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마당에 응모합니당.

“꿈이 사람을 짓누를 때”라는 제목으로 영화 <장화, 홍련>에 대한 리뷰(http://www.aladin.co.kr/blog/mypaper/466784)를 쓰셨지요. 제가 두 번째 마당에 응모하면서 이 리뷰를 고른 이유는 무엇이냐! 본 게 그것뿐이라서 그렇습니다, 녜... ㅠ.ㅜ 로렌초의시종님이 리뷰 쓰신 책 중에 읽은 건 달랑 세 권인데, <위대한 개츠비>와 <싯다르타>는 10년도 더 전에 읽어서 기억도 잘 안 나고, <일식>도 몇 년 전에 읽은 터라 마찬가집니다. <장화, 홍련>은 작년에 캐치온에서 봐서 그나마 기억이 생생하네요.

상당히 길고 분석적으로 쓰신 리뷰, 인상 깊게 잘 읽었습니다. 님을 조금 알게 된 기분도 들고요.

전 아버지를 차지하기 위한 계모와 딸의 갈등, 그리고 딸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남성 작가(감독)가 표현하는 여성에는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여고괴담> 1, 2를 제외하고, 공포영화 속 여성의 캐릭터는 어쩌면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지는 무의식적인 공포심을 반영한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여자들이 잡아먹을까 봐 두려운가요. --;) 사실은 공포영화를 그리 많지 보지 않았기에, 섣부른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그래서 한 개인 속에 억눌린 다양한 면모를 폭발적으로 보여주어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긴 하지만, 내가 온전하게 이 영화를 이해했다, 고는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 사람을 개인으로서 파악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가족이기주의나 중산층의 허위의식에 대해서는 생각을 했어도, 중산층 ‘가족’의 지향점과 문화적인 내부 기준 설정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인식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해하는 프리즘을 하나, 님 덕분에 얻었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 점에서 유익했습니다.

그런데 결말 부분을 까먹어서, “늦가을 초겨울의 갈대밭과 그 옆의 저수지, 그리고 그 풍경과 어울리는 노란색 옷을 차려입은 자매, 잠시 후 수연의 가녀린 외침, 한 순간의 수모를 견디지 못해 미래를 담보한 협박을 현재의 괴로움으로 오해해버리고, 눈을 치켜 뜬 채 홀가분한 양, 등을 돌리는 수미.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듯한 도도하고 분노에 찬 그녀의 거침없는 걸음은 갈대밭 너머로 향하고, 살의(殺意)를 품은 계모는 그 등뒤에서 하얀색 창문을 닫아건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수미의 걸음 뒤로, 두 번 모두 볼 때마다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애처로운 이병우의 선율과 함께 그렇게 처연히 시들어 가는 연꽃.......”이라고 쓰신 부분이 잘 이해 안 되네요. 다시 한 번 봐야겠어요. ^^

(음, 이게 무슨 리뷰 비평이냐... --;) 비평이 아니고, 그냥 소감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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