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초의 시종님과 저의 생각은 비슷한 면도 있고 많이 다른 면도 있습니다. 저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전적으로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그렇게까지 욕먹을 이유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를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싫어한다거나, 경멸한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부르봉 가문에 못지 않은 유럽의 명가였던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인 그녀의 자질은 누가 뭐라 해도 프랑스의 왕비로써 부족함이 없었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교양과 예능, 기품, 심미안을 두루 갖춘 그녀였다. 때문에 그녀의 씀씀이는 그러한 그녀의 배경을 고려한 가운데 판단해야 한다.  분명 재산을 축적하는 것은 보통 능력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재산을 사용하는 것도 저마다의 안목과 능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로코코의 여왕'으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에게는 한 나라의 황녀이자, 왕비로써의 그녀 나름의 안목이 있었다. 그녀는 그 시대가 요구했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추구했다. 그것이 설령 전통과의 부조화, 단순한 유행에의 몰입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그런 까닭에 그녀의 행동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부르주아 계급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치와 낭비로 밖에 비치지 않았으리라.> 라고 로렌초의 시종님은 말씀하셨는데,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녀는 한 나라의 왕녀였으며, 왕세자비였고, 왕비였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위치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자각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사치와 낭비가, 평범하거나 혹은 귀족의 여인이었다면 '죄'까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당시 프랑스 왕정의 재정은 거의 파탄 지경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왕비'인 마리 앙투와네트는 절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지요. 귀족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고 합니다. 왕족인 이상, 그녀에게도 그 '의무'는 당연한 것입니다. 시민들은 빵이 없어서 왕궁에까지 쳐 들어갔습니다. 왕비의 당당한 모습에 저절로 굴복해 말없이 다시 돌아간 어찌보면 어이없기까지 한 이들이지만, 분명히 그런 그들이 왕궁에까지 쳐들어갈 만큼 배가 고팠던 상황입니다. 빵을 달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했던 것에 대해서는 감히, 그녀의 잘못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주역인 부르주아 계급이 그 시민들을 이용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이용당할 만큼 그들은 배가 고팠다는 것입니다. 사실 언제나, 아무리 성군이 다스리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태평성대라고 하더라도(전설의 요순시대가 아닌 이상) 거리의 부랑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배를 곪는 자들은 항상 있을 수밖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배가 부르고 집이 따뜻했다면, 그리 쉽게 그들의 선동에 넘어가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주식인 빵이 없어서 굶을 정도까지였던 것은 분명히 전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미 전대에서부터 내려왔던 것이 루이 16세 때에 이르러서는 폭발 직전까지 간 것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루이 16세에게 특별히 애첩이 없었기에 그 모든 비판이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넘어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행동하더라도 사람들은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녀를 비난했을겁니다. 우선적으로, 그녀는 적대국 오스트리아인이었으니까.(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적진에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가 자신을 잘 절제하고, 자중했다면 적어도 왕비에 대한 그런 문학작품들이 그렇게까지 성행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 발생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아니, '왕비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겁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의 주모자인 라모트 부인과 그녀에게 속아 넘어간 루앙 추기경이 감히 그런 일을 벌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치라고는 하지 않던 왕비가 그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기 위해 그런 짓까지 벌였다라고 쉽게 믿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왕비의 적 - 아무리 절제하고 자중했다고 하더라도 적은 있었을 것이니 - 은 그것을 이용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시민들은 쉽게 믿지 않았을 겁니다. 구중궁궐이라는 우리네와는 달리 유럽의 왕실은 개방되어있었으니, 왕비의 잘못, 실수 등과 더불어 잘한 점 등도 시민들을 알 수 있었겠지요. (물론, 그점으로 인하여 왕족에 대한 신성성이 떨어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만.)

물론, 그렇게 그녀가 절제하고 자중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무너지고 있었던 프랑스 왕정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녀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비난들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수를 써서든지 프랑스 대혁명은 일어났을 것입니다. 일어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단지, 그녀가 왕조를 무너뜨린 '오스트리아 계집'이란, '적자부인(赤子婦人)'이란 오명은 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가 프랑스 대혁명, 최악의 피해자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잔인하게 사형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네에, 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금은 그녀가 행복하게 살다 갔을지도 모른다고.

 

에에, 잘한건지 모르겠네요. 그냥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제가 옳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제가 쓰면서도 많은 생각을 지금 못하고 있습니다. (네에, 두통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음음, 제가 실수로 말을 잘못한 게 있으면, 그냥 관대히 용서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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