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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분명히 마른 장마인데, 비가 적은 올해도 여전히 여름은 끈적끈적하다. 이럴 때는 같은 클래식을 듣더라도 가볍고 산뜻한 곡들을 주로 듣게 된다. 그동안의 여름, 그리고 올해 여름에 주로 듣고 있는 음반들을 골라봤다. 성악음반이 5개나 되는데, 실은 가사 모르고 내용 몰라도 듣기에 별로 불편하지 않는 곡들이다. 라이센스 음반으로 나온 경우에는 가사에 대한 설명도 있으니 더 좋고. 올해는 어쩌다보니 생각지도 않게 이탈리아에 다녀오게 되서, 2년 전에 다녀왔던 유럽 여행일정도 생각하며, 장난 삼아 음반 순서를 유럽 여행 루트 비슷하게 꾸며봤다. 더운 여름, 클래식도 나름대로 쓸만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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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행지는 유럽의 서쪽끝 스페인. 스페인의 고유한 오페라(우리로 말하면 마당놀이?)라고 할 수 있는 사르수엘라의 아리아들을 부른 빌라존의 음반이다. 요즘 컨디션이 다소 난조라지만, 여전히 그는 쓰리테너 이후에 가장 주목받는 테너이다. 스페인과 인연이 깊은 멕시코 출신답게 스페인의 서민적 정서가 가득한 사르수엘라에 감정을 충실히 담아 부르고 있다. 사실 멜로디는 다소 촌스럽고 상투적이지만, 시원스런 목소리와 진정성이 나도 모르게 그에게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지휘는 쓰리테너 중 한 명인 도밍고. 라이센스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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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피레네 산맥이다. 이 지방의 민요를 캉틀루브가 편곡한 오베르뉴의 노래는 여기저기서 여름의 추천음반을 이야기할 때 클래식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 나 역시 그런 추천 덕분에 구입하게 됐는데, 성악가는 스페인의 명 소프라노로, 이름이 길지만 뜻은 아릅답다. 승리하는 천사. 이 음반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연상시킨다. 아리땁고 순수하면서도 새침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스테파네트가 되거나, 그녀에게 마음 설레는 목동이 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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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지만, 이 음반으로 프랑스는 패스;; 스페인에서 수고해준 롤란도 비야손씨가 다시 한번 수고를. 이 음반은 다양한 오페라에서 발췌한 아리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사실 대부분은 이탈리아 작품이고, 프랑스와 관련있는 곡은 오펜바흐의 2곡, 비제의 2곡이다. 하지만 첫 곡인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에 나오는 클라인자크 이야기부터 비야손의 목소리는 개성있고 자신만만하다. 반면 비제의 진주조개잡이에 나오는 아리아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조가 절실하다. 그는 연기하듯이 노래한다. 라이센스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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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날림으로 돌아본 다음 목적지는 모차르트의 오스트리아. 그의 피협 23번은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곡인데, 특히 여름에 그렇다. 베토벤의 피협 5번 황제처럼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관현악의 선율은 산뜻한 리듬감으로 충만하고, 피아노는 숲 속 시냇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듯이 맑게 튀어오른다. 그중에서도 호로비츠와 줄리니의 음반은 피아노와 현악의 유려함이 반짝반짝 빛난다. 커플링된 호로비츠의 모차르트 소나타도 절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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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옆에 붙어있는 체코의 드보르작. 몇년 전에 매너리스트님의 리뷰를 보고서 구입한 후로, 여름에는 특별히 듣고 싶은 음반이 없으면 내 씨디피에 당연직으로 걸려있는 음반이다; 쿠벨릭은 두번 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그의 고국인 체코 음악의 해석에서는 불변의 가치를 지닌 거장이다. 이 음반을 듣고서 그에게 반한 나머지 나는 첫 베토벤 전집으로 그의 것을 어렵게 구했다. 9번 신세계는 누구나 들어보면 익숙한 곡이지만, 이 연주와 해석의 수준만큼은 표준인 동시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8번 연주 역시 상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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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까지 봤으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따뜻한 남쪽나라, 이탈리아, 첫 도시는 베네치아. 베네치아의 빨간머리 사제로 이름높았던 비발디는 그 이름에 꼬리표처럼 '사계'라는 작품명을 달고다니지만 처음 클래식을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다양한 작품들과 그 아름다움에 놀랄 때가 많다. 사계의 좁은 우물만 벗어나면 비발디라는 바다에는 여전히 신선함이 넘치고 있는 셈이다. 이 음반 역시 선율과 음색의 선명한 강약과 명암의 대조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아하고 유순한 바로크 음악이나 비발디 연주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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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는 밀라노, 주인공은 그곳에서 태어난 현재 가장 존경받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실 일부러 품절 음반은 넣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이 음반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어렵사리 일본 HMV에서 구해온 후로,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음반 중 하나이다. 멘델스존은 일찍부터 아바도의 장기인 작곡가인데, 이 연주는 그의 제2의 전성기쯤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필 상임시절의 실황이다. 한여름밤의 꿈 중, 결혼행진곡에서의 화사함과 상쾌함은 경탄스럽고, 교향곡 이탈리아는 말 그대로 이탈리아 그 자체를 일필휘지로 그려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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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제노바에서 태어난 바이올린의 악마, 파가니니의 협주곡을 힐러리 한이 연주한다. 1년 전에 이 음반으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처음 접했는데, 이후로 동곡의 다른 음반을 살 생각이 든 적이 없었을 정도로 그녀의 연주는 가히 감탄스럽다. 그녀 자신이 북클릿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마치 오케스트라를 반주삼아 노래하는 소프라노처럼 그녀의 바이올린은 자신의 목소리를 뽑아올리듯이 선율을 연주하고 있다. 기교와 기품을 함께 품고서. 얼음공주라는 별명다운 냉철함과 노래하는 프리마 돈나의 여유로움이 함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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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부터 서쪽으로 이동했던 발걸음을 남쪽으로 돌려서 이제는 로시니의 고향 페사로로 가보자. 10대 시절에 작곡했다고 해서 유명하고,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 작품의 음반이다. 은근히 명반이 많은 곡이기도 한데, 내가 듣는 것은 이 솔리스티 이탈리아니의 음반이다. 아무래도 로시니의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선율을 느끼기에는 본토박이 연주자들이 좋을 성 싶어서였다. 애초에 여름나기 목적으로 지난해 구입했는데, 올해도 본격적으로 활약중이시다. 어느 구석 하나 끈적이지 않고 흘러드는 선율이 선선하게 불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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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음반이 무척이나 느닷없다;; 이제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가시면 되겠다. 작곡가와 지휘자의 고향인 러시아로 가도 좋고, 작품의 무대인 아라비안 나이트의 도시 바그다드로 가도 되겠다. 사실은 두어달 전에 구입한 후로 최근 들어 더욱 자주 듣게 된 음반이라서 집어 넣었다. 아라비아의 이국적인 선율을 마치 총천연색의 그림책을 그리듯이 능수능란하게 들려주는 게르기에프의 지휘는 마치 그의 연주하는 세계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