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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평점 :
조선인 혁명가 김산. 일제가 우리 국권을 침탈하던 시기에 태어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15세때 중국으로 혈혈단신 건너가 독립군 군관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한 그. 불행하고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 평생을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타오르다 간 그의 일생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그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소박한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도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산이 요즘과 같은 때 태어났으면, 물론 훌륭한 사람이 되었겠지만 그토록 치열하고 순수한 삶을 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물론 김산은 난세의 凡人이 결코 아니다. 난세에도 그처럼 티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믿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강철과 같은 의지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삶을 보면 난세에 인간 의지와 신념의 극단을 엿볼 수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갔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다양한 삶을 살았다. 지금 같으면 중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나이에 김산은 뜨거운 가슴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중국어사전 하나만을 낀 채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고백하듯이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를 거쳐 공산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신념에 온몸을 불사르는 그는, 그의 말처럼 평생을 잔인한 시대에 맞서 투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것에 패배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산이 보통의 독립운동가들과 다른 점은 그가 단순히 조선의 독립만을 목표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중국에서의 혁명이 조선, 일본에서 민중의 혁명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겠지만, 그는 중국 대혁명에도 참가하고 대부분의 청춘을 중국에서의 혁명사업에 투신한다. 그가 결국에는 공산주의에서 자신의 신념을 추구할 수 있는 틀을 찾기는 했지만, 그는 결코 이데올로기 그 자체의 노예가 되지 않고 언제나 그 이상의 것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그 이상의 것은 님웨일즈가 지적했듯이 억압과 박해를 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런 억압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쫓아 삶을 불사르는 그의 삶을 읽으면서 김산이 체게바라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우열을 견줄 수야 없겠지만, 우리나라에도 그처럼 멋진 혁명가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김산은 중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조선인 혁명가 중에도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고 투철한 신념을 가진 편이었겠지만, 만주를 비롯한 중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 혁명가들의 삶도 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해 우리가 단순히 붉은 색의, 지주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식의 이미지로 덧칠해진 공산주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공산주의에 가담한 수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공산주의 발생 초기에는 대부분 그들이 믿는 신념에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공산주의자가 된 것이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립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공산주의자 김산이 인간의 천부적 권리,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할 때, 공산주의에 대한 닫힌 생각을 가진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그리고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전후와 그 이후의 남북한의 상황이 단순하게 공산주의자는 빨갛고 나쁜 놈, 자본주의자는 좋은 놈, 혹은 그 반대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도 김산이 삶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오직 한가지를 제외하고 나는 모든 것에서 패배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승리했다.’는 김산. 수많은 시련과 좌절, 고통을 겪으며 강철과 같이 단련된 그의 순수한 의지와 이를 온몸으로 실천한 그의 삶이 내 가슴속에서 메아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