부분이 단적인 예이다. 시민들이 모여서 걷기에 적절하지 않은 상태라는 광화문 광장의 한계는 명백하지만, 그것이 이곳에서 시위가 빈발하는 이유로 직결될 수는 없다. 광화문 광장의 시위는 이와 별개로 그 장소의 큰 상징성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없는 곳이어서 시위가 다소 용이할 수는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그것만으로 이곳에서 시위가 발생할 수는 없다. 또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필요와 요구를 표현하는 시위 역시 그들이 거리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다. 도시는 그에 맞는 장소를 제공해야 하고, 비록 예기치 않은 것이지만 광화문 광장은 시위 장소로 어울린다. 도시의 매력을 줄이더라도, 도시를 존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곳이다.

 

 또한 사람들이 와서 걷고 싶어지는 거리가 되려면 다양한 장소 특히 상업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은 납득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전반적인 경기 침체는 차치하더라도 건물주와 세입자의 다양한 갈등, 분쟁과 같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언급조차도 없이 이것을 좋은 거리를 만들기 위한 해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전문가의 입장이라고 보기에는 적절치 않다. 가로수길, 홍대 앞, 명동과 같은 현재의 한국을 대표하는 번화가를 분석한 결과라고 해서, “상점의 입구가 자주 나오는 거리”(p.46)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고 응답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다.

 

 저자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거리와 건물의 조건에 접근하는 동안, 도시가 다채롭고 고유한 거리와 건물 외에 제공해야 하는 건축과 가치는 방기됐다. 10년 전이었다면, 이 책에 담긴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입체적인 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놓친 부분이 상당히 커 보인다. 건축물의 디자인은 자연의 본질을 모방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여장 남자는 겉모습만 여성일 뿐 실제로는 아이를 낳는다는 여자의 가장 큰 특징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p.316)라고 말한 부분이 단적인 예다. 그 여장 남자의 내면에 대한 단정뿐만 아니라, 여성의 본질을 출산으로 재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리와 건물이 아닌, 도시와 인간의 본질을 놓쳤다는 인상을 받았다. 역설적인 의미에서 도시와 사람에게는 건물과 거리로 환원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거리가 살아도 도시는 죽을 수 있다. 그래서 교토가 그렇게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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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6 - 비상편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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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대로 맞아 들어가는 듯 보일 때가 가장 위험하다. 설령 그 예상이 타당하더라도 마치 실현되는 것처럼 보일 때, 경계하지 않는다면 들떠서 호들갑떨다가 헛발을 딛을 수밖에 없다. 예상한 사람 때문에 예상한 생각이 어긋나는 셈이다. 자유행성동맹이 은하제국에 항복한 후, 제국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대리인격인 동맹 주재 고등판무관 자리에 앉은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동맹의 퇴역 원수 양 웬리에게 품은 의심들도 결국 적중했기 때문에 일탈하고 말았다.

 

 양이 전제국가인 제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민주국가의 재건을 획책하리라는 렌넨캄프의 짐작은 분명 상당 부분 옳았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내다본 사태를 전혀 막지 못했다. 오히려 양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추측에 대한 렌넨캄프의 집착이야말로 양과 그를 따르는 이들의 항쟁을 촉발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제국에서 동맹으로 망명한 후에 전사한 줄 알았던 메르카츠 제독이 살아있다는 소문, 동맹이 제국과 맺은 바라트 화약에 따라 폐기해야 했던 동맹의 전함을 수수께끼의 세력이 탈취한 사건이 일어나고, 이어서 이 두 일의 배후 조종자가 양 웬리라는 동맹 지도층 인사들의 고발이 날아들자, 렌넨캄프는 폭주하고 말았다.

 

 그저 한가한 연금 생활자로 당분간시간을 보내려한 양 웬리를 오랫동안 노려보았던 렌넨캄프에게는, 아무것도 규명되지 않은 두 사건의 존재와 그것이 양 웬리의 소행이라는 동맹 쪽 인사들의 투서만으로도 양 웬리가 획책하는 음모의 모든 정황이 드러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렌넨캄프가 유유자적하는 양 웬리의 존재를 경계하고 내면을 추측하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들과 고발은 오히려 적절하게 양을 견제하는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양 본인조차도 제국의 간섭을 받게 된 동맹에서, ‘기적의 양이라고까지 불리며 제국군에 연전연승해 반제국 세력의 구심점이 될지 모를 자신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통제는 불가피하다고 내심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핵심은 추측의 내용이나 그것의 적중 여부가 아니다. 자신의 추측을 적절히 회의하고 통제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를테면 제국의 잠재적 위험 분자인 양에 대한 간접적인 압박 수단을, 직접적인 처벌 근거로 격상시킨 것은 렌넨캄프가 자신의 경계와 추측을 제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이 장기적으로 제국에 반대하는 새로운 민주공화 체제를 세워 보려 했으며, 비록 증거가 제국, 동맹 정부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메르카츠의 실종과 폐기 함대의 탈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이 사실인 이상, 양을 향한 렌넨캄프의 추측 자체가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 예상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이 철저히 틀려먹었을 뿐이다.

 

(자유행성동맹 국가원수 조안 레벨로)도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네만, 국가의 존망은 일개 개인의 권리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닐세.”

일개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민주국가란 것 아니던가요? 하물며 양 웬리 제독이 당신네들을 위해 얼마나 공헌했는지, 과거를 한번 떠올려보시지요.”

내 마음이 과연 편했으리라 생각하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아네. 알면서도 나는 국가의 생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

그렇군요. 각하는 양심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양심적인 정치가인 모양입니다.” -p.258

 

 결과적으로 렌넨캄프의 편집적인 예상뿐만 아니라, 민주국가의 존재 의의보다 존재 자체에 연연하며 양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제국의 공세만 회피하고 보려는 동맹 정부의 자가당착이 결합한 덕분에, 양의 계획은 그 자신의 예상보다도 너무나 급하고 빠르게 실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를 경계하고 희생시키려 했던 두 세력이 신중하다 못해 게으른 퇴역 제독을 성마르게 닦달해서 현역으로 되돌린 셈이다. 그들의 경계가 모자라서도 아니었고, 추측이 허술해서도 아니었다. 양 웬리가 당장 반기를 들 것이라는 그들의 맹목적인 조급함이 양을 도왔다.

 

 미래에 일어날 음모란, 현재 일어나지 않은 음모란 뜻이다. 반란을 도모하기 전에 봉쇄한다는 렌넨캄프의 생각이 조급한 확신을 만난 탓에, 책략을 꾸몄다는 어떤 증거도 없이 양을 무고한 희생자로 만들고 말았다. 여느 인간이라면 음모의 준비와 실행이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동맹에서 양이 차지하는 지위와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메르카츠가 생존했다는 소문, 용의자도 특정하지 못한 군함 탈취 사건, 그리고 양을 팔아 제국에서 일신을 도모하려는 트뤼니히트 추종자들의 투서만으로 양이 반제국 모의를 실행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양과 그의 추종자들이 반발할 동기와 명분만 안겨 줬을 뿐이다. 무엇보다 당분간은 동맹 정부가 선사하는 연금을 받아 가며 안락한 삶을 즐겨 보려 했던 양에게 원치 않았던 적극성을 부여하고 말았다. 반란을 계획한 자들만이 아니라, 반란을 확신한 자들 덕분에 반란이 발발하고 말았다. 일어나지 않은 반란을 제압하려고 애쓰느라, 일어난 반란을 통제할 겨를조차 없었다.

 

(양 웬리가) 베레모 밑어서 중얼거린 말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두 달, 겨우 두 달이라니! 예정대로 돌아갔더라면 5년은 일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었을 테데, 나 참......” -p.327

 

 모처럼 대대적인 전투는 없었지만, 여느 권 못지않게 흥미로웠다. 반영구적으로나마 군무(軍務)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마냥 쉬어 보려고 하는 희대의 용병가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역량과 입지만으로 당장 반란을 준비 중이리라 단정하고 파멸에 접근해 가는 점령군의 수장, 미약한 독립이나마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과 언제든 저 용병가가 점령군에게 주권을 침탈당하는 명분이 되리라는 섣부른 공포에 사로잡혀 팔아넘길 준비를 하느라 바빠진 피점령국의 통치자까지 인물들이 저마다 휘말려드는 소용돌이가 형성되는 과정이 긴박하면서도 세밀하게 그려졌다. 전쟁이 멈춰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인간의 인지적인 관성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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