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가 쓴 책 한권으로 살짝 엿본 글쓴이 김영갑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제주도에 1980년대 초반 홀로 건너가 특별한 생계수단도 없이 20여년을 사진만 찍으면서 산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홀로 자연과 벗삼아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가까운 지인은 물론 형제들과도 연락을 거의 끊고 지낼 정도로 철저하게 고독한 삶을 고집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운 노인들과 섬마을 아이들과는 곧잘 친구가 된다.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새소리, 꽃한송이, 풀한포기, 바람 한줄기를 섬세하게 느끼면서 대자연 속에서 사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그런 희열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미친듯이 사진찍는 일에 몰입을 한다. 밥을 굶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도 필름이 없어 사진을 못 찍게 되면 미칠듯이 괴로워한다. 루게릭병에 걸려 카메라 셔터조차 누를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폐교를 임대하여 제주도에 두모악이라는 사진 갤러리를 완성한다...


이 책은 이러한 기인 김영갑의 제주도에서의 삶, 사진가로서의 열정, 루게릭병과의 투병기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그가 찍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사진들도 많이 들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는 종교의 색채가 없는 사진가의 모습을 한 수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적 가치에 대한 초연함, 자연과의 일체성, 끊임없는 고독의 추구, 그리고 병마로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결코 병마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모습이 수도자와 너무나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글쓴이의 삶과 사진들을 통해서 잊고 지내왔던 대자연의 포근함, 우리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 그리고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느끼고 내 자신을 잠시나마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각박한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나에게 잠시나마 이처럼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배꽃님께 감사드린다.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이어도’다.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이어도를 나는 보았다. 제주 사람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호흡 곤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나는 이어도를 만나곤 한다.....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등에 업은 아기를 삼 년이나 찾아다녔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이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이제 난 카메라 메고 들녘으로 바다로 떠돌기를 더는 꿈꾸지 않는다. 아직도 두 다리로 걸으며 숨을 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한다. 풍선 불기를 연습하지 않아도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p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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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7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7-0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숨쉴수 있다는게 행복이며 자유라는 것 조차도 잊고 살때가 너무 많았어요..알라딘이 아주 어수선 했었네요..행복한 발바닥님은 잘 지내시지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1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배꽃님께 정말 감사했답니다. 집사람 심부름(?)으로 음식점에 음식 테이크아웃 하러 갔다가 음식 나올때까지 이 책을 읽었는데 음식 가지고 나오면서 강남역에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도 배꽃님처럼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자주 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출처 : kleinsusun > 베끼고 또 반복하자!
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소설가인 나의 知己 P언니는 습작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필사"라고 했다.

신인작가상을 탄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봐도 습작 시절의 "필사" 얘기를 많이 한다. 선배 작가들의 좋은 소설을 여러 번 베껴 썼다고.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 이승우도
"베껴 쓰기"를 "느리게 읽기"의 한 방법으로서 추천하고 있다.

작년 9월 암스테르담 출장 때,
시간을 쪼개 "Van Gogh Museum"에 갔었다.

Van Gogh의 초기 습작들을 보면서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
밀레의 작품들을 "필사"한 것이 몇 점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밀레의 드로잉을 베낀 다음에(똑 같이!)
페인트 연습을 한 작품이 몇 개나 있었다.

난 그 앞에서 오랫 동안 입을 딱 벌리고 서 있었다.
"아.....고흐 같은 천재도 필사를 했구나!"

고흐의 밀레 필사는 내게 정말.....큰 충격이자 깨달음(?)이었다.
뭐든 혼자 뚝딱 만들어지는 건 없구나!
천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

왜 자꾸 필사 얘기를 하냐면,
좋은 문장이나 그림을 베끼고 또 반복하는 건
공부에 있어서도 기본이기 때문이다.


쩍 팔리지만 내 사례를 들자면....
고등학교 때 성문종합영어 20번 봤다.
그 덕에 "토종"임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교포와 유학파들 사이에서 잘(?) 버티고 있다.

강유원도 이 책 <몸으로 하는 공부>에서
"베끼기"를 "공부하는 방법"으로 강추하고 있다.

"철학 공부도 마찬가지다. 철학 공부에서 베끼는 것은 철학사를 여러 차례 읽는 것이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이문출판사)가 너무 두껍다면 얇은 것이라도 골라서 열심히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다.
베끼기를 할 때는 베낄 책을 잘 골라야 한다. 일테면 서양 근대철학사를 공부하려면 최소한 코플스턴의 철학사를 잡아야 한다....
(중략)......
하여튼 철학사를 50번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죽 읽으면 철학의 기본적인 문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왔는지를 알게 되어 맥락이 잡히는데 이 쯤에서 그걸 가지고 뭘 해보겠다고 나서면 안된다. 아직 베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철학의 제문제>(벽호)처럼 주제별로 다룬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책은 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정확한 문맥 속에서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주제에 관련된 철학자들의 원전을 부분적으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덧붙여 주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책도 50번은 되풀이해서 읽어야 한다. 철학사를 읽든 철학의 제문제를 읽든 주의할 점은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야 한다. .....(중략)......
베끼기는 초심자 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해야 한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들은 더 이상 철학사를 읽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공부에 있어서 균형을 무너뜨리게 된다. ...(중략).....
베끼기는 독학이 가져다주는 폐해도 막아준다. 독학하는 사람은 어떤 분야의 책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기 마련이다. 역사적인 연관이나 주제의 관련성에 유의하지 않고 읽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그 결과 아는 게 많아져서 장광설을 쏟아놓는다. 게다가 그들은 최근의 것에 대한 관심도 지대해서 항상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그 분야에 대해 체계적으로 글을 써보라고 하면, 장광설은 사라지고 말을 더듬게 되며, 그 점을 지적하면 원래 제대로 된 공부는 체계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우격다짐을 하곤 한다. .............(중략).....
베끼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을 체득하는 이점이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면 대개는 참고문헌 목록을 작성하고 이 책 저 책 들춰보면서 노트에 정리한 뒤 끝내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그 어떤 책도 기억에 남지 않고 문장 몇 개만 막연한 추억처럼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차라리 가장 표준적인 책을 한 권 정해서 모든 말과 문장을 따져가며 끝까지 읽는 게 낫다."
(p181~184)

이 책을 읽으며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50번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쭉~ 읽어보겠다고 결심했다. 불끈!

아쉬운 건 <철학의 제문제>도 읽어보려고 결심했는데,
절판되었다는 거다.
인터넷 헌책방을 몇군데 검색해 봤는데도 없고,
동네 도서관에도 없다.
이런....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에 찬물을 끼얹다니!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는 사실 그닥 기대하지 않고 읽은 책인데,
일단 강유원의 시니컬한 글쓰기 스타일 자체가 재미있었고,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 유용한 tip을 많이 얻었다.

새해를 맞아 공부 한번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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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kleinsusun >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김윤식 선생님의 특강 마지막 날,
<일제말기 학병 세대의 체험적 글쓰기론>을 강의하시며
이가형의 <버마전선 패전기>, <분노의 강>을 읽으시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시적 진실"(일면적 진실)과 "산문적 진실"(전면적 진실)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가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건
시적 진실(일면적 진실)에 속았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남루하고 구차한 삶을 사는 사람도
그 사람 인생의 어떤 순간은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다만 길게 펼쳐 놓았을 때
구질구질하고 비루할 뿐!

강의를 들으며 성석제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생각났다.
성석제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저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은 순간(瞬間)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순간이다. 나는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잘은 모르겠지만....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 그 자체(전면적 진실)가 아니라
"일면적 진실"이라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성석제나 아사다 지로를 좋아하는 건
남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해도 꼬인 인생이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잡아내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하게!

어쨌거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이 조금 더 많아야
누구건 그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보면
정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겠다고!
최소한 초는 치지 않겠다고!

누군가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에
쏴~한 말 한마디로 초를 치는 사람들이 은근 너무 많다.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은 상대적인 거다.
기쁨의 질량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걸 자기의 잣대에 대서
"그만한 일에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근 너무 많다.

난 나의 주특기인 온갖 오버를 다해서
주위 사람들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함께 기뻐해 주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그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조금 더 기뻐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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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이 화제의 중심에 선 이유
[스타뉴스 2007-01-15 10:42]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규창 기자]
MBC 주말미니시리즈 '하얀거탑'(극본 이기원ㆍ연출 안판석)이 방송계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전국 시청률이 14.7%(14일. TNS)에 불과하지만 시청률 40%대의 '주몽'이나 이보다 시청률이 높은 타 드라마에 못지않은 화제가 되고 있다.

△ '완성도' 찬반 팽팽.. 해외 시리즈물 팬들도 관심

전문 메디컬 드라마를 표방한 '하얀거탑'은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CSI' 'ER' 등 해외 시리즈물에 익숙한 20~30대 젊은 시청자들은 물론 오직 '연애질'에만 몰두하는 기존 한국의 미니시리즈에 식상해있던 시청자들에게도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6일 첫 방송 이후 인터넷에서는 '하얀거탑'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게 진행됐다. 오랜만에 보는 굵은 선의 전문직 드라마라는 찬사와 함께 해외 시리즈물 못지않을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실망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또한 의사라는 직업을 다룬 '메디컬 드라마'라기 보다 권력 투쟁에 집중하는 '기업 극화'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이 처럼 '하얀거탑'이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만큼 완성도가 높고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선 수술장면은 긴박한 분위기와 사람의 내부 장기를 그대로 재현한 특수효과가 어우러져 기존 한국의 메디컬 드라마보다 한 발 앞서 있다.

그러나 'CSI' 등 해외 시리즈물의 화려한 CG(컴퓨터 그래픽)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뭔가 부족해 보이고, 기존 한국 드라마와 해외 시리즈물의 중간쯤 되는 '하얀거탑'의 비주얼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 10% 초반대의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그토록 뜨겁게 논쟁이 불붙은 것은, 해외 시리즈물의 팬들을 비롯해 인터넷에 익숙한 20~30대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서울 신촌의 한 PC방에서 커플석에 앉은 3쌍의 남녀를 지켜봤다. 한 커플은 남녀가 컴퓨터 한 대에 MBC '무한도전'의 VOD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고, 또 다른 두 커플은 여성이 '무한도전'을 남성이 '하얀거탑'을 각각 시청하고 있었다. 각자 '무한도전'과 '하얀거탑'을 시청하던 두 커플은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불법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고 있었다.

'동영상을 다운받는 방법'을 알아보려는 듯 접근해 불법 동영상을 이용하는 이유를 묻자 "토요일은 약속이 많아 방송 시간에 챙겨 볼 수가 없다. 또 VOD 서비스가 유료라는 점도 부담이지만, (불법 동영상)파일을 USB메모리에 저장해두면 언제든 원할 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 3쌍 중 한 커플은 각자 '무한도전'과 '하얀거탑'의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있는 상태였다. 드라마를 보다 뭔가 떠오르는 생각을 즉석에서 시청자 게시판에 풀어놓기도 하고, 현장 사진이나 다음주 예고 등을 챙겨보기도 했다.

이처럼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고 의견 개진이 활발한 젊은 시청자들은 비록 시청률로는 그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서 그 존재감이 여실히 드러난다. 20대 여성들을 열광시켰던 '환상의 커플'과 같이 '하얀거탑' 역시 폐인문화를 양산하고 이는 결국 드라마의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 한국형 전문직 드라마의 모델

'하얀거탑'의 또 다른 논란은 소위 본격 메디컬 드라마이냐, 아니면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한 기업 드라마이냐 하는 것이다. 천재 외과의사답게 장준혁(김명민 분)은 첫 회부터 화려한 실력을 뽐내는 수술을 선보였지만, 드라마 초반의 주된 내용은 병원 내에서의 권력 다툼이다.

이 때문에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병원을 배경으로 권력투쟁을 그린 기업 극화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원작을 옮겨왔다고는 해도, 이만큼 한국의 현실에 적합한 전문직 드라마는 보기 어려웠다.

그동안 한국에서 전문직 드라마를 흉내낸 작품들을 보면 주인공은 실력도 있고 착하며, 그의 경쟁자는 실력도 부족한 데다 악하다. 경쟁자가 온갖 모략과 음모 그리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말은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며 "착한 자는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남긴다.

반면 '하얀거탑'은 직업 혹은 직장에서의 성공과 선악을 무리하게 연결짓지 않는다. 또한 실력과 착한 마음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직장 따위는 없다. 일반인들은 병을 치료해주는 곳으로만 알고있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과 이권 등은 직업 세계 어느 곳도 '한국 직장의 현실'에서 예외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의사 장준혁이 견제를 받으며 출세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얼마나 흔한 일인가. 또한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실력있는 의사 최도영(이선균 분) 역시 직장 내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 역시 묵묵히 열심히 일해도 연봉협상에는 아무런 반영이 없는 한국의 직장 현실과 다르지 않다. 특히 남자들의 직장 내 권력관계와 그대로 이어지는 부인들의 사교관계 역시 얼마나 한국적인가.

'줄'을 잡고 '빽'을 동원하고 적당히 타협을 하고 경쟁자는 제거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고 출세하는 것이 어느 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권력의 속성이다. 장준혁과 최도영은 어쩌면 당연히 대접받고 출세해야 마땅한 실력자임에도 그리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는다. 'CSI'처럼 일만 열심히 하기에는 현실이 녹녹치 않으니, 한국형 전문직 드라마 '하얀거탑'은 훨씬 고난도의 직업 세계를 다루는 셈이다.

'대장금'과 '상도'가 사극의 틀 안에 전문직 드라마의 내용을 담았다면, '하얀거탑'은 일본 원작을 가져왔지만 한국의 조직과 기업문화를 잘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전문직 드라마를 제시하고 있다. 악역인 부원장 우용길(김창완 분)이 주인공보다 더욱 화제가 되는 것도 '리얼리티' 때문이다.

오늘도 '줄서기'와 '관계'를 강요받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하얀거탑'은 우리의 자화상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다.

모바일로 보는 스타뉴스 "342 누르고 NATE/magicⓝ/e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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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1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드라마를 멀리한 지 오랜 어느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하얀거탑...그렇게 4회까지 본 지금 소감은 '약간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훌륭하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질 것이 뻔한 두 남녀, 출생의 비밀, 고부간 갈등, 갑작스런 죽음, 드라마 나오는 인물 모두가 2다리만 걸치면 모두 아는 사이인 엽기적 관계설정에 우리 드라마를 최근엔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런데 하얀거탑은 조금 달랐다. 일단, 사랑이야기가 아직까지 없다는 것, 그리고 주인공이 혼자 정의롭고 착한척은 다 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만으로도 만족이다. 제작경험이나 비용문제로 인해 미국 드라마물에 비하면 부족함이 없을 수 없겠지만, 아직까진 만족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만족하며 시청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심층진단] 단독개업은 ‘멀고도 험난한 길’ [조인스]
부와 명예의 상징은 ‘옛말’ 전문성 없으면 밥그릇 챙기기도 어렵다
[달라진 위상! 한국의 노블리스 직업연구 ①] 변호사 上
월간중앙

■ 하늘의 별이 된 ‘로펌 변호사’
■ 사무실 유지비 월 평균 1,000만 원 마련 급급
■ 변호사 세계도 심한 양극화
■ 브로커 유혹 뿌리치기 어려운 구조가 문제
■ 대기업 사내 변호사제도 늘고 채용도 급증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가히 초고속이다. 직업의 세계도 변화의 물결로 요동치고 있다. 전통적인 우리 사회 主流 직업의 현재는 과거와 현저히 달라졌다. 그 외양과 속내를 샅샅이 해부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변호사!
“내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T(40) 변호사는 가슴까지 답답해졌다. 검사로 근무하던 2006년 9월 어느 날의 일이다. 날마다 일에 파묻혀 있다 모처럼 집에서 쉬어 보는 휴일 오전이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머릿속은 마치 실타래가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느낌이었다. 검사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밤새 뒤척인 까닭이다.

고민의 근원은 돈 문제였다. T검사의 월급은 300만 원대. 검사 경력 10년이 다 돼가지만 그 수준이었다. 가족 생활비로도 빠듯했다.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 둘이 크는 만큼 과외비가 늘었다. 가계부에는 점차 빨간색이 짙어졌다.

그는 아직 집이 없다. 법원·검찰청이 가까운 서울 서초동 32평형 아파트를 보증금 2억5,000만 원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다. 다 알려진 대로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검사 월급으로는 지금 사는 동네에서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스럽다.

T검사는 그로부터 한 달쯤 뒤인 10월 중순께 결국 옷을 벗었다. 돈 걱정에서 해방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그리고 직전까지 근무하던 서울 시내 한 지원 앞에 곧 변호사 간판을 내걸었다. 변호사로 성공하려면 유능한 사무장이 꼭 필요하다는 충고를 여러 선배 변호사로부터 들었지만 변호사 업계에서 소문난 ‘베테랑’은 쓰지 못했다. 월급이 예상보다 ‘셌기’ 때문이었다.

▶8,400여 명에 달하는 한국 변호사들의 심장부인 서울 서초동 대한변호사협회.

2006년 11월 초 ‘영업 준비’는 그런대로 마쳤지만 여전히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부터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한 달에 최소 2,000만 원은 벌어야 한다. 20평대 사무실 월세에 사무장과 여직원 인건비, 기타 잡비를 합해 한 달 사무실 유지비만 대략 1,000만 원 선이다. 생활비와 자신의 용돈까지 합치면 또 그만한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

개업 후 1주일여 동안 T변호사는 그야말로 책상을 지키고 앉아 파리만 날렸다. 주변의 선배 변호사들이 이런 모습을 보기가 안 됐던지 가끔 위로 겸 덕담(?)을 건넨다. 대체로 “검사 출신이어서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의뢰인이 적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조금 겁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전관예우도 같이 근무하는 검사가 남아 있을 때 통한다.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평생 먹고살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현직 판·검사가 뒤따라 옷을 벗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T변호사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관할 법원과 검찰에서 부장급 이상 판사 1명과 검사 2명이 ‘더 이상 승진을 기대하기 어려워’ 옷을 벗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어서다. 그것이 현실화하면 평검사 출신인 T변호사는 그들에게 ‘끗발’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검사 옷 벗어던진 T변호사의 고뇌

T변호사는 사건 수임을 위해 사무장의 조언을 얻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명색이 범죄를 다스리던 검사 출신으로서 ‘브로커 활용’이라는 불법은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다. 개업 후 한 달여 동안 브로커로 보이는 네댓 명이 제 발로 찾아왔지만 일단은 다 물리쳤다. 자신의 능력으로 버틸 때까지는 버텨 보자는 심산이다.

그러나 짧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결코 만만찮은’ 변호사시장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T변호사는 지금 검사 시절보다 더 깊은 고뇌의 바다에 빠져 있다.

T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5년 전에만 변호사 개업을 했어도 현재 하고 있는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상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청사 안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변호사를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기왕 벗을 검사 옷이었다면 왜 이렇게 늦었는지 지금은 후회가 된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시장은 수요와 공급 모두 포화 상태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 지하철 교대역 4거리를 중심으로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다. 사진 속의 변호사 이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한국의 변호사는 총 8,402명이다. 2006년 6월9일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수가 그것이다. 국내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려면 반드시 대한변협에 회원 등록을 해야 하므로 국내 전체 변호사 현황이라고 봐도 좋다.

대부분 개인회원(7,623명)이고 준회원(779명)이 이 안에 포함돼 있다. 준회원은 변호사 자격은 있으나 일시 휴업 중이거나 판·검사 등 공직에 근무 중이어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다.

또 실제 변호사 활동을 하는 개인회원 중에는 법무법인 구성원(2,255명)이나 소속 변호사(951명)로, 또는 공증·합동법률사무소 구성원(306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46%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 나머지(4,111명)가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단독개업’ 또는 ‘고용’ 형태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변호사의 급증은 2001년 시작된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와 함께 본격화했다. 2006년 994명을 포함해 지난 6년 동안 사시 합격자만 5,899명에 달한다. 2년 동안의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수가 해마다 400~500명에 이른다. 한마디로 최근 들어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변호사가 많다 보니 진로를 놓고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적이다. 특히 사법시험 성적에 2학기 기말고사 성적, 4학기 기말고사 성적을 합산한 결과가 사법연수원생들의 진로를 결정한다.

‘단독개업 싫어!’ 예비 변호사 Q씨의 도전

사법연수원 김종민(부장검사) 교수는 최근 수료생들의 진로 선택에 대한 새로운 경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공기관·기업체와 같은 비법조 직역에 대한 진출자와 진출 기관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형 로펌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성적 상위권자가 늘어난 것도 달라진 현상이다. 2007년 2월 제대를 앞둔 군 법무관들도 대부분 판·검사를 지망했던 과거 경향과 달리 대형 로펌 진출을 선호하고 있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가 늘면서 법률 전문가 저변이 확대되고, 그 결과 법률 서비스 영역이 다변화하는 현상의 반영으로 본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변화로 생각한다.”


2007년 2월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둔 예비 변호사 Q(여·26)씨. 그가 요즘 벌이고 있는 취업 도전기는 신참 변호사들의 달라진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2006년 10월 말 사법연수원 4학기 기말시험이 끝난 후 자신의 성적이 판·검사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신입 변호사를 뽑는 이른바 ‘대형’ 법무법인 13곳을 취업 목표로 삼아 모두 지원서를 냈다. “일을 많이 배울 수 있는 큰 로펌에 가는 것이 길게 볼 때 변호사로서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12월 중순까지 모두 7곳으로부터 ‘거절’ 응답을 이메일로 받았다. 그때까지 단 1곳에서 면접시험을 봤지만 취업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가 지원했던 나머지 법무법인에서는 지금껏 아무런 연락이 없어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성적이 로펌에서 원하는 기준에 못 미치고, 영어도 내세울 만큼 능통하지 못한 보통 수준이어서 불합격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 진단하고 있다.

그 뒤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회계법인을 상대로 취업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2006년 12월 말부터 오는 3월 말 사이에 변호사를 뽑는 공공기관 취업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다. 사법연수원생들 사이에서는 공공기관 중에서는 헌법재판소·감사원·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인기 직장이다. “일의 전문성이 높고, 어디에서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지방 근무가 없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고 그는 말했다.

단독개업에 대해 그는 “지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험이 부족해 성공에 자신이 없는데다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지금 생각으로는 가능하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진로”로 여긴다.


변호사의 활동 형태는 크게 단독개업·법무법인·고용 등으로 나뉜다. ‘단독개업’은 말 그대로 변호사 혼자 사무실을 열고 혼자 활동하는 것이다. 흔히 로펌으로 불리는 ‘법무법인’은 말 그대로 회사다. 소속 변호사는 회사 내 지위와 하는 일에 따라 일정한 보수를 받고 회사를 위해 일한다.

‘고용’은 단독개업 변호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변호사로, 업계에서는 흔히 ‘새끼 변호사’로 불린다. 합동법률사무소는 여러 명의 변호사가 비용 절감, 정보 공유 등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사무실을 함께 쓰는 것일 뿐 변호사들의 활동은 단독개업과 다를 바 없다.

하늘의 별이 된 로펌 변호사

Q씨의 도전기에서도 나타나듯 요즘 변호사들에게 로펌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2006년(35기) 181명, 2005년(34기)에는 178명이 로펌으로 향했다. 특히 2006년에는 단독개업보다 69명이 많은 역전 현상을 나타내 그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이는 젊은 변호사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받을 위치에 있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줄줄이 로펌행을 택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변호사가 20명 이상인 16개 대형 로펌에 소속된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무려 347명에 이른다. 그중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로 꼽히는 ‘김&장’에만 가장 많은 79명이 포진해 있고, 화우(45명)·태평양(34명)·바른(34명)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6년 11월21일 발표한 ‘로펌의 지배와 사법감시’ 자료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로펌행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16명(2004년), 44명(2005년), 48명(2006년 8월 현재) 등으로 해를 거듭하며 급증해 최근 5년 사이에만 161명에 달했다. 그들의 재조 시절 직급도 무척 화려한 편이다. 법관 출신 변호사 98명 중 대법관급 이상 8명, 법원장급 12명, 고법 부장급 5명, 지법 부장급 31명이었고 일반 판사급은 41명이었다. 검사 출신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42명 중 검사장급 이상 13명, 고등검사급 25명, 평검사급 26명 등으로 집계됐다.

한마디로 ‘잘나가는 변호사’는 대부분 로펌에 모여 있는 셈이다. 로펌에서 그들에 대한 예우는 연봉으로 따져 6억~27억 원 수준으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2006년 국회 법사위원인 김동철(열린우리당 광주 광산) 의원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들의 월평균 급여는 구체적으로 대법관 출신은 8,000만~2억 원, 법원장급 7,000여 만 원, 부장판사급 6,500여 만 원, 일반 판사급 5,000여 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로펌이 어떤 곳이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한국에서 성공적인 로펌 변호사로서 한 전형을 보여주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형석(40) 변호사를 통해 그 내부를 한번 들여다보자.

▶예비 법조인들의 산실인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 2001년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 이후 1년에 400~500명의 변호사가 양산되고 있다.


그는 현재 태평양 내에서 ‘구성원(파트너) 변호사’다. 태평양에서 구성원은 회사 내 거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소득도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거해 나눠 갖는 로펌의 주인이다. 반면 ‘소속(어소시에이트) 변호사’는 구성원 변호사에게 고용된 월급쟁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듬해인 1988년 사법시험(제31회)에 합격했다. 공군 법무관을 제대하던 해인 1995년 태평양에 입사했다. 그는 애초에 판사를 희망했고, 성적도 판사로 임용될 수 있을 만큼 우수했다. 그러나 그는 공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진로를 로펌으로 급선회했다. 그때 ‘바뀐 생각’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법조 직업도 전문가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로펌으로 가야 내가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의 지배체제가 관에서 민으로 전환하는 현실에서 로펌 변호사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업무와 교육으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다. 태평양은 판·검사로 임용될 수 있는 성적과 능력을 요구하는데, 그 관문을 통과해 입사했다.”

사내 변호사도 인기 짱!

태평양에는 현재 업무영역별로 20개 팀이 있다. 입사 1년차와 2년차 때 자신이 원하는 2개 부서를 경험하게 한 후 자신의 전문 영역을 결정하도록 한다. 그 역시 그 과정을 거쳐 기업 전문가로 성장해 기업 일반, 기업 인수합병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는 또 태평양의 해외연수제도를 한껏 활용해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기회에 그는 미 캘리포니아주 웨스턴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동시에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내 전문성을 높였다.

“로펌에서 성공하려면 업무 능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태평양에서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일을 잘해야 한다. 로펌이 윤리나 애국심을 저버리고 돈만 좇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클라이언트의 정당한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태평양에서 업무는 혼자가 아니라 팀을 이뤄 추진한다. 그래서 태평양에서는 내부 구성원 간 ‘인화’를 중시한다. 그리고 구성원 변호사가 되려면 소속 변호사의 업무 능력 제고를 위해 교육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로펌은 업무 강도가 높기로도 유명하다. 이 변호사는 태평양을 예로 들어 “밤 12시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일 만큼 일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가정에 소홀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형 로펌이 변호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이 변호사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변호사의 기업체 진출 또한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사내 변호사제도가 그것이다. 사내 변호사는 기업체에서 직원으로 상근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사내 변호사제도는 국내에서는 삼성그룹이 1990년대 말에 처음 도입했고, 그 영향으로 2000년대 들어 여러 기업체에서 경쟁적으로 이 제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변호사 사회의 정설이다.

사내 변호사는 법률만능사회인 미국에서 발달한 제도다. 미국 씨티그룹은 1,500여 명, 제너럴일렉트릭(GE)은 1,000여 명에 이를 만큼 미국에서는 사내 변호사제도가 거의 일반화돼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사내 변호사가 ‘회사 권리 보호의 최후 보루’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국내 기업체에서도 법무실·법무팀·법제팀 등의 이름으로 사내 변호사 조직을 공식적으로 설치·운영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됐다.

물론 삼성그룹을 비롯한 사내 변호사의 주력은 판·검사를 역임한 이른바 재조(在曹) 출신들이다. 이종왕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으로 대표되는 삼성그룹 법무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1999년 2월 사법연수원 수료자(28기)를 대상으로 처음 공채를 실시해 사내 변호사 7명을 뽑은 곳도 삼성그룹이었다. 그 이후 삼성그룹은 연수원 수료 변호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9명씩 뽑고 있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기업체 진출자가 35기(2006년 2월 수료)만 하더라도 895명 중 총 47명에 이른다. 사법연수원 집계에 따르면 기업체 진출자가 2002년 2월 수료생인 31기 때는 17명이었지만 25명(32기), 38명(33기), 52명(34기) 등 해마다 단위가 달라질 만큼 많이 증가하고 있다. 진출 기업체도 13개(31기), 15개(32기), 23개(33기), 41개(34기), 33개(35기) 등으로 대폭 확산하는 추세는 마찬가지다.

이 통계에서 보듯 사내 변호사제도가 진로를 고민하던 신참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활동 무대가 기업체로까지 넓어졌다는 점에서 이 현상을 ‘직역 확대’로 받아들이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것은 분명 변호사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다.

기업체 입장에서는 “투명경영 시대에 법률을 잘 몰라 회사가 떠안지 않아도 될 부담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예방 강화 차원에서 사내 변호사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과거 기업의 변호사 활용은 고문 변호사나 로펌 변호사들에게 사건이 발생한 후 뒤처리를 위임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내 변호사는 단순히 각종 수사나 소송에 대응하는 송무 업무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CEO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법률적 조언자’ 역할을 하거나 핵심 사업의 경우 추진 초기 단계부터 관여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사내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정상식 변호사는 사내 변호사의 임무를 “회사의 제반 경영과 관련한 법적 위험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고, 상업적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단순한 법률 서비스는 외부 변호사들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내 변호사는 소속 기업의 일반 현황과 생리 등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훨씬 효율적이고 구체적인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변호사에 대한 기업체의 대우는 판·검사 경험 유무, 변호사 경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기업체의 변호사 대우는 그 전문성을 인정해 대체로 후한 편이다. 갓 연수원을 마친 변호사도 대기업에 입사하면 최소한 과장 대우는 받는다. 앞에서 말한 정상식 변호사는 2005년 9월 한화그룹에 입사해 현재 직급이 상무이사다.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정 변호사는 1996년부터 만 10년간 검사로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계속>

윤석진 월간중앙 기자 [gr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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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1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시패스로 신분이 바뀐다는 것은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물론 아직도 시험 하나 통과한 것 치고는 많은 혜택이 있지만, 이제는 정말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는 하나의 관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