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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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치 앨봄의 책은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후에 두번째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도 주인공이 죽음을 맞는 스승과 대화를 하며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는데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서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인 에디는 83세에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의 고장으로 인한 사고에서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그가 평생을 정비공으로 일한 루비가든에서...

그리고, 그는 천국으로 가면서 도중에 5사람을 만나고 그의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다섯 사람이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삶에 발자취를 남기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의 삶 모두는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정도가 아닐까...

솔직히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비해서는 픽션이라서 그런지 감동이 덜했다.

하지만, 슬럼프에 빠지거나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여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약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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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6-03-2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비하면 감동이 덜했어.

외로운 발바닥 2006-05-19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나도 그래. 이 책은 사실 요즘 흔히 출판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어.'류의 느낌이 나는 듯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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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혁명가 김산. 일제가 우리 국권을 침탈하던 시기에 태어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15세때 중국으로 혈혈단신 건너가 독립군 군관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한 그. 불행하고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 평생을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타오르다 간 그의 일생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그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소박한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도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산이 요즘과 같은 때 태어났으면, 물론 훌륭한 사람이 되었겠지만 그토록 치열하고 순수한 삶을 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물론 김산은 난세의 凡人이 결코 아니다. 난세에도 그처럼 티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믿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강철과 같은 의지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삶을 보면 난세에 인간 의지와 신념의 극단을 엿볼 수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갔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다양한 삶을 살았다. 지금 같으면 중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나이에 김산은 뜨거운 가슴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중국어사전 하나만을 낀 채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고백하듯이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를 거쳐 공산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신념에 온몸을 불사르는 그는, 그의 말처럼 평생을 잔인한 시대에 맞서 투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것에 패배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산이 보통의 독립운동가들과 다른 점은 그가 단순히 조선의 독립만을 목표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중국에서의 혁명이 조선, 일본에서 민중의 혁명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겠지만, 그는 중국 대혁명에도 참가하고 대부분의 청춘을 중국에서의 혁명사업에 투신한다. 그가 결국에는 공산주의에서 자신의 신념을 추구할 수 있는 틀을 찾기는 했지만, 그는 결코 이데올로기 그 자체의 노예가 되지 않고 언제나 그 이상의 것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그 이상의 것은 님웨일즈가 지적했듯이 억압과 박해를 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런 억압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쫓아 삶을 불사르는 그의 삶을 읽으면서 김산이 체게바라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우열을 견줄 수야 없겠지만, 우리나라에도 그처럼 멋진 혁명가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김산은 중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조선인 혁명가 중에도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고 투철한 신념을 가진 편이었겠지만, 만주를 비롯한 중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 혁명가들의 삶도 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해 우리가 단순히 붉은 색의, 지주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식의 이미지로 덧칠해진 공산주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공산주의에 가담한 수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공산주의 발생 초기에는 대부분 그들이 믿는 신념에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공산주의자가 된 것이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립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공산주의자 김산이 인간의 천부적 권리,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할 때, 공산주의에 대한 닫힌 생각을 가진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그리고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전후와 그 이후의 남북한의 상황이 단순하게 공산주의자는 빨갛고 나쁜 놈, 자본주의자는 좋은 놈, 혹은 그 반대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도 김산이 삶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오직 한가지를 제외하고 나는 모든 것에서 패배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승리했다.’는 김산. 수많은 시련과 좌절, 고통을 겪으며 강철과 같이 단련된 그의 순수한 의지와 이를 온몸으로 실천한 그의 삶이 내 가슴속에서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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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목은 without a trace라고 한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FBI 실종수사대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원래 CSI 씨리즈는 즐겨 보는데, 실종수사대는 재미가 덜 한 것 같아 평소에는 별로 보지 않았는데 그 시간대에 특별히 볼 것이 없어 보다보니 내용이 평소에 관심있는 분야여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몇 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주 내용은 이렇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J2 비자로 미국에서 생활하는 젊은 의사가 실종되었다. 그는 유능하고 미국인 애인도 있지만, 실종전날 아랍사람이라는 이유로 지도교수에게서도 버림받고 애인에게 프로포즈도 거절당한다. 그가 아랍인이라는 중요한 대전제와 그의 집에서 발견된 책 - 미국식 민주주의의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은 책 - 그리고 그가 대화중에 폭파시키겠다는 말을 했다는 진술을 토대로 그는 이중생활을 하는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수사는 실종자를 찾는 것에서 테러리스트의 행방을 쫓는 것으로 변질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은 그가 테러를 하려던 그의 친구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친구를 사고로 죽이게 된다는 암시가 나오고, 실종수사대의 주인공인 반장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만, 결국 그는 테러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원칙(?)에 따라 테러를 막으려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중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것은 평소에 미국 사회 전체가 테러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그와 같은 피해자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에서의 테러이후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무고한 아랍계 젊은이가 용의자로 몰려 여러차례의 확인사살로 살해당한 일이 있기도 했다.

정말로 지금과 같은 미국 사회에서는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의 구조상 몇몇 허술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아랍사람으로서 항상 의심의 눈초리와 차별을 받아온 그가 백인이라도 설명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서 미국경찰을 믿고 자수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야기는 상당한 개연성을 지닌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 점에서는 이 드라마는 칭찬받을 만하다. 그런데 몇가지가 눈에 거슬렸다. 주인공인 반장이 사우디아라비아인 의사의 결백에 대해 어느정도의 심증을 굳히고서도 저격수가 그를 쏘아 죽이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서도, 혹은 그러한 어처구니 없는 희생을 막지 못하고서도 주인공들은 너무나도 담담했다는 점이 드라마의 선한 의도(설마 악한 의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함께 있지 못할 부류로 낙인 찍는 행위는 시대와 사회를 불문하고 행해져 왔지만, 지금 미국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은 그러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기 쉽게 만드는 요소를 너무도 많이 지니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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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5-11-0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씁쓸해. 있음직한 얘개야.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왜곡된 사실이 역사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 같어.
 
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3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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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내 자신의 허물을 들추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이제껏 수십년간 남의 허물을 캐내어 이를 과장하고 나의 허물을 감추고 이를 치장해 왔기 때문에 나의 허물을 들추어 내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허물을 캐는 것에만 지나치게 열중하면서 남의 허물에는 한없이 관대한 태도를 보이다보면 그 역시 균형을 잃은 태도가 아닐는지. 특히 지금처럼 남한 전체가 이념(?)적으로 둘로 나뉘어 거의 모든 사회적인 쟁점마다 극한적인 대립을 보이는 이 때, 남의 허물에는 눈을 감은 채 우리 자신의 허물만을 들추어 내는 일은 저자가 일깨우고자 하는 수많은 유동적인 보수층을 저자가 속해있는 진보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는 않을는지.

나 개인적으로도 우리 자신의 허물을 캐 내는 일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이 있더라도 과거사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적으로 북한 사회의 부조리에 관대한다고 할지라도, 김일성,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두고 ‘탐탁치는 않지만, 정치권력은 부자지간에도 공유할 수 없다는 상식을 깨고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함께 20년가량을 북을 다스린 사실을 상기하자.’(p265)는 식의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자기 아버지와 20년 동안 권력을 공유한 김정일이 갑자기 나타난 유신소녀보다 낫다는 말인가? 그리고 북한사회에서의 지배권력에 의해 학살되고, 굶주려 죽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이승만 시대나 군사정권 하에서 학살당한 사람들보다 가치가 덜하다는 말인지. 일단 통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남과 북이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비판에 극히 신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이 할 일이지, 역사학자인 저자마저 그렇게 조심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도 박정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독재시절 저질러진 온갖 만행은 지금에라도 더 까발려지고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박정희 시대에 우리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물론 박정희가 경제개발에 집착한 것이 부족한 민주적 정당성을 감추기 위해서 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지금도 우리 사회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산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박정희의 지도력에 얼마만큼 의존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질이 북한 주민들보다 낫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각 나라 국민의 삶의 질이 절대적인 비교잣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주성과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에 집착하여(사실 그런것인지도 약간은 의문이다.) 경제파탄을 초래하여 수많은 국민들을 아사시키고 있는 북한의 현상황이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대한민국의 현상황보다 낫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북한이 건국당시 대한민국보다 정통성의 측면이나, 당시 민중들의 지지도 측면에서 우월했다는 사실이 그 이후 수십년간의 역사에 면제부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03권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민주화운동 인정과 관련한 사건에 관한 글을 통해 관점을 전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이 반공주의를 얼마나 악랄하게 악용해 왔는가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적지않은 소득이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편향된 태도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과거를 까발리는 것이 ‘정반합’에서의 ‘정’에 해당한다면 북한의 어두운 과거를 까발리는 것이 ‘반’이 될 것이고, 통일한국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합’정도가 될 것이다. ‘정’에 대해서는 저자의 노력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에제 ‘반’과 ‘합’에 대한 연구도 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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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어라 금순아’, ‘어여쁜 당신’ 대한민국 시어머니는 다 그래?
<뉴스엔=문미영 기자>

고부갈등’에 대한 화두는 드라마의 소재로 끊임없이 사용된다. 최근 드라마 속에 나오는 고부관계는 과거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보여줬던 일방적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아이를 다치게 한 시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는 며느리의 모습까지 방송되었으니 과거와 현재의 고부관계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최근 MBC 일일연속극 ‘굳세어라 금순아’와 KBS 1TV 일일연속극 ‘어여쁜 당신’에서 보이는 고부간의 관계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더욱이 최근 아이를 볼모로 한 시어머니의 월권에 대해 시청자들은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최근 금순(한혜진 분)이 재희(강지환 분)와 본격적인 사랑의 불을 지피고 있는 가운데 금순의 시어머니(김자옥 분)가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금순의 시어머니는 금순에게 냉랭한 태도를 보이며 금순에게 아들 휘성을 두고 나가라고 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시어머니 앞에서 금순이가 보이는 모습은 일방적인 약자. 남편 없이 시부모를 모시고 아이와 함께 살던 금순에게 새로운 사랑은 시부모에 대한 배신이고 아이 휘성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시청자들은 금순을 보내야 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한편 가족이라고 해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 휘성에 대한 양육권까지 두고 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시청자들은 더욱 아연실색했다.

시청자들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정심여사(김자옥 분)은 이기적이다. 드라마에서 휘성을 보지 않겠다고 하고 절절한 애정도 드러내지 않는데 이제 와서 아이를 무기로 금순의 발목을 잡는다”, “제발 시어머니가 악악대는 건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며 시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또 시청자들은 “결국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일 수밖에 없구나”, “아무리 친가족처럼 지내도 시자가 붙으면 어쩔 수 없다”며 시집, 시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나왔다.

한편 드라마 ‘어여쁜 당신’에는 인영(이보영 분)과 기준(김승수 분)을 이혼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비난을 샀던 인영의 시어머니 옥진여사(박원숙 분)가 있다.

최근 인영이 재민(이창훈 분)과의 재혼을 앞두고 기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옥진여사는 아이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원숙은 드라마에서 인영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구시대적 칠거지악(七去之惡)으로 며느리를 쫒아 냈었다. 그후 박원숙은 새로 들인 잘난 집 며느리로 인해 시어머니 며느리의 구도가 역 수직관계로 바뀌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지만 인영의 임신으로 인해 공격력을 회복한다.

‘어여쁜 당신’에서 박원숙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에 대한 집착으로 인영의 인생에 다시 한번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여기서 안타까운 사실은 이미 인영은 이혼을 한 상태이지만 기준의 아이라는 사실 때문에 옛 시어머니의 공격에 무방비한 약자가 된다는 점이다.

가족이라는 소재는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그중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아이의 문제는 스테디셀러 중 베스트셀러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사람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업그레이드 버전 없이 고래적 소재를 반복 재생하는데 시청자들은 거부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쿨한 시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은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늘 반복되는 인물 상을 찍어내는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나타내는 불만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mymoon@new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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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5-09-13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여쁜 당신'을 아주 가끔씩, 채널을 돌리다가 보곤한다. 가끔씩 보았는데도 볼 때마다 박원숙이 맡은 시어머니 역은 정말로 짜증이 난다. 저런 시어머니도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실제로 저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들을 낳은 어머니라는,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는 평생의 선천적 지위 하나만으로 나와 내 가족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처럼 무지막지한 태클을 걸 수 있는 것인지...물론 걸 수 없다. 다만, 그런 시어머니역을 설정한 작가는 머릿속에 뭐가 들었나 싶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우리 사회의 고부갈등을 부추기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무지막지한 시어머니상을 드라마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인지...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억지를 계속 쓰다 보면 때로는 그것이 옳은 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현실에서도 그런 일은 종종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어거지의 극을 꼭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