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 -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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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주제는 말그대로 '아침일찍 일어나라'이다. 옛부터 아침일찍 일어나라는 말은 수없이 있어왔다. 저자가 인용하듯이 영어속담에도 'an early bird catches the worm'이란 속담이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자가 지적하듯이 요즘 사회구조상 일찍 자는 것이 어렵고 그러다보니 기상시간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늦게 일어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의사인 저자는 다양한 근거를 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한 장점과 늦게 일어나는 것에 대한 단점을 열거한다.

기억에 남는 것 몇가지만을 열거하자면, 기온, 습도 등의 환경적인 조건상 5시가 기상시간으로 가장 적시이고 차선책으로도 5시 이전이 5시 이후보다 낫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늦게 일어나는 생활에 무리가 없다고 느끼더라도 결국 나이가 들면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을 느낄 것이고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성공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한다. 인간이 전기덕분에 밤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고 인간은 수백만년동안 일출과 일몰에 맞추어 생활해왔다는 지적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일에 쫓겨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하루종일 몸이 뻐근한 일을 경험해 본 일이 있는 사람들은 속는 셈치고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도록 노력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다만 문제는 실제로 책의 내용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실천하느냐 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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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MBC 다큐멘터리 가족 제작팀 엮음 / 북하우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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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맺음말에도 나와있듯이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도,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도 모두 가족과 관계된 일일 것이다. 가족이 잘되거나 가족구성원간의 관계가 화목하다면 그만큼 행복할 것이고, 가족 중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거나 가족 구성원간의 불화가 심각해진다면 삶이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가족의 붕괴가 사회적 화두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급진적인 근대화로 사회 각부문의 변화속도가 무척 빠르고 가족의 모습도 전통적인 대가족에서 핵가족을 거쳐 지금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가족의 모습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혼율 세계2위라는 통계는 접어두고서라도 적어도 가족으로 인해 더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만큼이나 가족으로 인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물론 행복이나 고통의 정도와 각자가 받아들이는 정도도 다르겠고, 가족이라는 것이 힘들다고 어느순간부터 없이 지낼 수도 없는 것이다보니 가족으로 인해 힘든 일이 생기면, 특히 가족 구성원간의 불화가 그 문제의 원인인 경우 사람들은 정말 말그대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지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가족에 관한 신문 칼럼을 읽었는데 그 중에 인상깊은 문귀가 있었다. '사람들은 더 잘 살기 위해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 요즘 보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얘기가 약간 빗나가긴 했지만, 그 칼럼을 읽고 드는 생각은 가족을 위한 희생도 필요하겠지만 본인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다른 가족 구성원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것이 과연 가치있는 일일까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부모님들이 자식만을 바라보고 당신 자신의 행복은 생각지도 않고 자식들 뒷바라지만을 생각하면서 사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또한 부모의 희생으로 사회적 성공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부모의 불행한 삶에 자식이 영향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은 그 중 일부의 행복이나 불행, 또는 구성원간의 관계가 각 구성원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운명공동체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족 그 자체 또는 그 구성원, 구성원간의 관계 등에 대해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듯이 잘 알고 있지 않는 듯하다. 바로 자기 주위만을 둘러보더라도 자신이 속한 가정에서 여러가지 모순과 부조리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들을 시정하고 더욱 화목하고 발전적인 가정을 만들기 위해 우리 자신이 별다른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이 책은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와 관련해 수많은 가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닮고 있다. 그 중에서 자기 가족과 비슷한 유형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족에 대한 이해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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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이레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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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책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물론 눈시울이 뜨거워지긴 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울음이 나올 여지가 점점 적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운다는 것이 반드시 지선양을 동정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그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그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을 느꼈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기 보다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지선양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은 텔레비전을 통해서였다. 여러편 중에 시간이 맞지 않아 2편인가를 보고 나머지는 VOD로 봤던 것 같다. 그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전신에 화상을 입고 얼굴도 많이 상한 그녀가 오히려 당당하게 거리에 나서고 너무나도 그 모습이 밝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지금은 수많은 수술끝에 예전보다는 많이 편하게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와 그녀 가족이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절대로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겪지 않고서는 그 아픔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고통을 담담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도 않게 글로 표현한다. 자신에게 벌어진 참극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서술해서 읽는 사람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음주운전자에게 사고를 당해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하고 수많은 것들을 잃었음에도 가해자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잃은 것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그녀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힘을 그녀에게 발휘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기복적인 의미에서 정말 가끔 기도만 할 뿐이다, 그것도 아주 무성의하게. 그런데 지선양을 보면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셔서 그녀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세속적 의미에서 그녀보다 더한 불행을 겪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도, 그녀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매사에 감사하면서 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세상을 꼬인 눈으로 보는 사람이라도 그녀에게 쉽게 테클을 걸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의 처지를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행복하다고 가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물론 그녀의 글을 읽으면 그녀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고 사고 이후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더 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을 읽으면서 혼자 '만약 그녀에게 사고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느냐?'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책 마지막 부분에 그녀는 이 물음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충격적이었다. 내가 그녀였다면 당연히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겠지만, 나는 왠지 그녀가 정말로 그런 대답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그런 사고를 통해서 더 그녀와 같은 경지에 이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세속적인 사고를 하는 범인이니까. 하지만 지선양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하나님의 힘을 느끼고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며 올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선양, 고마와요.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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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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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그런 우울함과 공허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그 중 앞부분 2개는 키친이고 마지막 것은 또다른 단편(소설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이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상처깁기’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상처깁기’란 어휘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 단어를 접하고는 처음 소설을 읽고 나서 내가 무엇을 읽었나 하는 막연한 느낌이 사라지고 ‘아,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친에서 주인공은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결국에는 마지막까지 함께 살던 할머니까지 잃는다. 그녀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웃에 사는 유이치가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그러나 그도 어머니이자 아버지를 잃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상처입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두 사람은 친구와 연인의 중간쯤이 어정쩡한 관계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상처를 치유한다.

마지막 단편 역시 애인을 잃은 주인공과 애인과 형을 동시에 잃은 그 애인의 동생이 죽은 각자의 애인을 잠시나마 영상으로 만나게 됨으로써 그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별한 줄거리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하겠지만 상처입은 사람들이 그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소설 전체의 구도가 미래지향적 - 물론 주 초점은 상처의 극복‘과정’에 맞추어져 있지만 - 이라는 점에서 책을 덮고도 무언가 따뜻한 기운 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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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의 친구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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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쓰인 원조교제란 말에 혹해서 읽은 독자라면 실망을 할 지도 모르겠다. 여학생의 친구는 크게 원조교제를 다룬 여학생의 친구와 소년들의 성충동을 그린 소년클럽의 두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여학생의 친구는 원조교제라는 비교적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소설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원조교제에 대해 날카롭게 해부하였다고 본다. 가정의 해체와 경제적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지 않는 소비수준. 여중생이 수입은 없는데 지출은 일정수준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면?(물론 지출 자체를 절대시 하는 것은 일본-우리나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소녀들의 빗나간 과시욕때문이겠지만) 결론은 원조교제인 것이다.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소녀들은 물론 사회 일반을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실제 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그 수는 그리 적지 않을 것이다. 그녀들은 서로 마음을 터놓지도 못하는 친구들과 의미없는 이야기를 떠들며 각종 소비생활에서 느끼는 만족감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나간다. 그만큼 세상이 그녀들에게는 힘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완전히 해체되어버린 가정이 있다.

어린 시절 가족을 버리고 딴 살림을 차린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사업이 망하자 생명보험을 들고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어머니, 그리고 자기가 아버지를 죽여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아들.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없다고 할 수 없고 그런 상황이 그녀들을 원조교제로 내모는 것이다. 그녀들은 삶에서 더 이상 크게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원조교제를 하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미나가 원조교제를 하면 자기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약간 드러나듯이 그런 생각은 틀린 것이다.

주인공 겐이치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겐이치로는 은퇴한 홀아비의 일반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물론 그는 하루하루가 무료해서 죽을 지경이고 스스로 자살도 수없이 생각하고 실행하기까지 하였다는 점은 일반화시키기는 어렵겠지만 비교적 일반화가 가능한 겐이치로도 미나를 만나면서 결국은 아들을 원조교제로 유혹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까지 하고 만다.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유미리는 결국 현 시대의 어두운 한 단면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는, 또 실제로 일어났을 수도 있는, 극단적이지만 사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 이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제기는 우리로서도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무게로 우리의 머릿속에 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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